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머 천종원
선한 눈매와 해사한 미소, 단정한 느낌의 말간 얼굴. 클라이머 천종원의 첫인상은 순진무구한 소년 그 자체다. 그가 암벽화를 단단히 동여매고 하얀 초크 가루를 잔뜩 묻힌 채 벽 앞에 선다. 예리한 눈빛, 간결한 몸짓으로 홀드를 움켜쥐며 거침없이 문제를 풀어나간다. 조금 전 소년 같은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이제야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볼더링계의 작은 거인 천종원, 그가 맞다.
“지난해 모든 월드컵 경기가 생각보다 잘 풀렸어요. 운이 좋았죠. 어린 나이에 세계 랭킹 1위라니 부담스럽지 않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는데, 전 부담감보다 그냥 제 자신이 자랑스러워요. 열심히 훈련했던 시간들이 빛을 보는 것 같아 뿌듯해요.”
볼더링으로 종목을 바꾼 이후 독일 아디다스 락스타 볼더링 대회 2위, IFSC 중국·캐나다 월드컵에서 4위를 차지하며 두각을 드러냈다. 그리고 2015년. 스포츠클라이밍을 시작한 지 5년, 볼더링을 한 지 2년 차에 세계 챔피언이 됐다. 단숨에 세계 최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176cm 키에 53kg, 호리호리한 몸매에 긴 팔과 다리가 볼더링에 적합한 것 같아요. 그리고 지극히 당연한 얘기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훈련량이죠. 하루에 보통 5시간 정도 훈련을 해요. 이틀 하고 하루 쉬어요. 이 정도는 해야 스스로를 믿고 경기에 임할 수 있죠. 또 하나 중요한 것이 ‘감’이에요. 볼더링 대회는 지난주에 1등한 선수가 이번 주에 예선 탈락한다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어요. 변수가 많거든요. 때문에 홀드를 잡는 감, 경기에 대한 감을 잘 찾아야 해요. 그 감을 찾기가 좀 힘들긴 한데 이것만 잡으면 자신감이 붙어서 매 경기가 술술 풀려요.”
고된 훈련 속에 그에게 큰 힘이 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사솔 선수다. 이들이 교제한 지도 어느새 4년째.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만큼 의지하고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서로 문제를 내고 알려주기도 하면서 훈련을 같이 하니 도움도 많이 된다. 여가 시간에는 보통의 연인처럼 영화 보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데이트를 즐긴다고.
요새는 앞으로 줄줄이 이어진 대회를 위해 훈련에 더욱 몰입하고 있다. 8월 3일 아시안 챔피언십 경기가 있고, 8월 12~13일에는 IFSC 볼더링 월드컵 마지막 대회가 뮌헨에서 열린다. 뮌헨 대회를 잘 치러서 시즌 랭킹 3위 안에 드는 것이 당장의 목표다. 이어 9월 14~18일에는 2년에 한 번 개최되는 월드 챔피언십 대회에 참가한다. 11월 말에는 오랜 꿈이었던 라스포르티바 레전드 대회에 출전한다. 전 세계에서 한 해 가장 뛰어난 기량을 펼친 선수 6명을 선발하는데 여기에 당당히 뽑히게 됐다. “월드컵보다 난이도가 높고 경기 방식도 특이해서 새로운 재미가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이 한껏 들떠 보였다.
천종원 선수는 지나온 시간보다 앞으로 나아갈 시간이 더 많다. 이제 스물한 살,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끊임없는 훈련으로 자신을 다잡으며 더 높은 곳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천종원. 지금도 그의 열정은 현재진행형이다.
우리나라 스포츠클라이밍 문화에 대한 아쉬운 점도 털어놓았다. 최근 볼더링을 즐기는 이들이 제법 늘긴 했지만 아직은 볼더링보다 리드를 즐기는 이들이 더 많다는 것. “외국은 볼더링 인구가 리드보다 훨씬 많고 전용 암장도 많이 있어요. 왜냐하면 별다른 장비 없이 다같이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으니까요. 그에 반해 한국에선 홀대 받는 것 같아서 조금 씁쓸해요. 앞으로는 볼더링 선수도 대회도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볼더링 선수들을 양성하고 지원하는 기반도 제대로 갖춰졌으면 해요. 이런 제도가 뒷받침된다면 볼더링 강국이 되는 건 시간문제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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