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은 편리하자고 쓰는 거고, 아날로그는 행복하자고 누리는 거다
시간이 돈이고, 효율성이 생명인 요즘 세상에 이러한 편리함을 거부할 도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피곤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을 내어 짐을 싸들고 캠핑을 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숲이 흔들릴 때마다 햇살과 바람이 교차하는 캠핑장에서 듣는 음악, 보는 책은, 설령 파일 형태라 해도 마음이 조금은 더 여유롭지 않습니까. 가끔은 콧구멍에 바깥바람을 쐬어주어야 팍팍한 일상이 견딜 만해지듯, 우리의 ‘디지털 라이프’에도 가끔 공백을 만들어 주어야 효율이 피곤 아닌 효율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 성능 좋고 똑똑한 기기들 ‘덕’에 저는 조금 더 둔해졌습니다. 시계 알람이 울지 않으면 잠을 깨지 못하고, 캘린더 알람이 알려주지 않으면 약속과 일정이 까마득합니다. 앨범 한 장의 음원을 전부 사도 듣는 건 한두 곡, 나머진 내세를 기약해야 할 판입니다. 도서관의 좋은 자료는 사진을 찍어서 보관해두지만, 사진을 확인해 수첩에 적어두지 않으면 아마 휴대전화 수리하면서 사라질 것입니다. 아, 민감해진 것이 하나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곁에 없을 때의 불안감. 물론 급한 전화가 없는 것을 보면 불안감도 근거 없는 것입니다.
디지털은 아날로그가 가진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나왔을 테고, 그 한계란 아마도 효율성일 것입니다. 보다 많은 정보를 보다 간단하고 쉽게. 덕분에 우리는 필요한 정보를 필요한 순간에만 호출하면 됩니다. ‘덕분에’ 필요한 순간이 지나면 정보는 다시 0과 1로 치환되고, 정보의 의미와 흔적은 금세 휘발되어 우리 몸과 머리 그리고 마음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요즘, 캠핑하기 좋지요?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궂으면 또 궂은 대로 캠핑의 맛이야 다 다르지만, 이즈음의 캠핑은 거부하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겁나게 많은 정보를 뒤로 하고 온 캠핑장에서 뭐가 제일 좋으신가요? 저는 신록의 빛과 그 아래 그늘, 그리고 그늘을 슬쩍 흔들고 가는 바람입니다만…. 이 셋이 어우러지면 전 아주 환장합니다.
“디지털은 잊기 위함이고, 아날로그는 간직하기 위함”이라고 한 건 로버트 폴리도리Robert Polidori입니다. 십분 이해하고 공감하지만, IT에서 독립할 가능성도 의지도 없는 저는 ‘디지털은 편리하자고 쓰는 거고, 아날로그는 행복하자고 누리는 거다’ 정도로 정리했습니다. 간혹, 편리와 행복을 혼동합니다. 거꾸로 비효율을 불행으로 생각하기도 했고요. 이제는 그러지 않을 생각입니다.
인사가 많이 늦었습니다. 이번 호부터 이 캠핑 잡지를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그대의 캠핑이 간직할 만한, 누릴 만한 캠핑이기를 기원합니다. 그리 되도록 돕겠습니다.
저작권자 © 아웃도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