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 Story | 폭스바겐
Brand Story | 폭스바겐
  • 글 서승범 기자 | 사진 폭스바겐
  • 승인 2013.09.25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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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치백으로 유럽을 점령하다

▲ 전쟁 끝나고 나오기 시작한 골프의 초기 모델들.

독일 볼프스부르크에 본사를 두고 있는 폭스바겐은 유럽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이자 거대 자동차 그룹이다. 유럽을 비롯해 아시아 및 아프리카, 남미 등에 48개의 생산공장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있다. 수출국만 해도 150여 나라. 전 세계에 퍼져있는 폭스바겐 공장에서, 약 36만 명의 직원이 매일 2만5천400대가 넘는 차를 만들고 있다. 현재 폭스바겐 승용차와 상용차, 아우디, 벤틀리, 부가티, 람보르기니, 스코다, 세아트, 스카니아, 포르쉐 등 열 개의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으며 각 브랜드들은 각기 고유의 특성을 유지한 채 시장에서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 비틀 생산 2천만 대 기념. 1981년.

닥터 포르쉐
폭스바겐은 1930년 독일 남부의 슈투트가르트에서 페르디난드 포르쉐 박사가 ‘타입 8 반더러’를 완성하면서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 당시 독일 통치자였던 히틀러는 모든 국민이 자동차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개인연구소를 운영하던 포르쉐 박사에게 ‘어른 두 명과 어린이 세 명이 탈 수 있으면서 연료 1리터로 14.5킬로미터 이상을 달릴 수 있어야 하고, 정비는 쉬우면서도 가격은 1천 마르크 이하’인 차를 설계해달라고 부탁한다. 그야말로 꿈의 차, 즉 드림카였다.

1934년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었고, 공장까지 세워졌다. 공장기공식에 참석한 히틀러는, 국민차에 ‘카데프(KdF)’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즐거운 차를 통한 힘’이라는 뜻으로 노동자를 대변하는 나치운동인 ‘Kraft der Freude’의 앞글자를 따 명명했다. 하지만 페르디난드 포르쉐 박사는 이 이름을 싫어했다. 그는 차의 비공식 명칭인 폭스바겐을 자연스럽게 선호했다.

▲ 비틀 프로토타입. 1939년.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양산되지 못했다.

▲ 100만 번째 비틀이 나왔다. 1955년.

하지만 1938년 프로토타입이 도로를 달리고 있을 즈음, 대중들은 이 차를 비틀이라고 불렀다(그 해 <뉴욕 타임즈>에서 비틀이라는 이름이 언급되었다-편집자주) 발표 이후 33만 대가 예약되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양산에는 실패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던 것. 공장에서 조립 중이던 국민차는 급히 군용차로 변경되었고, 독일군과 나치 친위대를 태우고 전장을 누비게 된다.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퀴벨바겐과 슈빔바겐 등이 그것이다.

▲ 단종 이후 다시 생산에 들어간 뉴 비틀. 1998년

국민차의 염원은 마침내 결실을 맺는다. 전쟁이 끝난 뒤 연합군의 배려로 공장은 다시 세워졌고, 차가 나오기 시작한 것. 공냉식 수평대향 4기통짜리 1.1리터 엔진으로 최고출력 25마력을 내는 뒷바퀴굴림 모델이었다. 미국시장에도 진출했으나, 미국이라는 나라에 어울리지 않는 너무 작은 차체와 소극적인 판매 전략으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초기 폭스바겐의 한 해 판매대수는 1천 대를 넘지 못했다. 하지만 1950년대 중반 이후 급격히 달라졌다. 독일에서 주둔했던 미군들이 이 차를 가지고 귀국하면서 ‘비틀(딱정벌레)’이라는 애칭을 붙였고, 귀여운 디자인은 미국시장에서도 서서히 먹히기 시작했다.

비틀의 판매 호조에 힘입어 폭스바겐은, 1969년 아우토 유니온(아우디의 전신)을 손에 넣었고, 1972년에는 누적생산 1천500만7천34대를 기록함으로써 포드 T형의 단일차종 최다생산기록을 넘어섰다. 한편, 비틀의 높은 인기를 이용한 개조 모델도 선보였다. 1955년 나온 카르만 기아가 대표적인 예. 1961년에는 1.5리터 엔진을 얹은 1500을 발표했고, 1965년에는 1600L도 선보였다.

▲ 얼마나 많은 사람이 비틀에 탈 수 있을까?

▲ 마이크로버스. <무한도전>에 잠깐 나오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비틀과 골프
1978년. 귀여움의 아이콘으로 인기를 모았던 비틀은 아쉬움을 남긴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총 누적생산대수는 1천900만 대. 비틀은 40년 동안 거의 같은 디자인을 유지했으나 메커니즘과 편의성을 계속해서 개선, 단종될 당시에는 초기모델과 같은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용모도 용모지만 끊임없는 품질개선이 인기요인이었다. 비틀이 단종되자 독일에서는 차에 검은 리본을 달고 ‘비틀, 너를 영원히 사랑해’라는 문구를 써 붙이고 생산 재개를 요구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 2013년 ‘카 오브 더 이어’에 뽑힌 골프.

1998년 뉴 비틀이 등장했다. 뉴 비틀은 골프 메커니즘을 이용해 만든 앞바퀴굴림차다. 둥근 루프라인과 오버펜더가 초대 비틀을 닮았지만 속은 완전히 달라졌다. 엔진 역시 골프에서 가져온 2.0리터 115마력과 1.9리터 디젤터보를 얹고 수동 5단 혹은 자동 4단과 짝을 이루었다. 그리고 2012년 스포티한 디자인의 더 비틀이라는 이름을 달고 풀모델체인지 되었다.

폭스바겐은 1970년대 들어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에 새로운 타입의 모델을 만들기 시작했다. 비틀의 정신을 이어받으면서도 현대적인 모델로 등장한 것이 1973년의 파사트와 1974년의 골프다. 파사트는 1974년 한 해 동안 13만3천 대가 판매되었다. 1976년에는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랐으며 당시 100만 대 판매를 돌파하기도 했다. 1천500만 대 돌파를 거쳐 현재 7세대까지 이어오고 있다.

▲ 미국 맨하탄에 모습을 드러낸 업! 느낌표를 항상 붙여야 한다.

▲ 1리터로 111.1킬로미터를 달리는, 연비 종결자 XL1. 양산에 들어간다.

비틀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모델 중 하나가 골프다. 120여 나라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1974년 1세대 모델 출시 이후 현재의 7세대에 이르기까지 무려 3천만 대 이상 팔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폭스바겐=골프’가 성립될 정도다. 지난 40년 동안 골프 디자인은 정교해졌지만 결코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 골프 디자인의 DNA인 ‘지속성’은 계속해서 이어져오고 있는 것. 골프를 대표하는, 활시위를 당긴 듯한 모습의 C필러 등 누가 봐도 골프임을 알 수 있는 요소를 지니고 있다. 시대를 초월한 디자인 영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 특히 4세대 골프는 폭스바겐 그룹 디자인 총책 하머트 바쿠셰(Harmurt Warkus)의 지휘 아래 폭스바겐 고유의 디자인 DNA를 완성, 골프 스타일 아이콘의 표본이 된 모델이다.

▲ 비틀은 스포티한 디자인의 ‘더 비틀’로 다시 태어났다.

시로코는 골프보다 몇 달 앞서 세상에 나왔다. 1955년부터 1974년까지 생산되면서 당시 최고로 인정받았던 2+2 스포츠쿠페이자 컨버터블이었던 카만 기아의 후속모델로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디자인하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 밋밋하지만 결코 심심하지 않은 투아렉.

럭셔리 & SUV
2002년, 대중지향에서 럭셔리로 보폭을 넓히기 위해 럭셔리 대형세단 페이톤을 출시했다. 폭스바겐 최초의 대형 SUV로 강력한 오프로드 성능과 세련된 온로드의 감성을 갖추면서 SUV의 지각변동을 일으켰던 투아렉이 나왔던 시기도 2002년. ‘양의 탈을 쓴 늑대’라는 표현처럼, 다소곳한 모습과는 달리 괴력으로 그 동안의 SUV의 절대강자 레인지로버와 ‘맞짱’을 뜨기도 했다.

2007년 데뷔한 티구안은 단순히 멋진 외관을 넘어서 미적인 가치와 성능적인 만족도를 모두 충족시키는 폭스바겐의 다이내믹 컴팩트 SUV. 2008년에는 CC를 발표했다. 스타일을 중시하는 고객들에게 전통적인 세단의 새로운 대안으로, 비즈니스를 위해 운행이 많은 고객들을 위해서는 새로운 비즈니스 세단으로 주목 받은 컴포트 쿠페로, 쿠페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 세상을 바꾼 1세대 골프.

폭스바겐은 1982년 스페인의 세아트, 1990년 체코의 스코다를 인수하면서 멀티 브랜드 전략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다시 1998년 부가티와 람보르기니, 벤틀리를 손에 넣었고, 그룹 자체에서 경차부터 최고급 세단, 클래식 스포츠카, 그리고 수퍼카까지 아우를 수 있는 회사가 되었다. 기존의 상용차 부문 외에 스웨덴 스카니아 AB(Swedish Scania AB) 사업에도 함께 참여, 대형트럭 분야로까지 사업을 넓혀 명실공히 전방위 자동차 그룹이 되었다.

폭스바겐(Volkswagen)이라는 브랜드 이름 자체가 ‘국민차’라는 뜻이다. 폭스바겐이라는 브랜드는 가장 개성적이고 개방적이며 인간적인 브랜드로, 가식적인 화려함은 없다. ‘놀라운 완벽함’, ‘끊임없는 혁신’, 일생의 동반자’, ‘인류와 환경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네 가지 핵심가치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는 폭스바겐. 브랜드 슬로건 또한 자동차 그 자체를 의미하는 ‘다스 아우토(DAS AUTO)’로 자동차의 본질에 충실하고 있다.

▲ 2012 다카리랠리를 뛰고 있는 투아렉. 이 대회를 마지막으로 폭스바겐은 다카르 랠리에서 철수했다.

<폭스바겐 해치백 3총사>
전세계를 해치백으로 뒤덮으려는 야심?

Golf, 7대손 데뷔시킨 폭스바겐 아이콘
1974년 데뷔 이후 3천만 대 넘게 판매된 베스트셀러 중의 베스트셀러. 세대가 바뀔 때마다 다른 자동차 메이커들의, 해치백 벤치마킹 대상이 된다. 골프는 이미 1세대부터 GTI, D(디젤엔진), GTD(디젤터보), 등 다양한 라인업으로 나왔다. 특히 1979년에 처음 출시된 골프 카브리올레는 당대 오픈카 중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현재 모델은 7세대.

Scirocco, 새로운 디자인과 놀라운 성능
1세대 시로코가 디자인적인 측면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복서엔진과 리어엔진 시대가 저물었음을 알려준 모델이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했다. 1985년 7월 1.8리터 엔진이 올라간 GTI/GTX 모델은 당시 꿈의 속도로 여겨졌던 시속 200km를 넘어서 최고속도 208km를 기록했다. 1992년 2세대로 막을 내린 뒤, 2008년 3세대로 다시 태어났다.

Polo, 형들에 꿀리지 않는 고집 있는 막둥이
폭스바겐 해치백 삼형제 중 막내. 골프에 버금가는 운전재미와 ‘오리지널 저먼(Original German)’을 내세운 폭스바겐 특유의 역동적인 드라이빙 감성, 아우토반을 달릴 때 그 진가가 더욱 발휘되는 탄탄한 주행성능과 밸런스, 그리고 동급최고의 안전성과 품질, 실용성 등 뭐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었다. 5세대에 이르기까지 약 1천600만 대 이상 오너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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