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빚어낸 거대한 수석
신이 빚어낸 거대한 수석
  • 이두용 기자
  • 승인 2011.04.29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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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TRAVEL 영암 ②월출산 트레킹

▲ 동쪽 기슭으로 올망졸망 줄을 선 육형제바위 줄기는 어린 아이들처럼 정겹다.

영암이 월출산(月出山·809m)이고 월출산이 곧 영암이다. 달이 떠오르는 산. 달을 품은 산이라 부르는 영암의 명산 월출산.

월출산은 골산(骨山)이다. 크고 작은 바위가 지천에 붙어 산을 타고 오른다. 높이나 면적만으로는 다른 명산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산세나 풍광은 설악산이나 금강산에도 견줄만 하다. 오밀조밀한 바위탑과 봉우리들이 사통팔달로 펼쳐진 형세는 국내 어느 산에서도 볼 수 없는 기막힌 풍광을 선사한다. 면적은 지리산의 10분의 1 정도인 5만6100㎢지만 빼어난 암릉미와 생태적 특성으로 1988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국내에서 가장 작은 국립공원이다.

▲ 시루봉과 매봉을 연결하는 구름다리는 지상 120m 높이에 길이 54m, 통과 폭 1m로 주변 풍광과 잘 어울리는 월출산의 명물이다.

천황사 지나 급경사 이어져

영암을 찾으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바로 월출산이다. 월출산의 기세는 영암에 다다르면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 있을 만큼 강하다. 평지에 홀로 가파르게 솟구친 그 형상은 영암을 지키는 수호신과도 같다. 한 지역 어디에서도 고개만 돌리면 그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있는 산은 월출산이 유일하지 않을까.

봄기운이 완연한 아침, 들머리인 천황사로 향하는 발길이 가벼웠다. 우뚝 솟은 산의 기세는 강해 보이지만 809m라면 ‘지금까지 올랐던 산보다 쉽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오르기 전부터 멀리서도 산 전체를 볼 수 있어 지피지기는 어느 정도 마쳤다고 생각했다.

▲ 천황교를 지나면 협곡의 주름을 따라 구불거리며 바람폭포까지 힘겨운 오르막이 이어진다
오늘 산행에 동행하기로 한 영암군산악연맹 사무국장인 오옥현씨를 만났다. 영암에서 암벽등반 경기장까지 관리하고 있는 전라남도에서 이름 난 산꾼이다.

국립공원 관리사무소를 지나 약 400m 천황사 들머리는 예상외로 부드러웠다. 멀리서 본 산세와는 달리 안아 주는 품이 너그럽다. 만만해 보이던 길은 조릿대 군락을 지나 천황교를 건너면서 가팔라진다. 여기서부터는 오르는 길이 만만치 않다. 돌길과 잘 닦여진 데크가 협곡의 주름을 따라 구불거리며 바람폭포까지 이어진다.

“월출산이 높지는 않아도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겁니다. 기세가 등등한 골산이라 전라남도에서 암벽을 즐기기에 이만한 산이 없지요. 이 일대에서 암벽을 시작하는 사람이면 월출산은 통과의례라고 할 수 있죠.”
눈앞으로 사자봉이 막아서자 오옥현씨가 자연스레 월출산에 대한 얘기를 꺼내든다.

산의 품에 안겨들수록 역광이라 사자봉은 부끄러운 듯 낯을 가린다. 봉우리를 따라 산의 흐름만 파악할 수 있었다.

봄기운이 역력한데 바람폭포는 아직 얼음폭포다. 옅은 햇살의 온기를 머금은 물방울이 떨어지며 폭포의 이름값을 대신한다. 여름에는 15m 높이에서 큰 물줄기가 쏟아져 시원함과 함께 장관을 이룬다. 탐방객의 목을 축인다는 석간수를 한 바가지 받아 마셨다. 물이 차가워서인지 맛이 달다.

▲ 통천문은 사람 하나 겨우 통과할 수 있는 길로 천황봉으로 가기 위해 지나야 하는 관문이다

육형제 만나고 오른 정상

바람폭포에서 구름다리와 바람골을 따라 천황봉으로 향하는 길로 나뉜다. 바람골을 따라 오르니 비로소 장군봉 능선의 전모가 드러났다. 그제야 천황봉 능선이 완고한 표정으로 눈앞에 우뚝 솟는다. 손에 잡힐 듯 가깝지만 호락호락해 보이지는 않는다.

동쪽 기슭으로 올망졸망 줄을 선 육형제바위 줄기는 어린 아이들처럼 정겹다. 여섯 형제가 오순도순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라 육형제바위라 부른다는데 등산객을 마중 나온 개구쟁이들 같다.

▲ 정상에는 커다란 바위에 ‘월출산 천황봉 809m’라고 새겨진 표시석이 있다

정상을 향하는데 바람이 세다. 올라오면서 흘린 땀이 순식간에 식었다. 음지에는 얼음과 눈이 제법 쌓였다. 나무마다 상고대가 피어 날은 맑은데 바람을 타고 눈꽃이 사방으로 흩날린다. 가파른 바위 길을 지나고 철계단을 지나니 사람하나 겨우 지나는 통천문(通天門)이 나나났다.

몸을 비집고 통천문을 통과하면 드디어 정상이다. 커다란 바위에 ‘월출산 천황봉 809m’라고 새겨있다.
“휴대폰 빠떼리가 읍서 사진을 못 찍어 그렁께 사진 한 장만 찍어주쇼.”

기자를 보자 아주머니 한 분이 사진 촬영을 부탁하신다. “월출산은 가을이재. 단풍이 들면 한 번 더 오셔요. 그때가 진짱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에 올라오며 긴장했던 몸이 단번에 풀린다.

사방을 둘러보는데 천상에서 내려다보는 듯 사방이 열렸다. 주변에 견줄만 한 높이의 산이 없어 세상을 얻은 듯 가슴이 후련하다. 809m 높이의 산이지만 순수한 해발 높이인데다 등락폭이 워낙 심해 시원한 풍광과 함께 아슬아슬함이 최고다. 국내에 1000m가 넘는 산이 40여 개나 되지만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유가 거기에 있겠다.

▲ 월출산은 809m 높이지만 순수한 해발 높이인데다 등락폭이 워낙 심해 시원한 풍광과 함께 아슬아슬함이 최고다

높이 120m 구름을 건너 땅으로
정상에서 하산하는 길은 세 갈래. 크게는 네 가지 방법으로 하산할 수 있다. 천황사로 돌아가는 길과 도갑사로 향하는 길, 바람재를 따르다가 경포대 방향으로 하산해 강진군으로 빠지는 길이다. 천황사로 오르고 내리는 길은 두 갈래다.

월출산에 왔는데 어찌 구름다리를 빼놓을까. 올라온 통천문을 따라 내려와 구름다리로 이어지는 사자봉으로 향했다. 내리막과 오르막의 반복이 역시나 만만치 않다.

▲ 정상의 풍광은 여느 산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천상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가슴이 후련해진다

사자봉이 나타나면 내리막이 가팔라진다. 수사자의 옆 모습을 큰 바위에 정교하게 조각해 놓은 듯 근엄한 얼굴의 사자상이 봉우리를 품고 있다.

“사자봉은 산 좀 탄다는 사람들한테 리지 산행지로 유명해요. 1개 루트뿐이지만 5.7~5.9의 난이도로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습니다.”

사자봉 가까이에 다가서자 오옥현씨가 설명을 이어갔다. “이 밑으로 시루봉이 있는데 시루봉은 암벽하기에 더 없이 좋은 봉이에요. 전체 13개 루트가 있는데 워낙 인기가 있어 날이 풀리면 전라도 인근에서 많이들 모이죠. 등산학교 학생이면 꼭 거쳐야 하는 코스이기도 하고요.”

▲ 구름다리는 원래 바닥을 보이게 해 건너는 사람들이 아찔한 높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바닥을 가려놓았다.

사자봉을 지나니 바람이 강하게 몰아친다. 그러고 보니 전라남도 지역에 강풍주의보가 내려졌다고 한다. 사람이라도 날려버릴 듯 서있기도 힘든 강풍이 쉼 없이 밀어붙인다.

바람도 위협적인데 여기서부터는 낭떠러지다. 길을 내기 마땅치 않으니 절벽을 따라 철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위에서 내려다 봐도 안쪽으로 굽어 있어 철계단의 끝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계단을 여러 번 따라 내려가니 우측 아래로 빨간색 구름다리가 눈앞에 나타났다. 색깔이 의외로 주변 바위와 잘 조화된다. 정상에서 만난 아주머니 말대로 가을에 오면 정말 볼만하겠다. 

▲ 사자봉은 수사자의 옆모습을 큰 바위에 정교하게 조각해 놓은 듯 근엄하다
시루봉과 매봉을 연결하는 이 다리는 지상 120m 높이에 길이 54m, 폭 1m로 설계됐다. 다리에서 고개를 들면 깎아지른 매봉이 시선을 위압하고 남쪽으로는 봄을 기다리는 영암의 들판이 한눈에 펼쳐진다.

이 다리는 강천산·대둔산 구름다리와 함께 호남의 3대 구름다리 중 하나다. 2009년에 TV프로그램 <1박2일>에 소개되고 연간 관광객 수가 30만 명에서 45만 명으로 부쩍 늘었다고 한다.

원래는 다리 바닥을 보이게 해 건너는 사람들이 아찔한 높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바닥을 막아 옆으로 내려 보아야 높이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굳이 내려 보지 않아도 충분히 높이에 대한 위압감이 느껴진다.

구름다리를 지나면서 낭떠러지 같은 철계단은 끝났다. 시루봉을 지나면 길이 조금씩 완만해진다. 4시간 산행치고 월출산은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해줬다. 장쾌한 봉우리와 험난한 오르막과 내리막, 세상을 내려다 보는듯한 시원한 조망. 산을 비단 높이로만 볼 수 없다는 걸 일깨워준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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