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언제나 옳다
경주는 언제나 옳다
  • 이지혜 기자 | 사진 양계탁 기자
  • 승인 2015.05.08 17: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Travel with MAMMUT | ②BIKE RIDING

기자는 경주를 사랑한다. 경상도 출신인 탓에 정규 교육과정 봄·가을 소풍의 5할 이상을 경주에서 보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경주의 아름다움은 성인이 돼서야 알았다. 그 시절엔 교과서로 매일 보던 유적을 소풍으로까지 보러 가는 것이 싫었다. 절과 기와집, 릉과 총, 탑과 박물관은 또 어찌나 많던지. 하지만 귀중함은 시간이 지나서야 안다고 했던가. 떠돌아다녀보니, 경주만큼 아름다운 도시가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지나가다 만난 소풍 온 초등학생의 얼굴에서, 기자의 옛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절로 났다.

▲ 벚꽃이 만개한 경주는 이른 봄을 맞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봄 길. 생각 만으로 설레는 이 길을 지나기 위해 경주에 도착했다. 다섯시간 남짓 몽롱하게 달려온 경주는 초입부터 만개한 벚꽃으로 일행을 맞았다. 경주역 공영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기차로 방문하는 여행객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경주 시내 자전거 투어 코스를 소개한다.

느리게 시작하는 경주의 페달
“후딱 잘 갔다 오니라”
공영 주차장의 직원 아저씨는 자전거 코스를 꼼꼼히 점검해주신 뒤 무뚝뚝한 한 마디를 내 뱉으셨다. 아저씨의 응원을 뒤로 하고 페달을 밟았다. 경주역 공영주차장을 나와 좌측으로 달리면 얼마 지나지 않아 팔우정 공원이 나온다. 여기서 오른 편으로 조금 더 달리다 보면 가장 처음 만나는 유적지, 노서·노동고분군이 있다. 노서·노동고분군은 사적 제39호로 노서동 고분군은 금관총, 서봉총, 호우총, 마총등의 고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 자전거가 들어갈 수 있는 교촌 한옥 마을에서는 천천히 걸어보자.

금관총은 우리나라 최초로 금관이 출토된 고분이다. 서봉총은 1926년, 당시 스웨덴의 황태자 구스타프가 발굴조사에 참가한 것을 기념한 데서 따온 이름이다. 마총은 돌방무덤의 형태로 재조사 과정에 말뼈가 나와 ‘마총’으로 이름 지어졌다. 이 지역에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노서동과 노동동 고분군이 함께 있다.
노서·노동고분군을 둘러보았다면 내남 네거리에서 좌회전한다. 왼편에 천마총을 끼고 직진을 하다 보면 황남 시장과 마주친다. 경주의 대표 간식인 경주빵과 찰보리빵 가게들이 촘촘하다.

“정말 오래된 목욕탕이다”
누군가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가게 사이로 시간의 흐름을 모두 맞고 서있는 목욕탕이 있었다. 아낙네들이 길거리에 늘어놓은 봄나물 향기가 코끝을 치고 지나간다. 바람을 맞으며 페달을 밟는 다리에 힘을 뺀다. 느려지는 길의 풍경이 봄나물과 겹쳐 지나간다.

▲ 경주 곳곳에 있는 낮은 돌담길을 여유롭게 지나가본다.

최씨고택에서 만나는 귀족의 의미

경주교동 최씨고택과 경주교동법주가 자리 잡고 있는 교촌마을이 나오면 본격적인 관광코스가 시작된다. 한옥이 즐비한 시내의 남쪽에는 최씨고택을 비롯해 경주향교, 계림, 교촌한옥마을까지 자전거를 세우고 조용히 걷기 좋은 곳이 이어져 있다. 어깨까지 오는 낮은 담을 걸어보자. 한눈에 들어오는 아기자기 꾸며진 한옥들은 진정한 경주를 엿보게 한다.

최씨고택은 우리에게 최부잣집 또는 최진사집으로 익숙한 곳이다. 약 400년 동안 “진사 이상의 벼슬을 달지 말고, 만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말라”는 가훈을 철저히 지켜왔다. 그러면서도 찾아오는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고 흉년에 남의 논밭을 사들이지 못하게 했다. 생산되는 3천 석의 쌀 중 1천 석만을 사용하고 나머지는 모두 이웃에 베풀며 살아왔다. 비록 일제 시절 막대한 독립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억울한 빚을 지고 모든 재산이 압류되었지만,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 황남 시장 가운데서 시간의 흐름을 맞고 서있던 오래된 목욕탕.

▲ 봄을 맞아 새 단장에 들어간 경주의 관광지.

한옥마을을 다 둘러보았다면 남천을 지나야 한다. 고고한 자태를 뿜으며 남천을 가로질러난 월정교는 공사 중이었다. 아쉽지만 월정교 옆 교촌교를 건넜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풍경은 월정교의 아쉬움을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벚꽃이었다. 벚꽃 그 자체로 봄을 상징한다 해도 모자람이 없다. 남천을 사이에 두고 가로질러난 벚꽃과 자전거길을 설명하기 위해선 ‘한 폭의 그림’이라는 상투적인 문장을 꺼내야 했다. 너나 할 것 없이 “물가로 가보자”는 말을 남기고 페달을 멈췄다.

▲ 경주의 봄을 수놓은 유채꽃과 벚꽃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설레는 마음에 자전거를 세우고 물가로 뛰어갔다. 맨발에 닿는 남천의 깨끗한 물이 벚꽃이 가져온 봄을 경계라도 하듯 차가웠다. 돋아난 미나리를 뜯는 아낙, 여행 온 다정한 커플, 스무 살 즈음의 꺄르르 거리는 여자아이들, 그들의 웃음소리가 사진처럼 눈에 박혔다.

유채꽃과 벚꽃 그리고 첨성대
물가에서 한적한 휴식을 취했다면 다시 페달을 밟아보자. 약간의 오르막을 지나 유채꽃향기가 코를 간질일 즈음, 오른 편에 국립경주박물관이 나온다. 시간을 할애해 박물관을 구경해도 좋다. 박물관에는 에밀레종으로 유명한 성덕대왕신종을 포함해 다양한 신라시대 유적이 갖춰 있다.

박물관을 나와 오른 편의 황룡사 마루길의 편편한 도로를 가르다 보면 어느새 분황사가 나온다. 분황사는 해골바가지의 물을 어둠 속에서 시원하게 들이켰다가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다’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로 유명한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절이다. 앞마당에서는 희귀한 모전석탑이 있어 경주시내 답사에서는 필수 코스로 꼽힌다. 분황사의 입구에는 노란 유채꽃이 아담한 길을 만들어내고 있다.

▲ 경주향교는 신라 신문왕 2년에 처음 세워진 국학이다.
▲ 첨성대는 언제 보아도 경이롭다.

분황사를 돌아 선덕여중학교에서 좌측으로 달리다 보면 본격적인 유채꽃밭이 나온다. 꽃밭이 보이기도 전에 맡게 되는 달콤한 유채꽃향기가 지도를 무색하게 만든다. 첨성대와 나란히 갖춰진 유채꽃 단지에는 봄꽃을 찾아 경주로 온 관광객들의 발길이 쉬이질 않고 있었다.

학창시절 한 번쯤 가봤을 법한 경주의 첨성대는 언제 보아도 경이롭다. 첨성대는 기본적으로 태양, 달, 행성의 운행을 관측해 역법을 만들고 별자리를 통해 국가나 지방을 분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가장 큰 비중은 천문현상을 관찰해 국가의 대소사나 길흉을 점치는 일이었다. 조선시대 말까지도 계속된 첨성대를 통한 정치는 왕조를 이어나감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개울을 건너본다.

▲ 개울물이 봄을 경계라도 하듯 차갑다.

별을 보고 점을 치고 길흉을 예측하던 첨성대는 이제 소풍을 비롯한 경주 관광의 첫 번째 코스로 자리 잡았다. 과학과 의술로 예측이 확률로 변한지 오래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한 번쯤 첨성대에 올라 별자리를 그리고 소원을 빌던 신라시대의 밤을 상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먼 옛날 어떤 이에겐 삶의 전부였을지도 모를 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가슴에도 과학적이진 않지만 좇아가야 할 별 하나를 품어보는 것은 어떨까.

▲ 바람에 흐트러지는 벚꽃이 아름다워 손을 뻗어본다.
세상을 놀랜 신라의 화려한 흔적
시내권 하이킹 코스는 첨성대를 지나면 종반으로 치닫는다. 첨성대 바로 옆 대릉원 입구에 자전거를 주차하고 걸어 들어가 보자. 푸른 잔디와 릉, 총이 가득한 풍경이 펼쳐진다. 대릉원에는 신라시대의 왕과 왕비, 귀족 등의 무덤 총 23기가 모여 있다.

신라시대만의 독특한 무덤군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대릉원은 신라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금관·천마도·유리잔 및 각종 토기 등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 출토된 문화재의 보고다.

대릉원 깊숙한 곳에는 대릉원의 꽃 천마총이 자리 잡고 있다. 천마총의 금판은 현존하는 신라시대 금관 가운데 금판이 가장 두껍고 성분이 우수하다. 이와 함께 천마도장니는 천마총 출토품 가운데 세상을 가장 놀라게 한 유품이다. 장니란, 말 양쪽 배에 가리는 가리개로, 흙이나 먼지를 막는 외에 장식물로도 사용되었다. 천마총은 지금까지 회화 자료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던 고신라의 유일한 미술품이다.

자작나무껍질을 여러 겹으로 겹쳐서 누빈 위에 하늘을 나는 천마를 능숙한 솜씨로 그려진 천마총. 천마총에는 쉬지 않고 가이드를 동반한 관광객이 입장한다. 기분 좋은 웅성거림과 함께 가이드의 화려한 역사 이야기를 귀동냥하고 있노라면, 하늘을 나는 천마도장니를 두른 말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해 저절로 눈이 감긴다.

▲ 밤의 안압지는 호수에 비춰 장관을 이룬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경주

다시 입구로 돌아와 대릉원의 돌담을 왼편에 끼고 달리면, 자전거 코스의 하이라이트이자 마지막 장관인 벚꽃 가로수길이 펼쳐진다. 바람에 나부끼는 벚꽃잎이 여행을, 그리고 봄과 작별하라 재촉한다. 여전히 아름다운 경주. 신라부터 내려온 억겁의 시간 동안, 경주는 아름답지 않았던 적이 있기나 했을까. 경주는 언제나 옳았다.

경주 시내권 자전거 코스
경주역-노서·노동고분군-황남시장-경주교동 최씨고택-경주향교-계림-교촌한옥마을-교촌교-국립경주 박물관-분황사-동궁과 월지-유채꽃단지-첨성대- 대릉원-경주역
거리 약 8.5km
소요시간 유적지 입장 포함 약 5시간

▲ 담벼락에 봄꽃이 그림처럼 피어올랐다.

▲ 유채꽃밭을 옆에 두고 자전거에 작은 문제가 생겼다.

▲ 유채꽃단지와 첨성대 사이로 전기자동차가 관광객을 태우고 지나간다.

※자전거 협찬/ 오디바이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