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기 따뿍 받으쇼잉”
“월출산 기 따뿍 받으쇼잉”
  • 글·김경선 기자ㅣ사진·이두용 기자
  • 승인 2011.04.29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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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TRAVEL 영암 ③기찬묏길 트레킹

▲ 기찬묏길은 가족들의 나들이 코스로 인기다. 평탄한 산책길은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중국에 황산(黃山)이 있다면 한국에는 월출산(月出山·809m)이 있다. 남도의 너른 들판을 내달린 부드러운 연봉들이 바다를 앞두고 장렬한 용틀임을 하며 우뚝 솟은 산. 우리나라에 있는 16개 산악 국립공원 중 면적이 가장 작음에도 불구하고 월출산의 옴팡진 기암괴석은 탄성을 불러일으킬 만큼 아름답다. 그리고 영묘한 기운이 넘실대는 이 돌산 둘레에 기찬묏길이 있다.

기찬묏길은 이름처럼 월출산의 영험한 기(氣)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숲길이다. 지리산 둘레길이나 북한산 둘레길처럼 월출산을 한 바퀴 돌아보는 이 길은 현재 탑동약수터에서 용추폭포에 이르는 약 5.5km 구간을 개방했다.

▲ 기찬랜드에서 작은골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계곡을 건너는 다리를 만난다

수려한 작은골 따라 데크길 이어져

트레킹의 시작점을 기찬랜드로 잡았다. 이곳은 여름이면 월출산에서 흘러내리는 자연 그대로의 계류를 막아 수영장을 만든다. 수영장도 어린이용부터 성인용까지 계곡을 따라 5개 풀이 줄지어 있다. 화학약품 처리를 전혀 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천연수. 여름이면 인산인해를 이룬다는 기찬랜드다.

▲ 대숲·참나무 군락·금강송 군락 등 다양한 식생이 분포한 기찬묏길. 기찬묏길은 산길이 잘 정비돼 있고 이정표가 많아 가볍게 산책하기 좋다
기찬묏길은 기찬랜드에서 두 갈래로 나뉜다. 수영장이 조성된 작은골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용추폭포에 이르고, 기체육공원 이정표를 따르면 탑동으로 향한다. 용추폭포를 보고 되돌아오기로 하고 작은골을 거슬러 올라가기로 했다. 산책로를 따라 조성된 데크를 따르자 수려한 계곡이 모습을 드러낸다.

호젓한 계곡길을 따르는 운치 있는 데크길은 지역 주민들의 산책로다. 주말을 맞아 산책 나온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이 한창이다. 싱그러운 숲의 기운을 따른 지 10여 분, 깨금바위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야금 산조를 완성한 김창조 선생이 즐겨 찾던 바위다. 김창조 선생은 사방 15m, 높이 3m의 이 널찍한 너럭바위에서 가야금을 즐겨 연주했다고 한다.

애절한 가야금 산조의 선율을 따라 계곡을 거슬러 오르자 곧 용추폭포를 만났다.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 용추폭포는 수량이 풍부해 시원한 물줄기가 일품이다. 김창조 선생도 깨금바위에 앉아 우레 같은 폭포수를 반주삼아 연주하지 않았을까.

‘달이 뜬다 달이 뜬다. 둥근 둥근 달이 뜬다. 월출산 천왕봉에 보름달이 뜬다. 아리랑 동동 쓰리랑 동동, 에헤야 데헤야 어사와 데야. 달을 보는 아리랑 님 보는 아리랑’ 영암아리랑의 구슬픈 노랫가락이 작은골에 울리는 듯하다.

▲ 돌고래의 눈·코·입이 뚜렷하다. 신기할 정도로 돌고래와 닮은 돌고래 바위다

탑동약수터로 가기 위해서는 간 길을 되짚어야한다. 기찬랜드에서 ‘기체육공원’ 이정표를 따르자 우거진 송림이 취재진을 반긴다. 향긋한 솔내음을 맞으며 걸은 지 10여 분, 기체육공원과 전망대 갈림길이다. 목적지인 탑동소공원 방향이 어느 쪽인지 자세한 설명이 없어 난감하다. 주민들에게 물어볼까 싶어 한참을 기다려도 지나는 사람 하나 없다. 고민 끝에 전망대 길을 택했다. 계곡을 벗어나 나무계단을 한참을 오르자 정자다. 그런데 더 이상 길이 없다. 길을 잘못 찾아든 듯하다. 후회도 잠시, 영암 시내와 남도의 너른 들판이 한 눈에 조망되는 전망대의 풍광에 가슴이 뻥 뚫린다.

▲ 쭉쭉 뻗은 소나무숲을 지나는 등산객들

곳곳에 울창한 금강송 군락 펼쳐져

전망대를 내려서 기체육공원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대숲, 향나무 군락, 참나무 군락이 이어지는 평화로운 숲길이다. 시종일관 평탄한 길이 이어지지만 다양한 식생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잠시 뒤 기체육공원에 다다랐다. 이곳에서 산성치를 거쳐 월출산으로 오르는 길과 탑동소공원 길이 갈린다. 탑동소공원 방향으로 들어서 길에 취해 걷기를 수십 분, 예닐곱 된 남자아이 너댓 명이 터덜터덜 산길을 거슬러 올라오고 있었다. 수줍은 아이들의 표정에 괜스레 말을 건네본다.

“탑동약수터 어떻게 가는지 아니?”
“쩌그 밑으로 내려가서 밝은 질 말고 껌껌한 질로 가쇼잉.”

▲ 우거진 숲 사이로 나무 계단이 이어졌다. 호젓한 숲의 정취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산책로다

정겨운 사투리로 대답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매일 서너 개의 학원을 순례하며 일상에 찌든 서울 아이들과는 달리 자연에서 뛰노는 이곳의 아이들은 순박하고 순수해보였다.
아이들과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다시 갈림길이 나타났다. 아이들이 이야기한 ‘밝은 길’과 ‘깜깜한 길’ 같다. 직진해 마을로 내려서는 길은 사방이 트인 밝은 길이고, 오른쪽 대나무숲 길은 탑동약수터로 향하는 깜깜한 길이다. 아이들의 기발한 표현력에 웃음이 난다.

깜깜한 길도 잠시, 남도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금강송 군락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껍질이 붉어 적송으로도 불리는 금강송은 주로 경북 울진과 강원도 삼척 등지에서 자생하는 소나무다. 기찬묏길의 금강송은 아직 신록이 찾지 않은 월출산 자락을 푸른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키 작은 산죽 사이로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솔숲을 걷다보면 ‘서걱서걱’ 바람의 노랫소리도 들려온다.

▲ 탑동소공원을 앞두고 다리가 나타났다. 이 다리를 건너면 기찬묏길 1구간의 목적지인 탑동이다

기찬묏길은 월출산 자락을 따라 등고선을 그리고 있었다. 산자락 마을을 지나고 숲과 계곡을 따르다 보면 나무데크길, 돌길, 흙길을 차례로 지난다. 마지막 다리를 지나자 드디어 탑동소공원이다.

조선시대 지리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월출산을 ‘화승조천(火乘朝天)의 지세’라고 했다. ‘아침 하늘에 불꽃처럼 기를 내뿜는 기상’이라는 말이다. 예부터 월출산이 풍수지리적으로 기가 센 산으로 통했던 것이다. 그래서 월출산에서 흘러넘친 영험한 기운이 내려앉은 기찬묏길을 걷다보면 몸과 마음이 기(氣)로 충만해진다.

기찬묏길 트레킹 정보
우리나라에서 풍수지리적으로 기가 가장 센 산 중에 하나로 손꼽히는 월출산 자락에 기찬묏길(왕인문화체험길)이 있다. 전남 영암에서 월출산 둘레를 연결하는 산책로를 조성한 것이다. 현재 용추폭포에서 탑동소공원에 이르는 약 5.5km 길이 조성됐고, 앞으로 월출산 둘레길을 연결해 친환경 명품 녹색길을 조성할 계획이다.

기찬묏길의 출발은 탑동소공원이나 기찬랜드에서 시작한다. 어느 곳에서 시작해도 무방하다. 산책로를 따라 흙길과 데크길이 이어져 가볍게 걷기 좋은 길이다. 곳곳에 이정표가 있어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기찬랜드에서 탑동소공원 방향으로 트레킹 코스를 잡는다면 초입에서 ‘기체육공원’ 이정표를 따르면 된다.

용추폭포~기찬랜드~탑동소공원 코스는 약 5.5km로 2시간 정도 소요된다. 길이 험하지 않고 완만해 어린아이와 노약자도 쉽게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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