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생태, 아름다운 경치 두루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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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두용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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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따라 삼천리 | ② 무등산 ‘무아지경길’

원효사에서 서석대에 이르는 옛길…입석대~중머리재~증심사 경유하면 5~6시간 소요

▲ 입석대로 가는길에 만나는 주상절리.
지난해 5월 개방된 무등산 옛길은 제주도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과 함께 우리나라 걷기명소로 떠올라 7개월 동안 10만 명이 넘는 이들이 다녀갔다. 제한적으로 개방되던 2구간마저 2010년 1월 이후 전면 개방되어 걷기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이 무등산으로 모여들고 있다. 지난달 빗속에서 죽령 옛길을 함께 걸었던 월금산악회 회원들과 이번 달엔 무등산 옛길을 함께 걸었다. 


무등산 옛길은 전체 2개 구간인데 그 중 1구간은 산수동5거리~충장사~원효사에 이르는 7.75㎞로 지난해 5월에 처음 개방되었다. 2구간은 원효사~제철유적지~서석대 4.12㎞ 구간으로 같은 해 10월 일반에게 제한적으로 공개되었다가 지난 1월 전면 개방했다. 무등산 옛길의 총 연장거리는 11.87㎞. 이 거리는 단위는 다르지만 무등산의 높이인 1187m와 숫자가 일치한다. 이번에 월금산악회와 함께 한 걷기코스는 무등산 옛길 2구간인 원효사~서석대와 기존 등산로인 입석대~장불재~중머리재~증심사로 이어지는 총 9km 구간이다.

‘무아지경’으로 이끄는 2구간 들머리
원효사 주차장에 하차한 회원들은 간단히 몸을 풀고 산행준비를 마친 후 대열을 이루어 광주의 진산(鎭山)이면서 광주시민의 모산(母山)인 무등산 품에 안겼다. 오늘 무등산 옛길 걷기에는 모두 25명의 월금산악회 회원들이 참여했다.

▲ 임진왜란 때 김덕령 장군이 무기를 만들어 왜군을 물리쳤다고 하는 제철유적지.
호젓한 흙길을 밟으며 시작하는 옛길 걷기는 도시에 묻혀 살던 회원들의 가슴을 상쾌하게 했다. 들머리에서 10여분 걸으니 ‘무아지경길’이라는 팻말이 나온다. 이제껏 사람 출입이 거의 없어 자연생태가 그대로 보존돼 원효계곡의 물소리, 숲의 바람소리,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오솔길 하나를 지나니 제철유적지가 나왔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운 김덕령(金德齡, 1567~1596) 장군이 이곳에서 무기를 만들어 왜군을 물리쳤다고 한다. 원효계곡이 바로 옆으로 흘러 무기 만드는 소리를 감출 수 있었다고 한다. 시원한 물소리가 걷는 이들의 마음을 맑게 씻어내는 듯하다.
나무꾼의 통로였다가 1960년대에 군부대 보급품을 나르는 길로 쓰이던 물통거리를 지나면 수송부대가 있던 자리가 나온다. 건물은 없지만 주변 석축은 그대로 남아있다. 타이어만 없어진 쇠바퀴, 쇠파이프와 드럼통 등 50년이 지났지만 그 시절 군부대의 흔적이 여기저기 보인다.

무등산 풍광의 진수 서석대와 입석대
조금 더 올라 치마바위를 지나니 길이 가파르다. 얼어있던 땅이 녹아 미끄럽고 질펀한 진흙길인데도 다들 표정은 밝다.

▲ 입석대는 누군가 정교하게 돌을 잘라서 얹어놓은 것 같이 그 형상이 오묘하고 신비롭다.
얼마나 올랐을까 ‘하늘이 열리는 곳’이라는 팻말을 지나니 순식간에 하늘이 확 트인다. 날은 흐리지만 사방이 뚫려 풍광이 좋다. 멀리 광주 시내도 눈에 들어온다. 이제 500m만 더 가면 수정병풍, 빛고을이란 지명의 유래가 된 서석대(瑞石臺, 천연기념물 제465호, 1100m)다. 숨이 턱까지 찼지만 설레는 발걸음을 재촉해 무등산 정상인 천왕봉(1187m) 서쪽에 위치한 서석대로 향했다.

드디어 화려하고 웅장한 주상절리를 자랑하는 서석대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서석대는 수정병풍처럼 둘러쳐져 상서로운 빛을 머금고 광주의 상징으로 우뚝 서 있다. 한반도 육지에서 가장 큰 주상절리대로 자연유산으로의 보존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등재되었다.

옆길로 오르니 무등산 옛길의 종점을 알리는 이정표가 일행을 반긴다. 안내 번호는 40번. 무등산 옛길엔 300m마다 이렇게 번호를 매긴 이정표가 길을 안내한다. 1~26번까지가 1구간이고, 27번부터 40번까지 2구간이다. 300m가 40개이니 1~2구간을 합치면 12km (11.87km)다.

왼쪽 위로 천왕봉이 보이지만 그 부근에 아직 군사기지가 있어 접근할 수 없다. 오른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내려왔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걸으니 오르막에서 힘겨웠던 표정들은 사라진 지 오래다.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오다 보니 입석대(立石臺, 1017m)에 다다른다. 입석대는 서석대에 비해 화려함과 웅장함은 덜하지만 형상이 오묘하고 신비롭다. 마치 누군가 정교하게 돌을 잘라서 얹어놓은 것 같은 그 형상에 회원들은 모두 혀를 내두른다.

▲ ‘하늘이 열리는 곳’을 오르면 사방이 트이면서 멀리 광주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봄과 마주한 하산 길
장불재(900m)에 도착하니 풍광의 아름다움은 극에 달한다. 정면에 KBS송신탑이 있고 하늘이 열린 사방으로 위에는 입석대와 서석대가 아래는 무등산 자락이 감싸고 있는 광주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장불재부터 내리막은 1.5km 정도 돌길이다. 무릎이 약한 사람이라면 이곳부터 속도를 줄여 천천히 가는 게 좋다. 돌길이 끝나는 곳인 중머리재(586m)를 지나 흙길로 40여분 더 내려가면 당산나무 쉼터가 나타난다. 쉼터의 중앙에 위치한 당산나무는 느티나무로 둘레가 어른 네 명이 팔을 벌려야 설 수 있을 만큼 넓다. 수령은 700년 정도 되었다.

쉼터에서 신림으로 내려오는 길에 한 민가에 노란 꽃이 풍성하게 피어있는 것을 보고 한 회원이 말한다. “와, 벌써 개나리가 피었네.” 회원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꽃 주변으로 모여든다. 그때 뒤따르던 김운경 작가가 다가와 살펴보더니 “이건 개나리와 닮았지만 영춘화야.” 하고 일러준다. 영춘화는 개나리꽃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꽃잎이 4개인 개나리와는 다르게 6개의 꽃잎이 있고 개나리보다 노란빛이 덜하다.

▲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 뒤편으로 군시설물이 있어 접근할 수 없는 천왕봉이 보인다.

신림에서 10분을 더 내려가니 오늘 걷기의 종착지인 증심사. 860년 통일신라시대에 철감국사가 창건한 이 절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호남의 빼어난 명승으로 소개되었을 정도로 무등산의 풍광과 잘 어울리는 절이다. 경내엔 철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131호)을 포함해 오백전·3층석탑·5층석탑·7층석탑 등이 보존되어 있는데, 전각과 당우 등 대부분의 건물은 1970년대 초반에 중건된 탓에 고풍스런 맛은 조금 떨어진다.

아쉽지만 어느덧 무등산 품을 벗어날 때가 되었다. 오늘 우리가 지나온 무등산 ‘무아지경길’과 산길은 자연생태가 잘 보존돼 있고 서석대·입석대 등 훌륭한 경치가 펼쳐져 걷는 맛이 아주 빼어났다.

배우 강신일
“산행을 통해 건강한 삶을 찾았어요.”

80년대 함께 연극하던 사람들과 처음 산행을 시작했어요. 하지만 저도 문성근 대장처럼 영화 ‘작은 연못’에 출연하면서 월금산악회에 참여해 산을 좋아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2007년 바쁜 일상 중에 간암에 걸려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했어요.

수술 이후 6개월 정도 충북 괴산에 내려가 요양하면서 매일 5~6시간씩 산행을 했지요. 그러다 보니 차츰 몸이 좋아졌어요. 암은 5년을 두고 봐야 한다고 하니 아직 완치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앞으로도 산행을 통해 더욱 건강하고 좋은 배우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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