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곤소곤 들려오는 숲의 이야기…천마산 생태 트레킹
소곤소곤 들려오는 숲의 이야기…천마산 생태 트레킹
  • 김경선 차장|사진 양계탁 기자
  • 승인 2016.06.21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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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천국 천마산계곡~정상~꺽정바위~절골~다래산장 약 8km 원점회귀 코스

수도권에서 숲도 좋고 계곡도 좋은 산을 찾는다면 경기도 남양주시에 자리한 천마산(812m)이 제격이다. 산의 북쪽과 남쪽에 들어선 아파트 단지가 빽빽하지만 그 속을 조금만 파고들면 오지 여느 산 못지않은 울창한 숲과 계곡이 숨어 있는 곳이 천마산이다.

▲ 맑고 투명한 계류가 시원하게 흐르는 천마산계곡은 등산로와 인접해 쉬어가기 좋다.

천마산은 이른 봄이면 지천에 야생화가 만발해 들꽃 트레킹으로 유명하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이면 청정한 천마산계곡은 사람 반, 물 반일 정도로 피서객들이 몰려든다. 지금은 봄과 여름의 경계인 5월, 눈을 뚫고 올라와 화사한 꽃망울을 터트린 야생화는 대부분 져버렸지만 숲을 메운 식생은 푸르고 풍성하다.

천마산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구간은 화도읍 묵현리 군립공원사무소~심신수련장~뾰족봉~정상 왕복 코스다. 이 외에도 남양주시 호평동 수진사 입구~큰골~천마의집~꺽정바위~정상 코스가 대표적이다. 들꽃이 피어나는 3월에는 천마산계곡 코스도 산행객들로 북적인다.

수려한 계곡의 아름다움과 장쾌한 능선의 조망을 두루 만끽하기 위해서 산행은 팔현리 오남저수지 기점 산행 들머리인 다래산장에서 출발해 천마산계곡~돌핀샘~정상~꺽정바위~천마의집~절골~다래산장으로 이어지는 원점회귀 코스로 잡았다. 야생화 철인 3월 이 외의 계절에는 인적이 드물어 호젓하게 걷기 좋은 구간이다.

▲ 천마산 정상 부근에 군락을 이룬 철쭉에서 연분홍 꽃잎이 떨어졌다. ‘가시는 걸음 걸음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김소월 시인의 시처럼 등산로에 떨어진 철쭉 꽃잎을 사뿐히 밟아봤다.

▲ 새색시처럼 곱디고운 금낭화.

애기똥풀·까치수염·벌깨덩굴, 들어봤니?

이번 트레킹의 주제는 ‘생태’다. 함께한 사진기자가 숲해설가로 활동할 만큼 전문가인지라 숲의 이야기를 듣겠다며 호기롭게 길을 나섰다. 차가 진입하는 마지막 음식점인 다래산장 왼쪽으로 들머리가 보였다. 천마산까지 약 4.4km. 길을 따르자 청량한 숲의 향기와 귓가를 간질이는 시원한 계류 소리가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다.

초입부터 샛노란 애기똥풀이 지천이다. “산행하다 모기나 벌레에 물렸을 때 애기똥풀 줄기를 꺾어 나오는 즙을 바르면 진정효과가 있어요.” 애기똥풀 줄기에는 노란 즙이 가득한데, 아기의 똥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옛 사람들은 이 즙을 사마귀가 난 곳에 발라 없앴을 만큼 독성이 있다니 함부로 먹으면 위험하다.

▲ ‘기쁜 소식’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는 보랏빛의 붓꽃.
▲ 천마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벌깨덩굴.

산길은 줄곧 계곡을 따랐다. 녹음이 가득한 숲은 식생의 보고다. 4월 초, 이른 봄이 시작되면 복수초·앉은부채·산괴불주머니·현호색·얼레지·금붓꽃·큰개별꽃 등이 삭막한 숲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어느새 봄꽃은 자취를 감췄지만 가는 길목마다 귀한 식물들이 가득하다. 평소라면 서둘러 정상으로 가고 싶어 앞만 보고 걸었을 테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고개를 숙여 숲을 살펴보게 된다.

“보리수네요. 잎을 뒤집어 보면 은색으로 반짝거려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그 유명한 보리수나무에는 연노랑색의 작은 꽃들이 가득 피어있었다. 국수나무에도 미색의 작은 꽃들이 수두룩하다. 걸음마다 야생화가 눈에 띄는데 꽃이 져버려 아쉬움이 밀려왔다. 6월이면 까치수염·터리풀·노루오줌·이질풀·솔나물·미역줄나무 등 여름꽃이 피기 시작해 새로운 천상의 화원이 펼쳐진다니 산행 시기를 잘 선택하면 들꽃을 원 없이 볼 수 있다.

▲ 큼직한 잎사귀를 들쳐야만 모습을 드러내는 족도리풀의 자줏빛 꽃이 단아하다.

▲ 꽃술이 마치 왕관 같은 물참대.

천마산계곡은 등산객들 사이에서는 팔현계곡으로 더욱 유명하다. 전국 방방곡곡 산 좀 다녀봤다는 사진기자도 “수도권에 이렇게 숲과 계곡이 훌륭한 산도 드물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맑고 투명한 계류가 끊임없이 흐르는 계곡은 보기만 해도 시원했다. 등산로는 물길을 수시로 넘나들고 수풀을 뒤질 때마다 간간히 나오는 야생화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완만하던 계곡길은 점차 고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오르막이 나오기 전 이른 점심을 해결하는 도중 만난 경기도 산림환경연구소 소속 숲전문가 안동익 씨와 동행하며 더욱 심도 깊은 숲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천마산에서 볼 수 있는 노랑앉은부채나 노랑미치광이풀은 전국적으로 드문 귀한 꽃이에요. 노랑앉은부채는 희귀성 때문인지 사람들이 많이 퍼가서 요즘은 천마산에서도 보기가 힘들죠.”

▲ 천마산 주능선에서 바라 본 남양주 화도읍 일대와 주변 산군.

▲ 산행 중 만난 경기도 산림환경연구소 소속 숲전문가 안동익 씨는 천마산의 식생과 관련한 심도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드문 이정표에 초행자, 길을 잃다

잠시 동행했던 안동익 씨와 헤어지자 길은 계곡을 벗어나 점차 가팔라졌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갈증을 느낄 때 쯤 돌핀샘이 나타났다. 시원한 샘물로 목을 축이고 마지막 고빗사위를 넘어서자 드디어 천마산 주능선이다. 능선 곳곳에는 연분홍 철쭉이 만개해 고운 자태를 드러냈다.

“산 밑에 핀 철쭉은 ‘산철쭉’ , 산 위에 핀 것은 ‘철쭉’이에요. 이름이 반대죠. 우리가 알고 있는 철쭉은 대부분 산철쭉이라고 생각하면 되요.” 천마산 철쭉은 색이 연하고 고운 것이 진달래와 흡사하다.

주능선에 올라서 정상으로 가는 길은 다소 거친 암릉 구간이다. 바윗길을 따른 지 10여분, 드디어 천마산 정상(812m)에 도착했다. 해발고도가 높지 않지만 수도권의 웬만한 산봉들은 대부분 보일만큼 정상에서 사방으로 펼쳐지는 조망이 장쾌하다.

▲ 줄기를 꺾어 나오는 노란즙이 진정효과가 있다는 애기똥풀.

평일의 천마산은 한산했다. 정상마저도 인적이 드물 정도다. 정상에서 만난 등산객은 “팔현계곡 등산로에는 이정표가 많이 있나요? 저는 수진사에서 올라왔는데, 이정표가 너무 드물어서 ‘이 길이 맞나’ 우려스럽더라고요.” 아니나 다를까. 정상에서 남서쪽 능선을 잠시 따르다 우측으로 빠지는 길을 잘못 들었다. 무척이나 가파른 길을 30여분 내려갔을까.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을 무렵 지도 앱을 켜고 ‘내 위치’를 확인하니, 전혀 다른 길로 내려가고 있었다. 다시 정상으로 올라가는 데 50여분. 체력은 떨어지고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다. 진작 GPS를 켤 걸. 문명의 이기가 이렇게나 고맙게 느껴지다니.

천마산 주능선에서 꺽정바위로 하산하는 길은 이정표가 없는데다 진행 방향에서 4시 방향으로 숨어 있어 찾기가 힘들다. 초행자라면 필히 GPS로 확인해야 길을 잘못 드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 10 거대한 두개의 바위가 서로 기대어 서있는 꺽정바위.
▲ 울창한 숲이 우거진 천마산은 산행 내내 지친 마음을 달래준다.

천마의집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이 전의 길에 비하면 고속도로다. 곳곳에 벤치도 있고 가파른 길에는 나무계단도 조성돼 있었다. 하산을 시작한 지 40여분, 천마의집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빠져 절골로 들어섰다. 다행이 이곳에는 이정표가 있었는데, ‘오남리 호수공원’ 방향이다.

절골은 천마산계곡보다 규모는 작지만 식생은 훌륭하다. 잔잔한 계곡을 넘나들며 발 담그고 쉬어가기도 좋다. 왕복 4시간을 예상하고 만만히 봤다가 정상만 두 번 맛본 기자의 지친 마음을 달래줄 만큼 수려한 계곡미가 일품이다.

절골은 곧 천마산계곡과 몸을 섞었다. 길은 이제 막바지다. 청아한 계류의 울림과 상쾌한 숲의 향기가 데자뷔처럼 밀려왔다. ‘이정표가 드물다’며 투덜대던 불평도 쏙 들어갈 만큼 매력적인 이 산을 곧 다시 찾을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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