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에 이런 신선놀음 해보셨나요?
한여름에 이런 신선놀음 해보셨나요?
  • 글·이기원 드라마 작가 | 사진·이두용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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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따라 삼천리 | ⑥ 인제 아침가리계곡

▲ 아침가리는 물이 맑지만 바닥이 미끄러워 물길을 걸을 때도 샌들보다는 등산화를 신는 게 좋다.

조경동교~아침가리계곡~진동리…8km 4시간 소요

▲ 조경동교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짐을 챙겨 내려서 곧바로 트래킹을 시작했다.
8월 9일 이른 아침. 일산에서 21명의 산우들을 실은 버스가 출발했다. 목적지는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의 아침가리계곡. 아침가리란 아침에 밭을 간다는 뜻으로 한자로는 조경동(朝耕洞)이라 표기한다.


우리는 그 개울을 따라 걸어 내려오는 이른바 ‘계곡 트래킹’을 할 예정이다. 지루했던 장마 뒤에 찾아온 살인적인 무더위와 열대야로 불쾌지수가 오를 대로 오른 시점이라 계곡 트래킹이 그 어느 때보다 기대됐다. 계곡 사이로 흐르는 개울에서 지그재그로 약 8km를 첨벙거리며 내려오는 생각만으로도 온몸이 서늘해질 지경이다.

천혜의 풍광을 즐기며 걷는 물길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근다는 기대감에 잠을 설쳤는지 버스가 움직이기가 무섭게 산우들이 잠에 빠져 들었다. 20년 전 군복무를 했던 홍천을 지날 때 나는 잠깐 잠이 들었다가 꿈을 꾸었다. 서류가 잘못되어 다시 군대로 끌려가는, 의미도 감동도 없는 스토리였다. 부대 위병소 앞에서 못 들어가겠다고 버티는데 잠에서 깨어났다.

어느새 버스는 진동리에 도착해 있었다. 여기서부터 트래킹을 시작하기로 한 조경동교까지 걸어 올라가야 했다. 하지만 그랬다간 시간을 많이 허비해 정작 계곡 트래킹을 할 시간이 줄어든다는 단점이 있었다. 아침가리 트래킹은 개울물을 가로질러 내려오는 것에도 묘미가 있지만, 개울 좌우로 펼쳐진 천혜의 풍광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길고 느릿한 계곡 트래킹을 위해 조경동교까지 데려다 줄 트럭을 두 대 대절했다.

▲ 아침가리는 한여름 햇살아래서 걸어도 기분 좋은 시원함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물이 차다.
트럭 짐칸에 앉아서 산을 오르는데, 군대시절 군용트럭을 타고 전술 이동을 하던 생각이 났다. 아까 그 꿈 탓인 듯했다. 왠지 ‘진짜 사나이’같은 군가라도 불러야 할 것 같았다.

트럭은 비로 인해 곳곳이 유실된 비포장도로를 통과해 아침가리 계곡 조경동교에 도착했다. 우리는 짐을 챙겨 내려서는 곧바로 트래킹을 시작했다. 등산 샌들을 신고 온 산우들은 곧바로 물로 뛰어 들었지만, 등산화를 신고 온 산우들은 개울 옆으로 난 길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도 오래지 않아 길이 끊어지면서 물을 가로질러 가야만 했다. 일단 물에 발을 담그자 ‘이왕 버린 몸’이란 생각이 들었는지 그들이 더 열심히 물길을 개척하며 나아갔다.

먼저 이 계곡 트래킹을 다녀 온 사람의 조언에 따르면, ‘물이 무릎정도까지 차는 곳이 대부분이지만 가슴까지 차는 곳도 있기 때문에 로프를 반드시 가져가라’고 했다. 그 말에 실제로 로프를 가져온 산우도 있었지만 그다지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깊은 곳으로는 건너지 않으면 되기 때문이다. 물이 1급수라 속이 훤히 들여다보여서 얕은 곳으로만 충분히 이동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조언은 ‘샌들은 절대로 신으면 안 되고, 등산화를 신고 와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귀담아 들을 만한 것이었다. 요즘은 좋은 등산용 샌들이 나와 있기는 하지만 안전에 있어서 등산화를 따라올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동심을 만끽할 수 있는 아침가리계곡
우리는 모두 개울물을 첨벙거리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람이 들어오자 물속에 사는 각종 민물고기들이 도망치느라 정신이 없다. 물속에 잠겨있는 하체가 시원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상체에선 여전히 쉴 새 없이 땀이 흘렀다. 원래 온천에서 반신욕을 할 때 물에 잠긴 하체가 뜨겁고 상체가 차야 혈액 순환이 잘 된다고 했는데, 그 반대인 지금의 경우에도 잘 되는지 궁금해졌다. 얼핏 생각해 볼 때 차가운 것은 혈액 순환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듯하다.

그렇게 물길을 내려가다 미끄러져 개울에 주저앉는 산우들이 생겨났다. 무릎까지만 빠지려 했다가 상체도 물에 잠기자 ‘떡 본 김에 제사를 지낸다’고 헤엄을 쳐보는 산우들이 생겨났다. 이것은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동심을 찾는 계기가 됐다.

그런 탓에 점심식사 장소는 자연스레 헤엄을 칠 수 있는 물이 있는 곳으로 정해졌다. 평소에는 자녀들과 계곡을 찾아 아이들이 헤엄을 치는 것을 바라보던 그들이 스스로 아이가 되어 물속을 헤집고 다니게 된 것이다. 이런 곳에서는 ‘수영’이란 단어보다 ‘헤엄’이라는 단어를 쓰는 게 더 적절할 듯싶다. 보통 헤엄에는 개구리헤엄과 개헤엄이 있는데, 동심에 젖어들기엔 개헤엄이 딱 이었다. 헤엄을 치면서 성대모사로 ‘개소리’를 내며 헤엄치는 산우도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재밌어 나도 모르게 ‘정말 개 같다’라는 소리를 외칠 뻔했다.

▲ 아침가리는 물이 1급수라 속이 훤히 들여다보여서 얕은 곳으로만 충분히 이동할 수 있다.

나이만 먹었지 하는 짓이 영락없는 아이인 ‘키덜트(kidult)’들이 개헤엄 이후로 선택한 놀이는 ‘버들치 잡기’였다. 10cm 내외의 황갈색 민물고기를 잡으려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허사였다. ‘버들치가 널 잡겠다.’ 이런 말이 절로 나왔다.

이렇듯 풍광이 좋은 계곡에 머무니 원래 목적인 계곡 트래킹은 잊은 채 한동안 동심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우리가 자리를 털고 일어난 것은 오후 4시가 넘어서였다. 5시까지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집결지로 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아쉬움을 접고 다시 계곡 트래킹을 이어갔다.

아침가리 계곡은 개울 좌우로 길이 나 있어서 한쪽 길을 걷다가 길이 끊어지면 개울을 건너 건너편 길로 걸어가고, 다시 그 길이 끊어지면 다시 개울을 건너오는 식으로 내려간다. 간혹 길을 걷다가 개울에서 조금 멀어지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어떻게든 개울 쪽으로 길을 찾아 돌아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도 끝도 없이 산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

▲ 아직 외부인들의 발길이 많지 않아 아침가리에는 빼어난 풍광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 많다.
실제로 나도 여러 명의 산우를 인도해서 가다가 개울 쪽으로 빠지는 길을 놓쳐 산으로 하염없이 올라갔었다. 느낌 상 오르막을 넘어가면 개울을 다시 만날 것 같았지만, 가파른 고갯길을 오를수록 땀만 비 오듯 흐르고 개울 소리만 멀어졌다.

결국은 다시 돌아서 내려와야 했다. 내 뒤를 따르던 산우들에게 미안했다. 길을 되짚어 내려오다 보니 개울로 꺾어지는 길이 보였다. 단순히 흙이 무너진 곳으로 생각했던 곳에 바로 길이 있었다. 그때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았다. 아침가리의 계곡 길은 개울에서 멀어져도 10m 이상은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못된 길을 들어 산길을 올랐다가 왔기에 나는 거의 마지막에 집결지에 도착했다. 산우 중 한 명이 넘어져서 얼굴에 작은 상처가 나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두 무사했다. 이 정도면 성공적인 트래킹이었다.
버스 안에서 부산스럽게 젖은 옷을 갈아입으며, 산우들이 내년에 다시 오자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 안에는 내 목소리도 포함돼 있었다.

“내년에 올 땐 그물을 가져와야겠어.”

“그래, 고기 잡아 매운탕 끓이자!”

“버들치는 맛이 없어 식용으로 안 해. 잡아서 관상용으로 볼 뿐!”

실없는 농담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아침가리 계곡 트래킹의 여운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서이숙 배우
“산에서 얻은 활력, 무대에서 보여드리겠습니다”

배우에게 산행은 필수라고 생각해요. 연극 한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보통 하루 8시간이상 두 달간 맹연습을 해야 하거든요. 체력이 받쳐줘야 맡은 배역을 파고드는 집중력과 발성이 생기죠. 산길을 오를 때 발걸음에 맞춰 ‘들숨’과 ‘날숨’을 연습하면 폐활량이 커져서 긴 대사도 객석 끝까지 전달할 수 있는 힘이 생겨요. 또, 등산은 사람을 여유롭게 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마음속에 엉켜있는 것을 등산을 통해 벗어버리면 절로 품이 넉넉해지죠.

연극만 해오다가 최근 TV드라마에 처음 출연했는데 새로운 장르의 연기 경험은 아주 흥분되는 일이었어요. 테크니컬한 부분만 좀 더 익숙해지면 조금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9월과 11월에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데 산에서 얻은 활력으로 무대에서도 더욱 활기차고 여유로운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이기원 | 한국방송작가협회 드라마작가다. <하얀거탑>, <스포트라이트>, <제중원>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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