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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형과 이슬람 동생의 만남
기독교 형과 이슬람 동생의 만남
  • 글 사진·안광태 여행작가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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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리는 자동차의 앞유리로 끊임없이 각다귀 같은 작은 곤충들이 달려들어 목숨을 끊었다.
“막상 잡으려고 하면 무엇 하나 제대로 손에 쥐어지지 않는 게 산다는 것이지. 나는 바다 위에 있을 때도 이렇게 땅 위에 있을 때도 내가 어디에 있는 지, 내가 누군지, 정말이지 모를 때가 많아.”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자동차의 뜨거운 굉음은 자욱한 습기가 되어 지천으로 깔린 열대우림 속으로 푸르게 스러져 갔다.

▲ 마닌자우의 고향집에서 단란한 한때를 같이 보낸 석유시추선의 고급 기술자 무라(왼쪽 앞)와 그의 부인, 그리고 이종사촌 바틱(뒤쪽).
 
“거칠 것 하나 없는 바다에만 떠서 살면서도 어쩌면 이렇게도 내 속이 좁아터진지 모르겠어. 천리에 늘어놓은 성대한 잔치도 언젠가는 끝나고, 물 위에 떠도는 부평초도 언젠가는 만날 날이 있다는데, 무엇에 씌워서 그렇게 눈이 어두웠고, 무엇 때문에 그 오랜 세월을 그렇게 망설이며 살았을까?”

멀리서 볼 때는 한 뭉텅이였던 시내의 집들이 하나 둘 커져 제각기 모양을 잡아가자 운전대를 잡은 그의 손끝에 작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무라(Murah)를 만난 곳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에 있는 뻬깐바루(Pekanbaru)였다. 시악 강을 끼고 있는 뻬깐바루는 인도네시아 석유 산업의 메카다. 제2차세계대전 이전부터 외국 자본과 기술에 의한 유전 개발이 시작되었고, 현재까지 내륙 및 해양에서 엄청난 양의 원유를 뽑아 올리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인도양과 태평양 사이의 적도상에 길게 동서로 꼬리를 늘인 섬나라이다. 그 꼬리가 어찌나 긴지 동서로는 5200㎞, 남북으로는 1900㎞나 된다. 그래서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시차가 3시간이나 난다.

게다가 인구 또한 대단히 많다. 자그마치 2억 3천만 명이 넘어 당당히 세계 4위의 인구 대국이다. 1만7500여 개의 크고 작은 섬과 480여 개의 종족, 그리고 580여 개의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인도네시아는 사회, 문화, 종교에서부터 자연환경과 지하자원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다양성이 풍부한 나라다.

▲ 미낭까바우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모스크 앞에서 장난을 치고 있는 꼬마들.
 
수마트라는 인도네시아의 가장 서북쪽에 위치한 주요 섬이다. 서쪽으로는 인도양과 접하고, 좁은 말라카 해협을 두고는 동남아시아의 말레이반도와 접해있고, 순다(Sunda) 해협을 두고는 인도네시아의 본섬이라 할 수 있는 자바 섬과 접해있는 수마트라는 말이 섬이지 그 크기가 엄청나다. 길이가 2000㎞나 되는 지구 상에서 여섯 번째로 큰 섬이다.

수마트라 섬 하면 아직도 세계인의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는 악몽이 있다. 2004년 말,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서부 해안과 스리랑카, 인도 등의 동부 해안을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쓰나미(tsunami). 수만 명에 달하는 귀중한 인명과 엄청난 재산 피해를 낸 그 쓰나미의 진원지가 바로 수마트라 섬의 북쪽 해안이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시악 강의 작은 포구 마을에서 주민들과 함께 나무로 만든 통통배를 타고, 밤새 뱃멀미를 해가며 열두 시간이 넘게 걸려 도착한 뻬깐바루였지만, 그만 다음 목적지 부낏띵기(Bukit Tinggi)로 가는 차를 놓쳐버렸다. 기운도 없고 허탈한 마음에 배낭을 벗어 던져 놓고 길가에 너부러져 있는데, 갑자기 지나가던 지프 한 대가 서더니 누군가가 내려서 말을 걸었다.

“쌀라마 빠기(Selama pagi, 안녕하십니까)? 보아하니 이방인 길손 같은 데, 무슨 낭패라도 당하셨습니까. 어째서 이런 곳에 이러고 계십니까?” 쉰이 훨씬 넘어 보이는 그였지만 영어를 꽤나 유창하게 구사했다. 사정이야기를 말하자 자기도 휴가를 받아 누군가 만나볼 사람이 있어 그쪽으로 가는 길인데, 동행하는 사람은 부인밖에 없어 자리에 여유가 있느니 태워주겠다고 친절을 베풀었다.
 
▲ 승리한 새끼 물소의 뿔처럼 고상 가옥의 지붕 양쪽 끝이 위로 치켜 올려가 있다. 야자수 열매인 코코넛을 저장하는 창고로 쓰인다.
 
나중에 알고 보니 무라는 자원공학을 전공하고 외국계 석유시추선에서 일하는 고급 기술자였다. 무라 부부는 부낏띵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마닌자우(Danau Maninjau) 호반의 고향집에 들렀다가 서부 수마트라의 중심 도시 빠당(Padang)으로 가려는 길이었다. 부낏띵기에서 일단 내렸다가 이틀 뒤 그를 다시 만난 곳은 마닌자우에 있는 그의 고향집에서였다.

‘높은 언덕’이란 뜻의 부낏띵기는 적도 바로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으면서도 해발고도가 930m에 달해 인도네시아의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원한 곳이다. 비록 인구 15만 명 남짓의 작은 도시라 하지만 부낏띵기는 미낭까바우(Minangkabau)라 불리는 독특한 서부 수마트라 문화의 중심지다. 미낭까바우란 서부 수마트라의 토착 부족 이름이다. ‘미낭’(minang)은 승리를 뜻하고 ‘까바우’(kabau)는 물소를 뜻한다.

옛날 이 지역에 있었던 수마트라의 왕국에게 자바 왕국이 싸움을 걸어왔다고 한다. 이에 이곳의 왕은 그것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자 자바의 왕에게 물소 싸움으로 결판을 짓자고 제안한다. 그러한 제안이 수락되어 자바의 왕은 아주 사납고 덩치 큰 황소 물소를 출전시켰으나, 이곳의 왕은 뿔에 독을 바른 굶주린 새끼 물소를 출전시킨다.

굶주림에 허기진 새끼 물소는 상대편 물소를 어미 물소로 착각하여 젖을 빨려 뿔로 배를 치받았고, 상처가 난 황소 물소는 마침내 몸에 독이 퍼져 쓰러지고 만다. 그 물소들의 대리 싸움에서 미낭까바우라는 부족의 이름이 생겨난 것이다.

미낭까바우 부족이 자신들의 본향으로 섬기는 곳이 바로 부낏띵기이다. 미낭까바우 문화의 외형적 특징을 곧바로 드러내는 것은 건축양식이다. 승리한 새끼 물소의 뿔처럼 고상가옥의 지붕 양쪽 끝이 위로 치켜 올려가 있다. 야자수 열매인 코코넛을 저장하는 창고로 쓰인다. 또 하나의 특이한 점은 미낭까바우 부족은 모계 중심 사회라는 것이다.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답게 미낭까바우 부족 역시 대다수가 남성 중심의 이슬람교도들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가족의 재산과 중요 결정권은 여자들에게 달려있다. 인도네시아의 유명한 빠당 요리 또한 여행과 요리를 좋아하는 미낭까바우 남자들로부터 시작되었다. 부낑띵기와 마닌자우 호수는 자연경관 또한 빼어나다. 메라삐(Merapi), 신갈랑(Seinggalang) 그리고 사고(Sago) 화산으로 둘러싸인 부낏띵기는 시내 남서쪽에 있는 시아녹 계곡(Ngarai Sianok)을 비롯하여 미낭까바우 왕조가 살았던 근처의 빠가롱 마을(Pagaruyung)까지 볼거리들이 아주 많다. 부낏띵기의 남서쪽에 자리한 마닌자우는 수마트라를 대표하는 관광지 또바(Toba)호수와 마찬가지로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크레이터 호수이다. 규모로야 또바 호수에 미치지 못하지만, 아름답기로는 결코 또바 호수에 뒤지지 않는다.

▲ ‘승리의 물소’라는 미낭까바우 부족의 유래처럼 지금도 그들은 물소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무라의 고향집에 들어섰을 때, 그는 그곳에 살고 있는 이종사촌 동생과 함께 마닌자우 호수에 들어가 작은 물고기들을 잡고 있었다. 그의 고향집은 뒷마당이 아예 호수 안쪽으로 파고들어가 있고, 호수로 내려서는 계단까지 만들어져 있었다.

“어릴 적부터 외할머니의 집인 이곳에서 이종사촌들과 함께 자랐지. 이곳은 모계 사회인지라, 남자들이 결혼하면 처가살이를 한다고 보면 알기 쉽지. 그래서 형제들의 이름을 물어보면 모두가 성씨 다른 이종사촌들의 이름을 대는 거야.”

무라는 잡은 물고기를 바나나 잎사귀에 싸서 구운 우리네 뱅어포처럼 생긴 빠당 요리를 만들어 주었다.
“독실한 무슬림인 친동생도 이곳에서 물고기 양식을 하면서 살았었지. 하지만 치어를 사다 넣고 잘 키워봐야, 자라면서 모두 죽어 반타작도 하기 어려운 형편이었으니, 우리에게서 자꾸만 돈을 빌려다 썼어.”
무라의 말에 대꾸라도 하듯 마닌자우 호수 주변으로는 물고기 양식용 그물들이 여기저기 설치되어 있고, 통나무배를 탄 주민들이 그곳을 들락거리며 일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빌려간 돈이 쌓여 꽤나 큰 빚이 되었지. 그래서 친형제끼리 옥신각신거리다가 척을 지게 되었고, 내가 기독교 신자가 되면서부터는 아예 서로가 발길을 끊고 살았어. 그렇게 만나지 않고 산 것이 벌써 9년 세월이야. 원수도 사랑하라고 예수께서는 가르치셨는데, 종교를 빙자하고 헤어져 부귀영화를 누리면 얼마나 누리겠다고, 남도 아직 친동생을 만나보러 가는데,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몰라.”

다음날 무라는 빠당으로 차를 달려 그곳에 사는 친동생을 만났다. 너무나 오랜만의 만남이라 그랬는지, 두 형제는 얼싸안고 한참동안이나 아무 말이 없었다. 기독교도인 무라가 마침내 침묵을 깨고 동생에게 인사를 건넸다.
“살렘 알레이쿰(salaam'alaykum, 이슬람식 인사로 ‘당신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이란 뜻)” 그러자 무슬림인 동생이 나직하게 답했다.
“할렐루야(Hallelujah, 기독교식 감사 인사로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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