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요리사 음식잡설 | 개장국이냐 육개장이냐
태양의 요리사 음식잡설 | 개장국이냐 육개장이냐
  • 글 사진 박찬일 기자
  • 승인 2013.10.30 0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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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돈양반이 오시면 개를 잡는다’

지난 정부에서 한식을 세계화한다고 하자, 많은 연구자들이 고개를 저었다. 무엇보다 한식이 무엇인가 하는 정의조차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자장면은 한식인지 아닌지 아무도 말을 못했다. 중국에는 없다는데, 이건 이미 한식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었고 그래도 중식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밥과 산적꼬지에 넣는 게맛살은 한식인가 하는 문제도 나왔다. 70년대에 한국에 들어온 게맛살은 일본이 원산지다.

▲ 왼쪽이 보신탕, 오른쪽은 닭개장. 서로 구별하기 어렵다. 육개장은 원래 보신탕에서 왔고, 닭개장은 다시 육개장을 모방한 음식이라는 증거다.

그런 논란 중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었다. 한식은 국과 탕의 문화라는 사실이다. 적어도 1천년 이상은 이런 음식을 먹어왔다는 고증이 된다. 유식한 말로 ‘탕반문화’라고 한다. 국 없이 밥을 못 먹는다는 건 이런 말에서 나온다. 이태리에서 좀 불편한 일이 있었는데, 늘 국 없는 밥을 먹는 것이었다. 스프가 있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그건 국이 아니다. 코스의 일종이며, 게다가 늘 스프를 먹는 것도 아니다. 정말 어쩌다가 먹었다. 국은 그냥 와인이나 물이 대신했다. 맥주가 한식에서 대우를 못 받는 이유는 국이 있기 때문이다. 국을 마시고 맥주 마시는 건 좀 적응이 안 된다. 둘 다 수분이기 때문이다.

대구탕반 본명은 육개장
그런데 근대의 여러 자료를 보면 서울과 대구를 탕반의 도시라고 적고 있다. 서울은 설렁탕, 해장국을 꼽고 대구는 대구탕반이라고 부른다. 대구탕반은 곧 육개장이다. 그 연원을 일제 때 종합잡지 <별건곤>(별난 세상이라는 뜻)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대구탕반은 본명이 육개장이다. 대체로 개고기를 한 별미로 보신의 재료로 좋아하는 것이 일부 조선 사람의 공통성이지만 특히 남도지방 촌에는 ‘사돈양반이 오시면 개를 잡는다’고 개장이 여간 큰 대접이 아니다. 이 개장 기호성과 개고기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정까지 살피고(중략) 생겨난 것이 육개장이다. 소고기를 개장처럼 만든 것인데 대발전하여 대구와 서울까지 진출하였다….”

이런 역사를 추적하기 위해 대구의 개고기 식당인 <대원명가>를 찾았다. 놀랍게도 보신탕이 육개장과 완전히 똑같았다. 육개장의 진하고 두꺼운 맛이 적을 뿐 영락없는 육개장이었다. 닭계장을 팔기에 한 그릇 청했더니 이것 역시 육개장이나 보신탕과 구별이 안 되었다. 눈을 감고 먹으면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 것으로 생각한다.

바로 개고기탕(구장, 개장국)이 육개장으로, 다시 비싼 쇠고기 대신 닭으로 만든 닭개장(닭계장)으로 변화되었다는 음식 사학자들의 말이 정확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내 고향 영주에서는 고등어로도 육개장을 끓인다. 이 지역은 역시 경상도 내륙이라 그런지 육개장을 잘 한다. 대구가 원조인지 아니면 영주·안동 일대가 원조인지 모르겠지만 육개장을 잘 끓인다. 관혼상제에 육개장이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 육개장 맛을 모방한 고등어육개장도 있다. 껍질을 벗겨 비린 맛을 줄이고 삶아서 끓이는데, 뼈는 푹 고아서 맛을 진하게 낸다. 이것 역시 한 그릇의 절반을 먹어갈 때까지 나는 육개장인 줄 알았다. 아지매들이 “먼 요리사가 고등어 맛도 모르니껴?”하며 놀리기까지 하였다. 살짝 육개장과 다른 맛이라는 것을 감지했을 뿐, 으레 육개장이겠거니 먹다보니 모를 수밖에. 정말 육개장과 흡사했고, 맛도 아주 좋았다.

▲ 대구의 유명한 육개장. 파와 무가 맛을 내는 중요한 요소다. 아주 즐긴다.

개고기결을 흉내 낸 육개장
대구는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다. 기후는 음식에 반영된다. 대구가 매운 육개장을 즐기는 것도 이런 기후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대구 사람들이 직선적이고 무뚝뚝한 것도 기후와 음식 사이에서 서로 연관된 이미지를 준다. 육개장은 정말 대구에서 먹어야 제 맛인 것이다. 앞서 <별건곤>에는 육개장 맛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1929년에 쓴 글인데, 지금 육개장 맛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서말지기 가마(솥)에다 고기를 많이 넣고 곰국을 고듯 푹 고아서 우러난 물로 국을 끓이는데 고춧가루와 소기름을 흠뻑 많이 넣는다. 국물을 먼저 먹은 굵다란 파가 둥실둥실 뜨고 기름이 둥둥 뜨는 고음국에다 고은 고기를 손으로 알맞게 찢어 넣은(중략) 김이 무렁무렁 떠오르는 시뻘건 장국을 대하고 앉으면….”

여기서 재미있는 대목이 있다. 고기를 손으로 찢는다는 내용이다. 육개장은 보통 고기를 결대로 찢어 올린다. 그런데 그것이야말로 개고기를 먹는 풍습이다. 개고기는 보통 결대로 찢은 고기가 수북하게 올라간다. 그래서 육개장은 아마도 개고기를 따르기 위해 고깃결까지 흉내를 낸 것은 아닐까. 육개장은 개장국의 이미테이션으로 출발했으니,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

대구 육개장의 명가 <국일따로식당>에 들렀다. 이 집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따로국밥을 한다. 이렇게 이름이 바뀐 데는 재미있는 역사가 있다고 한다. 원래는 육개장이라고 부르고, 찬밥을 그대로 말아서 토렴해 냈다. 그런데 대구의 양반이 늘면서 상민처럼 밥을 훌훌 말아서 먹는 것은 보기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결국 따로 밥을 냈고, 그것이 따로국밥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서울에도 육개장은 있지만, 따로국밥이라는 이름의 육개장도 있다. 내용은 같더라도 따로국밥은 대구에서 온 것이라고들 안다. 대구는 그러므로 따로국밥의 원조가 된 것이다.

대구식 육개장 맛의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현지의 전문가들과 요리사들은 파와 무라고 말한다. 고기도 중요하지만, 파가 충분히 들어가고 무가 시원해야 제 맛을 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육개장 맛이 최고인 것은 무가 좋은 가을 겨울이라고 한다. 외지인이 먹을 때는 큰 차이가 없겠지만.

박찬일 | 소설을 쓰다가 이탈리아에 가서 요리학교 ICIF, 로마 소믈리에 코스와 SlowFood 로마지부 와인과정을 공부했다. 시칠리아에서 요리사로 일하다 한국에 돌아와 이탈리아 레스토랑 ‘뚜또베네’ ‘트라토리아 논나’ 등을 성공리에 론칭시켰다. 지은 책으로 <박찬일의 와인 컬렉션>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보통날의 파스타> 등이 있다. 최근 서울 이태원에 이탈리아 전문식당 ‘인스턴트펑크’를 개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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