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백패킹
맛있는 백패킹
  • 서승범 차장|사진 김해진 기자
  • 승인 2015.12.3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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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AR REVIEW|스노우피크, 야엔 스토브 레기

스노우피크의 레기(REGI). 올해 초 선보인 야엔 시리즈 가스 스토브다. 야엔 시리즈는 오토캠핑보다는 백패킹에 어울리도록 설계되었다. 어떻게든 무게를 덜어내는 것이 대세인 백패킹 트렌드에 견주면 제법 묵직하다. 그럼에도 무게가 초경량인 미니 가스 스토브를 두고 2배 넘는 레기를 고르게 하려면 그에 걸맞는 이유가 필요하다.‘언제 어디서나 맛있게’정도가 답이겠다. 독특한 구조와 상대적으로 무거운 무게,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들어오는 족족 품절 딱지를 꿰차는 야엔 스토브 레기다.

올해 초 일본 스노우피크에서 야엔 시리즈 스토브를 선보였다. 모델은 두 가지. 레기와 나기다. 우리나라에는 5월에 레기 모델만 들어왔다. 스노우피크의 장비들은 명확한 존재의 이유를 갖는다. 야엔 레기가 만들어진 이유는 기존의 제품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100g도 채 되지 않는 체구로 2,500칼로리의 열량을 내는 기가파워 G는 1998년 등장 직후 한동안 백패킹 시장을 주름잡았다. 플레이트 타입의 스토브 시장을 연 기가파워 플레이트 스토브는 오토캠핑의 다양한 세팅에 정확하게 호응했다. 3,000칼로리의 출력, 넓은 화구, 안정적인 구조가 매력적이었다. 화력이라면 강염스토브를 빼놓을 수 없다. 8,500칼로리를 자랑하는 강염스토브는 강한 불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어필했다. 산악회 같은 단체 여행객이나 강한 불을 필요로 하는 셰프 스타일 캠퍼들 말이다.

이밖에는 투 버너 정도가 있다. 빈 곳이 어디일까. 기가파워 G와 기가파워 플레이트 사이는 생각보다 멀다. 무게나 부피 등 휴대성은 기가파워 G에 가까우면서 안정성이나 화력은 기가파워 플레이트 쪽에 더 가까운, 휴대성과 화력이 좋은 스토브 시장이 비어있다. 야엔 시리즈는 이 시장을 메우기 위해 탄생했다. 이중 레기는 기가파워 G쪽에, 나기는 기가파워 플레이트쪽에 가깝다.

▲ 두 개의 다리는 지면에, 하나의 다리는 가스 카트리지에 고정된다. 가스와 스토브를 직결하는 정립식의 불안함은 해소하고, 분리해 호스로 연결하는 방식에서는 호스가 차지하는 무게를 줄였다. 독특한 구조이지만 무척 안정적이다. 110g 가스 캐니스터를 연결한 모습.

스노우피크에서 이 시장에 관심을 기울인 이유는 이들의 캐치프레이즈 ‘삶 속에서 자연을’에 있다. 일상 속에서 자연을 느끼고 즐기듯 자연 속에서도 일상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야 하고 그중 맛이 주는 즐거움을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기존의 경량 가스 스토브들은 물을 빨리 끓이는 데 목표를 두고 불꽃을 쏘아올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밥을 하거나 고기를 구우면 쿠커의 중앙은 타고 주변은 익지 않아 불편했다. 이런 불편을 해소하고 백패킹에서 맛을 즐기기 위해 양보해야 하는 최소치는 어느 정도일까. 레기를 보며 그 답을 찾아보자.

▲ 오덕의 지름이 5cm에 가깝다. 지름보다 중요한 건 각도, 불꽃을 위로 쏘아올리는 대신 옆으로 퍼뜨린다. 백패킹에서도 맛있는 요리를 즐기기를 바라는 레기 스토브의 정체성을 알 수 있다.
▲ 그레이트는 9cm, 그레이트가 4개이고 길이도 길어서 어지간한 냄비도 거뜬하다. 100mm 지점의 검은 선은 ‘쿠커 한계선’이다. 지름 20cm 이상의 쿠커는 피하는 게 좋다. 무게는 10kg도 오케이다.

▲ 110g(왼쪽)과 250g 가스 카트리지 연결한 모습. 두 개의 다리는 2단으로 길이를 조절할 수 있다. 길이 조정은 빡빡하지 않아 쉽게 할 수 있고, 고정하면 잔 움직임이 적어 안정적이다. 2~3명 백패킹을 가정한다면 한 끼에 250g 가스가 모자라는 경우는 거의 없어 450g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우선 구조가 독특하다. 보통의 백패킹용 가스 스토브를 떠올려보자. 가스 캐니스터 위에 스토브 본체를 올리는 정립식이거나 스토브 본체를 땅에 설치하고 가스는 호스로 연결하는 호스형 둘 중 하나일 거다. 레기는 다리가 세 개인데, 하나의 다리는 땅에 닿지 않고 가스 캐니스터에 연결된다. 정립식은 가스 캐니스터로 쿠커와 음식의 무게를 지탱해야 하기 때문에 불안정하다. 250g 가스 캐니스터의 지름은 11cm도 안 된다. 레기를 설치했을 때 다리부터 가스 캐니스터 끝까지는 30cm가 넘는다. 안정적이다. 그렇다면 왜 호스 방식을 택하지 않았을까? 오덕(화구)이 넓은 호스형 가스 스토브의 경우 무게가 300g 이상, 무거운 건 500g을 넘긴다. 레기는 다리 하나에 다리와 호스의 역할을 함께 넣었다. 덕분에 가스통까지도 쿠커의 무게를 일정 부분 떠안을 수 있도록 했다. 무게는 220g.

가스는 110g과 250g 두 가지를 쓸 수 있다. 가스통의 높이가 달라지면 다리의 길이도 달라져야 한다. 각각의 캐니스터 높이에 맞게 다리의 길이를 조절할 수 있다. 450g짜리 가스 캐니스터는 사용할 수 없다. 다리만 조금 늘리면 가능하겠지만 백패킹에서 450g 가스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 사용하고 싶다면 가스가 놓이는 곳의 땅을 파거나 다리 쪽에 뭔가를 괴면 되지만, 그럴 일은 별로 없어 보인다.

▲ 불꽃의 모양을 보자. 지름 18cm 코펠을 사용했는데, 최대 화력일 때 불꽃이 쿠커의 가장자리 조금 못 미친 곳까지 퍼졌다. 최대 출력은 2,900kcal, 110g 가스로 70분, 250g 가스로는 110분 간다.
▲ 본체를 손에 쥔 모습. 작은 손은 아니지만 한 손에 착 달라붙는다. 무게는 본체만 220g, 초경량은 아니지만 무게감은 크지 않다. <스타트렉> 엔터프라이즈호를 연상시키는 생김새가 재미있다.

화력은 좋다. 2,900칼로리다. 25도의 공간에서 20도의 물 1리터를 95까지 끓이는 데 3분 35초 걸린다고 되어 있다. 어지간한 화이트가솔린 스토브보다 낫다. 실제로 촬영을 하면서 1리터가 넘는 물을 끓여봤는데 물이 끓는 체감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온도가 낮고 바람이 센 야외라면 달라질 수 있겠다. 화력보다 중요한 건 오덕의 모양이다. 지름 5cm의 오덕은 불꽃을 위로 쏘는 구조가 아니라 옆으로 퍼뜨리도록 설계되었다. 가운데만 타고 주변은 설익는 일은 없겠다.

마지막으로, 생김새가 참 예쁘다. 수납 형태로 오므리고 나면 <스타트렉>에 나오는 엔터프라이즈호를 떠올린다. 한 손에 착 감기는 크기와 형태도 마음에 들고, 손길이 자주 닿는 부속의 마무리는 아주 매끄러워 다칠 염려가 전혀 없다. 오덕은 스테인리스 재질이라고 되어 있는데 여느 스테인리스 제품과 달리 매끈하지 않고 부드럽다. 프레스 가공이 아니라 주물 방식으로 제작했기 때문이다. 백패킹에서 요리깨나 한다는 사람들, 혹할 만하다.


▲ 가스 캐니스터와 연결해 가스 송출관 역할을 하는 다리다. 검은색 고무 마개가 스토브 본체와 연결되는 부분. 원 안은 반대쪽 가스 조절 레버 부분. 여기에 가스를 연결하면 된다.
▲ 구성품. 왼쪽부터 스토브 본체, 가스 연결구, 이그니터, 수납 주머니. 수납 주머니에는 가스 연결구를 별도로 보관할 수 있는 주머니가 마련되어 있다.

 

무게 236g (스토브 본체 220g, 가스 연결부 16g)
크기 사용 시 147mm(높이), 301mm(길이, 가스 카트리지 끝까지) 180mm(오덕 그레이트 지름)
소재 스테인리스(오덕), 알루미늄(다리)
소비자가격 1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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