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도방구 일본기행 | 일본 홋카이도
오도방구 일본기행 | 일본 홋카이도
  • 글 사진 그림 김종한 | 협찬 BMWKJ모토라드
  • 승인 2013.11.29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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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곰과 싸우며 개척한 ‘불편한 길’
루모이~테시오초~소야미사키

삿포로와 오타루는 마치 서울과 인천처럼 붙어있는 모양새다. 서울과 인천 사이를 잇는 46번 국도 경인로가 있는 것처럼, 삿포로와 오타루는 5번 국도를 달리다 보면 도심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도중에 얼핏 바다가 보이는 지점에서 갈라지는 337번 국도로 갈아타면 홋카이도 최북단 왓카나이까지 거침없이 북상할 수 있다.

▲ 하마사루부츠의 광대한 목초지를 가로지르는 길이 지평선까지 뻗어있다.

인간과 자연의 갈등
오타루부터 홋카이도 최북단 왓카나이까지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길을 ‘오로론라인’이라고 부른다. 337번, 231번, 232번 국도와 106번 지방도를 갈아타며 해안선과 나란히 북상하는 오로론라인은 홋카이도 북부지역 개척역사가 함께 하는 길이기도 하다. 개척시대에 험준한 육로를 뚫기보다는 바닷가를 따라 북상하는 쪽이 훨씬 편하고 안전했을 것이다. 337번에서 231번으로 국도 번호가 바뀐 뒤 한참을 달리다 보면 루모이시를 만난다.

루모이는 개척 초기에 청어잡이가 성했던 어촌이었다가 현재는 내륙의 목재와 석탄 등을 반출하는 항구로 발전했다. 루모이 바닷가 청어떼 감시탑이 있던 자리에는 기념물과 함께 마쓰우라 다케시로의 동상이 서 있다. 그는 1800년대 초중반에 홋카이도를 탐험하며 ‘북해도’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쓴 인물이다. 개척은 필연적으로 인간과 자연의 갈등을 불러온다. 1915년 2월, 루모이 근처 산케베츠 산골 마을에서 참혹한 사건이 발생했다. 산케베츠강 상류 로쿠센사와에서 동면에 실패한 불곰이 정착민들을 공격해서 7명이 사망하고 3명이 중상을 입었다.

▲ 일본 최북단 소야미사키 기념탑 뒤편 바다 건너에 사할린이 보인다.

▲ 오로론라인에서 바라본 리시리섬의 일몰이 장엄하다.

232번 국도를 따라 계속해서 북상하다가 테시오초에 이르러 106번 지방도로 갈아탄다. 테시오강에 걸린 다리를 건너자 바닷가에 몇 십개나 되는 풍력발전기가 나란히 늘어서 있다. 바다 한가운데 삐죽이 솟은 리시리섬이 마치 삿갓처럼 보인다. 주변에 높은 산이라곤 보이지 않고 수평선과 지평선 높이가 거의 비슷하다. 새 한 마리가 독특한 울음소리를 내면서 머리 위를 지난다.

▲ 루모이 바닷가 청어감시탑 자리의 조형물

바다까마귀가 안내하는 길
오로로? 오로론라인은 이곳에서만 산다는 오로로(바다까마귀)에서 따 온 길 이름이다. 일본 만화가 시로도 산페이가 그린 아이누 신화시리즈 중 ‘오로로’라는 책이 떠오른다. 제목이 독특하다는 생각을 했고 인상 깊게 본 책이어서 기억에 남았던가 보다. 오로론라인 위에 서서 그 이름을 기억해 내고는, 옛날에 버려둔 퍼즐 조각을 맞춘 거 같은 느낌이라 왠지 웃음이 났다.

조금 전 바닷새가 날아간 방향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테시오강을 지나고부터 왓카나이에 이르는 길은 아스팔트 노면 말고는 인공적인 물건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푸른 바다와 초록빛 들판이 만나는 해안선이 정북향으로 곧게 뻗어있을 뿐, 30여km를 달리고 나서야 작은 산을 만난다. 워낙 편평한 들판을 달려와서인지 높은 언덕처럼 보이는 산이 반갑다는 생각도 든다. 산을 넘는 고갯길 전망대에서 해넘이를 바라본다. 여기서 정서진하면 북한도 아닌 러시아 땅이다. 그만큼 고위도 지역에 도달한 셈이다.

일본의 동서남북 극점 네 곳

일본은 큰 섬 4개가 비스듬히 늘어선 열도다. 서·남 극점은 규슈의 히라도·사타미사키, 북·동 극점은 홋카이도의 소야미사키·네무로에 위치한다. 아래위로 기다란 열도여서 동·서 극점은 그다지 의미를 두지 않는 반면에 남·북 극점은 땅끝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큐슈 사타미사키와 홋카이도 소야미사키는 이를 적절히 관광상품화 하고 있기도 하다.

▲ 마쓰우라 타케시로우 동상.

▲ 테시오강을 건너자 오로론라인을 따라 풍력발전기가 늘어서 있다.

왓카나이를 지나 20분쯤 달리면 일본 최북단이자 홋카이도 북쪽 땅끝인 소야미사키(소야곶)다. 여기서는 뭐든지 최북단이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최북단 선물가게, 최북단 등대, 최북단 목장 등. 소야미사키 기념탑에 서면 한때 일본 땅이었던 사할린 섬을 육안으로 볼 수 있다. 기념탑 옆에는 에도시대에 이곳을 탐험했다는 린조 마미야의 동상이 서 있고, 주변 선물가게들은 땅끝에 도달했음을 기념하는 스티커를 팔고 있다. 그리고 ‘곰 출몰주의’라는 문구와 함께 곰 그림이 든 스티커도 인기가 있다.

사람과 자연의 충돌 산케베츠 사건


1915년 12월 9~14일 사이에 루모이군 도마마에초 산케베츠 로쿠젠사와에서 야생 곰이 개척민 마을을 공격해 주민 7명이 죽고 3명이 중상을 입은 사건이다.

이 사건은 인간과 자연이 충돌해서 빗은 최악의 참사로 일본 역사상 가장 끔찍한 수해(獸害)사건으로 기록돼 있다. 홋카이도 오토바이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곰출몰주의’ 스티커는 사실 예사롭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는 셈이다.
삿포로부터 왓카나이에 이르는 오로론라인에 이어서 왓카나이부터는 오오츠크라인이 시작된다. 최북단 소야미사키를 거쳐 홋카이도 동북쪽 해안을 따라 아바시리까지 이어진다. 바로 옆을 따라 나란히 이어지는 바다가 오호츠크해다. 오호츠크라인을 따라 한참을 달려도 큰 변화 없는 풍경이 이어진다. 지루함을 덜기위해 국도를 벗어나 하마사루부쓰 마을 뒤편으로 들어서자 끝없이 펼쳐진 목초지가 나타났다.

그 가운데로 곧은 길이 저 멀리 지평선까지 뻗어있다. 마치 하늘 아래 혼자만 남은 듯한 기분을 만끽하며 목초지 사이를 달려본다. 내가 왜 여길 달리고 있지? 왠지 허무한 느낌에 속도를 줄이고 길가에 오토바이를 세웠다. 한참을 멈춰 쉬는 동안에 지나가는 사람이 전혀 없다. 하늘을 보다가 목초지 너머를 살펴보다가 오토바이를 이러저리 살펴보다가 괜스레 멋쩍은 느낌을 털어버리고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 타이세츠산(대설산) 정상에는 한여름에도 눈이 덮여있다.

▲ 오호츠크해를 배경으로 바닷가에 자리 잡은 라이더하우스.

흑조의 호수와 이치로국도
홋카이도에는 람사르협약에 등재된 습원과 호수가 많다. 쿳차로호수도 그중 하나인데, 겨울철이면 고니 떼가 찾아드는 곳이라 ‘백조의 호수’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방문했을 때가 한 여름이라서 그런지 호수 상공을 날아다니는 건 까마귀뿐이었다. 겨울엔 백조의 호수, 여름엔 흑조의 호수인가? 쿳챠로호수를 기점으로 오오츠크라인을 벗어나 275번 국도를 따라 남하하기 시작한다. 도로번호 때문에 자연스럽게 프로야구 이치로 선수가 떠올랐다. ‘이치로국도’를 따라 남하하는 길을 따라 소떼가 풀을 뜯는 목장이 많이 보인다. 곳곳에 자리잡은 드넓은 목초지에서 생산되는 건초는 목장의 소들이 겨울을 나는 데 필요한 식량인 셈이다.

계속해서 지방도와 샛길을 번갈아 달리다가 마쓰야마습원을 거쳐서 시모카와초에 당도한다. 마을 거리가 한적하고 지나는 차량도 거의 없어서 적막감마저 든다. 어쩐지 서부극에 등장하는 총잡이라도 나타날 것만 같은 분위기다. 마을 안을 느릿하게 지나다가 라면집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오늘은 도오(도중앙)에 위치한 타이세츠산까지 갈 예정이다. 여기서 늦은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한다.

▲ 쿳차로호수는 람사르협약에 등재된 습지로 백조의 호수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 275번 국도를 따라 남하하는 길가에 소금을 뿌린 듯 새하얀 메밀꽃이 한창이다.

▲ 시모카와초 거리의 라면집에서 맛본 차슈면.

▲ 고산지대에 위치한 마쓰야마 습원의 호수와 전나무가 그림처럼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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