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었다
밤이 깊었다
  • 글 최상식 | 사진 고요한 기자
  • 승인 2014.12.17 17: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상식씨의 캠핑이야기

밤이 깊었다. 달빛에 환히 드러난 오름의 능선을 향해 오르다가 차오르는 숨에 걸음을 멈춘다. 저 능선 위에 서면 맞바람을 맞을 걸 알기에 바람을 만나지 않으려 시야가 트인 오름길 중간 즈음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을 어귀에 점점이 켜져 있던 가로등과 고기잡이를 나간 어선의 불빛들 그리고 축제가 열린 듯 어느 리조트에선 밤하늘로 꽤 많은 불꽃들이 꽃무늬를 그리며 밤의 적막을 깨고 있었다.

능선 위로 올라가니 역시나 아래에선 오름에 막혀 불지 않던 바람이 꽤나 거세게 불었다. 평소 혼자서도 백패킹을 자주 다니던 요한이와 나는 바람보다 무서운(?) 소똥을 피해가면서 적당한 사이트를 찾아다녔다. 정상 부근에 텐트 칠 자리를 찾았고 바람을 맞으면서도 각자의 텐트를 꾸역꾸역 완성해나갔다. 텐트가 날아가지 않도록 배낭을 안에다 넣고서야 안심을 하고 그제서야 마음의 여유가 생겨 오름에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에 달빛은 은은하게 비추고 자수를 놓은 듯 하나둘 늘어가는 별들이 마음에 담겼다. 오름의 실루엣들 사이로 인적 드문 밤길을 달리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마치 어둠 속의 장난감처럼 보이는 그 기분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카메라와 삼각대를 가져온 요한이는 춥다면서도 좋은 그림을 담고자 앵글을 달리해가면서 셔터를 눌러가면서 오름 위의 밤을 담아내고 있었고 나는 잠시 오름 위를 혼자 걸으며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작업이 끝난 요한이와 나는 텐트 안으로 들어와서 캔맥주를 홀짝이면서 그동안 나누지 못한 서로의 안부를 물어갔고 밤의 시간은 점점 깊어만 갔다. 가끔 텐트의 지퍼를 열어 고개를 내밀면 달이 기운 시간만큼 별은 점점 더 많이 나타났다.

새벽, 잠을 몇 시간도 채 안자고 요한이가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지만 그 새벽의 시간만이 주는 색감이 아름다운 매직아워의 시간. 바람은 날이 밝아오는 그 시간에도 계속 불어왔지만 어둠 속에 보이지 않던 주변의 오름과 대지가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름을 마치 자기의 것인 냥 돌아다니던 한 마리의 말도 해가 뜨는 풍경 주변에 머물러 셔터를 쉴 새 없이 누르게 했다.

이런 자연에서 말을 마주하면 다른 동물과 달리 야생성을 간직한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 동물인지 종종 느끼곤 한다. 목장이나 승마장이 아닌 자연 속에 머무르고 있는 말을 보는 건 쉽지가 않아서 더 찍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석양을 받은 실루엣이나 아침 첫 햇살에 비친 말 특유의 섬세한 근육은 정말 매혹적이다.

해는 조금씩 떠오르면서 분화구에 남아있던 어둠의 공간들 사이로 빛을 비추며 오름을 깨웠다. 요한이가 있던 반대편 능선으로 가니 해 뜨는 방향으로 우리의 텐트와 요한이의 실루엣이 멋지게 조각처럼 풍경을 장식하고 있었다. 잠시 서서 실루엣이 되어 움직이는 요한이와 텐트가 채우고 있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혼자였어도 좋았을 풍경이지만 좋은 동행과 함께 하니 지금 이 순간이 보다 풍요롭다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