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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링로드 자전거 여행 1비의 나라, 바람의 나라
  • 글 사진 송영조
  • 승인 2017.07.22 06:59
  • 호수 147
  • 댓글 5

텐트 외피에서 부서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매일 잠에서 깼다. 깊은 상념에 빠질 새도 없이 자리를 정리하고 길에 올라야 했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가는 언제 출발할 수 있을지 가늠조차 하기 어려웠다. 아이슬란드는 비의 나라였고, 바람의 나라였다.

데티포스의 위용은 넋을 놓게 만들었다.

여정의 시작, 레이캬비크
아이슬란드에는 나라를 한 바퀴를 둘러싸고 있는 도로가 있다. 공식 명칭은 ‘route one’. 우리나라로 따지면 1번 국도인 셈이다. 반지 모양과 닮았다고 해서 친근하게 ‘링로드’라고 부르기도 한다. 총연장 약 1300km. 일주일이면 자동차로 돌아보기에 충분한 거리다.

비와 바람의 나라,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의 자연은 거친 날씨에서 제 멋을 드러내는 듯 했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핀란드의 헬싱키를 거쳐 열네 시간의 비행 끝에 케플라비크Keflavik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아이슬란드로 들어가는 첫 관문인 케플라비크 국제공항은 수도 레이캬비크Reykjavik에서 50km가량 떨어져 있다. 유럽 시민에게 아이슬란드는 우리나라의 제주도 같은 곳이다. 자전거 여행자도 많다. 그래서인지 공항에 자전거를 분해·조립할 수 있는 작은 건물이 따로 마련돼 있다. 자전거를 조립하고 나서 버스를 타고 레이캬비크 캠핑장으로 향했다. 캠핑장까지는 자동차로 40분. 공항에 도착할 때부터 캠핑장에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비가 세차게 내렸다. 비가 매일 온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여행지를 잘못 고른 게 아닐까. 우중 라이딩은 해본 적도 없는데.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캠핑장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표지판. 아이슬란드는 인구밀도가 낮아서 캠핑장 문화가 발달했다.

3일 만에 찾아온 위기, 그리고
아이슬란드에 도착한 날부터 내렸던 비는 3일이 지난 뒤에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3일째 되는 날은 초속 20m로 맞바람이 불어왔다. 기어를 최대한 낮추고 페달을 밟았지만 평지는 물론 내리막에서조차 속도를 내기 힘들었다. 도로 주변에는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건물이나 나무조차 없었다. 절망적이었다. 자전거 여행 경험이 부족해서 짐 배분까지 미숙했다. 자주 챙겨 먹어야 하는 행동식은 제때 먹지 못했다. 결국 더 이상의 라이딩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도로 근처의 들판에 텐트를 치고 숨을 골랐다. 앞으로 이런 날씨가 계속된다면 링로드를 완주할 자신이 없었다. 히치하이킹을 고민하던 중, 텐트 밖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괜찮아요?” 이럴 수가, 지나다니는 차도 보기 힘든 도로 한가운데서 누군가 내 안부를 걱정해주다니.

여행 내내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준 제프와 페트리샤. 그들이 있어서 외롭지 않았다.

텐트 바깥으로 얼굴을 내밀자 나이 지긋한 부부가 보였다. 그들은 나와 같은 방향으로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었다. 전날 길에서 내 텐트를 봤다며, 오늘은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었다. 저녁때 숙소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먼저 그들을 보냈다. 희망이 차올랐다. 폭풍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길 위에서 만난 제프와 페트리샤는 40년 동안 자전거 여행을 함께 해온 호주인 부부였다. 인터넷은커녕 전화국에서 통화해야만 했던 시절, 인도와 동남아시아까지 여행했다고 한다. 남편인 제프는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매일 비바람과 싸우면서도 체력적으로 무리를 느끼지 않았다. 이때 만남을 계기로 우리는 나흘 동안 함께 라이딩을 했고, 그들에게 자전거 여행의 노하우뿐만 아니라 여행자에게 필요한 지혜도 배울 수 있었다. 길 위에서 좋은 친구를 얻었다.

층층이부채꽃lupino은 링로드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꽃의 색깔만큼 오묘한 향기도 매력적이다.

아이슬란드 북부의 심장, 아퀴레이리
제프와 페트리샤와 함께 달린 지 4일째 되는 날, 아이슬란드 북부에 위치한 제2의 도시 아퀴레이리에 도착했다. 아퀴레이리는 아이슬란드에서 레이캬비크 다음으로 큰 도시지만, 규모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담하다. 그만큼 아이슬란드 고유의 색채가 짙게 남아있다.

아퀴레이리에 가는 길. 바다와 떨어져 있는 아이슬란드의 북서부는 목가적인 풍경이 주를 이룬다.

이날 역시 종일 비를 맞고 달린지라 호스텔에서 하루를 보냈다.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고래를 보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고 고래투어를 떠났다. 아이슬란드는 포경산업이 합법이다. 마트에서는 고래 고기를 팔고, 식당에서는 고래스테이크를 만든다. 과거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잠시 불법이 된 적도 있지만 결국 지역민의 경제활동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다음날 하루 더 쉬고 출발한다는 부부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아퀴레이리를 떠났다. 혼자 길 위에 올랐지만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미바튼의 명소 자연온천(Myvatn Nature bath). 제 2의 블루 라군으로 불리기도 한다. 수건 대여료가 7천원이므로 꼭 챙겨 갈 것!
미바튼에서 6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크베리르Hverir. 지금도 뜨거운 증기를 내뿜고 있는 지열지대다.
크베리르Hverir

여행 중 만나는 인연은 가벼우리라 예상하지만 의외로 밀도가 높은 경우도 많다. 캠핑장에서 만났던 아이슬란드 현지인 부부도 그랬다. 레이캬비크에서 이틀간 북쪽으로 140여km를 달려 캠핑장에 도착한 때였는데, 내 자전거를 관심 있게 쳐다보던 현지인 부부가 나를 그들의 카라반으로 초대했다. 아이슬란드인이 낯선 사람에게 과도한 친절을 베풀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던 터라 의외였다.

현지인들이 초대한 카라반에서. 럼주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나서야 작별인사를 할 수 있었다.

부부는 나에게 쌀쌀한 날씨에 어울리는 핫초코와 간식을 내준 후 궁금했던 점을 물어왔다. 나도 이 기회를 놓칠세라 아이슬란드에 대해 물었다. 그들은 레이캬비크에서 60년을 넘게 살았지만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관광을 위해 아이슬란드에 발길을 들인 지는 10년이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슬란드를 찾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지만, 조금 더 자연을 존중하고 배려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들은 몰려드는 인파를 아이슬란드의 자연이 감당하지 못할까봐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자연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인상적이었다.

크베리르Hverir

이야기를 마치고 따뜻해진 몸을 일으켜 세우려는데 인자한 미소로 핫초코 잔에 80도짜리 럼을 따라 줬다. 누가 바이킹의 후예가 아니랄까봐. 소박한 만남이었지만 그들의 환대에 다시 길을 나설 힘을 얻은 것 같았다.

<프로메테우스>의 그 폭포, 데티포스
여행 9일차, 아이슬란드의 북동부를 지나가고 있었다. 부지런하게 달려서인지 생각보다 일정에 여유가 있었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영화 <프로메테우스> 오프닝 시퀀스의 배경이 되었던 데티포스Dettifoss에 가기로 했다. 링로드에서 데티포스로 가기 위해서는 862번 도로나 864번 도로를 통해야 한다. 나는 가까운 862번 도로를 택했다. 예정보다 왕복 50km를 더 달려야 했다. 하루 평균 70km를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 일정을 미루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데티포스로 가는 길 역시 만만치 않았다. 포장도로였지만 맞바람이 끊임없이 불었다. 부디 이 고생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며 힘겹게 페달을 밟았다.

대도시를 제외하고 캠핑장은 붐비지 않았다. 나무를 바람막이 삼아서 텐트를 쳤다.
데티포스의 상류인 셀포스Selfoss. 데티포스에서 1.5km 떨어져 있다. 걷기 귀찮다고 놓치지 말자.

고생 끝에 도착한 데티포스는 도착하기 전까지 의심을 품었던 게 미안해질 정도로 장관이었다. 과연 이곳을 ‘폭포’라고 부르는 게 맞는 표현일까 싶을 정도로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아이슬란드의 수많은 폭포 중에서 이곳을 촬영지로 선택한 이유는 분명해 보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영화에서 나온 구도에서 폭포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862번 도로가 아닌 864번 도로로 가야 한다. 아이슬란드에서 본 수많은 폭포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단 한 군데만 뽑는다면 단연코 이곳을 꼽고 싶다.

링로드에서 영화 <프로메테우스>의 배경 데티포스Dettifoss 폭포로 향하는 길.

Route One / ICELAND
1534km, 24days

ROUTE
인천공항→헬싱키 반타공항Vantaa(경유)→아이슬란드 케플라비크Keflavik 국제공항.
(시계방향) 레이캬비크Reykjavik→보르가르네스Borgarnes→블뢴뒤오스Blonduos
→아퀴레이리Akureyri→미바튼Myvatn→데티포스Dettifoss→에이일스타디르Egilsstadir
→세이디스피외르뒤르Seydisfjordur→듀피보구어Djupivogur→회픈Hofn
→스카프타펠Skaftafell→비크Vik→셀포스Selfoss→크베라게르디Hveragerdi
→레이캬비크

송영조. 중앙대학교에서 물류를 전공하는 스물다섯 대학생이다. 영화 감상과 피아노 연주가 취미다. 어렸을 때 뉴질랜드와 미국을 다녀와 여행의 매력을 느끼고 대학교에 입학한 해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군복무 중 아부다비에서 6개월간 파병생활도 했다. 작년 페루 안데스 산맥에 트레킹을 다녀오면서 아웃도어의 ‘맛’을 알아가고 있다.

글 사진 송영조  webmaster@outdo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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