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보존하거나 해치거나
자연을 보존하거나 해치거나
  • 김경선 차장
  • 승인 2016.08.30 16: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DESK COLUMN

무더위가 한창이던 7월 초, 일본 오제국립공원으로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일본에서 29번째로 지정한 국립공 원이죠. 얼마나 오지인지 휴대전화조차 터지지 않았습니다. IT 강국 한국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죠. 국립공원 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지정된 장소에서 전용버스를 이용해야 합니다. 자연을 보호하기 위한 나름의 방책이죠. 그렇게 버스를 타고 15분을 들어가자 드디어 오제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오제 습원은 공원 내 가장 큰 규모의 오제가하라 습원을 비롯해 크고 작은 습지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서식하는 식생은 다르지만 우리나라 순천만을 떠올리면 그 광활한 풍경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발이 푹푹 빠지는 습지의 특성상 데크나 목도로만 통행이 가능해 공원 내에는 약 65km의 나무길이 조성돼 있습니다. 그런데 그 폭 이 불과 50cm. 양 방향 통행이 가능하도록 두 줄로 평행하게 이어지는 목도는 앞서 가던 사람이 잠시 멈추면 정체를 피할 길이 없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트레커들은 질서정연했습니다. 서로를 배려하면서 정해진 목도를 벗어나지 않았죠. 숲길에서도 마찬가지. 지정된 탐방로 외에 샛길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문득 얼마 전 설악산국립공원에서 발표한 ‘사전예고 집중단속’ 보도가 떠올랐습니다. 여름성수기 기간 동안 샛길 통제를 위해 안내표지판과 목책을 추가로 설치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비단 설악산의 문제는 아니지요. 국립 공원 산행을 하다 보면 ‘샛길 출입 금지 ’, ‘야영 금지’ , ‘취사 금지’ , ‘흡연 금지’…, 수많은 금지 문구가 곳곳에서 나 타납니다. 문제는 이러한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분별한 샛길 통행이 자행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비단 등산객들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국립공원의 무분별한 데크 설치도 문제입니다. 2014년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제출한 자료를 살펴보면 전국 국립공원 내 데크는 약 29km에 달합니다. 1년 반이 지난 지금, 더 늘어났을 것은 분명하지요. 국립공원 탐방로 관리매뉴얼에 따르면 데크 설치 기준은 ‘훼손된 탐방로 또는 초지의 원상회복 등 을 위하여 탐방객들의 동선유도가 꼭 필요한 지역’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글쎄요. 오제국립공원을 다녀와 보니 조금은 다른 생각이 듭니다. 일본의 국립공원은 ‘사람’이 아닌 ‘동식물의 삶터’를 더욱 중요하게 여깁니다. 불필요한 길이나 데크는 만들지 않지요. 무분별한 인간의 접근을 막기 위해 전용버스를 활용하는 것 또한 배워야 할 부분입니다. 오제뿐 아니라 몇 해 전 북알프스 산행 기점인 가미코치를 방문했을 때도 전용버스를 보고 부러워했던 기억 이 납니다. 봄과 가을이면 전국에서 몰려드는 탐방객으로 인해 주차장이 북새통을 이루고 공원 접근로가 정체되는 일이 허다한 우리나라와는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결국 이용객과 관리당국의 의식 개선이 선행되어야겠지요. 일본의 국립공원에서는 흡연하는 트레커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취사도 허용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배꽁초는 물론 담뱃재도 절대 바닥에 버리지 않고 휴 대용 재떨이에 뒤처리를 합니다. ‘규제’ 자체 보다 자유가 주어졌을 때 얼마나 책임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제 트레킹 중 엄청난 키를 자랑하는 너도밤나무 군락에서 의외의 장면을 마주쳤습니다. 나무 기둥에 커다란 글씨가 새겨져 있었군요. 1968년에 새긴 낙서였습니다. “40년 전 낙서네요. 일본 사람들도 과거에는 이런 행동을 했었나 봐요.” 일행의 이야기에 우리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0여 년 전보다 지금이, 그리고 10년 후가 달라질 거란 기대를 가져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