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모험…김승진 선장
인생이라는 모험…김승진 선장
  • 이지혜 기자|사진 양계탁 기자|사진제공 김승진
  • 승인 2016.07.08 17: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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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항 세계 일주로 지구 횡단

무동력 요트로 지구를 횡단한 남자 김승진. 일 년 전 쯤, 우연히 보게 된 다큐멘터리 속 그가 내 눈엔 <캐스트 어웨이>의 톰 행크스 같았고, <라이프 오브 파이>의 파이 같았고, <올 이즈 로스트>의 노인 같았다. 영화로 본 모든 바다 모험가의 현실판 같았다. 멋지다는 말로는 다 표현이 안 되던 그를 꼭 만나고 싶었다. 몇 시간을 함께 한 그는 더 이상 톰 행크스도, 파이도, 노인도 아니었다. 바다 냄새가 날 것 같던 덥수룩한 머리와 콧수염, 중년의 나이에 소년의 호기심을 눈동자 가득 품은 그는 한 사람의 모험가, 김승진이었다.

만나 뵙고 싶었어요. 무기항 세계 일주로 지구를 횡단하셨죠.
아라파니호의 김승진 선장입니다. 지난 2014년 10월 19일, 당진 왜목항을 떠나서 지구 적도 둘레인 4만km 보다 조금 긴 4만1,900km를 여행했네요. 무기항 세계 일주는 요트로 어느 항구에도 정박하지 않고 다녀오는 일주입니다. 209일 동안 총 5,016시간을 항해했어요. 일본 남단을 통과하고 태평양 동남쪽을 횡단하고 뉴질랜드 해역을 지나 남아메리카 케이프 혼을 지났어요. 이후엔 남극해 주변을 항해한 뒤 케이프타운으로 들어가 인도양 중간쯤에서 북상해 동남아시아를 거쳐 돌아왔죠.

전 세계에서 성공한 사람이 몇 없다고 들었어요. 조건도 있는 거로 알고 있는데요.
사실 정확한 기록은 없어요. 지난 1969년 영국의 로빈 녹스 존스톤이 최초로 성공할 당시 조건이 적도를 두 번 돌고, 4만km 이상 다녀온 기록이 있어서 이후부턴 같은 조건을 대부분 기록으로 인정해요. 어떤 항구에도 들르지 않고 어떤 배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으며 엔진을 사용하지 않아야 해요. 한국에선 제가 최초지만 현재까지 세계에선 약 100여 명 정도 성공한 거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사실 기록이 큰 의미가 없기도 합니다. 얼마 전, 호주에서 19살짜리 여자아이가 무기항 세계 일주를 성공했죠. 하지만 기록으로 인정되지 않았어요. 적도 근처인 본국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4만km가 넘지 않는다고 판단한거죠. 하지만 호주 총리를 비롯한 많은 국민이 19살 소녀를 환대했어요. 이처럼 기록이 아닌 용기의 문제죠.

어떤 인생을 살아오셨는지 참 궁금해요.
평범하다면 평범했고 비범하다면 비범했죠. 교직에 계셨던 아버지 덕분에 여러 번 이사했습니다. 이동이 잦았죠. 먼 거리를 이사할 때나 멀리 계신 아버지를 찾아갈 때는 항상 여행하는 기분이었어요. 이곳엔 어떤 것이 있고 저곳엔 어떤 것이 있는지. 지나가며 보이는 모든 것이 궁금했어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하고 싶은 것은 해야 했고, 궁금한 것은 알아야 했어요. 아버지가 화학 선생님이셔서 집에는 화학 서적이 가득했죠. 어느 날, 아버지가 서울의 중고 서점에서 세계 명작 선을 가득 사 들고 오셨어요. 그 책들을 다 읽는 데는 두 달도 채 걸리지 않았을 겁니다. 책과 호기심으로 제 내면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어릴 적부터 모험을 좋아했어요. 깜깜한 밤에 담력을 키운답시고 산에 올라간 적도 여러 번이예요. 그때의 아드레날린은 아직도 생생해요. 하이킹이나 트레킹 등 다양한 아웃도어 활동을 유난히 좋아했어요. 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지만, 더 배우고 싶었어요. 일본으로 넘어가 비주얼아트를 공부했어요. 이후엔 후지 TV에서 평범한 직장 생활을 했습니다.

평범하다고 하기엔 경이적인 영상 기록물이 많아요.
그런가요. 1995년부터 독립 다큐멘터리 PD로 일했어요. KBS <도전지구탐험대>, <환경스페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작업했어요. 중국 두만강에서 살아가는 북한의 꽃제비를 취재해 알리기도 하고 일본 고베 대지진 사건을 기록하기도 했죠. 중국 양쯔 강 탐사, 장수풍뎅이 다큐멘터리 등 자연에 집중하는 작품도 많았죠. 직업적 경험 덕분에 무동력 세계 일주를 하며 모든 기록을 영상으로 남길 수 있었어요. 덕분에 MBC <다큐스페셜>에서 보신 제 다큐멘터리도 모두 제가 직접 찍은 영상으로 방송됐죠. (웃음)

어떤 계기로 요트에 빠지게 됐는지 궁금해요. 바다와 원래부터 친하셨나요?
바다는 저에게 너무나 매력적인 곳이에요. 대학생 시절부터 스킨스쿠버 동아리를 만들고 전국대학연합잠수회 회장을 맡을 정도로 바다에 빠졌죠. 아시안 게임이 열리던 1986년엔 한강 350㎞를 스킨 다이빙으로 종단하고 일본 시나노 강 380㎞를 헤엄쳐 건너기도 했어요. 그러다 2001년 무동력 세계 일주가 있단 걸 알게 됐어요. 단번에 ‘이거다’ 싶었죠. 14년 간 준비했어요. 우연처럼 비슷한 시기에 금융위기가 와서 폭삭 망하기도 했죠. (웃음) 재산을 정리하고 나니 수중에 딱 3억이 남았어요. 그 돈을 가지고 크로아티아로 가서 지금의 아라파니를 샀죠. 참, 아라파니는 순우리말로 바다 달팽이라는 뜻이에요.

209일간 다녀오셨어요. 외롭진 않으셨나요? 어떠셨나요?
사실 외로움이라는 건 정신적 소외감에서 오는 감정이 아닐까요? 저는 바다 위에서 소외감을 느껴본 적이 없어요. 얼마나 바쁘다고요. 하루가 금방 가요. (웃음) 떠다니는 구름을 다섯 시간 정도 보고 있으면 구름이 생겼다 사라지는 걸 관찰할 수 있어요. 두 달 동안 저를 따라다닌 갈매기에겐 ‘이리와’라는 이름도 붙여줬어요. 바다 위에선 외로울 수 없어요. 모든 생명체가 저와 함께했거든요. 대신 사람을 향한 그리움이 생기긴 했어요. 딸아이가 가장 보고 싶었어요.

결과적으로 항해는 아주 행복했죠. 매 순간이 가장 힘들면서도 가장 행복했어요. 무동력 항해와 무동력 여행은 큰 차이가 있어요.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죠. 태풍이 몰려와도 피할 곳이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매 순간이 제겐 모험이었어요.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면서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죠.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는 순간을 즐겼어요. 물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요. 전 모험하다 죽는 삶을 원해요. 만약 상어를 만났던 그때 죽었더라도 전 행복하게 죽었다고 생각할 거예요. 단지, 딸아이와 조금 더 시간을 가져주지 못한 것에 미안한 마음을 가지면서요.

무기항 세계 일주는 선장님께 어떤 의미가 되었나요?
무기항 세계 일주는 제 인생을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나눠주는 역할을 했어요. 큰 전환점이었죠. 인생의 전반전은 아주 행복했어요. 하고 싶었던 것 다 했죠. 후회되는 것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최대한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어요. 인생의 후반전은 바다에 올인 할 거에요. 무기항 세계 일주는 그런 의미에서 제가 바다 위에서 살아갈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모험이었죠. 저는 성공했고, 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돌아왔어요. 인생의 후반전이 기대돼요.

그렇다면 후반전의 가장 가까운 목표는 뭐죠?
2년 뒤에 ‘바르셀로나 월드 레이스’가 열려요. 속도전이죠. 세계 곳곳에서 참가해요. 사실 한국은 해양 선진국이지만 이런 세계대회의 투자가 잘 이루어지지 않죠. 대부분의 세계대회 한국 사람이 진출했지만, 유일하게 진출하지 않은 대회들이 요트 부문에 몇몇 있어요. 그중 하나인 이 대회에 참가할 거예요. 한국이 해양 선진국임을 알리고 싶어요. 대회는 겨울철에 시작되는데 2인 1조로 참가하게 돼요. 23살의 청년이 몇 년 전 저를 찾아와 “요트에 인생을 걸고 싶다”고 말했죠. 그 친구와 열심히 훈련 중이에요. 참가만 한다면 5위 안에 들어올 자신 있어요. 요트는 젊고 패기 넘친다고 해서 빨리 갈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지혜로워야 하고 끈기 있어야 하고 노련해야 하죠. 오히려 저처럼 관록 있는 참가자가 더 유리해요. (웃음)

멋지네요. 바르셀로나 대회 외에 집중하고 계신 부분이 또 있나요?
바르셀로나 대회 준비와 동시에 4년 뒤에 프랑스에서 열리는 ‘이모카 오션 마스터스 월드 챔피언십’도 준비하고 있어요. 이처럼 제가 다양한 대회에 나가 한국이 해양선진국임을 알리기 위해서는 요트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기반을 닦는 데 주력해야 해요. 교육과 체험 프로그램, 강연을 통해 요트를 알리는 데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사실 요트는 고급 스포츠가 아닙니다. 요트가 없다면 크루로 들어와 배울 수 있어요. 아웃도어와 라이프가 결합한 진정한 아웃도어 라이프죠. 아웃도어의 궁극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매우 매력적인 스포츠예요.

모험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놀아야 합니다. 즐겁지 않으면 안 돼요. 수중에 돈 3억이 남았을 때 딸아이를 떠올리며 ‘이 돈을 아껴 쓰며 전전긍긍하는 아버지가 될 것인가, 요트를 사서 꿈을 이루는 아버지가 될 것인가’를 고민한 적이 있어요. 저는 후자를 선택했죠. 어떤 딸도 즐겁게 살아가는 아버지를 싫어하지 않잖아요? 도전은 멀리 있지 않아요. 당장 뒷산을 올라가는 것도 도전이죠. 세계여행이나 히말라야 같은 극한의 상황만이 도전이 아니에요. 도전의 가치는 형태와 상관없으니까요. 도전하세요. 모험하는 모든 인생을 응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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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로니아 2016-10-10 22:49:52
김선장님이 많이 무모하시네요.

도전 정신이 있는게 아니라 무모한 분이였네요

이제까지 운이 좋았을뿐이라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