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 타박타박 | 대관령 옛길
우리 산하 타박타박 | 대관령 옛길
  • 글 사진 채동우 기자
  • 승인 2014.02.18 1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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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휴게소~양떼목장 옆길~국사성황당~대관령박물관…눈길 누비며 즐기는 수묵화 세상

대관령 옛길은 오랜 시간 영서와 영동을 이어온 길이다. 강릉에서 생산되는 해산물?농산물이 이 길을 통해 영서지방으로 퍼져나갔고, 영서 지방에서 생산되는 토산품이 구산장, 연곡장, 우계장 등으로 넘어갔다. 어디 그뿐인가. 송강 정철이 관동별곡을 쓰기 위해 넘었던 길도, 신사임당이 아들 율곡의 손을 잡고 걸었던 길도 이 길이다.

▲ 하재민원터 아래로 이어진 길을 따라가면 멋진 계곡길을 만날 수 있다.
 
단순한 물류 이동의 역할을 넘어서 문화와 예술이 넘나들던 유서 깊은 길이 바로 대관령 옛길이다. 그러니 단순히 경치 좋은 트레킹 코스라 생각하기보단 이 길을 다져온 선조들을 떠올리며 한 걸음 한 걸음 사색을 즐기는 것도 좋겠다.

철조망 따라 걸으니 낭만이 넘치네
대관령 일대는 전국에서도 손 꼽힐 정도로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설산의 운치를 만끽할 수 있는 겨울이 대관령 옛길을 만끽하는 최적의 계절이다. 대관령 휴게소를 들머리로 잡고 양떼목장 옆길을 따라 이동한 후 대관령박물관을 날머리로 하는 코스는 전체적으로 완만한 내리막길로 되어 있어 어렵지 않게 걷기를 즐길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 양떼목장 옆의 눈 덮힌 철조망길은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이어진다.

다만 해발고도가 높고 기온이 낮은 지역인만큼 눈길에 대한 채비는 확실히 해야 한다. 신발에 눈에 들어가지 않게 도와주는 스패츠와 미끄러운 길을 쉽게 걷도록 도와주는 아이젠과 스틱은 반드시 챙기도록 하자. 산하클럽의 김경희 가이드는 “대관령 옛길과 바우길 2구간은 거의 동일한 코스”라며 “율곡 이이가 곶감 100개를 준비해 걸으며 한 굽이 돌 때마다 하나씩 빼먹었는데 마지막 굽이를 돌고 나니 하나만 남았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구불구불 걷는 재미가 있는 길이다”고 말했다.

▲ 솔잎 하나하나에 핀 눈꽃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 국사성황당에 모셔진 범일국사는 단오제 때 강릉으로 옮겨진다.

대관령 휴게소에서 걷기 시작한 길은 약 20~30분간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그리 길지 않은 오르막 구간이고 난이도가 높지 않으니 조바심내며 걸을 필요는 없다. 찬찬히 걸으며 눈과 나무가 만들어낸 풍경을 즐기면 된다. 한 번의 오르막이 끝나면 길은 양떼목장 옆으로 이어진다. 양이 도망치지 않도록 설치한 철조망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눈 덮인 풍경과 철조망이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일상에서는 만날 수 없는 비현실적인 풍경은 영화나 드라마 속을 걷고 있는 듯한 환상에 빠지게 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 길 앞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발걸음을 늦춘다.

▲ 흰 눈 위로 삐죽이 솟아오른 조릿대.

▲ 이정표의 바우길 2구간 표시를 따라 걸으면 된다.

여기까지는 대관령 옛길과 선자령 트레킹 코스가 중복되는 구간으로 주말이 되면 눈꽃을 구경하기 위해 들른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따라서 앞사람만 보고 걸었다간 뜻하지 않게 선자령으로 올라갈 수 있으므로 반드시 이정표를 확인하고 걷도록 한다. 철조망길까지가 이 트레킹 코스의 마지막 오르막길이다. 그다음부터는 줄곧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불편하다고 아이젠을 배낭에 넣고 있었다면 이제 부터는 제대로 착용하고 걷는 게 낫다.

▲ 꼬불꼬불 이어지는 길은 걷는 재미를 더한다.

내리막길의 초입에는 국사성황당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눈 내리는 고즈넉한 산속에 형형이 빛나는 작은 기와 건물은 멀리서 봐도 그 아우라가 남다르다.

연륜이 느껴지는 구부렁길
국사성황당은 영동지방을 보살펴 준다고 믿는 국사성황인 범일국사를 모시고 있는 곳이다. 그는 신라 말과 고려 초까지 활동한 고승이다. 전설에 의하면 출생부터 남다르다. 해가 떠 있는 샘물을 마신 처녀가 태기를 보였으나 주변의 눈이 두려워 아이를 낳자마자 뒷산 학바위에 버렸다. 그러나 학이 그 아이를 보살피기 시작했고 이를 기이하게 여긴 처녀는 아이를 다시 데려와 키웠다.

▲ 대관령 옛길은 비교적 쉽게 겨울산행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 길에서 만난 돌탑.

그 아이가 바로 범일국사로, 자라나면서 비범한 외모와 뛰어난 학문으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으며 출가한 후 신라 말에 국사가 되어 이름을 떨쳤다. 그리고 죽어서는 대관령 서낭신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매년 단오가 되면 국사성황당의 범일국사를 강릉으로 모시고 내려와 단오제를 지내는데 강릉단오제는 천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국사성황당을 지나면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구부렁길이다. 움푹 파인 채로 꼬불꼬불하게 이어진 길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는지 상상할 수 있다. 길에게도 연륜이 있다면 대관령 옛길은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인자한 할아버지에 비견할 수 있으리라. 누구나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을 정도로 친근하지만 근엄함을 잃지 않는 모습은 충분히 그 정도 연륜을 연상케 한다.

▲ 대나무 숲을 지나면 주막을 복원해 놓은 상재민원터가 나온다.

▲ 눈 덮인 계곡 풍경이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이어지는 길은 456번 지방도가 나타나면서 끊기지만 당황하지 말고 주변을 잘 살피며 길을 건너도록 한다. 건너편은 반정으로 전체 코스의 반정도 왔음을 의미한다. 화장실과 데크가 설치되어 있어 많은 방문객이 중간 휴식지로 이용한다. 반정을 지나서도 길은 구불거리면서 이어진다.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은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길에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하얀 눈과 나목이 어우러진 풍경은 흡사 수묵화를 보는 듯하다. 길은 상제민원터로 이어지고 대나무 숲을 지나면 새롭게 복원된 주막이 보인다. 현재는 방문객을 위한 휴식터 역할을 하고 있지만 조선시대에만 해도 대관령을 넘을 때 산적이나 산짐승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동료를 구하는 곳으로 이용됐다.

▲ 하재민원터 아래로 이어진 길은 개울로 시작하지만 종반에는 웅장한 계곡이 되어 방문객을 반긴다.

하재민원터에 도착하면 비로소 사람이 살고 있는 흔적이 보인다. 각종 식당과 펜션이 추위에 지친 방문객을 반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 원울이재를 넘어 대관령박물관에서 트레킹을 마무리하지만 진짜 아름다운 길은 따로 있다. 식당가를 지나 아래쪽으로 이어지는 계곡길이 바로 그 주인공. 시작은 개울가를 걷듯 아기자기하지만 물을 한 번씩 건널 때 마다 계곡은 웅장해진다. 특히 눈 덮힌 계곡의 풍경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장관이다. 길의 상당 구간이 데크와 계단으로 정비되어 있어 걷기 어렵지도 않다. 계곡길을 따라 내려간 후 대관령박물관에서 트레킹은 마무리된다.

대관령 옛길 안내
기사에서 소개한 대관령 옛길은 강원도 바우길 2구간과 대부분 일치한다. 따라서 바우길이라 표시된 이정표를 따라 걸어도 무방하다. 길 중간에는 식수를 보충할 곳은 없으나 화장실은 반정 전망대 쉼터를 이용하면 된다. 코스 중간에 만나게 되는 국사선황사는 누구나 들러서 구경할 수 있으니 그냥 지나치지 말자. 도보코스는 총 10.3km로 휴식시간을 포함해 대략 5시간 정도 소요된다. 산하클럽(www.greenwm.com)에서 진행하는 투어를 이용하면 걷기를 마친 후 관광버스를 이용해 손쉽게 돌아올 수 있다.

▲ 대관령 옛길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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