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파묻혀 사는 우리시대 최고의 이야기 : 이외수
자연에 파묻혀 사는 우리시대 최고의 이야기 : 이외수
  • 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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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주는 혜택은 그 무엇으로도 환산 불가”

 바깥 외(外)에 빼어날 수(秀)를 쓰는 선생의 이름은 문학계의 아웃사이더이면서 동시에 자유롭고 재기발랄한 문체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그리하여 고정 독자 40만을 거느린 인기작가의 자리를 차지한 의외성과 제법 잘 어울린다. 세상에 섞여들지 않으면서 자연 품에 나만의 베이스캠프를 짓고 내 방식으로 내 길을 간다는 고집은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앞서간다는 빼어남으로도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1946년 생 개띠, 환갑도 훌쩍 넘긴 선생을 찾아가는 길.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 더 이상 길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고개 너머에 자리한 감성마을은 부드럽고 낮은 산에 감싸여 있고 한 쪽으로는 실개천이 흐른다. “선계와 인계를 잇는 중간자 역할을 하고 싶다”는 선생이 머무는 공간이다.

 PART 1 자연, 그리고 아웃도어 이야기

 <청춘불패>의 작가노트에는 이런 구절이 있지요. ‘겨울새벽까지 깨어있으면 언제나 빌어먹을 놈의 외로움 때문에 뼈가 시리다. 라고 썼다가 바깥에서 앙상한 뼈를 드러낸 채 묵묵히 겨울을 견디고 있는 나무들을 생각하면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중략) 그러나 자연에게는 자기변명이 필요치 않다. 여기서는 마음 하나만 열어두면 그만이다.’ 선생께서 도심이 아닌 자연 속에 머무는 이유가 이와 관련 있어 보입니다. 어떤 이유로 자연에 머무시는지. 또 선생님에게 자연은 어떤 의미입니까?
⇒ 자연의 가장 훌륭한 점은 나에게 무언가 특별한 것을 바라지도 강요하지도 않는다는 거예요. 아무 불편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법칙을 순리라고 한다면 자연 안에서 나는 그 순리 위에 살포시 얹혀 있기만 하면 되거든요. 쉽게 말하면 자연은 나를 불편하게는 하지 않는다는 거지요. 내가 산을 오르다 숨이 차서 쉰다고 해도 뭐라고 하지 않을 뿐더러 힘들다고 다시 내려간다고 해도 욕하지 않거든요. ‘자연스럽다’라는 것은 ‘자유롭다’와 같은 의미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자연에는 자유로운 날것의 아름다움이 더해지니 법이니 그 안에 속해만 있어도 충분해지기 마련이지요. 제가 있는 이곳은 외져서 음식도 시켜먹기 힘든 곳이에요. 자연을 즐기면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곳이지요.

 감성마을은 마을 초입부터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더군요. 아기자기 하고 예쁘던데 자주 걸으시나요? 혹은 좋아하는 산책로가 있으신가요?
⇒ 감성마을은 친환경적인 문학마을이에요. 길 자체도 산책하기 좋은 곳인데다 일부로 산책로도 만들어 두었으니 나에겐 최고의 산책로인 셈이죠. 1.4km 정도 되는데 쉬엄쉬엄 걸으면 40분 정도 걸린답니다. 날이 추워지기 전에는 매일같이 걷곤 했는데 지금은 너무 추워져서 자주는 못하고요.

같은 길이지만 함께 걷는 사람에 따라서 길의 느낌도 그때그때 달라진답니다. 아내와 걸을 때, 문하생들과 걸을 때, 강아지들과 걸을 때, 또 찾아오는 방문객들과 걸을 때…. 그 때마다 길 뿐 아니라 주변 자연의 표정도 달라지는 걸 보면 신기하다 못해 신비롭다는 생각이 들어요.

 얼마 전 한 주간지에서 천식이 심하시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천식 때문에 술과 담배 모두 끊으셨다고 하는데 그럼, 평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시는지요?
⇒ 나는 감정 관리가 곧 몸 관리라고 생각해요.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태가 실체인 몸으로 드러난다고 믿기 때문이죠. 슬픔이 과하면 폐가 다치고, 신경을 많이 쓰면 위가, 분노하면 간이 다칩니다. 이렇듯 오장과 감정은 깊은 상관관계가 있으니 감정을 잘 다스리는 것이 곧 오장육부를 잘 다스리는 것이지요. 마음과 몸은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에 산책할 때도 즐거운 마음으로 아름다운 것만 보려고 노력합니다.

마음이 넓으면 작은 일에 흔들리지 않으니 큰 마음을 갖는 것이 좋아요. 그렇다고 화 같은 건 내지 말고 무조건 참으라는 뜻은 아닙니다. 화가 나면 화를 내야지 그것을 두고두고 간직하면 그게 또 병이 되기 때문이죠. 감정의 응어리가 몸 안에 쌓이지 않게 털어 버려야 합니다. 화가 났을 때는 그것을 표현하되 지나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요.

 등산을 비롯해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 인구가 많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IMF 이후로 등산인구가 꾸준히 늘더니 그 영향인지 클라이밍, 카약, 패러글라이딩, 그리고 캠핑까지 점점 그 영역도 확대되고 있지요. 놀이문화에 문외한이던 성인들이 점점 다양한 아웃도어에 관심을 보이면서 자연으로 많이 나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연 속으로 들어가 즐기는 아웃도어 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사실, 나는 몸을 심하게 움직이질 못하는 입장이에요. 덕분에 주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곤 하지요. 하지만 바라보는 것도 그냥 바라만 보는 것은 아니랍니다. 산에 가고 싶으나 숨이 차서 산에 갈 수 없다, 하지만 산과 소통을 하고 싶다고 느낄 때는 산과 같은 기운을 품으면 됩니다.

산과 기운이 같아지려면 우선 산을 좋아해야겠지요? 다행히 여기 이 공간은 문밖만 나가면 사방이 산이에요. 평지를 걸으면서 늘 산을 볼 수 있는 거지요.

어느 전문가에게 들었는데 나무는 자기를 멋있다고 생각 한 사람을 평생 기억한다고 해요. 멀리서 그저 생각만 했을 뿐인데, 그걸 안다는 거지. 그리고 영원히 기억한답니다. 자연이 그렇게 깊숙이 감사하는 마음을 품듯이 나도 자연을 바라보며 감사한답니다.

산에 있는 것들, 나무라든가 산머리에 얹힌 구름, 시시각각 변해가는 자연의 빛깔은 내게 시구나 문장을 선사하지는 않지만 그 무엇에서도 받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전해주니까요.

사람들이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싶어요. 바로바로 눈에 보이는 실물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보이지 않게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드는 거지요. 어떤 형태의 야외활동이건 자연 안에 머무는 시간동안 사람들은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자연에게 위로받고 치유되어 지는 것 같아요. 거기서 얻는 안정감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아마도 그게 사람들이 자꾸 자연 속으로 파고드는 이유겠지요.

혹시 좋아하는 아웃도어 활동이 있으신가요?
⇒ 숨이 가빠서 많이 움직이는 건 잘 못하고 담수호에서 즐기는 대낚시를 좋아해요. 춘천에 살 때는 춘천 근처와 여기 화로호도 많이 왔었는데 화천으로 이사 온 후로는 한 번도 못 갔네요.

어려서 이삭 줍고 동냥밥 얻어먹으러 다닐 때 지리산 자락에 움막을 짓고 살았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지리산 밑에 있었고, 그 후에 잠깐 화천에 살다가 양구를 거쳐서 인제로 가서 설악산에서 잔뼈가 굵었지요. 그때는 정말 다람쥐처럼 산을 잘 탔어요.

간식거리도 없으니까 산토끼도 잡고 식용 버섯도 캐고 하면서 자급자족했지요. 힘 하나도 안들이고 산을 오르내리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살면서 점점 산에 갈 일도 줄어들고, 글 쓰면서는 책상머리에 붙어 있다 보니 호흡기도 나빠지고 한 거죠.

그러니, 내가 산을 바라보는 것에 만족한다고 말하는 것에는 일정량의 슬픔이 담겨 있는 거예요(웃음). 한 4~5년 전쯤만 하더라도 나름 산을 잘 올라서 문하생들도 못 따라 올 정도였는데 지금은 그게 안 되네요. 몸도 무거워지고. 산책으로 만족해요. 바라보는 산에 만족합니다.

 낚시 실력이 궁금합니다!
⇒ 초보 때 더 잘 잡히더라고(웃음). 낚시 실력이 변했다기보다는 자연환경이 많이 달라진 게 아닐까요. 내가 낚시 배울 때만 해도 어종도 다양하고 얼마나 좋았다고. 언제부턴가 배스 같은 외래종이 많아지면서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는 거지요.

우리 한국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좋아하는 대낚시의 주 목표물은 붕어인데, 무조건 30cm 넘는다고 월척은 아니잖아요. 중요한 건 ‘붕어’여야만 한다는 거니까. 붕어가 주는 찌놀림에는 평화로움, 기다림의 미학 등 다양한 의미가 있어요. 뭐랄까…. 붕어 대낚시에는 상당히 선비적인 무엇인가가 있어요. 붕어는 절대 조잡스러운 입질을 보여주는 법이 없거든요. 촐랑거리지도 않고 담백해서 낚시하는 손맛 중 으뜸으로 칠 수 있지요. 화천군에서 다시 붕어낚시의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 예산을 좀 풀어야 할 텐데(웃음).

 (혹시나) 아웃도어 브랜드 중 알고 있는 것은 있으신지요?
⇒ (한 치의 기다림도 없이) 없어요. 아, 운동화가 하나 있는데 나이키예요. 나이키도 아웃도어 브랜드인가? 브랜드나 장비는 전혀 모릅니다. 대신 산꾼들은 좀 알지요. 박인식, 권경업 이 두 알피니스트들을 필두로 나는 산꾼들이 무척 좋아요. 멋있고 또 멋있으니까. 하지만 날더러 산을 오르라고 하면, 그건 할 수가 없지요.

 인간에게 있어 자연은 어떤 의미일까요. 또 선생님에게 자연은 무엇입니까?
⇒ 자연은 너무 크고, 우선 가까운 산을 예로 들어볼까요. 인간에게 좋은 산이란 높고 날선 산이 아니라 자기의 살과 뼈를 내놓고 무수한 생명을 키워내는 산이 아닐까요. 형체로 보자면 부드러워지고 낮아진 산이죠. 진정한 명산이란 형태는 사라지고 기운만 남은 산이지 않을까요.

가장 좋은 명당은 옛날에 산이 있던 자린데 평지가 된 곳이라고 생각해요. 산의 형태는 없어졌지만 그 거대한 자연이 베푸는 기운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 그런 땅에서는 온갖 생명들이 아무 불편 없이 살아갈 수 있지요. 우리가 보통 ‘명산이다, 명당이다’라고 이름 붙이는 데에는 높이나 규모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베풀었는가를 우선으로 꼽아야 해요.

이곳 화천 집 근처에 있는 산들은 다 낮아진 산들이에요. (집 주변의 커다란 돌들을 가리키며) 이 돌들이 다 여기서 난 것인데, 이걸 보아하니 이 주변 산들이 원래는 굉장히 높고 광활했을 거예요. 여기 이 돌들은 다 저 낮아진 산의 뼈였을 테니까요.

화천 산의 특징은 전체적으로 부드럽다는 데 있어요. 그것은 다른 생명을 키워내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깎아 냈다는 의미죠. 낮아지고 부드러워진 산들이 화천의 주요 산이기 때문일까요. 매년 산불이나 수해로 몸살을 앓는 강원도에서도 화천은 자연재해가 아주 적은 편이에요. 그건 그만큼 산이 가진 기운이 좋다는 것이지요. 산의 성질이 강하면 물을 품어주지 않고 다 흘려보내서 수재가 많이 일어나기 마련이거든요.

 PART 2 일상, 그리고 끝나지 않는 이야기      

길게 땋아 내린 머리, 반백의 수염, 깊게 패인 주름, 흰 옷으로 도인을 연상케 하는 사람. 병이 아니라 날짜로 따지는 주량 덕분에 사흘 밤낮을 술에 취해 있고 개집에서 잠을 자며 스스로 집안에 교도소 철문을 달아 세상과 단절한 채 글을 썼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기행을 일삼는(?) 선생님의 일상이 궁금합니다.
⇒ 주침야활이지요. 낮에 자고 밤에 활동해요. 이렇게 스케줄이 잡혀있을 때에는 강연을 하거나 인터뷰를 하는데 보통 일어나는 시간이 오후 3시 이후예요. 3~4시에 일어나서 6시나 7시까지 손님들과 시간 보내곤 하죠. 대부분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시간대에 깨어서 인터넷도 하고 그럽니다.

밤에는 움직이는 것이 적고, 활동적이지 않아서 공기와 정서가 착 가라앉아 있어서 방해를 덜 받지요. 모든 것들이 깨어있는 낮에는 바깥 기운에 때로는 방해를 받거든요. 공기 입자 하나까지도 합일되어야 하는데 생명들의 주 활동 시간대인 낮에는 그것이 굉장히 힘들지요.

머리는 왜 기르시나요? 관리는 어찌 하시는지?
⇒ 머리는 귀찮아서 그냥 두는 겁니다. 나랑 술 먹던 사람들은 내가 술 먹고 글 쓰는 줄 아는데 아니에요. 내가 머리 깎은 거 본적 있어요? 없잖아요. 장편소설 들어갈 때는 머리 밀고 완성할 때까지 두문분출하지요. 4년 정도 걸리니까 다시 머리가 이렇게 길어집니다. 머리 손질은 집사람이 해 주지요.

 <청춘불패>를 쓴 큰 이유 중 하나가 인생 상담하러 선생님을 찾아뵙는 청춘들이 많아서였다고 들었습니다. 철학부재의 시대, 옳고 그름의 경계가 모호한 지금을 살아가는 청춘들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입니다. 처방전의 엑기스만 뽑아서 살짝 알려주세요.
⇒ ‘주유소습격사건’이란 영화를 보면 ‘유오성 정신’이라는 게 있어요. ‘나는 한 놈만 팬다’는 정신인데 그것과 비슷해요. 온 세계를 바쳐도 아깝지 않을 하나를 붙잡고 그것만 생각하고 고민하고 좋아하면 저절로 되는 법이거든요. 자나 깨나 그것만 생각하니 안 될 턱이 없지요. 나는 뭘 보더라도 저거 소설에다 쓰면 어떨까 생각하거든요. 젊을수록, 하고 싶은 게 많지요.

단언컨대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면 다 즐길 수 있어요. 일찍 줄일 수 있는 사람일수록 시간단축이 된답니다. 20대에는 선몽기, 수많은 꿈 중에서 내 전부를 걸어도 아깝지 않을 하나를 선택하는 거예요. 30대에는 그걸 갈고 닦는 연마기이지요.

 글로 밥을 먹겠다고 정한 지 30년이 지났다고 들었습니다. 문단에 이름을 알린 <꿈꾸는 식물>을 시작으로 전업 작가로의 터닝 포인트가 된 <들개>, 그리고 <칼> <벽오금학도> <장외인간>을 거쳐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하악하악>과 <청춘불패> 등 수십 권의 책을 쓰셨죠. 대표작 혹은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있으신가요?
⇒ 모든 소설가들은 다음 작품이 자신의 대표작이라고 생각해서 대표작이 없다고 얘기하지요(웃음). <꿈꾸는 식물>로 얼결에 등단했고 얼음밥을 깨먹으며 쓴 <들개>로 아버지와의 앙금을 풀었지요. 작가적 욕심으로는 모든 소설이 중심이 되는 소설을 쓰고 싶은데…. 너무 큰 욕심일까요? 그래도 해보는 거예요. 제발 좀 미쳐서 그렇게 할 수 있게 말입니다. 그 순간이 올 때까지 끝까지 공부해야 해요.

 특이한 겉모습, 그리고 괴짜로 불리는 행동으로 세간의 평가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듯이 보여집니다만, 인정받고 싶다거나 이해받고 싶다거나 하는 욕구는 없으신가요?
⇒ 하하하. 작가적 이중성이라는 게 있어요. 내 작품의 진정한 독자는 나 하나로 만족하겠다면서도 온 인류가 내 작품을 읽고 극찬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 이건 아마 모든 작가들이 품고 있는 마음일거예요. 다만 작가의 욕심인지, 작품에 대한 욕심인지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지요.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것 역시 같은 맥락이겠지요. 누군들 인정받고 싶지 않겠어요. 내 주량은 소주 몇 병이 아니라 무박4일, 무박5일 이런 식이었어요. 그런데 참 슬프게도 내가 기분 좋아서 술을 마신 적은 없다는 거예요. 거의 외롭고 고통스럽고 슬프고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술을 마셨거든요.

이때 마시면 술이 아니라 독약이에요. 만약 고흐 작품이 더 일찍 인정받았다면, 그리 일찍 죽었겠어요. 그 시대의 무지가 위대한 예술가를 외롭고 비참하게 죽게 내버려 둔거지. 동생 테오 한 명만이 유일하게 알아주었을 뿐이었잖아요. 요즘 사람들은 고흐가 귀 자른 것만 따라하지 그 안에 열정은 모르는 척 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예술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거예요. 그러니 그걸 보는 사람들에게도 이해하기를 바라지 말고 느끼기를 바래야 해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품에 어떻게 무슨 이론을 섞을 수 있을까요?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거예요. 이해시키거나 이해할 수 있는 범주의 것이 아니라 그저 느끼거나 감상할 수 있는 것일 뿐이지요. 작가는 보는 사람들이 무언가 느낄 수 있는 요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요.

 선생님의 꿈은 무엇입니까.
⇒ 우선 태어난 모든 사람의 꿈은 행복해지는 것 아닐까요. 내 가장 큰 꿈 역시 행복해지는 것이에요. 작가이다 보니 아무래도 독자들이 오래도록 기억해 주는 작가로 남고 싶은 꿈도 있구요. 세대와 시대를 아우르는 생명력이 긴 작품을 만들어내고 싶어요.

내 책을 읽고 힘을 냈다는 독자들을 볼 때 너무 행복하거든요. <청춘불패>의 경우 방황하는 청춘들을 위한 처방전이자, 치유제였는데 우울증이 치료되었다는 독자도 있고, 괴로움이 치유되었다는 독자도 있는 것을 보니 기능면에서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지요.

한 가지 더, 나는 예술가가 정말 멋지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글을 쓰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부터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다 뜯어 말렸거든요. 글쟁이 굶어죽는다고. 남들에게는 내 과거가 그저 기행으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한 순간 한 순간이 정말 치열했어요.

내게는 오로지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나 밖에 없었어요. 노력 하나로 여기까지 온 내 모습에 젊은 작가들이 힘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누구를 밟고 올라서거나 시류나 권력에 야합하지 않아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보여주고 싶어요. 출판사, 독자, 나 이렇게 삼각관계로 30년을 버텼어요. 말 그대로 독립군이지요. 독립군으로 지금까지 잘 살아왔잖아요?

또 그렇게 따지면 예술만 굶어 죽는 게 아니랍니다. 무한경쟁시대에 어떤 분야건 실력이 어중간하면 굶어 죽기 십상이지요. 어떤 분야를 선택하건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대신 실력이 특출하면 먹고 살 걱정은 없어요. 감자농사를 예로 들어 볼까요. 감자가 잘되길 바래야지, 돈 잘 벌려고만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작품에는 관심이 없고 감투에만, 돈에만 관심이 있으면 그건 예술가가 아니에요. 그런 정신으로는 예술가가 못된다고. 그런 사람들이 득세해도 안 되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독자들, 청춘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 우선, 젊다는 게 정말 한 밑천이니까 무엇이든 부딪쳐보기를 바래요. 무통분만, 불로소득으로 뭔가를 얻으려는 도둑놈 심보는 저 안드로메다로 던져버리고.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이루어 갈 수 있으니까. 스스로에게 가장 가치 있는 일을 찾아내는 것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참고 버티고, 밀어붙이는 힘도 필요하니까 그럴 땐 꿈적도 하지 않고 버티는 겁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정하는 것이 우선이겠죠.

저의 영원한 화두는 행복입니다. 작가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행복해지기 위한 것이니까요. 작가이기에 소설을 통해서 행복에 대한 개념을 정리해 보고 싶고, 행복의 진실에 대한 이야기도 풀어보고 싶습니다. 적어도 무엇이 행복인지 몰라서 헤매는 일은 없게끔 말입니다.

왜 기똥찬 장거리 슛을 보고 사람들이 “예술이다”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지금, 모두들 각자의 인생으로 ‘예술’을 하고 있는 중은 아닐까요? 최고의 작품은 내 인생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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