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해변을 동시에…24km의 행복한 발걸음
숲과 해변을 동시에…24km의 행복한 발걸음
  • 글 사진 류정민 기자|사진제공 피엘라벤
  • 승인 2015.11.02 17: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CAMPING EVENT|피엘라벤 폭스 트레킹 in 변산

10월 8일부터 11일까지 3박 4일의 여정으로 2015 피엘라벤 폭스 트레킹을 다녀왔다. 비수구미에 이어 이번 폭스 트레킹 장소는 전북 부안군 변산반도. 접수를 시작한 지 7분 만에 마감 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던 이번 행사는 태어난 지 5개월 된 갓난아기부터 60대의 정정한 백패커까지 총 100여 명의 참가자가 함께 했다.

10월 9일 한글날, 폭스 트레킹의 막이 열렸다. 감불산 대불사에서 시작한 트레킹 코스는 용각봉 삼거리를 거쳐 가마소 삼거리, 사자동 내변산 탐방지원센터, 자연보호 헌장탑 기점, 재백이재 기점, 원암 탐방지원센터, 석포 야영장까지 내변산의 아름다운 절경과 숲 속, 계곡이 함께 어우러진 멋진 곳이었다.

한 폭의 수채화 같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던 숲 속 트레킹. 원래 옆에 흐르는 작은 개울가는 물이 계속 흐르는 계곡이라던데 비가 너무 안와서 중간 중간 말라 있었다. 맑게 고여 있는 물에 나무의 음영이 비친다. 시원한 계곡 소리를 들으며 걷는 것도 좋았겠지만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충분히 아름다웠다. 어떤 구간은 너무 멋져서 눈을 떼지 못할 정도였다. 다들 똑같은 마음이었는지 사진 찍느라 쉽사리 발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좀 쉬면 어때”
내변산은 생각보다 습하고 이끼가 많은 숲 속이었다. 바람이 솔솔 불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부딪치는 소리도 들려온다. 푸르른 숲이 뿜어내는 자연의 향취도 흠뻑 맡아가며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본다. 초록 가득한 길에 우리들만의 발자취도 남긴다. 경쟁도 아니고 대회도 아닌 그저 자연 속에서 다 함께 가는 트레킹이라 마음이 편하다. 앞서가던 사람들도 잠시 쉬어가며 주먹밥을 챙겨 먹고 멋들어진 나무 밑에 모여 앉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기도 한다.

아버지와 어린 아들의 대화도 인상 깊다. 힘들면 쉬었다 가자는 아버지의 말에 빨리 가고 싶다는 아들, “쉬면 좀 어떠냐. 이게 순위를 정하는 것도 아닌데” 그저 아버지는 아들에게 좋은 숲 길 함께 걷는 걸 가르쳐 주고 싶었겠지.

“이야~ 걷는 맛이 있네” “야산 둘레길 걷는 느낌이야”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쏟아져 나온다. 바스락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도 정겹고, 나무들 사이로 비치는 따사로운 햇빛도 우리를 비쳐준다. 물결은 잔잔히 흐르고 고운 색의 나뭇잎도 둥둥 떠다니고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자리를 깔고 앉았더니 지상낙원이 따로 없더라.

어린아이들의 쫑알대는 목소리가 귀에 박힌다. “나무 조심해 친구야. 아직도 멀었어. 길이 아직도 많아. 얼른 올라와 친구야.” “우리 쉬었다 가자” “여기 길이 없어서 멈출 수 없어. 계속 가야돼 친구야. 아니다 조금 쉬었다 갈까?” 하더니 철퍼덕 주저앉는다. 너무 빨리 걷는 거 아니냐는 엄마의 말에 “아니야 엄마, 나 하나도 빠르지 않아” 하고 총총 올라가던 아까 그 10살짜리 여자 아이다. 트레킹을 하다가 마음 맞는 동갑내기 친구를 만나 서로 의지하며 올라 왔나보다.

내변산 탐방지원센터에서 잠시 쉬며 주최 측에서 나눠준 발열 도시락 ‘더온’을 당겨 먹었다. 버너와 물을 챙기지 않아도 되는 도시락이라 편하게, 어느 때보다도 맛있게 먹었다. 가뭄에 메마른 직소폭포를 지나 재백이 고개에 올라서자 황금빛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가 인상 깊었던 석포리 마을도 거쳐서 드디어 석포 야영장 앞에 도착. 따끈따끈 바로 구운 핫케이크와 시원한 콜라를 손에 쥐어준다. 얼마나 맛있던지 순식간에 먹어치우곤 하나를 더 먹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야영지인 썬리치랜드 캠핑장에 도착하자 미리 도착한 참가자들이 펼친 각양각색의 텐트들이 갈대밭 사이로 보인다. 개별로 나누어진 사이트가 아니라 드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어 가슴이 탁 트였다. 우리나라에 이런 캠핑장이 많아졌으면. 수많은 텐트들과 사람들, 붉게 물든 하늘에 떠 있는 분홍색 구름을 보니 괜스레 설렜다.

바다 내음 가득한 해변 트레킹
대망의 둘째 날, 아침부터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인다. 주최 측이 준비해 준 빵과 소시지, 스크램블 에그로 든든하게 식사를 해결하고 피니시 라인인 채석강을 향해 기분 좋게 출발! 어제가 숲이었다면 오늘은 바다다. 솔섬전망해변을 거쳐 상록해수욕장, 궁항 공원, 불멸의 이순신 세트장, 격포항을 지나 채석강까지. 해안 트레킹으로 이루어진 12km의 길을 걷는다. 총 24km의 코스.

혼자 온 백패커들도 어제 친해진 사람들과 일행이 되어 떠나고 나도 브롬톤 타고 캠핑을 다니는 ‘구린족’ 무리와 친해져 뒤늦게 출발했다. 발을 떼기가 무섭게 빗방울이 쏟아진다. 안 오길 바랐지만 막상 빗방울이 쏟아져도 즐겁다.

바람막이를 꺼내 입고 모자까지 뒤집어쓰고 걷다보니 갑자기 미친 듯이 폭우가 내린다. 마침 앞에 보이는 정자에 비를 피하려고 올라갔더니 어제 그렇게 산을 잘 타던 꼬마 아이들이 엄마아빠 품에 안겨 엉엉 울고 있다. 산은 안 무서워도 천둥과 비는 무서운가보다. “괜찮아 금방 지나갈 거야” 쓰담쓰담 해주고 한 마디 건네주니 언제 퍼부었냐는 듯 금세 보슬비로 바뀌었다. 너도 나도 다시 길을 나선다. 해변 길 트레킹을 하며 하늘이 열리고 빛이 쏟아지는 ‘빛내림’을 두 번이나 봤다. 출발할 때 바다에서 한 번, 채석강에 도착해서 한 번. 기분이 묘했다. 하늘에게도 축복 받는 느낌.

밤에는 ‘캠핑밴드’의 공연과 함께 애프터 파티가 펼쳐졌다. 피엘라벤 직원들과 프렌즈들이 손수 만든 음식들을 먹으며 작은 시상식도 열렸다. 아이들 백패커들과 사연 있는 참가자들에게 피엘라벤의 제품을 아낌없이 풀었다. 파티의 꽃은 캠핑밴드의 공연! 신의 한수였다. 여느 아이돌 가수의 공연보다도 흥겹고 뜨거웠던 축제의 현장에서 힘든 길을 함께 걸어 준 가족, 친구, 연인의 눈을 바라보며 따라 불렀다. “널 사랑 하겠어~ 언제까지나”

이틀간의 폭스 트레킹을 마치고 왜 많은 사람들이 변산반도, 변산반도 노래를 부르는지 절실히 느꼈다. 숲과 계곡, 바다를 함께 만날 수 있는 이런 트레킹 코스가 우리나라에 있다니. 다양한 백패커들도 만날 수 있었다. 5개월 아이를 액티브 캐리어에 태워서 메고 다니는 부부, 임신한 부인을 데리고 온 남편, 강아지와 함께 온 백패커 그리고 작년 피엘라벤 클래식에 참가했던 방송인 박재민 씨도 아버지와 함께 참가했다.
어느덧 3회째를 맞이한 피엘라벤의 폭스 트레킹. 내년에도 꼭 가야지. 한 번 참여한 사람들이 계속 신청하는 이유는 직접 걸어봐야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의 폭스 트레킹도 스웨덴의 쿵스라덴 길을 걷는 피엘라벤 클래식처럼 될 날이 머지않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