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타케오 스나미
인터뷰 | 타케오 스나미
  • 글 서승범 기자 | 사진 김해진 기자
  • 승인 2013.11.12 2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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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은 좀 더 쉬워져야, 보다 느긋해져야 한다”

모노랄MONORAL이란 회사가 있다. 귀에 선 이름일 수도 있다. 화로대 ‘와이어 프레임wire flame’ 을 만든다. 모노랄의 와이어 프레임을 안다면 당신은 캠핑을 꽤나 좋아하는 축에 속한다. 어쩌면 새로운 장비를 탐내는 경우일 수도 있다. 와이어 프레임을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아는 사람 중에 신기해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와이어 프레임이 뭐길래. 가느다란 프레임 위에 하얀 천을 걸고 그 위에 장작을 올려 불을 지핀다. 천으로 만든 화로대여서 놀라고, 쉽게 휴대할 수 있어서 한 번 더 놀란다. 와이어 프레임을 개발한 이는 타케오 스나미, 모노랄 대표다. 모노랄을 전개하는 유인터내셔널에서 타케오 대표를 만났다.

▲ 모노랄(Monoral) 타케오 스나미 대표가 와이어 프레임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즈음의 캠핑에서 가장 유용한 아이템은 화로대다. 잘 마른 장작을 쌓아 불을 피우면 어떤 난로보다 뜨거운 열을 내고, 운치도 있기 때문이다. 크고 무거운 화로대를 부러 챙기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리고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고 가벼운 화로대가 없으니까. 남들이 크고 무거운 화로대로 캠핑을 즐길 때 스스로 ‘여지’를 만들겠다고 나선 이가 있다. 몇 년 뒤 타케오 스나미는 와이어 프레임을 세상에 내놓았다. 분명 장작을 올려놓고 불을 피울 수 있는 화로대다. 장작을 3kg까지 쌓아놓고 불을 피울 수 있지만 화로대의 무게는 고작 980g, 프레임을 분리해서 내열천으로 돌돌 말면 한손에 쏙 들어온다. 내열천? 그렇다. 와이어 프레임에서 활활 타오르는 장작을 받치고 있는 건 내열천이다. 내열천의 정체부터 물었다.

▲ 타케오 대표는 새로운 장비가 새로운 경험을 통해 새로운 태도를 만든다고 말했다.
와이어 프레임이 모노랄의 첫 번째 제품이다. 아주 인상적이고 성공적인 데뷔였다. 와이어 프레임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내열천이다. 소재가 뭔가?

실리콘(Si)이다. 다른 성분도 들어가긴 하지만 거의 100% 실리콘이다. 실리콘은 불에 잘 타지 않기 때문에 실리콘 섬유로 화로대를 만들 수 있었다. 실리콘 섬유는 굉장히 높은 온도에서도 안정적인 물성을 보인다.
인터뷰를 마치고 자료를 찾아보니 실리콘은 우리말로 규소다. 규소는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장치에 꼭 들어가는 원소다. 그래서 첨단 과학 단지에 ‘실리콘 밸리’라는 이름을 붙인 모양이다. 규소는 우리가 아는 보형물인 실리콘의 구성성분이기도 하다. 규소를 뜻하는 실리콘은 ‘silicon’으로 표기하고, 보형물 실리콘은 ‘silicone’으로 적는다. 물론 타케오 대표가 말하는 실리콘은 규소다.

인터넷에는 간혹 석면이 들어간 게 아니냐는 이야기들도 보인다.
석면은 들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석면을 쓰지 않기 위해 실리콘을 사용하고 있다.

와이어 프레임에서 두 번째로 놀라운 점은 가벼운 무게와 작은 크기다. 아이디어의 시작이 궁금하다.
나는 고등학교 때 산악자전거를 사서 캠프 투어를 다녔다. 그때 아웃도어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생겼다. 대학 때에도 1년에 100일 정도는 바이크 캠핑을 다녔다. 그 과정에서 아웃도어에서 어떤 제품이 언제 왜 필요한지 생각하게 되었다. 이 경험은 무척 중요하다. 단순히 개발자나 생산자 입장이 아니라 사용자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크 캠핑 투어를 다니면서 나는 작고 가벼운 화로가 필요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꼭 만들고 싶었다. 그 결과가 와이어 프레임이다.

와이어 프레임을 보면 모노랄이 추구하는 바가 어떤 것인지 어렴풋하게 보인다. 이를 좀 더 분명하게 표현해줄 수 있는가?
마이크로 캠핑 혹은 쉬운 캠핑이다. 기능도 뛰어나야 하고, 미적인 가치도 놓칠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쉽게 쓸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아웃도어 시장은 보다 가벼운 혹은 보다 빠른 것, 곧 기능적인 완벽함을 추구하고 있다. 틀린 방향은 아니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능적이고 아름다워야 하지만 그와 같은 비중으로 사용하기 쉬워야 한다. 우리 제품은 에베레스트에 오르면서 사용하는 제품이 아니다. 언제 어디로든 캠핑을 떠날 때 부담 없이 챙기는 제품이길 바란다. 우리는 좀 더 쉬운, 보다 느긋한 캠핑을 추구한다. 우리는 그런 캠핑에 적합한 제품을 만들고 싶다.

▲ 모노랄의 제품들은 성능이 뛰어나면서도 사용하기 쉽다는 공통점을 갖는다고 말하는 타케오 대표.
유저 입장에서 실용성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디자이너로서 포기할 수 없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당신은 디자이너 아닌가.

디테일이다. 나는 늘 디테일을 생각한다. 제품이 실제 아웃도어에서 어떻게 사용될 것인지를 항상 생각하고, 실제 사용해본다. 예를 들어 와이어 프레임의 내열천이나 와이어 프레임을 휴대할 때 사용하는 툴랩toolwrap의 색깔이 흰색이다. 주변에서는 모두 반대했다. 흰색은 쉽게 오염되기 때문에 짙은 색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했다. 와이어 프레임에 불을 피울 때는 추울 때 혹은 어두울 때다. 짙은 색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래서 하얀색으로 만들었다. 프레임 다리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안정감을 주기 위해 프레임 끝을 구부리기만 했지만 사용해보니 잔디에 걸리곤 했다. 그래서 모서리를 둥글게 만들었다.

디테일과 실용성, 조금 다른 방향이지만 결국 같은 곳을 향하는 두 개의 가치다. 두 가치가 향하는 곳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다. 나는, 제품은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웃도어에서 장비는 반드시 기능적이어야 한다. 사람은 장비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장비는 사람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요즘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아웃도어 장비들 중에는 무척 뛰어난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실제 아웃도어에서 이용하기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발휘할 수 없는 기능은 기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를 사용자 부주의나 무능력으로 돌릴 수도 없다. 늘상 떠나는 캠핑에서는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장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와이어 프레임 외에 스카이 필름 타프와 손도끼를 만든다. 인상 깊었던 건, 손도끼를 설명하는 문구다. ‘칼보다 튼튼하고 도끼보다 (쓰기) 쉬운’. 이런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
나도 캠퍼다. 캠핑을 하면서 도끼를 써보면 숙련자를 위한 제품이 많았다. 나에겐 너무 무거워서 장작을 패는 일이 어렵고 힘들다. 물론 가벼운 제품들도 있지만, 장작을 쪼개려면 적당한 무게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도끼와 칼을 모두 챙기는 것은 번거롭다. 도끼와 칼의 기능을 갖춘 장비를 만들고 싶었다. 필요가 아이디어를 낳는다.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을 때 해결책이 있는가?
없다. 해결책도 없지만, 잘 떠오르지 않을 때도 없다. (웃음) 사실 전문 디자이너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정말 어려운 것은 판단하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가 맞는지 틀린지, 세상에 필요한지 필요하지 않은지, 사용자를 이롭게 할지 아닐지, 나의 경우에는 아웃도어에서 사용하기에 쉬운지 어려운지. 내가 디자인했다고, 오랜 시간 고민했다고, 세상에 없는 디자인이라고 좋은 디자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디자이너가 된다는 것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의 방향과 품질을 결정하고 판단하고 가다듬는 일이 좌우한다.

▲ 모노랄의 와이어 프레임.

창업한 지 3년이 지났는데, 현재 아이템이 3개다. 앞으로 새로운 제품이 데뷔하는 주기는 어떻게 되는가?
더 자주 선보이고 싶지만, 중요한 건 주기가 아니라 완성도다. 1년에 1개의 아이템을 선보이는 것은 최소한의 목표다. 우선 올해에는 스카이 필름용 타프 폴을 출시했고, 내년에는 접이식 테이블을 선보일 예정이다.

테이블이 필요한데 좀 더 기다려봐야겠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우리나라에 와이어 프레임 카피 제품이 있다. 본 적 있는가?
본 적은 없지만 들어서 알고 있다. 사실 한 번 써보고 싶다. (웃음) 당연히 신경은 쓰이지만 그리 연연하진 않는다. 오리지널 제품이 가장 좋다는 믿음, 소비자들은 결국 오리지널을 선택할 거라는 믿음이 있다. 모노랄의 제품은 디테일에 굉장히 강하다. 값이 싸다는 이유로 카피 제품을 쓰다보면 ‘아, 이래서 오리지널 제품을 쓰는구나’ 생각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만약 카피 제품의 품질이 더 좋다면 우리가 반성하고 더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굉장한 자신감이다. 우리나라 캠핑 시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분석하는가?
한국의 캠핑 열기와 시장 규모는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좋은 소식이고 우리에게도 긍정적인 현상이다. 다만 우리는 시장의 움직임에 그리 많이 신경 쓰지 않는다. 현재의 트렌드를 따라가기보다, 길게 보고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가면서 만들고 싶은 제품을 제대로 만들면 된다고 생각한다.

모노랄의 일본 본사 홈페이지에 ‘새로운 기능, 새로운 태도’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풀어서 설명한다면?
제품이 태도를 만든다는 뜻이다. 새로운 아이템은 이전과 다른 경험을 만들고, 이것이 새로운 생각과 태도를 이끌어낸다. 자연스레 캠핑, 나아가 자연에 대한 생각과 태도가 바뀌게 된다.

타케오 대표의 태도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 브랜드는 뭐였나?
모스 텐트, MSR, 스노우피크다.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

10년 후 모노랄의 모습은 어떨까?
캠핑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이 모노랄을 알고, 새로 출시될 제품들을 기대하면 좋겠다. 마치 애플처럼. 또 욕심이 있다면 모노랄의 혁신적인 제품을 사용하는 일이 일상적인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데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렵겠지만, 새로운 제품을 통해 새로운 태도와 사고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불가능한 바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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