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설원 위의 원정
빛나는 설원 위의 원정
  • 글 사진 조준희 solmoru4u.blog.me
  • 승인 2014.06.23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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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엘라벤 폴라 클래식 ①

Day1,2 이방인과의 만남 그리고 폴라 원정대원으로 변신
인천공항에서 핀란드 헬싱키를 거쳐 스웨덴 스톡홀름까지 이동하는 긴 시간 동안 기대감과 설렘에 한숨도 자지 못했다. 허스키 같은 큰 개를 키워본 적도 없고 개썰매에 대한 사전 지식도 전혀 없었기에 앞으로 펼쳐질 원정길에 대한 막막함도 있었다. “춥지는 않을까? 썰매 개들이 내 말을 잘 들을까? 체력적으로 힘들지는 않을까? 오로라를 볼 수 있을까?” 그렇게 기대 반 설렘 반으로 하얀 설원이 펼쳐질 북극권의 툰드라로 향하고 있었다.

시차도 적응할 겸 주말을 스톡홀름 시내에서 지낸 나는 월요일 아침에 원정대에 합류하였다. 전 세계 각지에서 차례대로 도착한 이방인과의 만남은 그 자체로도 흥미로웠다. 아웃도어 혹은 트레킹이라는 같은 취미를 가진 각국의 마니아들이 폴라 원정대라는 이름으로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나는 유일한 동양인 참가자였기에 사실 좀 걱정스러운 면도 없지 않았지만 다행스럽게도 참가자 대부분은 사교적이었고 친절했다.

폴라 원정대의 공식 일정은 이론 교육으로 시작하였다. 강사를 맞은 피엘라벤의 기술 고문 요한 스컬맨은 부시크래프트 분야의 아웃도어 전문가로서 오랫동안 스웨덴 군인으로 복무하며 익힌 아웃도어 경험을 바탕으로 스웨덴군의 필드 매뉴얼인 ‘Soldiers in the Field’와 ‘Winter Soldier’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그의 강의는 단호하고 명료했다. 바람에 따른 체감 온도의 변화, 주위 환경에 따라 적절한 장비 선택, 땀과 젖은 옷이 신체의 변화에 미치는 영향, 공기와 물 그리고 음식이 얼마나 신체 활동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하여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하나하나 차분하게 설명하였다.

우리가 떠날 겨울의 북극권 툰드라 지역은 세상과 단절된 지대이다. 물론 우리가 맞게 될 원정길은 숙련된 가이드의 지시와 통제 하에 움직이게 될 것이지만 사소한 것에도 주의를 기울여 신경 쓰지 않으면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에 일행 모두는 그의 강의에 몰입하며 집중하였다.

“얼마나 힘들겠어? 별거 아니야, 나랑 상관없는 일일 거야, 가본 적 있고 또 해본 적 있으니 이번에도 문제없어.”

마지막으로 그는 아웃도어에 임하며 이러한 방심과 안이한 태도가 대자연 속에서 미약한 인간이 범하는 실수의 시작이고 버려야 할 가장 큰 리스크라고 강조했다.

피엘라벤 폴라 참가자들에겐 피복부터 캠핑 장비까지 원정 기간 동안 필요한 모든 장비를 무상으로 제공한다. 심지어 팬티와 양말은 물론 비니와 털 모자, 허리띠 등 머리에서 발끝까지 어느 하나 모자람 없이 빠짐없이 지급되었다. 두툼한 폴라 파카와 재킷에 새겨진 나의 이름과 태극기가 새삼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다음날 아침, 미리 맞추어 놓은 휴대폰의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마지막 성찬으로 이른 아침 식사를 하고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타이트한 일정으로 스웨덴 스톡홀름의 알란다 공항에서 노르웨이의 수도인 오슬로를 경유하여 다시 트롬쇠(Tromso)로 향하기까지 원정대 일행은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눈에 확 띄는 유엔 블루 재킷을 걸쳐 입은 일행들은 주위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동하는 동안 주위에서 무엇을 위해 가는 거냐는 일반인의 질문에 “개썰매 타러 갑니다”라고 답하자 한결같이 “Awesome!”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비행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트롬쇠로 가까이 가는 동안 비행기 창밖의 풍경은 구름인지 땅인지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우리는 북극으로 가는 출입문을 통과하고 있는 것이다.

북유럽의 유명한 오로라 관광지이기도 한 트롬쇠 공항에 내렸다. 트롬쇠는 북극 오로라 지역 바로 아래에 위치해 청명한 겨울 밤하늘을 가득 채우는 환상적인 오로라를 감상하기에 이상적인 곳이다. 또한 한국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활강 스키, 설상화 산책, 개썰매, 순록 썰매, 빙하 하이킹 등 이색적인 겨울 스포츠도 즐길 수 있다. 매년 2월에는 노르웨이 사미족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사미 위크(Sami Week)도 열려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트롬쇠 공항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90분 가량 이동하는 동안 차창 밖에 펼쳐진 풍광은 한마디로 장관이었다. 구름 한점 없는 사파이어 빛 하늘과 뾰족한 산허리를 감싸며 뒤덮은 하얀 눈이 대비되는 멋진 풍경이었다. 간간이 산허리엔 스키어들의 활강 자국이 길게 늘어서 있다.

중간 기착지인 따목 롯지에 잠시 들려 휴식을 취한다. 버스에서 내리자 북극권의 차가운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차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차에서 짐을 내려 모두는 북극권의 차가운 날씨에 견딜 수 있는 옷으로 다시 레이어링하였다. 침낭이나 텐트, 두툼한 장갑과 손도끼 등 폴라 원정 기간 동안 빌려 쓰게 될 추가 장비도 지급되었다. 우리는 서서히 폴라 원정대의 모습을 갖추었다. 기대되는 폴라 원정길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이른 새벽부터 버스와 비행기를 번갈아 타며 서산에 해가 기울 무렵 드디어 오늘의 최종 기착지인 캠프 따목에 도착했다. 하지만 아직 본격적인 원정이 시작된 것은 아니다. 본격적인 개썰매 탐험을 시작하기까지 하룻밤 이곳에서 더 머물며 극지방 환경에 적응하며 준비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산장을 모두 뒤덮을 만큼의 많은 눈이 쌓여있는 모습이다. 캠프 타목은 크고 작은 캐빈과 화장실 및 사우나까지 비교적 훌륭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이곳에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다. 일상에서 가지고 온 옷가지류와 지갑이나 여권 등의 액세서리 등은 이곳에서 패킹되어 종착점으로 보내졌다.

폴라 원정대원 대부분은 평소에도 아웃도어를 즐기는 마니아들이지만 모두가 이러한 극지방의 추운 겨울 환경에서의 아웃도어 활동에 익숙한 것은 아니었다. 다시 이어지는 교육 시간에 원정대장인 요한은 간혹 매서운 돌풍이 불기도 하는 북극권에서 안전하고 올바른 텐트 피칭 법을 설명하였다.

그는 아웃도어 활동을 하면서 자신만의 루틴(Routine)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캠프에 도착하면 자신만의 루틴으로 차근차근 빠짐없이 준비하고 챙기다 보면 나름의 절차가 생기고 그 절차에 따라 행동하면 큰 실수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만의 루틴을 가지는 것은 실수도 줄일 뿐만 아니라 시간도 크게 줄일 수 있으며 따라서 필요 없는 에너지 소비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우리는 팀을 이루어 각자의 텐트를 피칭하였다. 2명이 한 조를 이루어 사용하게 될 3인용 터널 텐트인 아카 엔듀어런스는 극지방의 심한 돌풍에도 잘 견딜 수 있도록 두 개의 폴대로 보강되었다. 텐트 전실 부분에 눈을 파내어 피트를 만들자 인체공학적으로 편안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드디어 개썰매를 만나는 시간, 4명의 팀원이 하나의 조를 이루어 조장과 가이드 역할을 수행하는 머셔(Musher: 개썰매를 모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중엔 여자 머셔들도 있었는데 신체 조건이나 숙련도를 보면 여간한 남자 머셔들 못지않았다. 노르웨이의 전통적이고 큼직한 티피 텐트인 라본(Lavvon) 안에서 따뜻한 양고기 스튜와 빵으로 저녁 식사를 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의 긴 여정과 추위에 어찌나 배가 고팠는지 스튜를 3번씩이나 추가로 받아들었다. 식사 후 잠시 커피를 마시며 쉬는 동안 휘발유 사용법에 대한 요한의 강의가 다시 이어졌다.

이미 10시가 넘은 시각이지만 밝은 보름달이 캠프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일행은 긴 하루의 모든 일정이 끝나고 각자 텐트로 돌아가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시계 알람을 새벽 5시로 맞추고 푹푹 패는 눈밭을 헤집고 다니며 아름다운 캠프의 야경을 사진으로 담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미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추위가 손을 곱게 만들었지만 이 아름다운 캠프의 밤하늘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첫날밤 그곳의 밤하늘에도 희미하지만 길게 오로라의 녹색 띠가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2초 정도의 짧은 노출에 담긴 오로라였다. 손발이 시려 일찌감치 텐트로 들어가 잠자리에 들었지만 좀 더 지켜보고 있을 걸 하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Day3 300km의 툰드라 개썰매 원정이 시작되다
침낭 속에 누워 있으면서도 텐트 바깥에선 마치 오로라의 초록 물결이 넘실댈 것 같은 몽상이 머릿속을 맴돈다. 하지만 차마 텐트 바깥으로 얼굴을 내밀어볼 생각은 못하고 침낭 속에서 뒤척이다 이른 새벽 눈을 떴다. 텐트에 걸어 놓은 온도계가 영하 15도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밤새 불던 바람은 잦아들었다.

멀찌감치 산 너머로 해가 고개를 내밀고 있는 동안 원정대원들은 차분하지만 빠른 손놀림으로 300km 툰드라 원정길을 준비하고 있다. 그들의 분주함에도 불구하고 주변은 정말이지 조용했다. 대충 침낭을 정리하고 화장실을 가기 위해 눈을 헤집고 걷다가 피엘라벤 폴라 원정대의 공식 사진사인 하켄 씨를 만났다. 그는 피엘라벤 폴라가 진행되는 기간 동안 원정대의 일거수일투족을 사진에 담고 이를 편집하여 실시간으로 세상에 소식을 전하는 부지런함을 보였다. 때로는 위성 통신 장비를 이용해서 데이터를 전송하기도 했는데 전날 밤엔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하여 새벽부터 동분서주하는 모습이다.

캠프 따목에서 원정대에게 라운지 역할을 했던 라본(티피텐트) 안에서 아침 식사가 제공되었다. 커피 한 잔으로 몸을 녹였으며 보온병과 수통에도 뜨거운 물을 가득 채워 두었다.  원정대원을 태우고 캠프 따목을 출발한 버스는 30여 분 가량을 더 달려 피엘라벤 폴라 원정길의 출발지인 시그날달렌의 막다른 도로 끝에서 멈추었다. 일행이 도착하자 그곳에 기다리던 200여 마리의 썰매 개들은 마치 우리를 환영이라도 하듯이 일제히 짖어대기 시작했다. 계곡 사이를 메아리치며 울려 퍼지던 그들의 짖어댐은 서막을 알리는 그 어떤 팡파르보다 더 강렬했고 인상 깊었다. 나를 이끌어 줄 썰매 개들과 처음 만나는 그 순간의 설렘은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 팀 리더인 슬로바키아 출신의 머셔 밀로스는 순서대로 우리에게 한 무리의 개들을 배정해 주었다.

전날 밤에 개썰매를 운용하는 기본적인 사항에 대한 교육이 있었지만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개들의 몸통과 썰매를 연결하는 하네스를 개들에게 하나씩 입혀주고 리더 개부터 순서대로 썰매와 결속하는 과정은 녹녹치 않은 작업이었다. 개들은 어찌나 힘이 세던지 내가 그들의 목줄을 잡아당기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개들이 나를 끌고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 땀으로 흠뻑 젖어가며 내게 배정된 6마리의 개들을 썰매와 어렵게 연결한 후에 비소로 한 마리씩 쓰다듬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파란 눈동자를 가진 든든한 리더인 막스, 작지만 강한 폭시, 개구장이 어보이, 착하고 예쁜 우쉬, 땅 파기를 좋아하는 딕시, 그리고 몸집이 커서 우둔해 보이지만 늠름한 로벤까지 앞으로 나흘 동안 나를 이끌어 줄 동반자이다. 처음엔 정신이 없어 개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조차 쉽지 않아 종이에 순서대로 이름을 적어가며 첫인사를 나누었다.

생각보다 작은 체구의 개들은 훨씬 더 영리했고 잘 훈련되어 있었다. 특히 제일 앞줄에 선 폭시는 썰매를 끄는 개라고 생각하기엔 꽤나 작은 체구였는데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니 유럽의 유명한 개썰매 대회에서 리더견 역할을 하며 우승했을 정도로 강인한 체력을 가졌다고 한다. 개들을 썰매에 모두 묶고 출발 준비를 마치자 그들은 다시 흥분하며 미친 듯이 짖어대기 시작했다. 오로지 썰매를 끌며 달리는 것을 위해 훈련된 개들이라 출발 시간이 다가왔음을 직감하고 있는 것이다. 어깨로 썰매에 연결된 와이어를 당기며 그렇게 달리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무에 묶어 놓은 견인줄을 풀고 난 후 눈 위에 깊숙이 박아 놓은 앵커를 뽑아내자 썰매가 튀어나갈 듯한 기세다. 썰매가 움직이지 않도록 브레이크에 몸을 올려 체중을 실었다. 출발하라는 수신호에 서서히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자 썰매가 빠르게 눈 위를 미끄러져 나간다. 썰매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손잡이를 잡은 두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간다. 즐거운 긴장감이 온몸을 적신다. 드디어 출발이다.

상당한 경사의 언덕길이었지만 200kg 가까운 썰매를 끌고 빠른 속도로 숲 사이를 치고 달린다. 오르막임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브레이크에서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앞선 썰매와 적당한 간격 유지를 위해 집중하며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좌우로 구부러진 좁은 트레일의 언덕을 오르는 동안에는 오로지 썰매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얼떨떨한 상태로 30여분 쯤 달리다 사방으로 시야가 터지자 비로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출발지인 시그날달렌에서부터 10km 가까이를 가파른 경사를 타고 고도를 높이며 올랐다. 해발 800m까지 고도를 높이자 순식간에 주위의 나무가 사라지고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끝없이 펼쳐진 눈 덮인 산허리가 청옥빛 하늘과 뚜렷한 경계를 이룬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날씨가 폴라 원정길을 반긴다. 뒤돌아보니 눈부신 태양이 반사되어 빛나는 설원 위를 한 줄로 길게 늘어선 썰매의 행렬이 장관이다. 겨울 트레일을 알리는 하얀 눈 위에 박힌 빨간 X자 말뚝 표시가 이곳이 스웨덴 영토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방금 전 지나친 언덕이 아마도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국경선이었나 보다. 그곳엔 국경을 지키는 사람도 그 어떤 표시도 없었다.

썰매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익숙해졌지만 앞 썰매와 간격을 유지하며 속도를 조절하는 것에 애를 먹고 있었다. 주변 풍광을 담으려고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이내 앞 썰매를 추월하여 개끼리 얽히는 위험한 순간도 몇 번이나 발생했다. 그때마다 가이드이자 팀 리더인 밀로스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더니 결국 호통을 치듯 한마디를 던진다. “Attention!”

2시간 만에 23km를 달려 첫 번째 체크 포인트인 팰트사(Paltsa) 산장에 도착했다. 계속 오르막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꽤 빠른 속도였다. 이곳에 머물며 점심 식사를 했다. 피엘라벤 폴라 원정 동안 제공된 식사는 모두 노르웨이 드라이텍사의 냉동건조식품이었다. 북유럽의 군인들이 먹는 전투식량이기도 한 리얼 필드 레이션은 매 포장 단위별로 1200~1400kal의 열량을 공급한다. 다양한 종류의 메인 요리는 뜨거운 물을 부어 불려 먹는 방식이다. 추가로 초콜릿, 땅콩, 껌과 에너지 드링크, 커피까지 다양한 간식거리가 포함되어 있다. 입맛에 맞지 않을까 걱정스러워 볶음 고추장을 몇 개 사가지고 갔지만 원정길 내내 꺼내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집에서 행동식도 일부러 챙겨갔는데 오히려 짐만 된 것 같다. 함께 포장된 내용물 속에는 초콜릿과 땅콩, 심지어 육포도 있었는데 진공 포장된 것들이라 맛도 좋았다. 썰매에 걸터앉거나 옹기종기 모여 서서 점심 식사를 했다. 다들 이른 아침부터 이어진 일정에 긴장감까지 더해진 시간을 보내느라 배가 고팠다고 한다. 맛있는 점심 식사를 하고 따뜻한 커피도 한 잔 마셨다. 개들에게도 소시지처럼 뭉쳐진 고열량의 간식이 주어졌다.

1시간 남짓한 휴식을 취한 후 원정대는 다시 출발 준비를 한다. “얼마나 더 가나요?” 300km의 여정을 나흘간 가려면 대략 하루에 75km 정도를 달려야 하는데 아직 이곳까지는 절반도 못 왔기에 걱정스럽게 밀로스에게 물었다.

“아직 50km 정도는 더 가야 합니다. 하지만 이미 심한 오르막 구간을 지났고 앞으론 거의 평지 또는 내리막이기에 진행 속도가 빠를 것이에요.”

그는 이렇게 말하고는 앞으로의 여정은 좀 더 수월할 것이라며 일행을 안심시켰다. 썰매 타기가 익숙해지자 횡으로 경사진 설면 위에서는 썰매 날의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가며 중심을 잡아 본다.

언덕을 오를 땐 발로 눈을 차며 개들을 돕기도 했다. 개썰매를 타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었다. 낮은 무게 중심으로 제작된 길쭉한 개썰매는 200kg이 넘는 하중에도 불구하고 부드럽게 눈 위를 미끄러져 갔다. 자작나무로 만들어진 썰매 날과 몸통은 나무의 탄성 덕분에 울퉁불퉁한 노면의 굴곡과 충격을 흡수하는 듯했다.

썰매 위에서 개들이 달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흥미롭고 즐거운 일이었다. 브레이크를 밟아 썰매 속도를 줄이면 리더 견들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본다. 나를 보며 마치 “왜?” 하는 것 같았다.

달리는 동안에도 목이 마르면 머리를 숙여 노면의 눈을 입과 혓바닥으로 핥아 먹으며 목을 축였다. 심지어 썰매 개들은 용변도 달리면서 본다. 그들은 그렇게 멈추지 않고 눈 위를 달리는 것에 훈련되었다.

오후 트레일은 마치 비행기의 자동운항모드 기능을 켜둔 것처럼 모든 것이 순탄했다. 넓고 길게 이어진 낮은 언덕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한다. 될 수 있는 한 주위를 둘러보며 보다 많은 것을 눈에 담으려고 했지만 기억나는 것은 그저 끝도 없이 펼쳐진 북극권 툰드라 지대의 설원뿐이다. 광활하다는 표현 말고는 달리 갖다 붙일 마땅한 수식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게 6마리의 듬직한 개들이 끌어주는 썰매를 타고 설원을 달리는 동안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정말 행운아다.” 피엘라벤 폴라 원정대에 합류하게 되어 이렇게 멋진 경험을 하게 된 것에 감사했다.

Information
스웨덴의 아웃도어 업체 피엘라벤에서 매년 주최하는 겨울 이벤트의 하나로 노르웨이의 시그날다란(Signaldalen)에서 스웨덴 라플란드 지역의 유카스아르비(Jukkasjarvi)까지 장장 300km에 걸쳐 펼쳐진 북극 툰드라 지대를 개썰매를 타고 횡단하는 모험심 가득한 프로젝트이다. 피엘라벤 폴라는 웬만한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경험하지 못하는 북극 설원에 펼쳐진 환상적인 아웃도어를 참가자에게 경험케 한다. 변화무쌍한 기후 변화를 보이는 극지방에서도 제대로 된 아웃도어 지식과 장비를 갖추면 일반인들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1997년에 처음 열린 피엘라벤 폴라는 2006년까지 10년 동안은 개썰매 전문가들이 참가하여 속도 경쟁을 하는 개썰매 대회였다. 2012년에 다시 피엘라벤 폴라가 시작되면서부터 프로페셔널이 아닌 일반인을 위한 행사로 새롭게 내용과 형식을 바꾸었다. 20명의 참가자가 개썰매를 타며 같은 코스를 달리는 것은 같지만, 참가자들이 속도 경쟁을 하는 대신에 겨울에 즐기는 아웃도어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차가운 겨울 설원, 그곳엔 살을 에는 매서운 추위를 견뎌야 하는 혹독함도 있겠지만 북극 겨울의 야생에서 펼쳐질 그곳에서의 캠프는 평생 한 번이나 있을까 한 멋진 경험이다.

·참가 신청 시기 및 자격 : 신청은 매년 4월 초에 한다. 18세 이상의 성인이면 남녀 구분 없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사전에 겨울 아웃팅에 대한 그 어떠한 경험도 필요하지 않다.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영어는 할 수 있어야 한다.

·선정 : 참가 신청을 위해 매년 11월 피엘라벤 홈페이지에 소정의 양식에 맞추어 자신을 잘 소개할 수 있는 몇 장의 사진 또는 비디오 영상을 올린다. 주최 측은 매년 20명의 참가자를 선정되며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베네룩스 3국, 독일, 영국, 미국, 체코 등 9개 나라에서 각 2명씩 선정된다.

나머지 2명은 그 9개 나라에 포함되지 않는 기타로 분류되어 경쟁하게 된다. 각 나라별로 한 명은 인기투표에 의해 최고 득표자가 선정되며, 나머지 한 명은 주최측이 선발한다. 투표는 1인 1표로 제한되며 자기 자신에게 투표할 수 있다. 2014년에는 약 900명이 지원하였다.

·선정 결과 발표 : 각 나라별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참가자 10명은 자동으로 그 결과에 따라 참가가 결정된다. 나머지 10명은 주최이 선정하며 그 결과는 웹사이트에 별도로 공지한다. 만일 선정된 참가자가 사정에 의해 기권하거나 참가 포기를 한다면 차순위자에게 그 기회가 넘어간다.

·장비, 여행 경비 : 모든 장비는 주최 측에서 지급되며, 피엘라벤 폴라가 끝난 후에도 사용된 개인 장비는 참가자에게 무료로 제공된다. 또한 비행기나 교통편 등 여행에 필요한 모든 경비도 주최 측에서 제공한다.

·준비 사항 : 피엘라벤의 아웃도어 전문가들이 모든 일정에 동행하며 조언을 한다. 이 이벤트의 주된 목적은 보통 사람들도 제대로 된 장비와 준비를 하면 북극 툰드라 지대의 극한 상황에서도 충분히 견디며 아웃팅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사전에 어떠한 준비도 필요치 않다. 자연에 대한 열망과 기대만 준비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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