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씨의 캠핑이야기 | 우도의 봄
상식씨의 캠핑이야기 | 우도의 봄
  • 글 사진 최상식 기자
  • 승인 2014.04.21 1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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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도의 봄을 사랑한다

때때로 불어오던 차가운 바람도 햇살에 녹았는지 이젠 봄을 마중해도 될 것 같은 날들이다. 따사로운 봄 햇살은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지는 파도와 에메랄드 빛 바다도 더 따뜻하게 느껴지게 해주고 동백나무 잎이 바람과 햇살에 어우러져 반짝거리는 순간도 좋다. 생각해보니 서른 이후의 봄을 모두 제주에서 보내고 있다. 한두 번 맞이하는 봄이 아니건만 제주의 봄은 늘 설렘과 따스함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나는 늘 봄을 기다렸다. 제주의 봄, 멀리 가지 않아도 벚꽃은 위미와 중문에 가득하고 유채는 바다와 중산간에서 흔들리고 있다. 큰사슴이오름과 녹산로의 유채도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낭만적인 중문의 벚꽃 길을 걸을 때면 늘 영화 <4월 이야기>를 떠올린다. 여주인공 마츠 타카코가 좋아하는 선배를 따라 훗카이도에서 도쿄로 진학해 맞은, 벚꽃이 흩날리던 스무 살의 설렘 가득한 봄이 영화 속에 담겨있다. 아름다운 게 벚꽃뿐이겠는가. 봄은 이미 그 자체로 아름답다. 나의 봄은 제주로 인해 더욱 아름답다. 수많은 제주의 봄 중에서도 나는 우도의 청보리 넘실거리는 풍경을 가장 좋아한다.

가파도처럼 탁 트이고 광활하거나, 멀리 산방산, 송악산처럼 기암절경이 시야에 펼쳐지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우도의 봄을 사랑한다. 유채도 아름답지만 어느 봄날에 본 청보리밭의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도는 바람만 불지 않으면 캠핑을 하기에 더 없이 좋은 섬이다. 그늘이 없는 한여름보다 오히려 선선한 봄가을이 캠핑하기엔 더 좋다. 4월의 중하순 볕 좋고 바람 선선하게 부는 날에 우도에서 캠핑을 해보시라.

그리고 하루 정도 자면서 천천히 섬을 둘러보며 관광객들이 떠나간 뒤의 늦은 오후와 밤, 조용한 아침을 맞이해보면 사람들로 북적이는 낮의 풍경과는 다른 여유를 즐길 수 있다. 하고수동해변의 에메랄드빛 해변에 발을 담그고, 햇볕이 따스하다면 비양도 방파제로 가서 스노클링과 다이빙을 해보는 것도 꽤 괜찮은 시간이 될 것이다.

주변의 시선 따위야 잠시 꺼두고 그냥 당신이 즐기고 싶은 그 마음 그대로 즐기시라. 좋은 친구와 함께라면 더욱더. 시간이 흘러 좋은 추억을 얘기할 시간이 오면 그런 기억도 보석 같은 시간으로 기억되리. 그리고 시간이 여유롭다면 차는 잠시 세워두고 우도 여기저기를 걸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4월의 우도는 그래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차를 타고 스쳐 지나간 풍경들도 걷다보면 또 다르게 다가오는 법이니까.

얼굴을 부드럽게 스치고 불어오는 바람을 동행 삼아 마을 안을 걷다보면 돌담길 예쁜 집들도 지나게 되고 주름 깊은 할망이 집 앞 마당에 앉아 여행자에게 사탕을 건네주며 친할머니처럼 손을 흔들어 주실지도 모른다. 마을길을 지나면 유채밭이 넓게 나타나고 멀리 우도의 푸른 하늘과 어우러져 노란 유채가 아름답게 흔들거린다. 유채밭을 지나면 청보리밭이 군데군데 나타난다. 그리 크지도 않은 밭에 바람이 불때마다, 바람이 청보리들을 누일 때마다, 청보리밭은 여러 빛깔로 은은하고 매혹적으로 빛난다. 봄바람에 불규칙으로 넘실거리는 우도의 청보리밭은 내가 4월을 기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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