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도방구 섬 기행 ㅣ 강화 교동도
오도방구 섬 기행 ㅣ 강화 교동도
  • 글 사진 그림 김종한 기자
  • 승인 2013.01.3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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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 구석구석 역사가 담겨 있네”

12월에 들어서자 폭설에 이어 거센 한파가 몰아쳤다. 겨울철 방한장비를 단단히 갖추고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길을 나섰다. 차가운 북풍을 가르며 달린 끝에 도착한 곳은 강화도의 창후리선착장. 이곳에서 교동도 월선포선착장으로 건너는 카 페리에 올랐다.

200여 년 전 고산자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를 보면 교동도는 지금보다 몇 배 크게 그려진 것을 볼 수 있다. 흔히 중요도가 높은 대상을 크고 상세하게 나타내는 것이 사람의 속성이다. 교동도가 예로부터 지리적 요충지였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교동도는 화개산, 수정산, 율두산이 만든 삼각점 사이 바다를 간척해 지금의 큰 섬이 되었다. 해발 260m의 화개산 일대는 예나 지금이나 교동도의 중심지여서 읍내리에 교동읍성이 남아있고 대룡리에 교동면사무소가 위치한다.

월선포선착장에 내리자 새하얀 눈 세상이 펼쳐진다. 읍내리 방향으로 이어지는 도로 역시 눈으로 뒤덮였다. 폭설이 내린지 며칠 지났으니 괜찮을 줄 알았는데 방심했다. 즉시 제설작업이 이뤄지는 서울과 달리 지방은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다.

미끄러운 길을 달린다기보다 슬금슬금 이동해서 교동읍성을 찾는다. 1629년(인조7년)에 쌓았다는 이 읍성은 야트막한 언덕을 둘러싼 형태다. 전체 길이는 430m로 동·남·북쪽 세 곳에 문루를 세웠다고 전해지지만 현재는 남문(유량루)만 남아있다. 그나마 남아있던 누각도 1927년 불어 닥친 거센 태풍에 무너지고 지금은 석축과 홍예문만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다. 성안은 민가와 경작지가 들어서 원형을 알아보기가 어려운데다 성벽도 허물어지기 직전이다.

북문을 빠져나와 큰 길을 건너자 갈림길이 나타난다. 길 사이에 늘어선 비석들은 교동에 부임했던 지방관들의 치적을 새긴 선정비들이다. 비석군 왼편으로 난 길은 화개산 중턱의 화개사로 향하고 오른편 길은 교동향교로 이어진다. 교동향교는 1127년(고려 인종6년) 국내 최초로 세운 향교다. 대성전에 봉안된 공자의 초상은 1286년 안향이 원나라에서 들여온 것이라 한다. 친절히 안내에 나선 관리인은 “현재도 해마다 두 번씩 제사를 올린다”며 공자와 한국 18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을 비롯해 명륜당, 동무와 서무, 삼문, 제기고 등 향교의 구석구석을 소개했다.

다시 읍내리를 거쳐 면소재지가 있는 대룡리로 향한다. 도중에 왼편으로 방향을 꺾으면 동산리와 난정저수지에 이르지만 이쪽 길은 초입부터 반질반질한 얼음판이나 다름없어서 차마 들어설 엄두가 안 난다.

읍내리가 옛 교동의 중심지였다면 대룡리는 현재 교동도의 중심이다. 면사무소를 비롯해 초·중·고등학교와 대룡시장 등이 밀집해 있다. 대룡시장 입구에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골목길을 걸어본다. 골목 안은 여느 시장들의 활기찬 모습과 거리가 멀다. 얼마 전 KBS2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에 소개된 이후 관광객들이 제법 늘었다고 들었건만, 겨울철은 해당사항이 없나보다. 골목은 온통 무채색 계열의 물감을 뒤집어쓴 듯 무표정해 보인다. 만물상에 걸린 낡은 벽시계 바늘이 멈춰있다. 마치 어느 순간에 시간이 멈춘 듯 보인다. 교동도 주민들 중에는 한국전쟁 때 황해도에서 바다를 건너온 피난민들이 많다. 전쟁이 끝나면 금방 고향에 돌아가려니 했던 세월이 어느덧 60년. 시간이 멈춘 듯한 골목 안 풍경은 긴 세월의 무게로 인한 것인가 보다.

골목을 나와서 대룡리를 벗어나면 드넓은 들판이 펼쳐진다. 교동도 들판은 단일 평야로는 강화군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곡창지대다. “교동도 쌀은 맛도 최고”라던 교동향교 관리인의 자랑이 생각난다. 들판을 가로지른 도로는 지석리와 율두산을 향해 곧장 북쪽으로 뻗어있다. 율두산에는 바다 건너편의 북한 황해도를 마주 보는 곳에 실향민들이 차례를 지내는 망배단이 있다.

교동도 동쪽 해안은 북한 땅을 마주보며 고구저수지까지 이어진다. 들판 옆으로 난 길은 좁은 농로지만 콘크리트포장이 돼 있고 의외로 제설작업이 돼 있다. 이 일대 군부대 병사들이 치운 듯하다. 덕분에 수월하게 고구저수지와 철새들을 구경하고 슬슬 월선포선착장으로 향한다. 교동도에 오면 화개산 정상에 오르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눈길로 인해 원래의 계획이 대폭 축소됐다. 아쉬움이 남지만 혹한기 투어는 일정을 강행하기보다 물러설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무리하다가 예기치 못한 전복사고를 당한다면 사람도 오토바이도 큰 부상을 당할 수 있다.

월선포선착장을 떠난 카 페리가 창후리선착장으로 뱃머리를 향한다. 창후리 근처 인화리와 교동도를 잇는 교동대교 공사장이 보인다. 2014년 완공 예정이라고 하니, 다리가 놓이기 전에 다시 한 번 교동도를 찾아올 생각이다. 
 

TIP

오토바이 운전면허 자격
우리나라 이륜차 면허증은 배기량별로 125cc미만을 운전하는 원동기장치자전거와 125cc이상의 대형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2종소형으로 나뉜다. 지금까지는 자동차운전면허증으로 125cc미만 오토바이를 운전할 수 있었지만, 2014년부터는 50cc 미만, 45km/h를 초과하지 않는 오토바이만 몰 수 있다.

교동도 여행안내

고구려 때 고목근현으로 불리다가 신라 시기부터 교동이라 불렸다. 고려 희종을 비롯해 조선시대에는 안평대군, 연산군, 능창대군, 숭선군, 임해군, 익평군 등이 이 섬에서 죽거나 유배생활을 했다. 강화도에서 매 30분마다 카 페리가 왕래하지만 물때에 따라 시간표가 들쭉날쭉하다. 도선료는 승용차 1만6000원, 오토바이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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