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가 걷Go오르Go | 산정호수 둘레길
아부가 걷Go오르Go | 산정호수 둘레길
  • 글 박성용 기자 | 사진 김해진 기자 | 협찬 트렉스타
  • 승인 2013.11.1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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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웃음이 가장 깊은 절경이다”
호숫가 3km+망무봉 440m…산책과 등산 동시에 즐겨

명성산이라고 한다. 아니 울음산으로도 불린다. 거대한 울음을 듣기 위해 아웃도어 부장 일명 ‘아부’는 포천으로 차를 몰았다. 이번 여정에는 시인들이 따라나섰다. 이 지역 토박이 김홍성을 비롯 정우영·임성용·문동만 시인이 동행했다. 다들 걷기 좋아하고 계절마다 바뀌는 풍경들을 내면의 수장고에 차곡차곡 쌓아가는 사람들이다.

부력식 수변 나무데크와 숲길로 이어져
산정호수 주변은 차량과 인파가 뒤섞여 북새통을 이뤘다. 주차장은 꽉 찼고, 도로 갓길에 길게 주차된 차들은 축 늘어진 구렁이처럼 이어졌다. 교통정리를 하는 호각소리와 놀이공원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음악소리 때문에 정신은 하나도 없지만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한여름이었으면 짜증이 치밀어 올랐을 텐데 마음이 느긋하다. 삿된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바람이 폐부 깊숙이 산소 캡슐들을 투하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여기저기서 웃음소리들이 터졌다. 이것이 가을의 힘인가 보다.

▲ 억새가 핀 풀밭을 걸어가는 취재팀.

▲ 부력식 수변 나무테크는 숲길과 이어진다.

김홍성씨가 운영하는 산정B캠프에 차를 대놓고 길을 나섰다. 그는 취재팀을 반갑게 맞이했다. “한 술 뜨고 가라”는 그의 손에 이끌려 귀한 야생 산초장아찌가 곁들인 점심까지 대접받았다. 그는 산정호수 둘레길을 “미학적인 길”이라고 권한 뒤 가이드를 자처했다. 산정B캠프 입구에서 도로를 따라 15분쯤 걸어가면 산정호수 북단이 나온다.

최근 산정호수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오래된 관광지는 발길이 뜸해지는데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매력은 무엇일까. 온천이 나오는 콘도와 명성산의 가을 억새에 이어 산정호수를 한 바퀴 도는 둘레길이 생겼기 때문이다.

▲ 산정B캠프에 차를 대놓고 호숫가로 걸어갔다.
▲ 땅 위로 드러난 기괴한 나무뿌리를 찍는 정우영 시인.

▲ 망무봉에서 내려다 본 산정호수.

등산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에게 이 둘레길은 쉼터이자 산책 코스다. 둘레길은 명성산·망무봉·관음산·사향산을 병풍처럼 두른 산정호수의 풍광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둘레길을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둘레길 산책과 망무봉 등산을 동시에 할 수 있고, 벤치에 앉아서 호숫가 풍경을 바라보며 마음을 비우는 사색도 가능하다.

둘레길 거리는 약 3km. 놀며 쉬며 걸어도 1시간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둘레길의 명소가 된 부력식 수변 데크로드가 눈길을 끈다. 호수 위에 설치된 나무 데크로드를 걸으면 물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이 든다. 수상보트가 지나갈 때마다 출렁이는 데크로드 산책은 색다른 경험이다. 데크로드와 숲길은 나란히 이어지다가 중간에 서로 만나기도 한다. 입맛 따라 골라서 걸을 수 있는 것도 이곳만의 특징이다.

▲ 망무봉으로 가는 등산로는 둘레길과 달리 한적했다.

▲ 산정호수 둘레길은 약 3km로 쉬며 놀며 걸어도 1시간30분이면 충분하다.

김홍성 시인은 “산정호수 둘레길의 매력은 망무봉에 올라가서 보는 명성산의 능선과 호수 풍경이 압권”이라고 소개했다. 망무봉(440m)으로 발길을 돌렸다. 얼마나 좋은 조망을 보여주기에 봉우리 이름을 ‘망무’라고 지었는지 궁금했다. 둘레길 쉼터에서 오른쪽으로 몇 발자국을 벗어나자 산길이 시작됐다. 저 아래 둘레길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렸지만 망무봉 등산로는 한적했다.

▲ 궁예와 명성산에 대한 전설 따라 삼천리. 오른쪽부터 임성용·김홍성·정우영·문동만 시인.

궁예가 적의 동정을 살폈던 망무봉
바다나 호수에서 솟은 봉우리들이 다 그렇듯 망무봉 등산로는 오르막의 연속이다. 고도가 올라갈수록 호수 건너편 명성산은 낮아지고 산정호수는 작아졌다. 점점이 떠있는 오리배들이 사금파리처럼 빛났다. 망무봉은 중간 중간에 조망 지점을 품고 있었다. 편한 둘레길을 버리고 가파른 산길을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망무봉의 작은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들의 입에서도 탄성이 자주 흘러나왔다. 코발트색 잉크를 풀어놓은 듯한 하늘은 경외심마저 들었다.

“예전에 산정호수에서 ‘놀이배’라고 하는 유선(遊船)을 띄우던 친구 아버님이 계셨어요. 배가 호수를 한 바퀴 도는 동안 손님들은 술과 풍악을 즐겼죠. 하얀 중절모에 하얀 옷을 입고 배 뒤에 서서 노를 저었던 친구 아버님이 얼마나 멋있었는지 모릅니다.”

▲ 망무봉을 오르다보면 중간 중간에 조망 지점이 나온다.
▲ 정상 부근 작은 암릉에 설치된 고정 로프를 잡고 올라가는 문동만 시인.

▲ 산정호수에 얽힌 옛 추억을 설명하다 활짝 웃는 김홍성 시인.

김홍성씨의 말에 시인들은 호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노를 저어 생계를 꾸려야 했던 어느 가장의 노동과 배 위에서 주흥을 즐겼던 어느 풍류객들의 놀이문화 사이에서 방점을 어디에다 찍을 것인지 잠시 고민하는 눈치였다. 유선은 70년대까지 운행됐다고 한다.

망무봉 등산로는 길을 잘못 든 어느 부부 말고는 사람이 없었다. 건너편 봉우리도 원래 같은 이름인 망봉인데, 두 봉우리를 구분하기 위해 지금 오르는 곳을 망무봉으로 바꿨다고 한다. 정상 가까이에 가보니 망무봉이 망봉보다 높이가 더 높았다. 작은 봉우리라고 내심 얕본 망무봉은 정상 부근에 닭벼슬 같은 작은 암릉을 툭 던져놓았다. 고정 로프가 없었으면 오르기 어려운 구간이다. 정상에는 ‘망무봉(望武峯)440m’라고 적힌 나무말뚝이 박혀 있었다.

▲ 둘레길에는 억새터널이 있다.

▲ 지역 토박이 김홍성 시인이 추천한 닭백숙과 닭볶음탕이 맛있는 산안식당. 직접 키우는 닭을 잡기 때문에 최소 30분 전에 예약해야 한다.

김홍성씨는 ‘무’자는 춤출 무(舞)자로 알고 있었는데,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궁예의 전설이 많은 지역이니 적의 동정을 살폈다는 의미에서 보면 수긍이 간다. 김 시인은 스틱으로 북쪽 방향을 가리켰다. 명성산 능선의 안부 너머로 새끼손톱만한 봉우리가 보였다. 그는 어릴 때 마을 할아버지들한테 들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 망무봉 정상에 서면 명성산 능선이 한눈에 잡힌다.
“저 바위봉우리에 굴이 하나 있었는데, 커다란 무쇠 솥이 걸려 있었답니다. 그 소문을 들은 마을의 고물장수가 올라가 솥을 아래로 떨어뜨려 조각을 낸 뒤 팔았답니다. 그때 굴 안에서 큼직한 청동거울을 하나 주웠답니다. 그런데 동네사람들이 동경(銅鏡)을 함부로 갖고 다니면 화를 당한다고 하자 호수에 버렸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궁예가 남겼던 물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구수한 입담과 생생한 이야기를 듣자 궁예가 마치 전 세대의 인물처럼 다가왔다. 산을 내려와서 다시 접어든 둘레길은 왁자지껄했다. 어깨를 부딪치고 사람을 피해서 걸어야 하지만 이 온전한 가을볕과 호수 풍경은 누구나 즐길 권리가 있는 법. 문동만 시인은 이번 가을여행을 이렇게 정리했다.

“산도 걸었고 호수의 물그림자도 보았다. 돌아와 생각하니 인간의 웃음이 가장 깊은 절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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