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헤치며 달리다…효석문학 100리길
눈을 헤치며 달리다…효석문학 100리길
  • 문나래 기자 | 사진 이두용 차장
  • 승인 2015.01.2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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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NNER’S HIGH

나는 그래도 앞을 보고 달렸다. 어떤 것에도 지지 않겠다는 듯이. 지금 이 두 눈을 감으면, 그만 멈춰 서 포기해 버리면 세상에 돌아가서도 나는 그렇게 되고 말거라고.

새하얀 세상을 달리다
‘이렇게 날씨가 추운데 러닝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겨울철에도 달릴 수 있다. 언제나 달릴 준비가 돼있는 러너에게 추위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살을 에는 그 차가움 속을 쉼 없이 달려가다 보면 ‘나’라는 존재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러닝은 그런 것이고 그런 자들을 위해 길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생각보다 그리 춥진 않다. 겁먹을 필요 없다. 어차피 달리기 시작하면 몸은 금세 뜨거워진다. 다만 달리기 전 스트레칭을 오랜 시간 들여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욕만으로 준비운동 없이 달렸다간 계획했던 연 초 마라톤대회에 나가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

눈이 많이 쌓인 평창 효석문학 백리길을 달렸다. 땀이 몸에 흡수돼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나일론, 폴리에스터 소재의 이너와 팬츠를 입고 가벼운 하이브리드 다운 점퍼를 걸쳤다. 그 속에 울 소재의 가벼운 플리스도 하나 겹쳐 입었다. 여러 옷을 겹쳐 입으면 따뜻한 공기가 밖으로 새 나가지 않아 추운 날에도 무리 없이 달릴 수 있다. 그렇다고 과하게 입는 것도 금물이다. 시작 전, ‘쌀쌀한데’ 느낌이 들 정도면 적당하다.

미끄러지지 않는 러닝화를 신는 것도 중요하다. 밑창의 돌기가 크고 스파이크가 박혀있으면 눈에서도 넘어지지 않고 달릴 수 있다. 오랜 시간 달릴 계획이라면 모자와 장갑 또한 필수다.

그래도 나는 걷지 않아
‘나는 완전히 독립적인 하나의 인간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달릴 때 줄곧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누구와도 손잡지 않은 채 이 길을 하염없이 홀로 달려가리라고. 달리는 매 순간 스위치라도 켠 듯 그런 생각이 자리 잡는다.

왜 그런지 알 순 없지만 달리기란 확실히 고독한 행위인 듯하다. 러너는 그 지독하리만큼 괴로운 고독과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달리기’를 하며 개개인에게 펼쳐지는 하나의 드라마는 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고 이는 어떤 감정의 영역이라기보다 졸음이나 복통과도 같은 전적으로 개인의 내부에서 펼쳐지는 생리적인 전쟁에 가깝다.

눈발이 점점 거세진다. 바람에 휩쓸려 몰아치는 눈보라가 정면으로 얼굴을 때리면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다. 눈물이 나기도 한다. 그리고 이내 하얗게 얼어버린다. 그래도 달린다. 참 이상하기도 하지. 어디까지 이어질지 끝을 알 수 없는 질주는 멈춤을 모르고 계속된다.

러너에게 완주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러 가는 과정과 같다. 그들은 그곳에서 하염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중간에 포기해선 안 된다. 지체할 수도 없다. 한계가 느껴질 만큼 지쳐져 갈 때, 나는 러너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했던 말을 되뇌이곤 한다. ‘적어도 최후까지 걷지는 않았다. 나는 이곳에 걸으러 온 것이 아니다’

러닝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
트레일 러닝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보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을 만끽하며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고 숲길, 눈길, 진흙탕이 예기치 않게 나타난다 할지라도 아스팔트에서 벗어나 누구도 달려보지 않았던 곳을 달린다는 건 벅찬 자유로움을 가져다준다.

달리기를 계획한 전날, 평창에는 겨울 첫 폭설이 내렸다. 길이 잘 치워진 곳도 있었지만 종아리까지 눈이 한참이나 쌓인 곳도 있었다. 나는 루트를 찬찬이 살펴보며 망설이다 결국 계획대로 길을 달렸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눈길을 헤쳐 나갈 땐 스스로에게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달려야 하나?’

러닝을 하고 있을 땐 어쩐지 다시 일상 속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다. 러닝과 일상은 전혀 다른 세상으로 분리된다. 이곳의 주인은 ‘나’이고 세상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내가 달리는 길이 곧 세상이 된다. 러닝의 세상 속에서는 결코 무너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다 설령 일상으로 돌아온다 할지라도 그곳이 러닝 이전의 삶과는 같지 않을 것이다. 분명.

TIP:겨울철 달릴 땐

1 겨울 러닝에서는 얇은 옷을 여러 장 겹쳐 입는 것이 좋다. 움직이기 편하고 땀이 잘 배출되도록 옷차림에 신경 쓰도록 한다.
2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초반에는 맞바람, 후반에는 등에서 밀어주는 바람으로 달려야한다. 후반에 바람을 맞을 경우 땀이 식어 체온이 떨어지게 된다.
3 스트레칭을 충분히 한다. 근육이 경직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달렸을 경우 근육 파열 등 부상으로 이어지기 쉽다.
4 일조량이 짧은 겨울철에는 러닝 시 밝은 옷을 입는 것이 좋다. 길이 어두워지면 자동차의 운전자가 사람을 식별하기 어려워진다.
5 빙판길에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 힘을 주고 달리면 자세의 변화로 허리에 통증이 올 수 있다. 유의해서 달리도록 하자.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가산 이효석 선생을 기념하는 효석문학 백리길은 봉평에서 평창까지 이어진다. 거리는 약 53.5km, 구간은 5구간으로 나뉜다. 기자가 달린 1구간은 ‘문학의 길’로 이효석 선생의 발자취가 가장 많이 남은 곳이다. 관광안내소부터 시작해 메밀밭~흥정천교~평촌2교~백오포마을~금당계곡로~노루목 고개~여울목으로 이어지며 거리는 약 7.8km 정도다. 눈이 쌓인 숲길과 들길, 흥정천을 만끽하며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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