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의 도시 방콕
유혹의 도시 방콕
  • 글 사진 전영광 기자
  • 승인 2015.04.21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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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ROAD | 이니그마가 담는 세상

방콕 수완나품 공항을 나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형형색색의 택시들, 방콕의 매력은 그 택시의 색만큼이나 다양하고 화려하다. 사시사철 여행자의 발걸음을 유혹하는 도시, 그러니 방콕의 또 다른 이름은 유혹의 도시다.

▲ 카오산 로드를 걷고 있는 서양 관광객들

카오산 로드

우리가 파리를 시작으로 유럽을 한 바퀴 돌며 배낭여행을 하듯, 서양의 배낭여행자들은 일찍이 방콕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아시아를 탐험하였다. 그러다 지치거나 지루해질 무렵이면 다시 방콕으로 돌아와 전우들을 만나고 저렴한 길거리 음식을 먹으며 여행자의 기운을 되찾곤 했다. 그 중심이 바로 방콕 카오산 로드다.

배낭여행자들이 카오산 로드에 캠프를 차린 가장 큰 이유는 저렴한 숙소들 때문이었다. 왕궁을 비롯한 관광지가 가까이 있다는 것은 아마 두 번째 이유였을 것이다. 영민한 방콕의 상인들은 배낭여행자들이 필요로 하는 인프라를 빠르게 구축해나갔다. 환전소, 여행사, 인터넷 카페에서부터 미용실 마시지 숍까지 말이다.

▲ 배낭 여행객의 성지 카오산 로드는 항상 붐빈다.

어느덧 여행자를 위한 모든 것들이 갖추어졌을 때 여행자들은 한 가지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바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 말이다. 그렇게 장기 여행자들이 하나 둘 늘어나며 배낭여행자들의 메카 카오산 로드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오늘도 그곳엔 신참 여행자들이 전 세계에서 날아들고 베테랑 여행자들은 신병을 교육하듯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싱하 맥주병을 마이크처럼 잡고 말이다.

일찍이 이 성지를 거쳐간 사람들은 이제 카오산이 변했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장기 여행자들에겐 삶의 터전이던 이곳이 유명세를 타며 관광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함께 자본이 몰려들었고 카오산의 가장 큰 미덕이던 저렴한 물가는 이제 옛말이 되어버렸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몽마르뜨에서 떠나갔듯 가난한 여행자들도 어느 날 카오산을 떠나갈지 모른다. 그때엔 여행자들의 무용담이 전설이 되겠지….

▲ 카오산 로드의 기념품 티셔츠.

송끄란 축제

사시사철 여행자의 발걸음을 유혹하는 방콕이지만 4월에는 한가지 유혹이 더 추가된다. 바로 물 축제로 유명한 송끄란 축제가 열리기 때문. 태국력 정월 초하루인 송끄란을 기념하는 행사로 태국의 가장 더운 시즌인 매년 4월 13일부터 15일까지 방콕을 포함한 태국 각지에서 열린다.

이는 ‘무더운 날씨에 더위 먹지 말고 건강히 지내라’는 뜻으로 손이나 어깨에 물을 뿌려주는 풍습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기간 동안 사람들은 서로에게 물을 뿌리고, 들이붓고, 쏘아댄다. 생면부지 사람에게도 물을 뿌리고 그저 ‘싸아디피마이’ 라고 웃으며 인사를 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고 하니 서로 맘 상할 걱정 없이 신나게 물싸움을 즐길 수 있다.

▲ 마을 전체가 송끄란 축제를 즐기고 있다.

▲ 마을 전체가 송끄란 축제를 즐기고 있다.

송끄란 축제에 전 세계 젊은이들이 몰려들면서 제법 점잖기까지 했던 물싸움은 해마다 더 격렬해져 가고 있다. 이제는 그야말로 물 전쟁이 되었는데 물론 그 중심에는 카오산 거리가 있다. 축제 기간 동안의 카오산 거리는 몰려든 사람들과 쏟아지는 물로 인해 물 반 사람 반을 이룬다. 축제를 위한 독특한 분장을 한 사람들, 커다란 물총으로 무장을 한 사람들, 여느 축제와 같이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제법이다.

사방팔방에서 물이 날아드는 격렬한 물 전쟁이지만, 이 전쟁에는 아군도 적군도 없다. 다 같이 물을 뿌리고 그러다 함께 음악에 취해 몸을 흔들고 또 같이 사진을 찍는다. 국적도 나이도 성별도 다르지만 모두 어우러져 함께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축제가 갖는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 송끄란 축제에서 신난 태국 아이들.

짜오프라야강 크루즈

방콕을 처음 찾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놀라는 건 방콕이 서울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 세련된 도시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도시를 떠나온 사람에게 회색빛 도시가 그리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곧장 짜오프라야 강으로 달려가 수상 보트에 오르면 그제야 방콕에 와 있음을 실감한다. 오른 편으로 왕궁이, 왼편으로 왓 아룬이 보이는 풍경이야말로 가장 방콕 다운 풍경이다.

방콕은 동양의 베니스라 불릴 정도로 수상 교통이 발달한 도시다. 지금은 육상 교통의 비중이 높아졌지만 방콕의 극심한 교통체증 덕분에 수상 보트는 여전히 유용한 교통수단이다. 흔들리는 선착장에서 수상보트를 기다리는 것도 독특한 경험이다. 이방인의 눈에는 수상보트가 선착장에 빠르게 닿았다가 빠져나가는 모습마저도 신기하다.

▲ 크루즈를 타고 바라본 짜오프라야강.

▲ 해질녁 짜오프라야강에서 바라본 방콕의 왕궁.

보트의 종류는 일반 익스프레스 보트에서부터 관광객용 디너 크루즈에까지 다양한데 어떤 보트에 오르더라도 짜오프라야강을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우리 돈 몇 백 원 정도면 익스프레스 보트에 올라 짜오프라야강을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행복하다. 보트에 오르면 흙탕물이 튀는 난간에 바짝 붙어서는 방콕의 풍경을 눈에 담는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장소가 있으면 내려서 둘러보면 그만이다.

짜오프라야 강변으로는 낡고 오래된 건물과 높은 현대식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방콕이란 도시는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들이 함께 어우러지고, 어지러운 듯하면서도 그 안에 절묘한 균형을 이룬다.

▲ 형형색색 자동차들이 달리는 방콕의 도로.
쏘이, 골목 탐험
방콕은 수많은 쏘이(Soi)로 이루어진 도시. 우리말로 하자면 골목 정도가 되겠다. 이 복잡하게 뒤엉킨 쏘이 덕분에 때론 길을 찾느라 애를 먹기도 하지만 방콕에선 그런 길 잃음마저 도 즐겁다. 그래서 하루쯤은 방콕의 쏘이 탐험을 떠난다.

미로와도 같은 쏘이가 좋은 건 그곳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풍경과 사람들 덕분. 여행자들이 잘 찾지 않는 곳에서 진짜 방콕을 만나고 보통의 방콕 사람들을 만난다. 그렇게 우연히, 어쩌면 운명처럼 만나게 된 좋은 사람들은 이 도시를 2배쯤 더 사랑하게 만든다.

내겐 빠뚜남 시장 뒷골목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랬다. 이 골목의 끝에는 또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상상을 하며 길을 걷는 사이, 옷은 금세 땀으로 흠뻑 젖어버렸다. 그때 들어와서 시원한 물 한잔하고 가라며 말을 건네던 텅 아저씨, 물 한 잔을 금세 비우자 이번엔 코코넛 열매를 내어 주신다. 아저씨 덕분에 골목 안 방직공장 사람들과도 모두 인사를 나눴다. 그저 낯선 이방인의 방문을 환한 웃음으로 맞는 사람들. 그 손끝에서 여러 가지 옷가지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무더운 날씨에도 쉼이 없던 사람들. 무심코 사 입던 바지와 티셔츠도 이렇게 이런 분들의 바지런한 손끝에서 탄생했을 걸 생각하니 왠지 모를 감동이 밀려왔다. 그 고마움에 답례를 하듯 한 분 한 분 사진에 담아 다음날 선물해 드렸다. 더 행복한 미소를 선물 받았음은 물론이다. 그 인연으로 함께 저녁을 먹으며 진짜 태국의 맛도 느낄 수 있었고 함께 근교 여행을 다녀올 수도 있었다. 방콕의 쏘이에서 만난 보물 같은 사람들이다.

▲ 쏘이탐험을 하다 우연히 들어간 여유로운 골목.

▲ 빠뚜남 시장 뒷골목에서 만난 방직공장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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