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읽고 또 읽고
문화 | 읽고 또 읽고
  • 글 서승범·김재형 기자 | 사진 김해진 기자
  • 승인 2014.05.2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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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삭 속았수다’와 ‘나, 건축가 구마 겐고’에 대하여

폭삭 속았수다 | 성우제
자전거를 타거나 걷기에 더없이 좋은 나날이다. 떠도는 것이 일이지만 마감 때에는 또 떠나고 싶어 엉덩이가 근질근질하다. 치료는 어렵겠지만 나름대로 갈증을 해소하기에 좋은 게 여행서다. 다만 흔한 정보의 나열이나 감정 과잉의 여행서는 제외다. 그 기준으로 봤을 때 훌륭한 여행서가 나왔다. 여행지도 이맘 때 걷기에 딱 좋은 제주 올레다. 책 제목만 봐서는 입담 센 작가의 소설로 착각할 수도 있다. 천명관이나 성석제의 작품으로 괜찮은 제목이다.

하지만 이 책은 여행서다. 작가가 제주 올레 종주에 나서 보낸 ‘꿈결 같은 나날’의 기록이다. 성우제 작가는 시사주간지 기자로 13년을 일하다가 이민을 갔다가 도보여행에 맛을 들였고, 길은 제주까지 이어졌다. 성우제 작가는 앞서 말한 성석제 작가의 동생이지만 유명 작가의 동생이 아니라 지난 시간과 지금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작가로 다가온다. 올레가 풍경 빼어난 곳으로만 이어지지 않듯 성우제 작가의 이야기도 독특한 풍습과 아픈 역사를 오가며 이어진다.

“내가 열세 살 때 군인들이 할아버지 할머니 할 것 없이 집안 어른들을 모두 트럭에 태웠다. 나는 울면서 따라가는데 트럭이 출발하자 할아버지가 우리 어머니를 트럭 밖으로 탁 차버렸다. 너는 남아서 애들 키우라고. 트럭에 실려간 어른들 중에 살아 돌아오신 분은 없다.”

홀어머니는 10남매를 키워냈다. 그렇다고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지난 역사를 읊조리는 방식은 아니다. 우도 민박집 1호 백악관민박 이야기처럼 낄낄댈 이야기도 많다. 주인장의 말에 따르면 일출을 볼 수 있는 이 민박집은 아들 낳는 집으로 유명하다. 주인장의 멘트다. “해가 뜰 때 합방을 하면 틀림없다. 합방할 적절한 시간에 바깥에서 내가 종을 쳐준다.” 증거는 방에 붙여둔 신문기사다. 아, <폭삭 속았수다>는 제주말로 ‘정말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뜻이다.

나, 건축가 구마 겐고 | 구마 겐고 지음 | 민경욱 옮김

건축에 관한 책이라고 하면 왠지 관련 분야 종사자들이나 읽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이 책은 건축에 대해 문외한이더라도 술술 읽어낼 수 있을 만큼 흥미진진하다. 세계적인 노출 콘크리트의 거장 안도 다다오에 이어 일본의 4세대 건축가에 속하는 구마 겐고의 첫 자서전 ‘나, 건축가 구마 겐고’는 저자의 35년에 걸친 건축 여정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자신을 세계를 누비는 ‘경주마’에 비유하는 구마 겐고는 기존의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단단하고 깨끗한 건축에서 되도록 먼 건축을 지향해왔다. 작음, 약함, 자연스러움, 이음, 죽음에 관한 그의 건축 철학은 특히 3·11 대지진 이후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영원한 것은 괴물뿐이다” 라는 저자의 믿음을 바탕으로 과거를 지배했던 콘크리트에 대한 믿음에 날카로운 문제를 제기뿐만 아니라 클라이언트의 눈치를 봐야 하는 건축가의 현실 등에 대해서도 상세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산 속에 감춰져 있는 ‘기로잔 전망대’, 전통적인 가부키 극장의 외형과 오피스 빌딩을 결합한 ‘제5대 가부키 극장’, 중국의 대나무 집은 그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꼽히고 있다.

정신없이 세계를 누비는 건축가답게 그가 각 나라에서 느낀 경제와 문화에 대한 통찰 역시 눈여겨 볼만하다. 클라이언트와 술을 마시며 기 싸움을 하는 것부터 시작되는 중국의 문화와, 미국의 도시 개발을 움직이는 유대인의 방법론과 교역 감각, 경제 위기를 겪은 이후 많은 것이 변한 우리나라에 대한 얘기까지. 특히 우리나라에 대한 평가는 꽤 후한 편이다. 국제무대에서 살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일찍 깨달은 탓인지 급변하는 상황에 대한 대처가 빠르고 외부로 진출하려는 의욕이 강하다고 묘사한다. 그러면서 앞으로 현실에 안주하는 일본 기업의 진정한 위협은 한국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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