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사이트
거인 박희용, 또다시 세계를 제패하다
거인 박희용, 또다시 세계를 제패하다
  • 이슬기 기자
  • 승인 2017.02.16 14:49
  • 댓글 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계 극복하고 이룬 세번째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챔피언

깡마른듯 다부진 몸. 개구진 소년의 얼굴을 하다가도 벽에 오르자 언제그랬냐는 듯 진지한 눈빛을 빛내는 남자. 2017년 아이스클라이밍씬에서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고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챔피언십에서 3번째 종합 우승을 달성하며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정상에 우뚝 솟은 거인. 박희용(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의 이야기다.

2016/17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챔피언에 오르며 세 번째 세계 정상에 오른 박희용 선수를 만났다.

월드컵 우승 축하드려요. 세계 정상에 오른 소감이 어떤가요.
기쁘죠. 오랫동안 목표했던 것을 이뤘으니까요. 처음 아이스클라이밍에 뛰어들었을 때는 한 번의 우승이 간절했어요. 1위를 거머쥐고 난 뒤엔 시즌 종합 우승을, 그 후엔 월드챔피언을 세 번 달성하는 것이 꿈이 됐죠. 정말 기분이 좋지만, 안도감과 더불어 허무함이 느껴지기도 해요. 산꼭대기에 올라 홀가분하지만 더는 갈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느낌 같달까.

클라이밍씬에서의 18년. 그의 말에서는 클라이밍에 대한 애정이 뚝뚝 묻어나왔다.

경기는 어땠나요? 우승을 예감했는지 궁금해요.
올해도 역시 아이스클라이밍 정통 강호인 러시아와의 싸움이었어요. 초반에 치른 미국과 중국 대회에서 러시아 선수들이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에 그 기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죠. 첫 대회 때 실력을 다 펼치지도 못하고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6위에 그쳤거든요. 운 좋게도 그 후에 치러진 3개 경기에서는 모두 1위를 차지했어요. 다들 이변이라고 생각하는 눈치더라고요.

운도 실력이죠. 이제는 더이상 대적할만한 상대가 없는 것 같아요.
경기 중에는 얼마든지 변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몰라요. 사실 작년 시즌을 2위로 마무리한 탓에 스스로 한계가 찾아온 것은 아닌가 조심스럽고 불안한 마음이 있었어요. 다행스럽게도 우승을 했지만 그만큼 목숨을 걸었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했던 것 같아요.

처음은 스포츠클라이밍으로 시작하셨어요.
열일곱에 산악부에 들어가면서 산을 탔으니까 벌써 18년이 넘었네요. 그때는 군대식 산악부 문화가 만연하던 때라 선배들이 시키는 대로 힘들게 등산했던 기억이 나요. 얼차려도 많이 받았고요. (웃음) 그리고 클라이밍을 알게 됐는데, 스포츠클라이밍뿐 아니라 볼더링, 아이스클라이밍 등 여러 장르가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새로운 도전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데서 재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아이스클라이밍으로 전환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사실 스포츠클라이밍 선수 시절에는 빙벽을 타는 것이 아주 위험한 활동이라는 선입견이 있었어요. 속으로 ‘나는 저건 절대로 안 해야지’ 하고 생각했으니까요. 사람 일은 진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요. (웃음) 솔직히 말하자면 스포츠클라이밍 선수로 우승을 이어나가고 정점을 찍었을 때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어요. 엄청난 노력과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면서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죠. 그래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알파인 등반을 접하게 됐어요. 산에서 조금 더 자유롭게 움직이고 등반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빙벽도 타게 됐죠.

이제는 한 몸이 된 듯 손에 익은 얼음 도끼를 들고.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네요.
당시 우리나라에서 스포츠클라이밍의 위상이나 인지도는 상당히 뒤처져 있었어요. 한국에서 난다긴다하는 선수도 세계 월드컵에 나가면 준결승전 진출마저 어려울 정도였으니까요. 아이스클라이밍은 더 했죠. 갖춰져 있었던 것도 없었고. 그런데도 타이밍 좋게 시작하게 된 것 역시 제게 따른 행운이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 힘든 일도 겪었을 텐데.
홀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이 버거웠어요. 당시에는 아이스클라이밍에 도전하는 선수가 드물어 함께 훈련할 파트너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미리 경험한 선배가 전무했기 때문에 조언을 얻을 수도 없었죠. 훈련 방법이라든지, 테크닉 같은 것은 외국 선수들의 유튜브 영상을 보고 독학했던 기억이 나네요. 시행착오도 많았고요. 굉장히 더디고 힘든 과정이었어요.

그 후로 클라이밍씬에 많은 양적 성장이 있었어요.
지금은 과거에 비해 인프라도 나아졌고, 훈련 매뉴얼도 어느 정도 갖춰진 상태예요. 선수들은 훨씬 더 좋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게 됐죠. 클라이밍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위험한 활동이라는 선입견도 줄고, 하나의 스포츠 종목으로서 인정받는 분위기에요. 매년 청송에서 세계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을 치르기도 하고요. 내부에서 바라보는 사람으로서 질적으로도 분명히 성장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스포츠클라이밍이 2020년 도쿄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면서 큰 관심을 끌고 있어요.
운영 중인 암장에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클라이밍의 인지도가 많이 높아졌음을 느껴요. 아이스클라이밍 역시 2018 평창동계올림픽 시범종목으로 채택됐잖아요. 아이스클라이밍은 관람하는 재미도 상당하고, 관객들의 호응을 끌어낼 수 있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월드컵 정식종목 채택에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봐요.

지독한 훈련의 결과도 '운이 좋았다'고 표현하는 그에게서 겸손함과 자신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단단하게 홀드를 움켜 쥔 박희용 선수의 손.


다시 박희용 선수 얘기를 해볼까요. 훈련할 때나 경기 중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요.
목적의식이 뚜렷해야 훈련의 몰입도가 높아진다고 믿어요. 그래서 이렇게 고된 훈련을 하는 이유, 내가 만나게 될 상대를 끊임없이 떠올리는 편이에요. ‘이 훈련을 함으로써 나는 어떤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거야. 못해낸다면 우승도 없어’ 이렇게 머릿속으로 주문을 걸죠. 솔직히 훈련하기 싫을 때도 많아요. (웃음)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금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운동에 임하게 되죠. 시합 때는 거꾸로예요. ‘내가 그렇게 힘들게 노력했는데, 우승을 못 할 리가 없어.’ 이렇게 멘탈을 다스리죠.

멘탈 관리. 그게 바로 박희용 선수의 비밀이었네요.
아이스클라이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심리적인 요인이라고 생각해요. 스포츠클라이밍은 내 손가락으로 직접 홀드를 쥐고 있기 때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고 대처할 수가 있어요. 하지만 아이스클라이밍은 장비를 이용해 홀드와 접촉하기 때문에 추락에 대한 두려움이 비교적 크죠. 그만큼 마인트 콘트롤에 가장 신경 쓰는 편이에요.

박희용 선수가 운영하는 성남스파이더 암장에서.

우리나라는 클라이밍 후발주자임에도 박희용 선수, 김자인 선수 등 세계 최정상급의 선수를 보유하고 있어요. 이유가 뭘까요?
나라의 70% 이상이 산인 데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하겠지만, 무엇보다도 한국인 특유의 근성과 끈기 때문이라고 봐요. 클라이밍은 상대와 맞싸워서 우열을 가린다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이겨내는 운동이잖아요. 스스로의 한계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클라이밍의 특성이 우리와 잘 맞은 거죠. 몇천 년 동안 외세의 침략을 받으면서도 꺾이지 않고 근성 있게 살아남았잖아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엄청나게 강하다고 생각해요.

대한민국 아이스클라이밍의 시작을 열어 그 정상까지 오른 박희용 선수. 그는 그의 소망처럼 '레전드'로 남게 될터다.

클라이밍을 하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요.
180도 다른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요. 한 번 상상해본 적이 있는데, 손재주가 좋은 편이라 엔지니어가 돼 있었을 것 같아요. 자유롭고 스펙터클한 삶이라고 저를 동경하는 친구도 있지만, 때로는 안정적이고 평범한 행복을 누리는 이들이 부럽기도 해요.

바라던 꿈은 다 이뤘다고 하셨어요. 그래도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뭘까요?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던 적도 있어요. 어쩌면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죠. 이렇듯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라요. 당연히 앞으로도 산에 오를 테지만 기존의 선배님들이 해온 것과는 다른, 제가 더 잘할 수 있는 젊고 새로운 산악 활동을 개척하고 싶어요.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지.
실력이 무너지고, 나이 들어서 힘 빠진 모습은 보여주기 싫어요. 최고의 자리에서 정점을 찍었을 때 내려오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그러면 아이스클라이밍의 레전드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요. (웃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4
0 / 400
박성훈 2017-03-06 19:16:12
비스트마스터 봤어요!! 1위 대박입니당★ 크흐

이니 2017-02-22 08:54:58
멋진 그대!! 항상 응원합니다~~

변재수 2017-02-22 08:22:25
박희용선수.멋지고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박력낚시 2017-02-21 14:48:53
박희용선수,
이미 레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