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피노 리제르바 두깔레에서 만나는 두근거림
루피노 리제르바 두깔레에서 만나는 두근거림
  • 글 진정훈 소믈리에 | 사진제공 금양인터내셔널
  • 승인 2015.01.23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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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의 와인

이태리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인물인 단테 Alighieri Dante가 베아트리체 Beatrice를 처음 만났을 때의 전율은 유럽 사회를 바꾸는 결과를 가져왔다. 9살의 단테는 8살의 베아트리체를 만나 한눈에 반했고, 베아트리체가 스물다섯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충격에 빠진 단테는 마음의 위안을 찾기 위해 책에 빠져들었다. 중세를 뒤흔든 ‘신곡’의 뼈대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처럼 두근거림이란 사람을 움직이는 에너지이자, 대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만드는 인간만의 본능이다. 와인에도 두근거림을 기억하고자 이름을 붙인 와인이 있다. 루피노 리제르바 두깔레.

1890년 이탈리아 북서부 아오스타 공작이 바티칸으로 성지순례를 가다가 지금의 피렌체 근교 와이너리(와인 양조장)인 루피노 Ruffino 와이너리를 들르게 되었다. 와인 맛에 홀딱 반한 공작은 와이너리 주인에게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누구에게도 팔지 말고 보관 reserve 해 줄 것을 요청했다.

당시 와인 셀러에 ‘공작 Duke, Ducale을 위해 보관한 와인’이라는 뜻으로 표기한 ‘리제르바 두깔레 Riserva Ducale’에서 유래하여 1927년 첫 번째 루피노 와이너리의 ‘리제르바 두깔레’가 탄생했다. 공작이 느꼈던 와인에 대한 감탄 등이 와인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너무도 좋은 추억이 되었을 것이다.

이 지역 와인은 그때까지 대중적인 와인으로 평가받고 있었는데, 공작이 마시는 질 좋은 와인으로 높이 평가되어 이태리 왕궁까지 공급하게 되었다. 이후 1894년에 프랑스 보르도에서 열린 와인 품평회에서 끼안띠 Chianti 지역 부문 금메달을 받는 등 이태리 와인 홍보대사 반열에 오르게 되었고, 1927년에는 아오스타 공작이 와인을 시음하며 두근거리는 장면을 레이블에 도해한 와인을 처음으로 출시했다. 1947년엔 장기숙성용으로 빈티지가 좋은 해에만 한정 생산하는 리제르바 두깔레 오로 oro도 선을 보였다. 오로는 황금이란 뜻이다.

와인에 얽힌 이야기를 레이블 속 그림에 표현하는 건 르네상스 시대에 전형적인 방법인데, 루피노 리제르바 두깔레의 레이블 속 그림은 피렌체 두오모 옆 세례당 북문인 ‘천국의 문’에 끼워 맞춰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잘 표현되어 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음료, 술, 와인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 긴 여행길에 모두 예약할 만큼 마음에 드는 술이나 음료를 만날 기회가 얼마나 될까. 루피노 리제르바 두깔레는 ‘천국의 문’이라 표현해도 될 만큼 인간의 두근거리는 본능을 되살리고 싶어 하는 와인이다.

사실 이 이름의 와인은 르네상스가 지난 지 한참 후인 1927년에 처음 나왔다. 파스퇴르의 미생물학이 본격적으로 연구된 지 30여 년. 와인의 품질이 좋아지고 생산도 안정적으로 이뤄지면서 리제르바 두깔레는 이태리뿐 아니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전역에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공작이 마시고 받았던 감동과 두근거림은 과학이 발달하기 전 르네상스 시대에 꽃 피웠던 예술 작품을 볼 때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현재 피렌체 시내에서는 루피노 리제르바 두깔레 와인을 여러 솜씨 좋은 레스토랑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다. 그만큼 루피노 리제르바 두깔레는 이태리 끼안띠 지역의 대표적인 와인으로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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