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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달콤한 삶, 여행지구별 방랑여행자 윤슬의 여행 이야기 1
  • 글 사진 윤슬
  • 승인 2017.09.30 06:59
  • 호수 149
  • 댓글 0

대학을 그만두고 7년 동안 33개국을 떠돌아 다녔습니다. 온갖 일을 해서 여행 경비를 벌었고, 호주와 독일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했습니다. 프랑스에서 한국까지 1만2천km 자전거 여행을 했고, 길 위에서 여행자와 만나 결혼했습니다. 20개월 된 아기가 있지만 여전히 여행을 미치도록 사랑합니다. 세계 지도를 보면 언제나 가슴이 콩닥거리고,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삶이 여행이라고 믿습니다. 도서관의 고요와 세계 곳곳 아름다운 자리에 앉아 책 읽기를 즐깁니다. 아내와 아기를 데리고 언젠가 자전거 세계 일주를 떠나고 싶지만, 일단은 미니버스를 개조해 가족 세계 여행을 떠날 꿈을 꾸고 있습니다.

대학교를 때려 쳤어요. 문학을 공부하러 갔지만, 세계 일주를 하는 게 진짜 달콤한 공부일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스무 살에 다리가 부러져 병원에 누워 있을 때였어요. 주렁주렁 포도송이처럼 꿈이 많은 나이였죠. 깁스한 다리로 침대에 누워 20대에 꼭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 봤습니다.

1. 세계 일주하기
2. 1000권의 책 읽기
3. 1권의 책 쓰기
4. 패러글라이딩 배우기
5. 스킨스쿠버 배우기
6. 악기 하나 자유롭게 연주하기
7. 외국어 하나 자유롭게 말하기
8. 엄마랑 여행하기
9. 자원 봉사하기
10. 첫사랑과 결혼하기

가족들은 제가 미쳤다고 했습니다. 어렵게 간 대학을 그렇게 쉽게 그만뒀냐고요. 군복무와 대학 졸업, 취업의 길까지 닿고 나면 어느덧 20대의 끝에 있을 것 같았죠. 그렇게 톱니바퀴 같은 청춘의 시간은 저를 정말 미치게 만들 게 틀림없었습니다. 20대는 인생의 봄 같은 시간이니까요. 저는 그 봄을 만끽하고 싶었습니다.
편의점 매니저와 대리 운전, 하루 두 가지 일을 해서 여행 경비 2천만원을 모았어요. 출발 전 90일은 아침부터 밤까지 책을 읽었죠. 우주와 세계, 철학과 종교, 문학과 예술에 관한 책들을 ‘냠냠냠’ 달콤하게 흡수했습니다. 삶과 인간, 우주에 대한 갈증에 책은 시원한 오아시스 같았어요.

드디어 떠났습니다. 중국을 거쳐 티벳으로, 히말라야를 넘어서 네팔로, 다시 국경을 넘어 인도로 파키스탄으로 갔어요. 그 후 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301일이었어요. 여행에서 돌아오니 보통 사람에게 저는 더 미친놈이 됐고, 책은 놀랍도록 더 달콤했고, 얼굴은 까맣게 탔고, 긴머리와 콧수염을 기른 저를 한국인으로 보는 사람이 사라졌습니다.

1년 후 다시 떠납니다. 워킹 홀리데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호주에 있는 농장에서 수만 번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 하며 사과를 땄죠. 그리고 이번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캄보디아를 거쳐 시계추처럼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이제 방랑벽을 멈출 수 없게 됐습니다. 여행의 다채로움에 비해 한국에서의 삶은 너무 단조롭게 느껴졌어요. 책에 빠져 헤엄치는 게 유일한 행복이었습니다. 사실, 가족과 책과 한국 음식이 그리워 견딜 수 없을 때쯤 돌아왔죠. 1년이 지나면 반대로 여행에 관한 타오르는 목마름을 느꼈어요. 1년의 세계 여행, 1년의 한국 여행이 제 삶의 방식이 되었습니다.

다시 떠나 호주, 인도, 태국, 중국을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작은 첫걸음으로 <여행 수업>이라는 책도 썼습니다. 비록 다섯 명이 함께 작업한 책이었지만 제 책을 서점에서 봤을 때는 짜릿짜릿 행복했어요.

저는 어느덧 30대가 되었고 궁핍했지만 모험 가득한 20대를 생각하며 하하하 웃었습니다. 여기서 끝은 아니죠. 이번엔 유럽으로 갔습니다. 독일 베를린에서 예술가들과 9개월을 살았어요. 그리고 프랑스 파리에서 3개월을 사는 것으로 1년간의 워킹 홀리데이를 끝냈습니다.

그 후 파리에서 출발해 한국까지 자전거 여행을 했어요. 길 위에서 여행자와 만나 아빠가 되었습니다. 삶이라는 여행, 정말 아름답습니다. 아기는 570일을 살았고, 제 꿈은 여전히 세계 일주를 계속 하는 거예요. 가족 모두 함께요. 또 많은 사람들이 미쳤다고 하겠죠. “아기랑 세계 일주를 하겠다고?”

Crazy? 미쳤어?
참 많이 들었어요.
특히 직설적인 이탈리아인들은 더 그랬습니다.

Are you crazy? 너 미쳤지?
자전거로 파리에서 이탈리아까지 왔다고 하니까 눈을 크게 뜨고 입술을 둥글게 벌리고 말했어요.
You are really crazy. 너 진짜 미쳤어.
길 위에서 수천 명의 사람을 만났습니다.
하나같이 제가 미쳤다고 했어요.
그러다 차츰 이런 사람들을 만났어요.

Crazy. But I love your crazy travelling.
미쳤어. 근데 난 너의 그 미친 여행을 사랑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자주, 더 열렬히 말했어요.

You are my dream. You live how i dream.
넌 내 꿈이야. 넌 내가 꿈꾸는 삶을 살고 있거든.

파리 시내에서 29유로짜리 파란 텐트를 샀습니다. 겨울용 슬리핑백에 더해 여름용 얇은 슬리핑백도 15유로에 샀어요. 매트리스는 9유로였습니다. 이렇게 지구별을 떠도는 집이 약 7만원에 해결됐어요.
파리에서 시작해 그리스, 이스라엘 그리고 이집트까지 가는 게 첫 그림이었어요. 길에 세워진 중고 자전거 한대가 반짝반짝 빛나면서 제 눈에 띄었습니다. 알제리 형제에게 120유로에 그 자전거를 샀어요. 약 15만원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파리를 떠나 지중해를 향해서 달렸어요.

자전거 세계일주의 첫 페달이었습니다. 저는 무작정 떠나는 게 무조건 좋아요. 매일 놀라운 모험이 기다리겠죠.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기에, 파리에서 5월에 무작정 떠났습니다. 날씨는 여전히 쌀쌀했어요. 어제 산 자전거의 타이어가 벌써 터졌어요. 알제리 형제에게 돌아갔습니다.

“도대체 이게 뭐야? 하루 만에.”
두 형제는 인샬라를 읊조리며 새 타이어로 바꿔 줬습니다. 앙증맞은 벨과 튼튼한 스탠더까지 덧붙여 줬으니 뿔난 제 마음은 사르르 녹았어요. 어디에서 잠들지 뭘 먹을지 어떤 길로 갈건지 아무것도 정하지 않았어요. 어느 길에 있으나 삶은 기적이라고 믿고 다시 파리를 떠났습니다. 자전거에 ‘원더러’라는 이름을 줬어요. 낭만주의 그림 ‘길 위에 선 방랑자’에서 따왔습니다. 하얀 몸통에 오렌지 겉옷, 튼튼한 팔다리까지 아주 믿음직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첫 날 80km 정도를 달렸어요. 긴 머리에 콧수염의 방랑자가 바로 접니다. 등에는 기타를 멨습니다. 뒷안장에는 그와 함께 세계를 여행한 사랑스런 배낭을 앉혔어요. 조금 무거웠죠. 시행착오입니다. 그래서 텐트를 핸들 앞으로 옮겨 묵었습니다. 무작정 남프랑스를 향해 달렸습니다. 그리고 곧 제 여행의 첫 식사를 선물한 보트 위의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세느강 위에서 저녁으로 파스타를 먹었어요.

“친구, 넌 정말 멋져. 네 여행을 언제나 응원해.”

보트로 세계를 여행하는 친구들이 말했습니다. 무언가 멋진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첫째 날의 떨림을 기억합니다. 도시를 벗어나지 못해 새벽 1시까지 페달을 굴렸어요. 결국 한적한 곳을 찾아 매트리스를 바닥에 깔고 슬리핑백 속에 들어가 잠을 청했습니다. 해 지기 전에 텐트 칠 곳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어요.


둘째 날은 작은 마을에 있는 캠핑장을 발견하고 미리 텐트를 쳤습니다. 밤엔 아무도 없었는데 다음날 아침 주민 두 명이 왔습니다. 5유로를 내는 대신에 이탈리아 책을 선물로 줬어요. 꼭 캠핑장이 아니라 자연 어딘가에 텐트를 치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셋째 날은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핀 길가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습니다. 근처 농가에서 개가 요란하게 짖더군요. 인생 탐험 참, 쉬운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도 뭐, 이 모든 모험을 즐겼어요.

넷째 날은 비가 왔어요. 방수 텐트가 빗물을 막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죠. 어쩌겠어요. 파리로 돌아가 환불을 받을 수도 없고. 궁리 끝에 텐트 위에 비닐을 덧대고 덮개를 덮었습니다. 그 작은 진전에 마냥 행복했어요. 편하고 아름다운 잠을 잘 수 있는 방법을 제법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다섯 째날 동네 주민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는 중고차를 파는 40대의 남자였는데 그 달 한 대도 못 팔았답니다. 자전거 한 대를 사서 여행이나 떠날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에 저를 만났다고 합니다. 간만에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맛있는 수프도 먹었습니다.

여섯째 날은 호숫가에 캠핑을 했습니다. 달빛 아래서 책을 읽다 잠들었어요. 달콤한 밤이었죠. 아침에 일어나 호수에 첨벙 뛰어 들었습니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요. 물이 그토록 차다니.

일곱째 날은 공원에 텐트를 쳤습니다. 운동을 나왔던 남자가 파리에서 거기까지 자전거를 타고 오다니 놀랍다며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달라고 했어요. 뭐 지금은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고 했죠. 그는 자기도 곧 자전거 여행을 떠나겠다고 했습니다.

-11월호에 이어집니다.

글 사진 윤슬  webmaster@outdo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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