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사이트
영혼이 씻기는 길…영화 ‘와일드’
영혼이 씻기는 길…영화 ‘와일드’
  • 글 이지혜 / 사진제공 이십세기폭스코리아
  • 승인 2016.12.23 14: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LIFE STYLE|MOVIE

가난한 딸의 인생에 중심은, 가난을 물려준 엄마였다. 엄마는 유일한 빛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죽었다. 한 줄기 불이 완벽히 꺼지고 마침내 암전의 시간이 시작됐다. 엄마가 죽은 지 4년 7개월 하고도 3일이 지났다. 딸은 캐나다 국경, PCT가 끝나는 곳에서 마침내 엄마를 보냈다.

<와일드>는 유일한 삶의 희망이자 온몸을 다해 의지했던 엄마가 갑작스럽게 떠난 후, 인생을 포기했던 셸리가 PCT를 홀로 걷는 이야기다. PCT(Pacific Crest Trail)는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미국 서부를 잇는 약 4,300km 종단 트레일이다.

딸에게 엄마는 어떤 존재였을까. 셸리의 엄마는 아빠에게 맞은 멍이 빠지지도 않은 채 노래를 흥얼거렸고, 딸이 아는체 하지 않아도 딸과 같은 대학에서 공부할 만큼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여자였다. 전부를 이해할 순 없어도 삶의 빛이었던 엄마가 어느 날 세상에서 훌쩍 사라지고, 셸리는 온몸을 타락으로 던진다.

마약과 무분별한 섹스, 이혼으로 모든 색이 무채색으로 변해가던 중, 우연히 슈퍼마켓에서 본 PCT 사진 한 장은 셸리를 그곳으로 이끈다. 떠났지만 시작부터 쉬운 건 없었다. 도끼와 책, 콘돔까지 한가득 지고 온 셸리는 버리지 못한 자신을 마주하며 여행을 시작한다.

2분마다 관두고 싶어지는 길이다. 언제든 관둘 수 있다고 되뇌지만, 어쩐지 셸리는 쉽게 걸음을 멈추지 못한다. 길마다 엄마를 마주한다. “너에게 가르쳐 주고 싶던 한 가지는, 네가 가장 빛나는 사람으로 살도록 하는 거야.” 빛나게 살고 간 엄마의 목소리가 아직도 선명하다. 길가엔 독을 품은 뱀이 사납다. 셸리는 동시에 엄마를 잃은 자신과 마주한다. 어둠에 익숙해지기 위해 더 어두운 곳만을 찾아다녔다. 비통의 늪에 빠진 채 암흑으로 매몰됐다. 길은 어느새 사막에서 설산으로 바뀐다.

발톱이 빠지고 신발을 잃어버린다. 슬리퍼를 덕테이프로 감고 걷기 시작한다. 같은 길을 걷는 여행자들 사이에, 혼자 그것도 여자인 셸리는 어느새 우상이 되어간다. 하지만 셸리에게 그런 건 아무 의미 없다. 셸리는 점점 길 위에서 비통해하던 자신을 이해하고, 용서하지 못했던 과거를 용서한다. 아끼던 말이 아팠고, 주사를 살 돈이 없었고, 총으로 죽일 수밖에 없었던 그 새벽을 용서한다.

트레일의 종반, 조그마한 남자아이는 셸리에게 자신이 ‘문제’가 있다고 고백한다. 셸리는 아이에게 “모든 사람에겐 문제가 있어. 하지만 문제는 영원히 문제로 남아있지 않고 변하기 마련이야” 말한다. 아이는 셸리에게 노래했고, 셸리는 마침내 자신의 문제를 변화시켰다.

셸리의 말이 맞다. 모든 사람은 문제를 안고 산다. 셸리의 배낭처럼 말이다. 필요 없는 문제든, 중요한 문제든, 문제인지 모르는 문제든 각자의 무게를 어깨에 얹고 간다. 그렇게 하염없이 걷다가 버리기도, 다 써버리기도, 잊기도 하며 문제는 계속 변한다.

영화는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PCT라는 길을 알리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 PCT의 바이블이라고도 불린다. 극한의 고통이 고통을 덮고, 마침내 자신을 용서하는 최고의 힐링 로드무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