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TRAVEL|수원 ④ 컬처 트레킹
KOREA TRAVEL|수원 ④ 컬처 트레킹
  • 글 채동우 기자|사진 김해진 기자
  • 승인 2013.09.17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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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붓질’의 힘
벽화마을…행궁동 벽화마을~지동 벽화마을~나혜석 거리

▲ 행궁동 벽화마을. 벽화가 담을 타고 핀 나팔꽃과 잘 어울린다.

어제 영화의 거리가 오늘 가난의 거리로 바뀔 거라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200여 년 전 정조대왕이 올린 화성은 기존의 성과 달리 전쟁과 일상생활 두 가지 모두가 가능한 평산성이었다. 당시 성곽 안은 요즘으로 치자면 대통령이 두 팔 걷고 적극적으로 발전 지시를 내린 신도시와 다름없었고 안전과 경제 활동 모두가 보장되었으니 그 인기가 보통이 아니었을 것이다.

▲ 식당 옆의 벽화. 각각의 집에 어울리는 벽화가 그려졌다.

▲ 골목의 담들은 국내외 작가들이 그린 벽화로 수 놓였다.

그러나 지금 화성 성곽 안의 동네는 과거 영화를 누리던 황금의 거리가 아니다. 1997년 화성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문화재 보호’의 이유로 엄격한 개발 규제가 이어졌고 IMF 이후에는 급격히 슬럼화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성벽 외곽의 도시와는 정반대로 슬럼의 어원 slumber(잠·수면)처럼 어둡고 깊은 잠에 빠진 동네로 전락한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늘 가난의 거리를 내일 꿈의 거리로 바꾸려는 시도가 있을 것이라 누가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 퇴색한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 골목의 분위기를 밝게 만들고 있다.

▲ 벽화들이 골목의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 주고 있다.

꽃이 벌과 나비를 불러 모으듯
행궁동 벽화골목은 대안공간 눈에서 진행한 2010년 ‘이웃과 공감하는 예술프로젝트 행궁동 사람들’이 그 시작이다. 이후 2011년 국제레지던시프로그램인 ‘골목길GMD-행궁동을 걷다’에 참여한 작가들이 주민·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문화재 보호정책으로 낙후된 골목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본격적인 벽화 그리기가 시작됐다. 더불어 2011년 수원시 마을 만들기 공모사업에 북수동 화홍문 사람들이 ‘무지개 꽃길 따라 벽화골목으로’를 진행해 벽화와 꽃길을 추가로 조성했고 관에서는 황톳길과 돌길을 만들어 줬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행궁동 벽화골목은 2011년 대한민국공간문화대상 대통령상을 받기에 이른다.

▲ 대안공간 눈은 카페와 2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행궁동 벽화골목을 찾기 위해서 ‘행궁동’을 네비게이션에서 입력하면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행궁동은 화성이 감싸고 있는 마을을 통틀어 일컫는 말로 총 12개의 법정동으로 구성되어 있고 12,750이라는 적은 인구가 밀집해 살고 있다. 벽화가 그러진 골목길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북수동으로 검색해 찾아가면 된다. 벽화골목 주변에는 주차할 공간이 마땅치 않으므로 차를 끌고 이곳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화홍문 근처에 차를 대고 이동을 하는 것이 좋다.

벽화 골목은 70~80년대 골목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때론 이어지기도 하고 때론 끊기기도 하면서 곳곳에 개성 있는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골목길에는 사랑의 쉼터길, 무지개 꽃길, 사랑하다 길, 처음 아침 길, 뒤로 가는 길, 로맨스 길 등의 이름이 붙여져 있고 그에 걸맞는 별화들이 그려져 있다. 이곳의 그림이 다른 지역의 벽화마을과 차별점을 두고 있는 지점은 마을 주민이 직접 참여했다는 것. 그 집에 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벽화가 그려지기도 했다.


▲ 지동의 벽화들은 밝고 화사한 색으로 꾸며져 있다.

꾸준한 보수 관리로 여전히 새 그림 같아
언제부턴가 낙후된 골목에 벽화를 그려넣어 지역민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사업이 늘어났는데 대부분 지속적인 관리가 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하지만 행궁동 벽화들은 그렇지 않다. ‘대안공간 눈’과 마을기업 ‘행궁솜씨’에서 꾸준한 보안작업과 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제 찾아가든 최초의 모습처럼 새것 같은 그림들을 감상할 수 있다. 다른 지역의 빛바랜 벽화를 보고 ‘행궁동도 그렇지 않을까’하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벽화 구경이 끝났다면 ‘대안공간 눈’에 들러 전시회를 보거나 차를 한잔하는 것도 좋다. 이곳은 카페와 2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2005년부터 지금까지 총 400여 명의 작가들이 전시회를 연 명실상부한 수원 대안문화의 메카다. 2주에 한 번씩 다른 작가의 작품으로 교체되며 2013년 전시 일정은 인터넷 카페(cafe.daum.net/artspacenoon)에서 확인할 수 있다.

▲ 2005년부터 지금까지 총 400여 명의 작가가 전시회를 연 대안공간 눈.

▲ 오래된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재미도 쏠쏠하다.

2010년부터 행궁동을 아름다운 벽화로 수놓고 있는 ‘대안공간 눈’의 김정집 관장은 “벽화의 시작은 골목길 GMD 사업이었는데 GMD란 Go, Meet, Do의 줄임말이다”며 “국내외 작가 15명이 마을로와 직접 와 주민과 함께 작업해 그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슬럼화를 걷고 있던 행궁동 일대가 벽화를 통해 긍정과 희망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고. 김 관장은 “지금은 벽화가 행궁동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벽화가 그려진 담을 허물었으면 한다”며 “소통의 공간,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공간으로 그 의미를 확장하고 싶다”고 앞으로 계획을 설명했다.

▲ 전기를 이어주는 전주에 그려진 피카츄.
▲ 분홍 꽃잎으로 그려진 벽화가 없었다면 삭막했을 뻔한 담.

행궁동의 긍정적인 변화는 점점 확산되고 있다. 지동에 위치한 벽화골목이 바로 그것. 2011년부터 그려지기 시작한 지동의 벽화도 마을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로 탄생했다. 지동 벽화골목은 수원제일교회 정문 왼쪽 옆 골목에서 시작된다. 행궁동 보다 밝은 톤의 그림들이 많고 톡톡 튀는 느낌의 그림으로 이어진다. 간간이 실사 프린트를 붙인 실험적인 벽화도 보인다.

▲ 지동 벽화마을에는 단순한 벽화뿐 아니라 거울과 같은 소품을 이용한 작품도 있다.

시대를 앞서 핀 꽃 나혜석
그렇다면 행궁동과 지동의 벽화는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모든 일에는 계기와 근원이 있고 뿌리가 있다. 벽화들의 이면에는 시대를 앞서 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이 있다. 나혜석은 1896년 지금의 팔달구 신풍동 일대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당시 여성에게 강요되는 전근대적인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길 원했다. 고루한 사회 통념에는 언제나 당차고 소신 있는 발언을 이어갔고 끊임없이 변화를 꿈꿨다. 하지만 그러한 그녀의 외침은 화제는 될지언정 수긍을 얻어내지는 못했다.

심지어는 여성들에게 더 큰 비난을 들었다고 하니 그녀가 겪었을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하지 못했으리라. 그녀의 흔적을 만나기 위해서는 팔달구 인계동에 있는 나혜석 거리를 찾아가면 된다. 그곳에서는 그녀를 기리는 동상 두 개가 설치되어 있다. 하나는 다소곳한 여성스러운 모습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역동적인 자세로 이젤을 들고 걸어나가는 모습이다.

▲ 담 너머에 있는 나무와 벽화가 한데 어우러졌다.
▲ 나혜석 거리에 있는 나혜석 동상. 이젤을 들고 어디론가 떠날듯한 분위기다.

나혜석은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이 꿈꾼 사회를 경험하지 못했지만 차별을 거부한 그녀의 정신은 벽화마을에 영향을 미쳤다. 세상에 차별 받아 마땅한 삶은 없다. 낙후된 지역에 살고 있다고 해서 자신의 삶이 온통 회색빛으로 물들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변화를 꿈꾼다면,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면 행동해야 한다. 나혜석이 그랬던 것처럼, 행궁동과 지동의 주민들이 붓을 들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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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사랑 이야기
화성행궁 주차장과 팔달문 매표소 사이의 공방거리에 위치한 팥빙수전문점이다. 모든 빙수 메뉴에 가게에서 직접 쑨 팥이 올라간다. 팥이 달지 않고 담백해 빙수를 먹는 내내 입안이 즐겁다. 우유얼음을 갈아 만든 밀크빙수는 6000원이고 생과일빙수, 녹차빙수, 커피빙수는 7000원이다. 직접 쑨 단호박죽과 새알팥죽도 판매하는데 각각 6000원, 7000원이다.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130-8, 070-8969-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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