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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마실, 곰자리 절
겨울 마실, 곰자리 절
  • 권혜경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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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일기 23

▲ 햇살이 따뜻하게 비추는 ‘곰자리 절’. 겨울을 지낼 준비를 마치시고 본인의 다비식에 쓰실 나무까지 해마다 준비하신다는 부지런한 스님의 일상이 엿보입니다.

올해로 저는 이 산골에서 여섯 번째 겨울 맞이합니다. 다섯 번의 경험으로 보면 바삐 움직여야 하는 다른 계절과는 달리 겨울은 한가하고 여유로운 휴식의 시간들입니다. 올해 가을걷이도 김장도 모두 끝내고 난 뒤 이젠 추워질 테면 추워져라 하는 느긋한 마음으로 평안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어제. 우연히 지인들과 함께 1시간여를 차를 달려 강릉 ‘배나드리’란 동네의 ‘곰자리 절’이란 특이한 이름을 가진 암자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배나드리’는 지금으로부터 약 십여 년 전만 해도 반나절 이상을 걸어가야만 당도할 수 있는 산간 오지 중의 오지로 손꼽히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겨울이면 소를 백두대간 넘어 강릉의 왕산으로 하숙을 보낼 정도로 춥고 눈도 많이 오던 곳이었다 하는데, 곰자리 절은 곰이 집을 짓고 겨울을 난다는 배나드리 근처의 곰자리골에 있었습니다.

어제 만난 곰자리 암자의 주인인 영봉스님은 한때 히말라야를 등반하시던 산악인이기도 하십니다. 이곳 배나드리의 곰자리골에 암자를 마련하신 지는 올해가 꼭 23년이 되신다는 영봉스님 역시 한가한 겨울의 시간을 보내시다가 불쑥 찾아간 일행을 마치 십년지기처럼 반가운 웃음으로 맞아 주셨습니다.

스님께서 차려주신 점심 공양까지 하게 되고 다시 오후에는 햇살이 좋은 방에 들어 앉아 스님께서 네팔에서 채취해 오셨다는 귀한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정말 올해 들어 제일 편안한 시간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 스님의 정갈한 해우소. 창호지를 바른 문이어서 한번 놀랐고, 23년 동안 한 번도 퍼내지 않으셨다는 이야기에 또 한번 놀랐습니다. 암자를 지키는 초소처럼 입구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스님과의 대화중에 스님은 제가 몸이 건강치 않다는 말씀을 들으시고는 일 년 반쯤 전에 스님 암자 뒤편의 자작나무에서 채취하셨다는 차가버섯을 법당에서 가져와 제게 건네셨습니다.

“이게 너의 것이었구나. 이 물건을 부처님 전에 올려 두고 언젠가 필요한 사람이 나타나리라 생각했는데, 그 임자가 너인 것 같다”고 하시며 차가버섯을 담아 두셨던 바구니와 함께 건네셨는데, 차가버섯이 얼마나 고가에 거래되는지 아는 저로서는 너무나 당황스러운 선물이었습니다.

난생 처음 만나 뵌 스님께서 아무런 대가 없이 건네주시는 따스한 마음이 어찌나 기쁘고 고마운지요. 그렇지 않아도 스님은 올해 초파일에 불자들이 건넨 시주금을 모아두고 계시다가 지난 7월에 한 달간 태국의 미얀마 난민촌에 가셔서 열악한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성금으로 전달하고 오신 정말 대단한 분이셨습니다.

“우리 돈으로 50원이면 그곳 아이들의 한 끼 식사비용이고, 매달 1만원이면 그곳 사람들의 한 달 생활비랍니다.”

육신의 한계, 정신의 한계를 뛰어 넘는 설산 고행을 하시는 스님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산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괜시리 스님이 어려운 시절을 헤치고 나온 동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건방진 생각일까요?

▲ 스님께서 제게 선물로 주신 차가버섯. 크기 가늠을 위해 제 손전화기를 함께 찍어 보았습니다.
함께 한 모두가 스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스님께서 내어주시는 차를 연거푸 마시는 사이, 잠시 시간이 흘렀는가 싶었는데 짧은 겨울 해는 벌써 훌쩍 곰자리골 뒷산으로 넘어가고 일행은 다시 각자 살던 곳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무언가 잘 하려고 노력하고 살지 마. 이 산골에 들어와 살면서 아프면 안 되지. 깨끗하게 비우고 다시 찾아와야 한다.”

스님께서 계속 제게 들려 주셨던 말씀. 그 동안 이 산골에 들어사는 다섯 번의 겨울을 지낸 제게는 더 편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느긋하게 여섯 번째 겨울을 즐기라는 부처님의 배려 같습니다.

이번 호에 사진을 충실히 찍지 못했음을 사과드립니다. 스님의 인물 사진을 한 컷도 찍지 않았습니다. 그게 스님을 위한 일이 아닐까 하는 혼자만의 고민 끝에 내린 결론입니다. 독자 여러분도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권혜경 | 서울서 잡지사 편집디자이너로 일하다가 2004년 3월 홀연히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기슭으로 들어가 자리 잡은 서울내기 여인. 그곳서 만난 총각과 알콩달콩 살아가는 산골 이야기가 홈페이지 수정헌(www.sujunghun.com)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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