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엘라벤 클래식|백패커들의 축복, 북유럽 트레일
피엘라벤 클래식|백패커들의 축복, 북유럽 트레일
  • 글 사진 김진섭 네이쳐캠핑
  • 승인 2013.10.22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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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루나~셰브네카이세 ①

오후 5시 반. 스톡홀름 중앙역에는 스칸디나비아 최북단 나르비크행 야간열차가 긴 여정을 풀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 스웨덴의 황금 시즌에 트레일을 즐기기 위한 백패커들이다. 저마다 커다란 배낭에 폼 매트리스를 질끈 동여맨 건장한 백패커들 사이로, 우리 가족도 서둘러 기차에 올랐다. 2시간 남짓 걸리는 비행기와 시간상으로는 비교가 안 되는 야간열차지만, 숙소 비용을 줄일 수 있으며 아늑하고 낭만적인 느낌이 좋았다.

▲ 피엘라벤 클래식은 트레커들이 야영 장비를 배낭에 메고 약 110km의 거리를 걷고 캠핑하는 트레일 페스티벌이다.

미리 예약한 침대칸은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 깨끗한 시트가 덮인 가지런한 3개의 접이식 침대와 테이블, 전기, 세면대, 전용 샤워실까지 있어 부족함이 없다. 스웨덴 사람 특유의 디자인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멋진 열차는 세 식구인 우리 가족에게 안성맞춤이다. 기차에 들어가자마자 배낭을 풀어 놓고 샤워를 했다. 움직이는 기차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다니, 이만하면 기차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다. 돌아와 자리에 앉아있자니, 아직 시차 적응이 안돼서인지, 아내와 아이는 곧 잠이 들었다.

▲ 야간열차를 타면 스톡홀름에서 스웨덴의 최북단 도시 키루나까지 약 16시간이 소요된다.

기차는 스톡홀름을 출발하여 스웨덴의 동쪽 해안 도로를 따라 북으로 향한다. 북극에서 약 140km밖에 되지 않는 키루나까지는 한참을 더 달려야 한다. 낯선 바깥 풍경도 지루해질 즈음 나도 잠이 들었다 깨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반이다. 시차에 적응하지 못했기에 일찍 눈을 떠 차창을 내다보니 멀리 해가 뜨려 한다. 붉은 태양의 기운이 지나치는 숲 사이로 펼쳐진다. 순간, 차창에 서있던 나는 어쩔 줄 모르고 침대칸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들 일어나봐!” 아이는 꿈나라였지만, 침대에 누워 있던 아내는 아름다운 찰나의 순간을 말없이 함께 바라보았다.

▲ 새벽 4시, 열차에서 아내와 함께 황홀한 일출을 바라보았다.

카운트 다운과 함께, 출발!
아침 10시. 기차는 드디어 키루나에 도착했다. 부리나케 배낭을 메고, 트레일 등록 장소로 이동했다. 그동안 한국을 건너와 기차를 타면서도 별 느낌이 없었는데, 그렇게 고대하던 곳에 대한 실감이 이제야 나는 것 같다.

등록지에서 하이킹 패스와 지도, 쓰레기봉투를 받고, 배급해 주는 건조식과 가스를 챙겼다. 아비스코의 마지막 라인까지 부쳐주는 여분의 더플백도 맡겼다. 한국에서 라면, 비빔밥, 간식을 챙겨왔음에도, 아내는 부족할지 모른다며 건조식을 이것저것 담는다. 너무 많이 넣어 훨씬 무거워진 배낭을 다시 싸고 서둘러 니칼루옥타행 버스에 올랐다. 한 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니칼루옥타에서 오후 1시 출발을 위해 많은 이들이 기다리고 있다. 2천여 명이 참여하기에, 출발 시점은 3일간 총 9번으로 나눈다. 우리는 5번째 출발 그룹이었다.

▲ 등록을 위한 키루나의 사전 집결 장소.

▲ 총 7개의 체크포인트를 지날 때마다 하이킹 패스에 도장과 도착시간을 기록해야 한다.

체크포인트 텐트에 들어가니 나이가 지긋한 중년의 자원봉사 아주머니들이 하이킹패스를 체크하고, 아이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한다. “Good Luck!” 음식을 너무 많이 넣었는지 20kg 넘는 배낭이 어깨를 짓누른다. 첫 관문인 셰브네카이세 산장까지 어떻게든 가야 하는데, 오후에 출발해 18km를 소화하기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좁은 자작나무 길을 이어 트레일이 지속된다. 아내는 등산화 끈을 제대로 묶지 않았는지, 몇 번을 앉아서 다시 고쳐 맨다. 함께 야영을 많이 다녔지만 아내는 처음으로 50ℓ 배낭을 맸다. 미안한 생각이 들면서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이 배낭은 아내의 첫 배낭으로 내가 생일 선물로 몇 년 전 사준 것이다. 아내의 배낭 속에는 텐트를 제외한 우리의 모든 야영장비가 실려 있다. 그나마 경량 장비로 준비했지만 장기간 여행에 익숙하지 않아, 머리 위로 올라온 아내의 배낭 헤드 부분이 버거워 보인다.

▲ 노르웨이의 드라이텍사 제품 건조식량. 뜨거운 물을 붓고 10분간 기다리면 된다. 전투식량과 비슷한데, 진공포장을 해서 부피를 많이 줄여 놓았다. 식량은 3코스인 셀카 산장과 5코스인 알레샤우레 산장에서 보충할 수 있다.

▲ 6km쯤 지나 라드쇼야우레 호수에 들러 유명하다는 순록버거를 먹었다. 너무 커서 반도 못 먹었는데, 기대했던 것만큼 특별한 맛은 아니었다. 라드쇼야우레 호수의 전경.

헉헉대며 한참을 걷고 있는 우리에게 계곡에 앉아 쉬고 있던 누군가가 따뜻하게 갓 내린 커피 한 잔을 건네며 눈인사를 한다. 독일인 커플 플루이언과 마이크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참가한다며 우리를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이날의 첫 만남 후 우리는 결승점에서 다시 만났고, 서로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한숨 돌린 뒤, 배낭이 어깨와 골반에서 자리를 잡아갈 때쯤 속도를 냈다. 트레일 동안 개와 함께 걷는 백패커들을 제법 많이 봤다. 여성이 특히 많았다. 개들 역시 저마다의 식량을 등에 동여매고 주인은 목줄을 잡고 함께 길을 간다. 나이 지긋한 중년의 여성 백패커는 시커먼 두 마리의 개와 함께 트레일을 나섰는데, 뒤쪽에서 소리가 나 돌아보니, 내리막길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 나무 데크길은 소박하게 이어져 있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헤치지 않는다.

목줄을 끌다보니 트레킹폴을 잡지 못해서인 듯하다. 부축해 일으켜 세우고, 먼지를 털며 괜찮냐고 물으니, 고맙다고 인사했다. 참 대단해 보이는 스웨덴인들이다. 여자들도 70~80ℓ 배낭을 너끈히 소화하며, 통풍용 사이드 지퍼가 열리는 스칸디나비안 스타일의 트레킹 팬츠를 노련하게 입고 걷는다. 삶에 깊이 녹아 있는 아웃도어가 느껴진다.

▲ 야생 블루베리는 새콤하고 물이 많아 걷다가 갈증을 달래는 데도 좋다.

트레일, 사람과 자연의 아름다운 공존의 표식
자작나무 숲을 지나 길을 간다. 트레일 내내 좁은 데크가 자주 이어진다. 물이나 돌 때문에 험한 길에서 안전을 위해 혹은 방향을 잡아주기 위해 설치된 것이다. 발바닥이 겨우 들어찰만한 좁은 널빤지 두 줄을 못으로 가볍게 박아낸 게 전부인 소박한 길이다. 데크를 걷는 동안 사뿐히 걸으며 숨을 돌릴 수 있어 반갑다. 좁은 길 바로 옆으로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담겨 있다. 최소한의 길만 내 자연을 지키는 그들만의 방식이 엿보인다.

7시가 넘었건만, GPS를 보니 셰브네카이세 산장은 아직 4km 이상 남아있다. 첫날이라 모두 힘들어하고, 배낭이 몸에 자리 잡는 데도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그만 가기로 하고 적당한 야영지를 찾아 텐트를 피칭했다.

▲ 피엘라벤 클래식의 숙박은 캠핑으로 해야 하며 쓰레기는 결승점까지 가져와야 한다.

에어매트를 펌프에 물리고, 두어 번 불고 나니 현기증이 난다. 롤 매트리스를 가져올 걸 후회하기도 잠시, 바닥 경사에 이끼가 푹신해 연신 넘어졌다. 저녁을 간단히 먹고 누웠다. 웬만해서는 음식을 가리지 않는 나도 몇 수저 뜨지를 못했다. 푹 쉬고 내일 아침엔 든든히 먹자며 서둘러 잠을 청했다.

밤에는 비가 제법 내렸나 보다. 텐트를 두들기던 빗소리에 새벽 2시 즈음 깨어 텐트 문을 열어보니, 위도 때문에 여름엔 거의 백야에 가까워 한밤중이어도 그리 어둡지가 않다. 저 멀리 산들이 어슴푸레 보인다. 비가 그쳐있다. 침낭에 기어들어가 다시 잠을 청하며 내일은 비가 오지 말아야 할 텐데 생각했다. 일찍 잠이 깨어 텐트 밖을 나섰다. 아래 계곡에 내려가 시원한 물 한 병을 채운 뒤, 아이를 깨우고 아침을 준비했다. 아이에게 정수기 사용법을 알려주고 우리의 제일 중요한 물 담당으로 아이를 임명했다.

▲ 간밤에 내린 비로 젖은 텐트.

물이 이렇게 깨끗할지 몰랐다. 한국에서 계곡물을 그대로 마신다는 건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라 처음에는 휴대용 정수기를 돌렸지만, 이곳의 물은 어느 생수보다 깨끗하다는 걸 깨닫는 데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듬뿍 마시고도 작은 배탈 조짐 하나 없었으니 몸이 증명해준 셈이다. 어딜 가나 넘쳐나는 깨끗한 계곡물은 그야말로 이 땅에서 누리는 백패커들의 축복이다. 물맛은 신선하고 색은 맑고 투명하다. 우리는 나중에는 강물도 떠먹는 수준으로 터프해졌다.

앞 텐트의 헬싱키에서 온 존이 인사를 건넨다. 10번 넘게 이곳을 왔다는 그가 멀리 수려한 산들이 올려다 보이는 이곳이 첫날 캠프로 명당이라 해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그는 트레일 코스 외에 산 안쪽의 다른 계곡과 정상을 오를 계획이라 했다. 노련한 그에게 날씨를 물었다. 스톡홀름에서부터 어제 밤에 내린 비가 걱정이 되서다. 그는 자신 있게 2일은 맑고, 3일은 비를 맞게 될 것이라고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의 예견은 적중했다. 셰브네카이세 산장까지 가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대신 오늘 걸어야 할 양도 많아졌다. 30km를 넘게 걸어야 하는 오늘은 우리에게 제일 힘든 날이 될 것이다.

▲ 휴대용 정수기를 필요 없게 한 투명하고 깨끗한 계곡물.

피엘라벤 클래식

스웨덴의 아웃도어 업체 피엘라벤에서 주최하는 트레일 행사로 올해 9회째를 맞는다. 대회는 매년 8월 초순에 열리며, 초기에는 참가자가 400여 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2,000명 이상이 참가하는 스웨덴의 대표적인 트레일 페스트벌이다.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인들이 참가해왔으나, 점점 다양한 국가의 참가자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인이 참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4개국에서 온 트레커들은 저마다의 야영 장비를 배낭에 메고 니칼루옥타에서 아비스코 국립공원까지의 약 110km의 거리를 걷고 캠핑하며, 아름답고 독특한 스웨덴 북부의 자연을 생동감 있게 경험할 수 있다. (www.fjallraven.com/classic)

▲ 트레일 동안 개와 함께 걷는 백패커들을 많이 봤다. 개들 역시 저마다의 식량을 등에 동여매고 있다.
ㆍ참가 방법 : 올해는 11월 1일 피엘라벤 홈페이지에서 접수를 받기 시작한다. 3일간의 스타팅 그룹 중 출발 일정을 선택하고, 신청 승인 후 참가비를 송금하면 된다. 참가비는 성인 1,800크로나, 12~16세 청소년 1,100크로나, 12세 미만 어린이 400크로나다. 환율(1크로나≒168원)을 고려해 계산하면 성인의 참가비용은 30만원 정도다. 등록 후 홈페이지의 스타트 리스트에서 명단을 확인할 수 있다.
ㆍ이동 방법 : 스톡홀름에서 키루나까지 비행기나 철도를 이용할 수 있다. 비행기는 약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철도를 이용할 경우 야간열차는 16시간 정도 걸린다. 열차를 이용할 경우 긴 거리를 감안해 침대칸을 추천한다. 키루나에 도착하면, 대회 관계자를 따라 전용 버스로 시작점인 니칼루옥타까지 이동한다. 야간열차 예약 www.sj.se
ㆍ규칙 : 숙박은 캠핑으로 해야 한다. 쓰레기는 결승점까지 가져와야 한다. 총 7개의 체크포인트를 지날 때마다 스탬프를 받아야 한다. 이동 시간에 관계없이 완주 시 메달이 주어진다.
ㆍ필요 장비 : 배낭, 텐트, 매트리스, 침낭, 스토브 등의 개인 야영 장비와 레인 재킷, 보온을 위한 의류는 필수다. 중등산화와 트레킹 폴을 쓰는 것이 좋다. 건조식과 가스는 출발지와 두 곳의 체크포인트에서 제공되며, 물은 구간마다 흐르는 깨끗한 계곡물을 마실 수 있다.

코스
1 니칼루옥타Nikkaluokta → 셰브네카이세 산장Kebnekaise Mountain Station - 19km
2 셰브네카이세 산장Kebnekaise Mountain Station → 싱이 산장Singi Mountain Hut - 15km
3 싱이 산장Singi Mountain Hut → 셀카 산장Sα¨lka Mountain Hut - 12.5km
4 셀카 산장Sα¨lka Mountain Hut → 셰크샤Tjα¨ktja - 14km
5 셰크샤Tjα¨ktja → 알레샤우레 산장Alesjaure Mountain Hut - 12.5km
6 알레샤우레 산장Alesjaure Mountain Hut → 키에론Kieron - 18km
7 키에론Kieron → 아비스코 산장Abisko Mountain Station - 17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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