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캠 브랜싱어
인터뷰 | 캠 브랜싱어
  • 글 서승범 기자 | 사진 김해진 기자
  • 승인 2013.11.29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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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기능 그리고 자연

캠 브랜싱어(Cam Brensinger)는 니모(NEMO)의 대표다. 니모는 텐트와 침낭, 매트리스를 만든다. 니모가 처음 세워진 것은 2002년. 이제 10년을 넘긴 브랜드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브랜드들 틈바구니 속 니모의 역사는 짧다. 대신 니모의 제품들 또한 젊어서 구태의연한 제품은 보이지 않는다. 중요한 건 니모의 스탭들은 이런 젊음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만족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장 혁신적인, 완벽한 제품은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고 그들은 생각하는 듯하다. 이런 생각의 출발점은 니모를 창립한 캠이다. 그가 우리나라를 방문했다는 소식을 듣고 만났다.

텐트 플라이시트에 ‘N’자가 방패 모양으로 새겨진 게 니모 텐트다. 우리나라 캠핑장에서도 꽤 보인다. 사실 북적거리는 캠핑장보다는 백패커나 미니멀 모드를 즐기는 캠퍼들에게 인기가 좋은 브랜드다. 인기의 비결이 뭘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기술과 디자인의 조화다. 패션은 디자인이 생명이다. 하지만 아웃도어는 기능성도 아주 중요하다. 나는 정말 아름답고 기능이 뛰어난 아웃도어 제품을 사랑한다. 니모에 대한 평가가 좋다면, 그건 아마도 디자인과 기능이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디자인과 기능은 정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두 마리 토끼다. 그래서 보통은 한 가지를 고르기 마련이다. 그게 쉽고 편하니까. 아웃도어 부문에서는 기능이 갑이다. 요즘 슬슬 디자인이 판세를 뒤집으려 애를 쓰는 형국이다. 말이 좋아 ‘디자인과 기능의 조화’지, 이를 제품에 녹여낸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우선, 우리는 기존의 제품과 같은 제품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회사를 세우고 첫 제품을 팔 때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우리는 상상하고, 실험하고, 검증하고, 고치는 작업을 거듭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니모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시간들을 사랑하고, 지금의 결과물이 자랑스럽다. 그렇다고 지금의 상태에 만족한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보다 새로운 제품, 더 아름다운 제품에 늘 굶주려 있다.”

그토록 오래 만들고 가다듬었던 제품이란 게 기존의 제품들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니모의 ‘AST’라는 게 있다. ‘공기로 지지하는 기술’ Air Supported Technology을 줄인 말이다. 공기로 텐트를 지지한다는 뜻으로, 기존의 폴을 튜브로 대신한 기술이다. 이 기술의 시발점은 미항공우주국NASA의 새로운 프로젝트였다. 캠은 니모를 창립하기 전 로드아일랜드디자인스쿨RISD의 학생이자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프로젝트 연구원이었고, 그가 맡았던 프로젝트가 미항공우주국의 새로운 우주복 개발 프로젝트였다.

그 당시의 경험을 연장하여 만든 것이 AST다. 덕분에 우리는 부피가 작고 설치도 쉬우며 내구성도 좋은 텐트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니모는 세상에 데뷔한 해부터 각종 아웃도어 매체들의 관심을 받았고 수상 실적도 좋았다. <타임>이나 <파퓰러 사이언스> 같은 대중지에도 니모가 등장했다. 이에 대해 캠은, 공기주입식 텐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을 때 소재와 형태가 기존의 텐트와 다른 실제 텐트를 선보였기 때문일 것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이런 그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장비는 무엇일까? 또 그 이유는 무엇일까?

“스푼형 침낭이다. 이유는 새로운 형태이기 때문에. 기존의 머미형 침낭은 아주 편안하다. 만약 머미처럼 똑바로 누워서 잠들어 깰 때까지 잘 수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머미(미이라)가 아니지 않은가? 미국의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로 누워 잔다. 그렇다면 머미형 침낭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편안하게 돌아누울 수 있도록 여분의 공간을 가진 스푼형 침낭을 만들었다. 우리는 이 침낭에 대해 정말 많은 시도를 했다. 후드를 탈착식으로 만들기도 했다.

침낭 윗판과 밑판의 두께를 달리 하여 날씨에 따라 덮을 수 있도록 말이다. 후드는 밑판에 붙이면 된다. 하지만 필드 테스터들의 반응은 달랐다. 200개의 샘플을 만들어 테스트를 했는데, 혁신적일 거란 우리의 기대와 달리 대부분의 반응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2010년에 프로토타입이 나왔고, 2011년 테스트를 거쳐 출시할 수 있었는데 좀더 보완해서 완벽한 제품을 선보이고 싶어 2012년에 베타 버전을 만들었고, 최종 제품이 올해에서야 선을 보였다.”

“아, 헬리오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겠다. 이 제품은 다른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우연히 얻은 아이디어로 만들었다. 멕시코 바하를 여행할 때, 3인용 텐트 로시를 가져갔는데, 일행 중 여성 한 명이 그런 여행을 불편해했다. 샤워시설과 헤어 드라이어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다른 건 해결이 된다. 침대는 콧으로 해결이 되고, 이불은 침낭이 다른 이불보다 좋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샤워는 해결이 안 된다. 헬리오의 프로토타입은 2리터짜리 콜라병이었다. 물을 담고 수압을 만들어 샤워를 했다. 굉장히 성공적이었다.”

헬리오가 시장에 나온 첫해, 전시회에 갈 때 헬리오 제품은 카탈로그에 나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반응은 뜨거웠다. 그도 그럴 것이 기존의 제품이란 물주머니에 샤워꼭지를 달아놓은 것이 전부여서 물줄기가 약하고 무게 때문에 물을 많이 사용할 수 없었다. 아직도 헬리오와 같은 제품은 없다. 금속으로 만든 수압 샤워기나 배터리를 이용한 샤워기는 있지만 무겁다. 헬리오는 군용으로도 인기가 엄청나다. 아무래도 환경이 캠핑장보다야 그 동네가 좀 열악하니까. 그렇다면 조만간 헬리오와 같은 새로운 아이디어의 제품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지금 준비하고 있는 아이템을 물었다.

“얼마나 자세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진 모르겠다.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최근 시장의 동향을 보면 무게에 민감하다. 가벼운 것, 작은 것을 추구해왔다. 하지만 우리는 편안함도 가벼움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작지는 않지만 가벼운, 그래서 편안한 것을 만들고 싶다. 포인트는 구조와 소재의 변화다. 최근 몇 년 동안 이 부분에 연구를 하고 있다. 이게 하나의 카테고리다.

다른 하나는 가족 캠핑이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아웃도어 마켓은 전문 영역에서 가족 캠핑으로 옮겨가고 있다. 암벽등반을 하던 이들이 아이들과 함께 혹은 친구와 함께 캠핑을 한다는 것이다. 광고를 보면 알 수 있다. 거대한 산에 매달린 인간의 고통스러운 표정을 콘셉트로 한 광고는 사라지고 있다. 히말라야의 텐트 안 침낭 속에서 차를 마시는 모습도 볼 수 없다. 이제 볼 수 있는 건 즐겁고 행복한 콘셉트이다. 그래서 우리의 화두는 집에서 있는 것처럼 편안한 캠핑이다. 아웃도어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다. 이런 트렌드가 2015년 정도에 반영될 것 같다.”

니모는 텐트와 침낭, 매트리스를 생산한다. 하지만 아웃도어에서는 훨씬 더 다양한 장비가 필요하다. 더구나, 그는 다이나믹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겨울에는 빙벽 등반과 다운힐 스키, 여름에는 서핑을 즐기고 MTB 매니아기도 하다. 그런 그가 아끼는 브랜드는 무엇일까? 그는 별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아크테릭스, 파타고니아 그리고 페츨이다. 아크테릭스는 아웃도어 의류를 완벽하게 만들어내는 장인들이다. 파타고니아는 자연을 보존하는 핵심가치로 아름답고 강력한 브랜드를 만들었고, 페츨은 엄청난 기능과 아름다운 디자인을 갖춘 등반 장비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잘 나가던 니모가 2008년 발표한 것이 있다. GRN Green Rethinking by Nemo, 곧 자연친화적으로 사고하고 경영하겠다는 뜻이다. 자연 마케팅 혹은 그린 마케팅이 유행인지라 진짜 속내가 궁금했다.

“니모의 미션 중 하나는 사람을 보호하듯 사람이 아웃도어를 즐기는 공간을, 곧 자연을 보호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그린워싱을 싫어한다. 마케팅 차원의 자연 보존은 진정성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를 돌아보았다. 대학생들과 작업했는데, 화학 가공하는 폴을 재사용하지 않는 점과 버려지는 재료가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폴은 DAC에서 공급 받는데, 우리의 의견을 받아들여 유독성 중금속을 사용하지 않는 양극산화처리 방식으로 폴을 제작해주었다. 또 텐트를 재단하고 남은 원단으로 작은 가방이나 지갑을 만들어 버려지는 양을 최소화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이런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외부적으로는 관련 단체들에게 재정적인 후원을 하고 있다. 더 좋은,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고 있다.”

이쯤 되니 니모의 장기적인 계획이 궁금하다.

“우리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그때그때 최선을 다한다. A부터 Z까지 짜고 움직이지는 않는다. ABCD 정도까지 계획을 세운다. 중요한 건 계획이 아니라 방향이다. 방향은 확실하다. 기술과 디자인 그리고 자연이다.”

니모 팀은 2주 일정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캠은 본사에 일정이 있어 1주일 일정의 출장이었다. 우리나라에 사흘 머물다 대만으로 갈 계획이었다. 바쁜 일정에 시간을 내준 캠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니모’가 무슨 뜻이냐고. 혹, 물고기를 좋아하느냐고 묻지는 않았다.

“처음엔 ‘뉴(N)잉글랜드(E) 마운틴(MO) 이큅먼트’ 정도의 뜻이었다. 님(NEME)은 이상하니까. 쥘 베른 ‘해저2만리’에 나오는 선장의 이름이 니모다. 굉장한 기술자이면서 모험을 즐기는 그의 면모가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 의미는 자연이다. 라틴어로 ‘니모’는 ‘사람이 없는(no man)’을 뜻한다. 문명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그야말로 완벽한 자연 아닌가? 그래서 좋았다. 그런데 디즈니 만화가 나오면서 모든 것이 헝클어졌다. 겨우 작은 물고기라니. 이름을 계속 쓸 것인가 굉장히 고민했다. 하지만 읽기 쉽고 기억하기 쉽고 글자도 제각기 의미가 있어 그대로 쓰기로 했다. E는 강, M은 산, O는 호수를 형상화했다.

하나 덧붙이자. 로고는 N자를 방패 모양으로 디자인했다. 중세 유럽의 집안마다 있었던 문장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 당시 중세기사들이 입던 그물갑옷을 본 적 있는가? 장인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든다. 이런 갑옷은 기능적으로도 좋고 디자인적으로도 아름답다. 이런 요소들이 기사에게 권위와 자신감을 주었을 것이다. 니모가 만들고 싶은 제품 역시 그런 것이다. 기능이 뛰어나고 모양새가 아름다운, 그래서 사용자들에게 자신감과 든든함을 전해주는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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