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얼음계곡으로
대체로 본인과 백패킹에 동행하는 지인들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뉜다. 아주 좋았다며 다음에는 또 어디로 가냐고 먼저 얘기를 꺼내는가 하면, 굳은 얼굴로 산에서 내려와 애써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꽤 좋았지만 다음 달에는 바쁜 일이 있다고 서둘러 말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 쪽이든 강렬한 경험인 건 마찬가지인지 아직까지 미지근한 반응을 만나 본 적은 없다.
▲ 이번에 찾은 흘리는 백두대간 진부령 기슭에 자리 잡은 조용한 산촌이다. |
찾는 이 없는 산골마을
누군가에게는 한겨울에 생고생하러 가는 이해할 수 없는 기행으로 비치더라도, 겨울 백패킹이야말로 진정한 캠핑의 백미라는 것을 알고, 매주 떠나지 못해서 안달 난 사람들도 있다. 이번 백패킹은 그런 분들과 함께했다. 본지 윤태석 편집인의 소개로 만난 캠핑 동호회 ‘언저리거’ 회원들과 겨울의 절정 무렵에, 강원도 고성군 흘리로 떠났다.
▲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이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
▲ 이번 백패킹은 ‘언저리거’카페 회원들과 함께했다. |
트레킹의 시작점인 흘리는 서울에서 차로 세 시간 정도 걸리는 백두대간 진부령 기슭에 자리 잡은 조용한 산촌이다. 이곳은 지난 2006년 알프스 스키장이 폐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겨울이면 스키를 타러 오는 관광객들로 붐비던 곳이었다. 흘리의 알프스 스키장은 우리나라 가장 북쪽에 위치한 스키장으로 적설량도 많고 눈의 질도 뛰어나 가장 좋은 자연 조건을 갖춘 곳으로 사랑받았지만, 지금은 백패커들이나 간간히 찾는 조용한 산골마을로 전락했다. 방치된 스키박물관과 버려진 리조트 관련 시설물들만이 지난날의 위용을 말해주고 있다.
▲ 등에 맨 배낭이 점점 무겁게 느껴진다. |
아이젠과 스패츠 착용은 필수
몇 주간 눈이 내리지 않아 수도권 일대에서는 쌓인 눈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강원도에도 눈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마을 뒤편의 농로를 따라 비닐하우스를 지나서 작은 오솔길로 들어섰다. 흘리 계곡에서 흘러나온 물이 살얼음을 끼고 작은 개울가를 이루고 있었다. 행여나 물속에 발이 빠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개울가를 건너고 본격적인 트레킹을 시작했다. 겨우내 내린 눈으로 뒤덮인 길은 발목까지 빠졌고, 우리는 준비해온 아이젠과 스패츠를 착용했다.
▲ 꿀맛같은 휴식. |
▲ 계곡을 따라 길을 걷다보면 방향을 잡기가 쉽지 않다. |
흘리 계곡은 이정표가 없고 계곡을 따라 돌다보면 중간 중간 길이 끊긴 곳도 있어서, 초행길에는 방향을 잡기가 쉽지 않다. 특히나 눈으로 덮인 겨울 산이라면 더 그렇다. 계곡물은 겉보기에는 꽁꽁 얼어붙어 무척 단단해보였지만, 군데군데 작은 살얼음이 언 곳이 눈으로 덮여 있어 잘못 디뎠다간 발이 빠질 수도 있었다. 건널 때마다 온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니 그리 길지 않은 이동시간에도 그새 이마에는 땀이 맺히고, 등에 맨 30kg의 배낭이 버겁게 느껴졌다. 저 앞에 멈춰 선 선두를 따라 휴식장소로 보이는 곳까지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다. 겨울 산행은 이 정도면 됐고, 여기가 야영장소라는 정낙언 씨의 말이 들려왔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TIP 진부령 용대리의 밤 평균기온은 두 달 이상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고 계곡에서 늘 바람이 불어와, 육질의 양분과 맛이 빠져나가지 않는 황태를 만드는 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1월 초부터 3개월간 얼고 녹기를 거듭한 황태는 깊은 맛과 함께 간장 해독, 숙취 해소, 노폐물 제거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대 도로에는 황태해장국을 비롯해 황태를 이용한 요리집이 즐비해있어, 그냥 지나치기는 아쉬운 곳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