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 트레킹ㅣ“몽라 고개의 질투, 결코 잊지 못할 거야”
5060 트레킹ㅣ“몽라 고개의 질투, 결코 잊지 못할 거야”
  • 글 사진 김동규 경희대 산악부OB
  • 승인 2013.05.29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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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쿵리~칼라파타르~에베레스트 BC~촐라패스~고쿄리…16일 걸려

▲ 촐라패스를 넘기 전 종라에서 바라본 아마다블람.

에베레스트 트레킹은 총 16일 일정 중 10일이 4000m 이상 고지대다. 그 중에서도 고락셉은 5000m가 넘는다. 일정을 효율적으로 짜야 끝까지 완주할 수 있다.
고소증 때문에 포터가 있으면 좋겠지만 당초 계획대로 혼자서 진행했다. 대신 지리(Jiri)에서 육로로 올라가는 길은 하루에 고도 1900m를 올라야 하는 힘든 구간도 있으므로 생략하기로 한다. 트레커가 본 게임을 하기 전 체력소모를 크게 하지 않기 위함이다.

16인승 비행기는 고도를 많이 낮추지 않고도 루크라 공항에 착륙한다. 구름이 낮게 깔려있어 냉기가 엄습한다. 최소한의 짐만 챙겨 혹시나 방한장비를 빠뜨린 건 아닌지 걱정도 밀려온다.
남체는 커다란 도시로 트레커들의 전진기지이자 낙오된 트레커가 일행을 기다리는 곳이다. 에베레스트와 하루라도 빨리 조우하고픈 마음을 억누르며 고소적응을 위해 남체에 하루 더 머무르기로 했다. 로지 벽에 기대 탐세르쿠를 바라보며 여유롭게 일광욕을 즐기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다.

▲ 칼라파타르에서 만난 트레커들. 뒤에 보이는 봉우리가 에베레스트다.

에베레스트가 손짓하는 길목
이곳저곳에서 출발한 트레커들은 오목한 남체를 완전히 올라서면 한 길로 모인다. 산 중턱 길 위에서 부터는 줄지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인부들이 길 곳곳을 확장하고 있어 건조한 길은 트레커의 분주한 발걸음에 맞춰 먼지가 일어난다.

언덕에 올라서자 예고도 없이 길 오른편 골짜기에 설산이 나타난다. 동쪽으로 아침햇살을 받아 그늘진 산 위로 아마다블람이 오른쪽 어깨와 머리를 내민다. 정면에는 눕체와 로체가 만들어 놓은 장막위로 에베레스트가 살짝 고개를 내민다.

▲ 남체에 올라서면 왼쪽으로 아마다블람, 오른쪽으로 로체를 볼 수 있다. 그 위로 에베레스트가 살며시 보인다.

▲ 추쿵을 향하는 중 뒤돌아보면 타보체(6495m)가 보인다.

텡보체(3860m), 딩보체(4410m), 추쿵(4730m). 하루하루 나아감에 따라 아마다블람은 점점 크게 다가온다. 그동안 로체는 에베레스트를 완전히 가리고 아일랜드피크가 평평한 로체 빙하 위에서 서서히 떠오른다. 추쿵리는 5550m로 안나푸르나, 랑탕, 에베레스트에 이르는 트레킹 경로 중 일반 트레커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다.

다시 딩보체를 지나 두클라를 향한다. 두클라에서 가파른 경사를 힘겹게 올라서면 쿰부빙하의 입구다. 한 층 전망이 좋아진 곳에서 감탄이 절로 나오지만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다 희생된 이들을 위한 추모비가 이곳을 찾은 트레커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다큐멘터리 <희박한 공기 속으로>의 등장인물 ‘스콧 피셔’를 추모하는 바위도 한편에 서 있다.

고락셉(5140m)은 에베레스트 트레킹 중 가장 고지대에 위치한 숙박지이다. 고락셉에서 칼라파타르(5550m) 정상에 이르는 시간은 2시간 정도다. 이곳에서 정면으로 공룡처럼 떠오른 푸모리(7165m)와 오른쪽으로 에베레스트를 가장 크게 바라볼 수 있다.

▲ 팍딩 마을 초입.

▲ 오목한 곳에 자리한 남체는 트레커들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히말라야의 마지막 관문
에베레스트는 이곳의 군왕이다. 눕체와 로체가 군왕 앞을 지키고 있으며 에베레스트 서쪽 등성은 군왕과 한 몸이 돼 호위하고 있다. 방문자는 호위병의 발치인 쿰부 아이스 폴에서 며칠이고 기다리면서 허락을 받고 좁은 통로 웨스턴 쿰(Western Com)에서 몇 번에 걸친 검문 끝에 사우스콜(South Col)에 이르게 된다.
이후 에베레스트 트레킹의 난관 중 하나인 촐라패스를 넘는다. 그리고 초오유(8201m)자락에서 흘러나온 느고줌바 빙하를 횡단한다.

쿰부 빙하에서는 푸모리가 이정표 노릇을 하는데 느고줌바 빙하에서는 초오유가 그 역할을 맡았다. 빙하 여기저기서 얼음이 갈라지고 그 것이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빙하를 건너면서 몇 번을 쉬었다. 역시 하루 만에 촐라패스를 넘고 또 느고줌바 빙하를 횡단하는 것은 무리였다. 간신히 고쿄 마을이 보이는 언덕에 다다랐다. 촐라패스 못지않은 감격이 밀려왔다. 어스름한 어둠이 몰려 왔지만 한참 동안 마을을 내려다보다가 내려왔다.

▲ 각국에서 온 나홀로 트레커들을 만났다. 오른쪽은 스위스 여성, 왼쪽은 일본인 가와나베.

▲ 쿠부 빙하를 벗어나 종라로 넘어가기 전이다. 왼쪽 뒤로 푸모리가 보인다.

고쿄 로지에서 다이닝 룸 창문을 통해 내가 넘어 온 고개가 어스름히 보인다. 늦게까지 고개를 넘는 사람이 있다. 그 역시 고개를 선뜻 넘지 않고 등 뒤의 석양을 받으며 한참을 이쪽을 바라본다. 마치 서부 영화에서 황야의 무법자가 말을 타고 급히 고개에 올라가서는 건너편 마을을 관찰하느라 말고삐를 이리 저리 잡아당기자 준마는 앞발을 번쩍 치켜드는 것처럼.

다음날 고쿄리에 올라 광대한 설산을 바라보자 갑자기 외로움이 밀려온다. 히말라야 산봉우리들 역시 외로운 것은 싫었을 것이다. 봉우리들은 혼자 있지 않다. 탐세르쿠는 강테가와 비슷한 모양으로 나란히 있다. 타보체와 촐라체, 쾅충이스트와 웨스트, 눕체와 로체, 하물며 멀리 떨어진 푸모리와 초오유는 뾰족한 닮은꼴로 고개를 내밀어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 칼라파타르로 오르는 길로 정면이 푸모리다.

▲ 느고붐바 빙하 뒤에서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이 에베레스트다. 오른쪽 뾰족한 봉우리가 쾅충이스트와 쾅충웨스트.

▲ 캉테가(6783m)와 탐세르쿠(6618m).

고쿄부터는 내리막길. 그런데 마체르모를 지나자 몽라 고개가 트레커의 경쾌한 발걸음에 뭔가 비틀렸는지 뜻밖의 질투를 한다.
“이렇게 쉽게 갈 수 없어요. 그래서는 나를 다 잊어버리고 말거예요.”
“그래, 나도 이렇게 얼토당토 질투 해 주는 네가 고마워. 하지만 결코 잊지는 못 할 거야”

몽라를 넘어서는 더 이상의 질투는 없다. 느긋한 마음으로 쿰중을 지난다. 뒤돌아보면 아마다블람이 떠나는 트레커를 배웅한다. 샹보체 활주로에서 헬리콥터가 먼지를 일으키며 떠오른다. 어스름이 깔리고 남체가 포근하게 맞이한다. 마을 여기 저기 굴뚝에서 연기가 피워 오른다.

▲ 다큐멘터리 <희박한 공기 속으로>의 등장인물 스콧 피셔를 추모하는 바위.
▲ 한 트레커가 고쿄리에 올라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다.

▲ 추쿵리에 오르는 길에 트레커들이 잠시 가방을 내려놓고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 로지 벽에 기대 일광욕을 즐기는 것도 나름 재미있다.

▲ 드디어 다다른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에베레스트 BC 트레킹 일정

카트만두~루크라~팍딩(2610m 1박)~남체(3440m 2·3박)~풍키텡가~텡보체(3860m 4박)~소마레~딩보체(4410m 5박)~추쿵(4730m 6박)~추쿵리(5550m)~딩보체(4410m 7박)~두클라~로부체(4910m 8박)~고락셉(5140m)~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EBC 5364m)~고락셉(9박)~칼라파타르(5550m)~로부체(4910m 10박)~종라(4830m 11박)~촐라패스(5368m)~탕낙 ~고쿄(4790m 12박)~제4레이크, 제5레이크~고쿄(13박)~고쿄리(5357m)~마체르모(4470m 14박)~돌레~몽라~쿰중~샹보체~남체(3440m 15박)~몬조~팍딩~루크라~카트만두(16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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