▲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러 가는 고비의 길.
‘없다’로 시작하는 고비
고비(Gobi)에 가면 무엇을 보게 될까. 아무 것도 없다. 하릴없이 나뭇잎 뒤에 숨어서 목이 쉬도록 우는 풀벌레도 없으며, 조잘대며 흐르는 개울도 없고, 한국 사람이 제 안방보다 더 좋아한다는 노래방도 없고, 악어 쇼나 연에 매달려 타는 놀이기구도 없다.
▲ 홍그린엘스에서 만난 낙타. |
고비를 가리키는 정확한 우리말은 없다. 굳이 뒤적거려 찾아본다면 ‘거친 모래벌판’, ‘황야’라고나 할까. 고비라는 말 뒤에 으레 붙이던 ‘사막’과는 조금 다르다. 모래사막은 알타이산맥을 넘어 중국 쪽에 가깝다. 울란바토르에서 남쪽으로 220km 가량 떨어진 돈뜨고비(중앙고비)는 고비로 들어서는 길목이다. 이곳에서 시작되는 고비의 풍광은 우문고비(남고비)로 향하는 동안 다채로워진다. 스텝 지역의 초원을 지나, 점차 불모지로 비어져가는 고비는 단조롭고 황량한 바람 소리로 여행자들을 매혹시키지만 모든 이에게 그런 것은 아니다. 북적거리는 관광지를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지루하기 짝이 없다. 언젠가 어느 지역의 시의원들께서 단체로 왔다가 허허벌판의 겔에 유숙시켰다고 노발대발하는 바람에 몽골 측에서 부랴부랴 밤길을 달려 울란바토르의 호텔로 모셨다는 이야기가 있다.
고비는 세상의 어떤 카메라로도 담아낼 수가 없다. 그 광활한 대지를 담기에는 어떤 광각렌즈도 충분하지 않으며, 고작 25km인 사람의 시력으로 담기에도 고비는 너무 막막하다. 담아내려 한다는 생각마저 지워 버릴 만큼 고비는 아득하다. 세상의 어떤 카메라가 고비의 풀들이 풍기는 부추나 박하 같은 향을 담아낼 수 있단 말인가. 메뚜기들이 날개를 비벼대며 차르르차르르 우는 소리며, 알타이를 넘은 바람이 독수리처럼 휘파람을 불며 오워에 매달린 푸른 하닥을 흔들어대는 그 서늘한 촉감은 또 어떻게 담아낼 것이란 말인가. 가서 느끼는 수밖에 없다.
▲ 초원을 누비는 유목민. |
걷다보면 마침표처럼 외로운 한 채의 겔과 만나게 된다. 설령 주인이 없다 해도 겔 문은 남쪽으로 항상 열려 있다. 주인은 나그네가 마실 마유주와 아롤(유제품)을 차려 놓고 나간다. 나그네가 입으로 넣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마음이다. 외로움이다. 흰 젖과 붉은 고기로 대변되는 유목민의 음식 속에는 그것을 길러낸 고비의 삶과 죽음이 배어 있다. 고비는 막막하니 비어 있으면서도 오감을 충만하게 한다. 텅 빈 충만감. 그것이 고비를 걷는 나그네의 보법이다.
▲ 고비 여행자들의 공중부양.
아, 황홀한 별의 타박상이여
고비의 별은 순도가 높다. 인간이 켜는 불빛이 없으니 몽골의 밤은 그야말로 칠흑이다. 사방 180도로 펼쳐진 반구(半球)의 밤하늘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검은 천공보다 반짝거리는 별들이 더 많았다. 아마 평생에 봐야 할 별들보다 더 많은 별을 고비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진주 구슬을 으깨어 뿌려 놓은 듯 자지러지는 별들을 바라보노라면, 자신이 한낱 100년도 못가는 터럭 같은 존재라는 것도 잊고 감연히 영원의 세계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옹긴 히드 부근의 사이흥 캠프장에 머물던 밤이었다. 보드카에 설취한 여행자들이 울거나, 노래 부르거나, 늑대 소리를 내며 서성거리던 밤에 하늘을 메운 그 숨 막히는 별들을 만났다. 방사포처럼 여기저기 터지는 별똥에 홀려, 코앞에 걸린 별들은 손을 벋으면 당장 쥐어질 것 같고, 살짝 까치발을 들면 쨍하고 머리에 부딪칠 것 같았다. 밤새도록 별들에게 타박상을 입고 난 아침이면 가슴이 퍼렇게 멍이 들 지경이었다.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하는 되어먹지도 않은 노래를 부를 엄두도 나지 않는다. 어느 게 누구 것인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밤하늘 저편의 목동들이 밤이면 모닥불을 피우는데, 목동들이 펴든 가죽덮개가 오래되어 여기저기 좀이 슬고 해어진 구멍들 사이로 그 불빛이 새어나오는 것이 별빛이란다.
▲ 바느질하는 몽골 겔의 안주인. |
칭기즈칸도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말갈기를 휘날리며 바람처럼 달리고 싶지 않은가. 몽골의 말은 보기에 만만하다. 키도 작고 아담한 것이 제주도 조랑말을 닮았다. 체구가 작다고 만만하게 보다가 큰 코를 다치는 사람이 많다. 기마병 10만을 얹고 바람처럼 달려가 200만의 적을 들풀처럼 무너뜨리던 제국의 말들이다. 제국의 지존 칭기즈칸도 말에서 떨어져 죽게 되었다. 몽골 여행을 할 때면 비상금으로 200만원을 여축해 둔다. 말에서 떨어져 다치면 꼼짝없이 헬리콥터를 불러 울란바토르로 후송해야 한다. 헬기 부를 때 쓸 돈을 남겨 놓든지, 말을 우습게보지 않든지 선택해야 한다.
몽골의 말들은 왼쪽에서 타야 한다. 사진을 찍는다고 뒤나 오른편에서 어정거리다가 채일 수도 있다. 말에 올라타면 고삐를 가볍게 잡아당긴 뒤 탁 놓아주며 ‘츄, 츄’ 하며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그 다음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순전히 말에 올라탄 사람의 책임이다. 말을 세울 때는 만국 공통이다. 고삐를 바짝 잡아당기면 된다.
낙타를 타고 싶다면 남고비의 홍그린 엘스에서 쌍봉낙타를 타면 된다. 바다가 없는 몽골 사람들은 낙타의 눈에서 바다가 보인다고 믿는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말 깊은 바다처럼 고요하고 슬프다. 그러나 오래 쳐다보면 끈적거리는 침을 뱉을 수 있으니 주의하라. 사막을 건너는 대상처럼 오래 타고 싶다면 두툼한 기저귀를 차기 바란다. 안 그랬다가는 엉덩이가 까진다. 까진 다음에 후회하지 말고, 화장실에 들어가 겸손히 기저귀를 차기 바란다. 낙타가 화나면 말만큼 빨리 달린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느리다고 낙타의 옆구리를 발로 차지 말기 바란다. 헬기 부르게 된다.
▲ 홍그린엘스에서 바라본 알타이
가지 말아야 할 길은 없다
▲ 줄친고비에서 만난 할머니와 손녀. |
몽골 여행 알아두면 좋을 것들 |
홍그린 엘스에서 바양자크로 가는 산길도 걸을 만하다. 옹긴히드 폐사지 부근의 고원에서 별을 보며 밤길을 걷는 아름다움은 치명적이다. ‘천(늑대)’이 뒤쫓을 테니. 특히 바위가 많은 바끄가즐링 촐로에서는 밤길을 걷지 말라. 늑대에게 물리면 상당히 아프다. 늑대를 만나면 행운이 있다니 아프더라도 참겠다면 할 수 없다. 늑대보다 더 무서운 것은 몽골 개다. 겔에 들를 때는 시커먼 몽골 개가 없는지 살피라. 남의 집에 마실갈 때 몽골 사람들 인사가 “개 묶어 놓으시오”라는 말이란다.
몽골제국의 기마병들은 하루에 300km를 달렸다고 한다. 가히 바람보다 빠른 전사들이다. 이들보다 빠른 것이 한국 관광객이라고 한다. 왜 달리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앞만 보고 달리는 여행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적어도 하루나 이틀쯤은 한곳에 머물러 어린왕자처럼 지는 해를 바라보고나, 빈 보드카 병에서 나는 뱃고동 같은 바람소리를 무심히 듣거나, 유유히 자전거를 타거나, 하다못해 고비 벌판에서 된장찌개라도 끓여 먹기 바란다. 멀리 가지 못하면 어떤가. 다 둘러보지 못하면 누가 벌금이라도 물리는가. 하루쯤은 가슴 먹먹하게 고비를 느릿느릿 걸어보기 바란다.
글 이시백 | 소설가. 대표작으로 <메두사의 사슬> <종을 훔치다>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 <누가 말을 죽였을까> <갈보콩> 등이 있으며, 제1회 권정생 창작기금을 수상했다. 최근 몽골에 빠져 수시로 드나든다.
사진 조창인 | 소설가. 대표작으로 <그녀가 눈뜰 때> <가시고기> <등대지기> <길> <아내> 등의 장편소설집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