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의 소중한 보금자리…구호품 텐트 ABC
난민의 소중한 보금자리…구호품 텐트 ABC
  • 글 사진 ‘양식고등어’ 조민석 기자
  • 승인 2016.05.13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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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고등어’의 텐트 이야기…쉘터에서 집으로, 더욱 가볍고 기동력 있게

이번에 들려드릴 이야기의 주제는 바로 난민입니다. 전란이나 천재지변 같은 급작스러운 상황으로 인해 집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두고 우리는 난민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러한 난민에게 가장 필요한 것 1순위가 텐트라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이 사실만으로도 난민구호사업에 있어 텐트라는 장비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난민에게 반드시 필요한 텐트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 UN 산하의 난민보호기구인 UNHCR에서 현재 공식적으로 난민 발생 지역에 제공하고 있는 쉘터의 모습입니다. 측면의 벽을 세워 실내의 공간감을 살리고, 지붕을 경사지게 만들어 빗물이 흘러내리지 않게끔 설계한 것이 특징입니다. 규모는 4인 내외의 가족이 비교적 넉넉하게 사용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난민에게 텐트가 필요한 이유
인간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3대 요소로 의식주(衣食住)를 꼽습니다. 아무리 난민이라고 해도 의식주 중 어느 것 하나도 빼놓을 수는 없지요. 실제로 이는 UN 산하 난민구호기관에서 만든 텐트의 지침에도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난민에게 텐트를 제공할 때에는 이외에도 의식주 전반을 아우르는 구호물자를 포함해 지원하라’는 것인데 의식주에서 주에 해당하는 텐트를 제공하더라도 그 안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과 입을 수 있는 옷도 같이 지원해 주어야 한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보자면 난민에게 지원하는 구호물품 중 텐트나 쉘터는 가장 중요한 물품 중 하나입니다. 극한 외부 환경에서도 인체를 보호해주는 텐트의 고유한 역할 때문이지요. 폭우나 폭염, 강풍, 폭설 등의 급격한 기상 변화는 전 세계 곳곳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여기에 가족 단위의 난민에겐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역할도 해줍니다. 난민들에게도 가족별로 사용하는 중소규모 쉘터가 많은 사람을 한 번에 수용하는 대규모 쉘터보다 선호되어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난민을 위한 텐트의 종류
난민에게 텐트가 제공되는 사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유니세프나 UNHCR 같은 국제구호기구를 통해 전달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비교적 작은 민간구호기구를 통해 제공되는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전자의 경우 비교적 장기간 머무를 수 있는 대규모 텐트를 제공하는 반면, 후자의 경우 단기간 머무르기에 적합한 중소규모 텐트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국제구호기구를 통해 제공되는 텐트들이 어떤 과정과 기준을 통해 만들어지는지는 공개된 관련 지침에서 알 수 있습니다.

▲ UNHCR 외에도 난민구호를 위해 텐트를 지원하는 단체가 종종 있습니다. 단지 UNHCR에 비해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다 보니 텐트의 규모도 거기에 비례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사진 속 난민촌은 내전으로 수많은 난민들이 생겨나고 있는 시리아 지역의 주변부에 형성된 난민촌입니다.

둘의 차이는 또 있습니다. 텐트 제작에 사용하는 소재인데요. 국제구호기구에서 보급하는 텐트는 주로 면 소재와 이에 맞는 무겁고 견고한 스틸 폴을 이용해 제작됩니다. 원자재 수급은 주로 면화를 재배하는 중앙아시아 파키스탄 인근 지대에서 이루어집니다. 가끔씩 면화 수급에 차질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이 지역은 텐트가 필요한 곳으로 제품을 보내기에 더 없이 좋은 지리적 장점을 가졌습니다.

중소규모 민간구호단체에서는 면보다는 합성소재로 만든 텐트를 주로 보급합니다. 때로 직접 텐트를 디자인하거나 제작해서 보급하기도 하고, 전문 브랜드의 텐트를 구입해서 전달하기도 합니다. 제작지도 다양하고 소재 또한 일반적인 텐트와 유사한 나일론 원단에 알루미늄 폴 등을 주로 사용합니다.

국제구호기구에서는 알파인 계통 텐트를 구호용으로 사용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습니다. 내구성 측면이나 주거성 측면에서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효율성 측면에서만 보면 어느 쪽 텐트가 더 좋다 혹은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면 소재 스틸 폴을 이용한 대형 텐트의 경우 소재 특성상 내구성이 상당히 강하고 상대적으로 실내 공간의 전고가 높아 장기적으로 한 곳에서 생활해야 하는 상황에 효과적이지만, 무게가 적게는 수십 킬로그램에서 많게는 수백 킬로그램까지 나가는 탓에 거처를 이동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상당히 비효율적입니다. 반면 나일론 소재와 알루미늄 폴을 이용해 만든 중소형 텐트의 경우 빠른 시간 안에 편리하게 머무는 장소를 이동할 수 있지만, 장박 시 면보다 내구성이 떨어지고 실내 공간의 전고가 낮아 주거성 측면에서도 불편함이 따릅니다.

▲ 난민들이 구호단체의 도움 없이 개별적으로 만든 난민촌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지리적 입지가 공식적으로 형성된 난민촌에 비해 불리하다 보니 천재지변이 일어날 경우 자주 장소를 옮겨다녀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진은 폭우로 인해 이 지역에 형성되어 있던 난민들의 텐트 군락이 바깥쪽으로 자리를 옮긴 모습입니다.

후자 텐트가 오늘날 더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난민이 발생하는 상황이 과거에 비해 다변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동 시리아 지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내전을 보면 알 수 있는데요. 난민들이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향하는 걸 뉴스를 통해 보셨을 겁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텐트 역시 후자입니다. 왜냐하면 유럽에 가서도 난민으로 지원받기 위해서는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한 곳에서 오케이 되는 일이 흔치 않습니다. 당연히 목적하는, 혹은 난민으로 인정해주는 국가를 찾아 계속 이동해야 하지요. 그런 난민에게는 무겁고 큰 텐트가 아닌, 작고 가벼운, 그래서 기동성이 뛰어난 텐트가 필요합니다. 최근 들어 생기는 이러한 변화는 UNHCR이 제공하는 쉘터 안내서에는 아직 반영되어 있지 않습니다.

색상도 꽤 중요한 요소다
난민에게 제공되는 텐트의 규모는 달라도 공통적으로 고려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색상입니다. 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난민에게 보급되는 텐트를 살펴보면 구호물품으로 전달한 기관이나 단체의 구별 없이 하얀색 텐트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왜일까요?

▲ 영국왕립학교 미술대학 팀에서 쉘터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디자인한 웨어러블 텐트입니다. 폴 하나만 있으면 텐트로 사용할 수 있고, 이불로도 사용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우비로까지 사용 가능한 텐트입니다. 이런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보면 국내외 유수의 아웃도어 텐트메이커들도 충분히 난민들을 위한 텐트를 디자인하고 난민들을 위해 공급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내전 등 전쟁이 일어난 상황에서 특정 집단과의 이해관계를 따질 때 가장 안전한 색이 바로 하얀색입니다. 난민들이 개별적으로 구한 텐트들이 다양한 색을 띠고 있다면 어쩔 수 없지만, 집단 차원에서 텐트 색상이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를 나타냄으로써 난민이 공격받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는 점에서 고려된 것입니다.

둘째는 주간에 내리쬐는 복사열로부터 실내 온도를 낮추기 위함입니다. 텐트 천의 명도가 낮으면 낮을수록 실내의 온실효과는 높아지기 때문에 주간에도 텐트 안에서 생활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명도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굳이 하얀색이 아니더라도 텐트를 사용하는 난민의 입장에서는 온실효과가 덜 일어나는 밝은 색 텐트를 선호하기 마련입니다.

이제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앞서 소개했던 유형별 텐트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이를 보급하는 난민구호단체들도 여러 가지 개선과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장박용 대형 텐트의 경우 캔버스 원단 배합에 변화를 주어 경량화와 기동성 확보에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쉘터로서의 기능을 집으로서의 기능으로 조금씩 바꿔나가기 위해 노력중입니다. 일례로 한국 가구 시장에도 진출한 이케아 사에서 난민을 위해 조립식 플라스틱 집을 디자인해 제작 및 납품하기 시작했지요. 텐트로서의 기능성은 포기하는 꼴이 되겠지만, 비교적 긴 시간을 같은 장소에서 머물러야 하는 난민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더 긍정적으로 다가올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 새롭게 고안된 캐빈 텐트의 실내입니다. 한 가족이 넉넉하게 생활할 수 있는 규모를 유지하면서도 강성을 높인 것이 특징인데, 스웨덴계 가구메이커인 이케아에서 이를 설계하고 제작하여 2016년 하반기부터 UNHCR과 협력하여 이를 난민촌에 정식으로 보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난민용 중소규모 알파인 텐트도 아웃도어 시장에 선보이는 최신 트렌드와 비슷한 형태로 바뀌어나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가벼우면서도 강성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텐트를 만들었지만, 최근엔 난민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을 찾아 획기적이고 실용적인 아이디어를 접목하는 형태로 진화했습니다. 실제로 영국왕립학교 미술대학의 한 학과에서는 우비로 입거나 이불, 텐트로도 쓸 수 있는 제품을 선보였는데, 이 텐트는 올해 하반기에 정식으로 난민을 위해 양산되어 보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번 주제에 대한 글을 쓰면서 난민을 위한 텐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아웃도어 문화가 발달한 선진국에서는 난민에게 적용할 수 있는 뛰어난 텐트 기술이 있는데 왜 적소에 사용하지 않을까. 그들이야말로 전쟁이나 기근 등에 떠밀려 자연으로 내몰린 ‘아웃도어인’들인데. 왜 유명 텐트메이커들은 이들을 외면할까. 그들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임의 범주엔 지속 가능한 환경보존 뿐일까.

여러분도 한번쯤 이 내용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길 바랍니다. 우리가 쉽게 쓰는 이 텐트가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절실하고 소중한 장비인지. 우리가 사회나 텐트메이커에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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