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봉도, 표류하다…촛대바위 해변
승봉도, 표류하다…촛대바위 해변
  • 김재형 기자 | 사진 김해진 기자
  • 승인 2014.07.10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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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R OUTBOUND 승봉도 ②트레킹·캠핑

동해와 남해의 대표적인 섬들은 다녀왔고, 이제 남은 건 서해뿐인데, 세 번 연속 섬이라니 식상한 감도 있고 막상 대표적인 서해안의 섬도 떠오르지 않아 며칠 정도 아이디어를 짜내느라 고민 좀 했다. 그러다 불현 듯 떠오른 게 무인도 캠핑. 무인도에 표류하는 상상은 어렸을 때부터 많이 했다. 물론 순수한 의미에서의 표류라기보다는 주로 누군가와 함께 고립되는 설정으로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긴 했다.

▲ 기상악화로 인천항의 모든 배가 오전 내내 출항하지 못했다.

하지만 방식과 설정에 개개인의 차이가 있을 뿐, 남자라면 한 번씩은 꿈꿔보는 게 무인도 생활이 아닐까? 해서 남자의 로망을 실현하려 사승봉도로 떠났다. 물론 기자가 생존 전문가는 아닌지라 무모한 도전은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안전이니까.

모든 일은 하늘의 뜻
취재 당일 날 아침. ‘예상과는 다르게’ 축구대표팀이 러시아와의 경기에서 무승부로 선전했다. 들뜬 기분을 빠르게 가라앉히라는 하늘의 뜻인 듯, 역시 예상치 못한 기상악화로 우리 일행은 오전 내내 인천항에 발이 묶였다. 이대로 취재를 포기하고 돌아가야 하는 건지 고민하던 찰나 영흥도의 진두선착장에서 승봉도로 향하는 사설(?) 여객선이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그쪽으로 향했다. 비싼 운임이었지만, 선택의 여지없이 여객선에 올라타고 한 시간 정도 항해 끝에 승봉도에 도착했다.

▲ 결국 우리가 탄 건 사설 유람선. 하지만 공연히 헛수고만 한 셈이 됐다.

선착장에 짐을 내리고 숨 좀 돌리려는 찰나 인천항에서 출발한 승봉도행 여객선이 도착했다. 본래 우리가 탈 예정이었던 배다. 사기를 당하긴 했는데,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기분이 들었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최종 목적지인 사승봉도에 이미 대규모 인원이 예능 프로그램 촬영을 위해 상륙해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무심한 하늘만 바라봤다.

물론 따지고 들자면 할 말은 우리 쪽이 많았지만, 쪽수도 밀리고 무인도 컨셉트는 어차피 불가한 일이 돼버렸다. 표류하던 남자 넷은, 어차피 여기서도 사람 구경하기 힘들 것이라는 현지인의 말을 위안 삼아 과감히 승봉도의 촛대바위 해변을 향하기로 했다.

▲ 열심히 장작을 패는 호상사의 이정태 씨. 꽃미남인지라 이튿날 들른 민가에서 물을 구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됐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승봉도 선착장에서 약 7km 떨어져 있는 촛대바위 근처 해변은 캠퍼의 입장으로 봤을 때는 사실 썩 좋은 장소는 아니다. 촛대바위까지 이어지는 해안은 날카로운 바위와 돌들이 가득하고,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바닷물이 들어오는 밀물에는 텐트를 칠 마땅한 장소도 찾기가 어렵다. 어쩔 수 없이 조금 경사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사실 무인도라는 상황을 가정해본다면 텐트를 치는 것 자체로 이미 많은 축복을 받은 셈이다.

무인도가 나오는 영화를 보면 표류한 주인공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건 바로 물과 식량이다. 야외에서 물이 없으면 이틀도 버티기가 어렵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사이트를 구축한 뒤에 우리가 가장 먼저 한 일도 물을 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성인 네 명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물의 양을 자연에서 구하는 건 쉽지 않다. 섬 내에서 물이 흐르는 계곡이나 시냇물을 운 좋게 만나지 않는 이상은 불가능한 일이다.

꼭 필요한 양의 식수를 갖춘 상태에서 <SAS 서바이벌 가이드>에 나온 방법대로 태양 증류기를 먼저 만들기로 했다. 방법은 약 90cm 정도의 너비와 45cm 깊이로 구멍을 파고 구덩이 가운데에 물을 수집할 통을 둔 다음, 그 위에 플라스틱 시트를 덮으면 된다. 태양열이 공기와 땅 밑의 온도를 높여 생성한 증기가 플라스틱 시트의 안쪽에 응결되어 용기로 떨어져 내리는 원리다. 적절한 도구만 갖추고 있다면 간단히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다. 시에라 컵을 가운데에 두고 플라스틱 시트 대신 김장 비닐을 덮었다.

▲ 태양열 증류장치를 만들었다. 24시간 후에 개봉.

▲ 예상보다 늦게 도착해서 사이트를 마련하고 나니 어느새 해가 저물었다.

사실 이렇게 해서 얻는 물의 양은 24시간 기준으로 해도 100㎖ 남짓이기에 식수를 해결해주는 근본적인 방법은 될 수 없다. 다음으로 필요한 건 식량. 그나마 해변은 조개와 해조류, 게를 비롯한 갑각류 등으로 식량 확보가 용이하다고 책에서 읽었다. 하지만 막상 현실에서 부딪쳤을 때는 막막하기만 하다. 어디까지나 다른 곳에 비해서 비교적 풍부하다는 얘기지, 먹을 만한 것을 찾고 고르는 일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물론 우리가 야심차게 시도한 낚시도 얼마 안 가 난관에 부딪혔다. 낚시 경험이 거의 전무한 남자 넷이서 던지는 낚시 바늘은 족족 바위에 걸려 줄을 끊어먹기 일쑤였다. 계획과는 다르게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딱 들어맞는 완벽한 명언이 생각났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 낚시를 통해 잡은 물고기는 2마리가 전부.

▲ 모기만 없다면 좀 더 쾌적한 캠핑이 될 수 있으련만.
일단 놀고 보자
애초에 완벽한 무인도 생활을 기대하진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놀기라도 해야지. 간밤에 수많은 모기떼에게 피를 헌납한 부위가 가렵다 못해 쓰라리기 시작했지만, 주저 않고 모두들 바닷물로 뛰어들었다. 바다를 자주 보면서도 직접 물에 뛰어든 건 다들 오랜만이라 모처럼 신나게 물장난을 하고 수영을 했다. “꽤 멀리까지 가시네.” 탁월한 수영 실력을 자랑하던 서승범 편집장이 해안에서 멀어지는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해변을 향해 힘차게 내젓는 팔의 움직임과는 반대로 점점 바다 쪽으로 떠내려가는 모습을 보고 낚싯대를 들고 황급히 구조에 나섰다. 다행히 근처의 바위를 잡아서 상황은 일단락됐지만, 물살 심한 썰물에서 하는 수영은 안전장비 없이는 위험하다는 걸 몸으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제 물놀이에는 한풀 흥이 꺾인 터라, 바다에서 나와 햇볕에 몸을 말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들 시원한 아이스크림과 사이다 한 모금이 간절해졌다. 원정대를 급조해서 고갯길을 넘어 슈퍼가 있는 마을까지 이동했다. 근처 민가에서 양해를 구해 마실 물도 얻고, 마침내 입에 넣은 달콤한 아이스크림은 무한한 기쁨을 선사함과 함께, 역시 우리는 문명을 떠나서 살기에는 너무 취약한 존재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해줬다.

다행히 그날 저녁 뒤늦게 강태공의 계시를 받은 김해진 기자가 물고기 두 마리를 낚았다. 한 사람이 먹기에도 작은 양이었지만, 이번 백패킹의 가장 뜻 깊은 수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지막 밤의 대미는 노릇노릇 익을 때까지 불에 구운 생선 구이였다. 물론 맛은 노코멘트다.

▲ 승봉도의 촛대바위 해변은 절경을 자랑하지만, 캠핑을 하기에 마땅한 장소라고 할 수는 없다.

▲ 다 접고 물놀이에 열중하는 남자 셋.

▲ 이젠 노는 것도 지쳤다. 타프 밑에서 휴식.

▲ 마지막 날 밤의 대미를 장식한 생선 구이.

▲ 철수 전 침낭을 말리면서 보내는 즐거운 한 때.

▲ 우여곡절이 많았던 이번 백패킹도 결국은 지나간다.

▲ 24시간 동안 얻은 물은 이게 전부. 그나마 모래가 들어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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