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익어가는 소리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캠핑장의 수는 얼마나 될까? 3~4년 전만 해도 몇 백 단위였으나 이제는 1,000개를 훌쩍 넘어선다. 하지만 정확한 수치는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에선가 캠핑장을 조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새로운 캠핑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캠핑장 주변의 돌아볼 곳과 맛난 음식도 소개하니 즐거운 캠핑 여행에 보탬이 되리라 생각한다.
▲ 다릿재캠핑장에 밤이 찾아왔다. |
아침저녁으로 벌써 날씨가 제법 차갑다. 가을이 성큼 다가온 느낌인데, 가을 느낌이 도시보다 한층 더 물씬 풍기는 곳이 있다. 깊은 산 속 캠핑장이다. 아직 나뭇잎이 붉게 물들진 않았지만 캠핑장 곳곳의 강아지풀과 잠깐 발을 담그기만 해도 서늘해지는 계곡, 과수원에서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에 이미 가을은 깊었다. 이보다 더 캠핑하기 좋은 날이 또 있을까. 이 가을을 오롯이 즐기고 싶어 가벼운 장비 몇 개 챙겨 캠핑을 떠났다. 차를 달려 향한 곳은 충주의 다릿재캠핑장이다. 가을 풍경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서였다.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충주호의 풍경도 궁금했고 고구마와 사과가 익어가고 있다는 소식도 한몫했다.
▲ 캠핑장 가을 소경 하나. 살짝 노랗게 익은 강아지풀 어루만지기. |
▲ 미니멀 캠핑이니 조명도 최소로 줄여 분위기를 살렸다. |
▲ 캠핑장 가을 소경 다섯. 녀석도 캠핑을 좋아하나보다. |
전망이 좋을 것, 소나무 그늘이 좋을 것
차를 달려 다릿재캠핑장에 도착했다. 평일이라 한적한 캠핑장, 가장 먼저 할 일은 사이트 정하기. 어디에 텐트를 칠 것인지, 기준이 필요하다. 타프가 있다면 모르되, 없으니 커다란 나무가 있는 곳을 골라 그늘을 누린다. 캠핑장 앞산의 이름이 상산인데, 조림된 소나무가 주는 조망이 좋다. 되도록 그 풍경이 잘 보이는 사이트를 잡기로 했다. 캠핑장 한가운데를 흐르는 계곡은 여름이 아니니 꼭 가까이 할 필요는 없다. 화장실과 취사장은 가까운 것이 좋으나, 사람들이 오가며 지나는 길목이 아니어야 한다.
오붓한 분위기를 위해 편의시설은 좀 멀리 두기로 한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으니 물이 흐르는 경로는 피해야 한다. 사이트는 가장 지대가 높은 곳의 가장 구석, 키 큰 소나무 밑으로 결정. 장소를 잡고 나니 배가 출출하다. 사실 오는 길에 휴게소든 음식점이든 들러 사먹으려 했으나 참았다. 주인장의 전화 때문이었다.
▲ 소나무 아래 신선들 장기 둘 법한 반석이 있었다. 사이트를 여기로 잡은 결정적 이유. |
▲ 비 갠 후 나온, 바라만 보아도 개운한 가을 하늘. |
“오고 계시죠? 오셔서 식사나 함께 하시죠.”
“아, 아닙니다. 저희 신경 쓰지 말고 드세요. 점심시간 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천천히 오세요.”
“아, 예. 고맙습니다. 오후에 뵙도록 할게요.”
주인장 김태영 씨의 목소리는 가라앉지도 들뜨지도 않았고, 정겨웠다. 사이트를 정하고 주인장 내외가 머무는 한옥에 드니 작은 상을 내왔다. 갓 지은 밥과 국, 그리고 나물 반찬들. 염치 불구하고 밥과 국을 더 청해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 캠핑장 가을 소경 둘. 가을 햇살에 잘 여물고 있는 사과. |
▲ 가을밤과 비와 캠핑은 제법 잘 어울린다. |
미니멀 모드로 시간을 아끼자
다시 돌아온 사이트. 배낭을 풀었다. 배낭에서 나온 짐들을 차례로 늘어놓으니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보여도 2박 3일 동안 의식주를 책임질 장비들이 빠짐없이 모였다. 이 장비들을 배낭 하나에 담았으니, 자동차 트렁크에 차곡차곡 빽빽하게 ‘테트리스 된’ 장비들을 내릴 때에 비해 짐 정리는 훨씬 간단하고 담백하다.
이제 세팅의 시간. 알파인 텐트 2동을 치는 데 남자 1명 여자 2명의 손으로 정확히 15분 걸렸다. 좀더 익숙해지면 10분도 안 걸리겠다. 매트리스는 자충식이어서, 침낭은 펼쳐 두면 복원력이 살아나므로 품을 아꼈다. 테이블과 의자라고 해봐야 2~3분이면 족하다. 풀세팅 모드에 비해 1시간 반은 아낀 듯하다. 뿌듯한 건 절약한 시간보다 고스란히 남은 에너지다.
▲ 작정하고 분위기 한 번 잡아봤다. 이게 가을에 캠핑을 떠나는 이유다. |
▲ 늦은밤 빗소리에 깨 텐트 밖에 나왔다가 물끄러미 들여다 본 풍경. |
미니멀 캠핑은 장비를 줄여 자연과의 거리를 좁히기도 하지만, 캠핑을 위한 준비 시간도 절약해 일상에서 바로 캠핑의 세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한다. 이제 남은 건 오직 캠핑을 즐기는 일뿐, 약간의 독서와 가을을 즐기기 위한 산책을 하기로 했다. 사이트 바로 위에 키 큰 소나무 두 그루가 섰고, 그 사이로 평평한 반석이 있다. 여기에 매트리스 펴고 누워 잠시 독서와 낮잠을 즐겼다.
캠핑장 주변에는 김태영 씨 내외가 가꾸는 텃밭이 있어 철마다 다른 작물들을 맛볼 수 있다. 유기농이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두말할 것 없는 유기농이다. 이처럼 텃밭을 갖춘 캠핑장은 미니멀 캠퍼들에게 참 고맙다. 마트보다 자연의 향기를 물씬 느낄 수 있는 데다, 먹거리를 현지조달할 수 있으니 말이다. 단, 먹을 만큼만 캐도록 하자.
▲ 캠핑장 가을 소경 셋. 나풀나풀 날아다니는 나비. |
▲ 캠핑장 가을 소경 넷. 뒤늦게 꽃을 피운 해바라기. |
'투둑투둑' 이튿날 이른 새벽 텐트 플라이를 두들기는 가을 빗소리는 제법 낭만적이었다. 날이 밝은 뒤부터 해가 질 때까지 겨우 숨 돌릴 틈만 주고 내리던 장대비, 텐트 사이로 건너편 능선의 소나무와 물안개를 볼 수 있어서 꽤 좋았다. 빗방울 굵어지자 빗줄기는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빗소리에 부침개 생각이 간절해 감자와 부침가루 사러 가려는데, 전날 점심을 챙겨주었던 주인장이 “생각 있으면 감자전이나 좀 맛보시려우?”하며 텐트를 찾았다. 덕분에 우중캠핑은 낭만적이기도 했지만 맛깔스럽기도 했다.
마지막 날은 해가 쨍하게 떴고, 궂은 날은 궂은 대로, 맑은 날은 맑은 대로 나름 괜찮은 가을의 두 얼굴을 즐길 수 있었다. 자연 쪽으로, 가을 속으로 한 뼘쯤은 다가선 것 같다.
▲ 캠핑에 기타라면, 미니멀 캠핑에는 우쿨렐레. |
▲ 배낭 하나에 꾸려온 캠핑 장비들. 사흘 동안 부족함이 없었다. |
다릿재농원 캠핑장
제천과 충주를 연결하는 다릿재 터널 근처에 있는 캠핑장. 리빙쉘 60동 정도를 칠 수 있는 규모로, 파쇄석이 깔린 A~E 사이트로 이루어져 있다. 취사장과 화장실, 샤워장 등 부대시설이 깨끗하고 좋다. 캠핑장 가운데로 시원한 계곡이 흐르고 있고 캠핑장 건너편으로 보이는 상산 소나무의 운치가 좋다. 부근에 사과 과수원이 있고 고구마, 옥수수 등 농작물도 재배하고 있어 체험 활동이 가능하다.
홈페이지 : cafe.naver.com/darijaefarmcamping
주소 : 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 송강리 765-4
문의 : 010-5344-7412 / 070-4107-7412
이용요금 : 4인 기준 28,000원(전기 포함), 성수기(7.15~8.30) 35,000원.
이용시간 : 12시 30분~이튿날 12시 (탄력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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