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이야기 | 철 ①
소재이야기 | 철 ①
  • 글 서승범기자|사진 김해진기자, 제품협조 스노우피크
  • 승인 2014.05.28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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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E of IRON

MATERIAL IRON
인류는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를 거쳐 철기시대로 접어들었다. 돌조각을 원하는 모양으로 떼어내고 갈아봤지만 날카로운 금속을 당할 수는 없었고, 청동기는 강도 면에서 철기를 꺾을 수 없었다. 세계사 교과서에 나왔던 히타이트족은 바로 철로 만든 무기를 앞세워 에게해를 재패했고, 여기서 문명이 싹텄다. 철기는 부와 권력을 집중시켜 국가와 제국을 만들었고 문화를 일구었다.

문자가 만들어져 인류가 역사를 기록하면서 선사시대는 철기시대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리고 역사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2000년도 더 지난 지금, 철은 여전히 우리의 생활 곳곳을 지키고 있다. 가볍고 튼튼한 신소재들은 끊임없이 발견되고 개발되었지만 철의 용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금속과 합금을 집어삼켜 그 장점들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면서 철 제국의 영역을 계속 확장하고 있다. 우린 아직 철기시대에 살고 있다.

AGE of IRON

2014년, 철기시대
사전적으로 철기시대는 문자로 기록되지 않은, 그러니까 역사 시대 이전을 뜻하는 선사시대의 마지막 시기였다. 일반적으로 기원전 1200년경부터 철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어디서 누가 사용했을까? 기억을 되짚어보면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히타이트-철기 문화’ 라고 무작정 외웠다. 히타이트 사람들은 철을 녹여 무기를 만든 게 아니라 쇳덩어리를 두드려 만들었다. 단조다. 4대 문명 가운데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가장 먼저 시작된 건 히타이트의 철기 문화 덕이 적어도 7할 이상이다. 철을 녹여 만드는 방식은 주조다. 처음 주조 방식으로 철을 이용한 건 중국이었다. 태평성대였던 요순시대가 아니라 전쟁이 일상이었던 춘추시대였다. 역시 새로운 기술은 전쟁이 낳는다. 어쨌거나, 철기시대는 인류가 문자를 만들어 역사를 기록하면서 선사시대와 함께 막을 내렸다. 그로부터 약 2,000년이 지난 현재,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을까?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달하고 철보다 가벼우면서 튼튼한 소재가 차고 넘치지만 우리는 여전히 철기시대를 살고 있다. 어쩌면 철기시대는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인류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산업용 소재는 시멘트다. 모든 산업의 기본이 건축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다. 2008년 통계치를 기준으로 하면, 전 세계 시멘트 소비량은 25억 톤에 이른다. 철강은 시멘트에 이어 2위다. 13억 톤이 소비되었다. 3월호에 소개한 플라스틱 특집에서 유럽연합의 플라스틱 생산량이 5천700만 톤이라고 했는데, 전 세계 소비량은 약 3억 톤 정도, 4위는 알루미늄으로 4천만 톤 수준이다. 산업용 소재로서 철의 위상은 여전히 굳건하다. 지역별 1인당 소비량을 계산하면 재미난 결과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산업이 발달한 선진국일수록 1인당 소비량이 높은 건 당연한 이치. 유럽은 368kg, 북미 지역은 288kg을 소비한다. 반면 아시아는 187.1kg, 아프리카는 36kg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1인당 소비량은 1,210kg으로 세계에서도 가장 많은 그룹에 속한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기원전 1200년 전부터 철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지금도 60억이 훌쩍 넘는 인구가 매년 13억 톤씩 쓰는데 아직도 쓸 철이 남았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간단하다. 있으니까 쓰겠지. 그 이유에 대해 두 가지만 이야기하고 철기시대 이야기를 마무리하자.

첫 번째, 이 지구에는 철이 진짜 무지하게 많다. 다만 쓸 수 없는 철이 대부분이긴 하다. 지구 전체를 구성하는 원소 가운데 철이 차지하는 중량 비율이 35%로 가장 많다. 문제는 대부분의 철이 쓸 수 없는 상태라는 점이다. 우리가 채굴해서 사용할 수 있는 지각 아래에는 맨틀과 코어가 있는데, 코어 무게의 90% 이상이 철이다. 깊어도 너무 깊은 곳에 있어 쓸 수 없단 얘기다.

현실로 돌아와서 지각에는 철이 얼마나 많이 있을까? 중량을 기준으로 따졌을 때 약 5% 정도다. 가장 많은 건 산소다. 우리가 숨 쉬는 산소를 가리키는 게 아니다. 대개의 광물은 돌의 형태로 자연에 존재하고, 모든 돌에는 이산화규소가 있다. 산소 두 개, 규소(실리콘) 하나. 고딩 시절 외웠던 ‘오(O, 산소)-씨(Si, 규소)-알(Al, 알루미늄)-페(Fe, 철)’ 가 여기서 나온다. 지각을 구성하는 4대 원소의 순서다. 이 4개의 원소가 지각 중량의 87%를 차지한다.

두 번째, 철은 재활용이 쉽다. 플라스틱은 녹여서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열가소성 수지와 다시 사용할 수 없는 열경화성 수지로 나뉘지만, 철은 그런 거 없다. 음료수 깡통부터 자동차나 건축에 사용된 철까지 용광로에 넣고 ‘팔팔 끓여’ 버리면 다시 쇳물이 되고 새로운 철강재가 되기 때문이다. 13억 톤의 철강을 쓴다고 해서 자연 상태에서 13억 톤의 철을 캐내야 하는 건 아니란 뜻이다. 철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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