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무작정 세계 일주
좌충우돌, 무작정 세계 일주
  • 글 사진 윤슬 기자
  • 승인 2017.10.15 06:5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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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의 유럽 자전거 여행

저는 자전거와 텐트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하루 100km를 달리고 잠잘 곳을 찾는 게 습관이 됐어요. 1주일 동안의 좌충우돌 끝에 가장 아름다운 곳을 찾아 텐트를 치는 방법을 익혔습니다. 무작정 자전거로 세계 일주 하는 묘미를 만끽하게 되었어요. 이때까지 쓴 돈은 하루마다 5유로가 전부였습니다.

리옹에서 마르세유까지 멋진 자전거 길을 달렸습니다. E.T처럼 자전거를 타고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어요. 약 400km의 아름다운 길이었습니다. 이 길을 알게 된 것은 우연 혹은 운명의 장난이었죠. 리옹을 떠나 남쪽을 향해 가고 있을 때 앞바퀴에서 쉬이이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뭐였을까요? 빛의 속도로 바람이 빠졌어요. 빵구가 났다고 하죠. 저는 빵구를 때울 줄도 몰랐고 펌프도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무작정 세계 일주입니다. ‘닥치면 자연스레 배우겠지.’ 배움의 날이 온 거죠.

일단, 저는 어딘가에 있을 자전거 가게를 찾기로 했습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을 잡아 세울 생각이었습니다. 100m 정도 걸었을 때 우연히 운명의 그를 만났습니다. 그는 자전거를 뒤집어 놓고 빵구를 때우고 있었죠. 더구나 그는 무려 덴마크에서 프랑스까지 자전거를 타고 온 친구였죠. 그런데 그 친구의 펌프 꼭지가 제 자전거와 입맞춤하기를 거부했어요. 빵구를 때운 친구는 홀로 떠났습니다. 미안해하며 그가 말했어요. “조금만 더 가면 자전거 길이 시작될 거야. 정말 환상적인 길이야. 꼭 달려 봐.”

네, 저도 곧 빵구 난 자전거를 끌고 그 길로 들어섰고 자전거 대여소를 찾았습니다. 그들이 아시아에서 온 저를 또 동글동글 놀란 눈으로 바라보며 기념촬영을 했어요. 그리고 작고 앙증맞은 휴대용 펌프를 선물했습니다. “한국까지 무사히 닿으면 우리를 꼭 기억해 줘.” (지금 이 순간 그들을 기억하며 미소짓고 있습니다.)

저는 그때 어떻게 휠에서 타이어를 빼내고 구멍을 찾아야 할지도 몰랐어요. 머릿속에 어릴 적 본 자전거 가게 아저씨의 움직임과 물통이 또 빛의 속도로 스쳐 갔습니다. 펌프로 바람을 넣고 타이어에 물을 발랐죠. ‘푸푸푸푸’ 물방울이 튕기는 지점을 찾았을 때의 환희를 여러분은 아시겠죠? 그렇습니다. 이렇게 제 첫 빵구 때우기 모험을 마쳤습니다.

안장 위에 앉아 페달을 굴리며 룰루랄라 ‘제주도의 푸른 밤’을 불렀어요. 자연에서 홀로 캠핑을 하고, 땀에 흠뻑 젖어 강에 뛰어들었어요. 밤엔 강변에 불을 피우고 스파게티를 해 먹었습니다. 왼쪽으로는 지중해를 향해 흐르는 강이 오른쪽으로는 에메랄드빛 호수가 보였습니다. 모든 것을 훌훌 버리고 떠난 제 노래에 새들이 코러스를 맞춰 줬어요. 마법 같았어요.

파리를 떠난 1주일 후 손에는 굳은살이 생겼습니다. 저에겐 지도도 뭐도 없었죠. 그렇지만, 활짝 웃고 있는 자전거 여행자에게는 어디서나 마법처럼 배려의 손길이 온다는 것을 믿고 있었죠. 친절을 받을 때마다 저는 그들을 위해서 기타 치며 ‘제주도의 푸른 밤’을 불렀습니다.

숲이랑 나무, 강이랑 호수, 꽃이랑 새랑 친구 하면서 달리는 아름다움에 제 온몸의 세포가 마구마구 미소지었어요. 그렇게 나폴레옹이 자란 마을을 스쳐 갔고 아비뇽도 지나 마르세유까지 달렸습니다.

1. ‘내 귀는 소라껍데기 바다소리 그리워라.’
장 콕토의 짧지만 착 달라붙는 시 한 줄로 지중해 이야기를 엽니다. 남프랑스의 어느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장 콕토 박물관을 발견했어요. 그는 흑백 포스터 안에 손이 여럿인 사람으로 표현되고 있었죠. 저는 드디어 지중해의 초록과 푸름의 절묘한 조화를 만나게 됐고, 햇살은 점점 더 따사로워졌고, 우연히 이렇게 장 콕토도 만나게 됐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세계를 여행한다고? 참 재밌는 친구군. 이곳 바닷소리도 자네 귓속에 잔뜩 담아가게.”

그가 뭐 이런 얘기를 했다고 상상하며 유쾌하게 바닷가를 달렸습니다. 지중해는 아름다웠어요. 언덕에 단아하게 지은 집들도 좋았고요. 해변에 엎드려 누워 햇살을 쬐며 느리게 사는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들도 좋았습니다.

2. 바다에 혼이 쏙 빠져 해가 질 때까지 텐트 칠 곳도 못 찾았어요. 자연에서 홀로 잠드는 걸 사랑하는데 말이죠. 그러다 친절한 친구도 만났어요. 그는 저에게 어디를 찾고 있냐고 웃으며 물었습니다.

“텐트 칠 조용한 곳을 찾고 있어.”

제 대답에 친구는 ‘그럼, 우리 집에 텐트를 치는 건 어때’ 하고 되물었습니다. 저는 방긋 웃으며 ‘좋아’하고 답했죠.

친구는 한적한 언덕 위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아빠와 엄마가 저녁을 준비해놓고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가 외계에서 온 저를 보고 놀라셨죠. 제가 파리에서 자전거를 타고 왔다고 하자 더 놀라셨어요.

따뜻한 수프와 빵과 샐러드 그리고 화이트 와인, 그리고 온 가족의 기타 연주까지 저도 그들에게 깜짝 놀랐습니다. 가족은 저에게 책으로 가득한 방을 마련해줬어요. 제가 사르트르와 카뮈의 실존주의를 좋아한다고 하자 그들은 또 한번 놀라며 좋아했어요. 시골 외딴곳에서 책과 음악에 둘러싸여 농사를 짓고 사는 그들의 삶이 멋지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개운한 샤워를 하고 편안한 침대 위에서 잠들었습니다.

3. 내리막길을 달리는 기분, 상쾌했습니다. 툴롱이라는 해안 도시까지 기분 좋게 달렸습니다. 아이스크림콘을 한 손에 들고 잠깐 도시를 둘러 봤죠. 길에 주저앉아 책을 읽고 있는 펑퍼짐한 바지의 여행자를 만났습니다. 제가 딱 사랑하는 청춘의 여행 하나죠. 친구는 뉴질랜드에서 유럽으로 와 여행을 하고 있었고 이번엔 섬으로 가기 위해 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소울 메이트라는 것을 알아봤습니다. 친구는 나중에 편지에 시를 적어 보냈습니다.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방랑자를 만났다.' 이렇게 시작되는 아름다운 시였어요. 하하하. 여행의 아름다움 중 하나는 멋진 친구를 만나 서로의 심장 속에 콩닥콩닥 뛰고 있는 시 한 줄의 울림을 나누는 거죠. 언젠가 길 위에서 다시 친구를 만날 날을 기다립니다.

4. 칸에 도착했어요. 죽기 전에 봐야 할 영화 1001의 리스트를 지워가며 1년 내내 고전 영화를 보던 때도 있었습니다. 베를린과 베니스 그리고 칸 영화제에 가보는 것은 제 꿈 중 하나였어요. 아쉽게도 칸 영화제는 이미 끝났지만 주말 아트마켓과 갤러리를 둘러보며 칸의 영혼을 조금이나마 흡수했습니다.

갤러리에서 만난 어느 중년의 예술가는 제 여행 이야기를 듣고 두 손을 깍지 끼고 눈물까지 흘렸어요. 역시 예민한 영혼입니다. 두 볼에 쪽쪽 키스, 뜨거운 포옹까지 받았어요. 저에게 멋진 영혼의 청춘이라고도 했으니 다시 하하하 웃어야겠죠. 칸의 포옹을 뒤로하고 마법의 지중해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꼭 껴안고 자전거를 타고 있는 연인을 보고 조금 외로워졌지만요. 저에게는 이 모든 아름다운 순간을 함께한 자전거가 항상 옆에 있었습니다.

프랑스에서 이탈리아로 넘어가기 전 바게트 두 개를 샀습니다. 수프와 요거트 그리고 누텔라 초콜릿에 그토록 많이 찍어 먹었던 막대 빵과 이제 작별하니까요. 빵 두 개를 두 손에 들고 국경을 넘는 방랑자. 국경 넘기는 초콜릿보다 달콤합니다.

이탈리아에서 슬로베니아 국경을 넘을 때 ‘빠바바밤’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 독일 워킹홀리데이 비자 1년이 어제로 끝난 거죠. 저는 당연히 관광 비자로 자동 전환 되는 줄 알았습니다. 혹시 몰라 베로나에서 트리에스테 국경까지 발바닥에 불이 나게 달렸습니다. 국경 심사관, 그의 이름 다니엘. 그가 묻고 제가 답합니다.

다니엘 - 여권 주세요. 어디 가고 있죠?
방랑자 - 여기요. 그리스 거쳐 이집트로 가고 있어요.
다니엘 - 그리스엔 왜 가죠?
방랑자 - 보다시피 자전거 여행 갑니다.
다니엘 - 비자가 만료된 것을 알고 있었나요? 또 문제는 당신은 아직 솅겐 지역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거예요.
방랑자 - 그 비자는 독일 워킹 홀리데이 비자였어요. 그리고 저에겐 3개월 관광 무비자가 시작됩니다.
다니엘 - 그건 모르던 얘기군요. 독일에선 뭘 했죠?
방랑자 - 약 8개월 동안 예술가들과 살았어요. 그 후 3개월 동안 파리를 여행하고, 이곳까지 자전거 여행을 했어요.
다니엘 - 예술가인가요? 자전거 여행을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방랑자 - 저는 그저 북러버예요. 자전거 여행은 지구인이라면 누구나 꼭 한 번 해봐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지구를 사랑하는 하나의 방법이죠.
다니엘 - 멋지군요. 한국에 돌아가면 지금의 여행을 글로 쓸 건가요?
방랑자 - 저도 그러곤 싶지만, 항상 꿈만 꾸곤 합니다.

국경 심사관은 여권을 들고 상급 직원으로 보이는 직원에게 갔습니다. 저는 조금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하며 ‘룰루랄라’ 밀라노의 친구 집에서 보낸 시간이 후회됐어요. 조금 더 일찍 떠날걸 그랬습니다. 다니엘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의 손엔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습니다.

다니엘 - 이 메시지를 다음 국경을 넘을 때 보여주도록 해요. 아무 문제 없이 도장을 찍어 줄 거예요. 그리고 가끔 웃으면서 슬로베니아를 기억하길 바라요.
방랑자 - 알겠어요. 고마워요.

종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이 여행자는 오늘로부터 89일의 솅겐 비자 기간이 더 남아 있음을 알립니다. 이 특별한 여행자에게 친절을 베풀어 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룰루랄라 노래 부르며 다시 자전거를 탔습니다.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 거죠. 자전거 여행, 그리고 제가 북러버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제 자전거와 인생 탐험을 사랑합니다.

윤슬
대학을 그만두고 7년 동안 33개국을 떠돌아다녔습니다.
온갖 일을 해서 여행 경비를 벌었고, 호주와 독일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했습니다.
프랑스에서 한국까지 1만2천킬로미터 자전거 여행을 했고, 길 위에서 여행자와 만나 결혼했습니다.
20개월 된 아기가 있지만 여전히 여행을 미치도록 사랑합니다.
세계 지도를 보면 언제나 가슴이 콩닥거리고,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삶이 여행이라고 믿습니다.
도서관의 고요와 세계 곳곳 아름다운 자리에 앉아 책 읽기를 즐깁니다.
아내와 아기를 데리고 언젠가 자전거 세계 일주를 떠나고 싶지만, 일단은 미니버스를 개조해 가족 세계 여행을 떠날 꿈을 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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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분 2017-10-16 18:16:33
와우! 화이팅 저도 아이들과 4년후 떠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