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러 간다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러 간다
  • 글·이시백ㅣ사진·조창인 기자
  • 승인 2011.04.29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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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기행, 몽골 고비사막

▲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러 가는 고비의 길.

‘없다’로 시작하는 고비

고비(Gobi)에 가면 무엇을 보게 될까. 아무 것도 없다. 하릴없이 나뭇잎 뒤에 숨어서 목이 쉬도록 우는 풀벌레도 없으며, 조잘대며 흐르는 개울도 없고, 한국 사람이 제 안방보다 더 좋아한다는 노래방도 없고, 악어 쇼나 연에 매달려 타는 놀이기구도 없다.

▲ 홍그린엘스에서 만난 낙타.
고비는 그렇게 ‘없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럼 뭐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런 곳에 뭘 보러 가느냐고 묻는다면 ‘아무 것도 없는’ 것을 보러 간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런 곳에 가면 무얼 하면 좋을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왜 사람은 무얼 해야 할까’ 이런 불온한 질문이 가슴에서 뭉글거린다면 서둘러 짐을 꾸려 고비로 날아가야 한다.

고비를 가리키는 정확한 우리말은 없다. 굳이 뒤적거려 찾아본다면 ‘거친 모래벌판’, ‘황야’라고나 할까. 고비라는 말 뒤에 으레 붙이던 ‘사막’과는 조금 다르다. 모래사막은 알타이산맥을 넘어 중국 쪽에 가깝다. 울란바토르에서 남쪽으로 220km 가량 떨어진 돈뜨고비(중앙고비)는 고비로 들어서는 길목이다. 이곳에서 시작되는 고비의 풍광은 우문고비(남고비)로 향하는 동안 다채로워진다. 스텝 지역의 초원을 지나, 점차 불모지로 비어져가는 고비는 단조롭고 황량한 바람 소리로 여행자들을 매혹시키지만 모든 이에게 그런 것은 아니다. 북적거리는 관광지를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지루하기 짝이 없다. 언젠가 어느 지역의 시의원들께서 단체로 왔다가 허허벌판의 겔에 유숙시켰다고 노발대발하는 바람에 몽골 측에서 부랴부랴 밤길을 달려 울란바토르의 호텔로 모셨다는 이야기가 있다.

고비는 세상의 어떤 카메라로도 담아낼 수가 없다. 그 광활한 대지를 담기에는 어떤 광각렌즈도 충분하지 않으며, 고작 25km인 사람의 시력으로 담기에도 고비는 너무 막막하다. 담아내려 한다는 생각마저 지워 버릴 만큼 고비는 아득하다. 세상의 어떤 카메라가 고비의 풀들이 풍기는 부추나 박하 같은 향을 담아낼 수 있단 말인가. 메뚜기들이 날개를 비벼대며 차르르차르르 우는 소리며, 알타이를 넘은 바람이 독수리처럼 휘파람을 불며 오워에 매달린 푸른 하닥을 흔들어대는 그 서늘한 촉감은 또 어떻게 담아낼 것이란 말인가. 가서 느끼는 수밖에 없다.

▲ 초원을 누비는 유목민.
만달고비를 지나 달란가드자드로 향하자면, 사방 300km 반경의 불모지를 지나게 된다. 풀 한 포기, 양 한 마리, 겔 한 채 없이 막막하니 펼쳐진 붉은 황야에 서면 비로소 세계의 중심에 선다는 가슴 먹먹한 느낌과 만나게 된다. 떼를 써서라도 차를 버리고 그 불모지를 걸어 보기 바란다. 여태껏 가족과 친구와 직장 상사와 싸가지 없는 인간들 틈에 끼어 헐떡거리던 자신을 건져내어 자신의 본연과 만나게 될 것이다. 

걷다보면 마침표처럼 외로운 한 채의 겔과 만나게 된다. 설령 주인이 없다 해도 겔 문은 남쪽으로 항상 열려 있다. 주인은 나그네가 마실 마유주와 아롤(유제품)을 차려 놓고 나간다. 나그네가 입으로 넣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마음이다. 외로움이다. 흰 젖과 붉은 고기로 대변되는 유목민의 음식 속에는 그것을 길러낸 고비의 삶과 죽음이 배어 있다. 고비는 막막하니 비어 있으면서도 오감을 충만하게 한다. 텅 빈 충만감. 그것이 고비를 걷는 나그네의 보법이다.
 

▲ 고비 여행자들의 공중부양.

아, 황홀한 별의 타박상이여

고비의 별은 순도가 높다. 인간이 켜는 불빛이 없으니 몽골의 밤은 그야말로 칠흑이다. 사방 180도로 펼쳐진 반구(半球)의 밤하늘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검은 천공보다 반짝거리는 별들이 더 많았다. 아마 평생에 봐야 할 별들보다 더 많은 별을 고비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진주 구슬을 으깨어 뿌려 놓은 듯 자지러지는 별들을 바라보노라면, 자신이 한낱 100년도 못가는 터럭 같은 존재라는 것도 잊고 감연히 영원의 세계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옹긴 히드 부근의 사이흥 캠프장에 머물던 밤이었다. 보드카에 설취한 여행자들이 울거나, 노래 부르거나, 늑대 소리를 내며 서성거리던 밤에 하늘을 메운 그 숨 막히는 별들을 만났다. 방사포처럼 여기저기 터지는 별똥에 홀려, 코앞에 걸린 별들은 손을 벋으면 당장 쥐어질 것 같고, 살짝 까치발을 들면 쨍하고 머리에 부딪칠 것 같았다. 밤새도록 별들에게 타박상을 입고 난 아침이면 가슴이 퍼렇게 멍이 들 지경이었다.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하는 되어먹지도 않은 노래를 부를 엄두도 나지 않는다. 어느 게 누구 것인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밤하늘 저편의 목동들이 밤이면 모닥불을 피우는데, 목동들이 펴든 가죽덮개가 오래되어 여기저기 좀이 슬고 해어진 구멍들 사이로 그 불빛이 새어나오는 것이 별빛이란다.

▲ 바느질하는 몽골 겔의 안주인.
유럽에서는 단지 고비의 별들을 보기 위해 오는 여행자들이 많다고 한다. 밤마다 이런 별들을 만나게 되는 건 아니다. 날이 흐리지 않아야 하며, 무엇보다 달이 뜨지 않아야 한다. 제대로 된 고비의 별들을 만나려면 그믐을 맞추어 떠나야 할 것이다. 바람에 불어온 모래알에 안경이 긁힐 정도로 센 바람이 부는 밤이면, 호박등 같은 불을 밝히고 겔 속에 빙 둘러앉아 보드카 병을 비우노라면, 겔 천정에 뚫린 반원의 구멍으로 까무러치듯 쏟아지는 별들에 먼저 취하고 말았다.  

칭기즈칸도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말갈기를 휘날리며 바람처럼 달리고 싶지 않은가. 몽골의 말은 보기에 만만하다. 키도 작고 아담한 것이 제주도 조랑말을 닮았다. 체구가 작다고 만만하게 보다가 큰 코를 다치는 사람이 많다. 기마병 10만을 얹고 바람처럼 달려가 200만의 적을 들풀처럼 무너뜨리던 제국의 말들이다. 제국의 지존 칭기즈칸도 말에서 떨어져 죽게 되었다. 몽골 여행을 할 때면 비상금으로 200만원을 여축해 둔다. 말에서 떨어져 다치면 꼼짝없이 헬리콥터를 불러 울란바토르로 후송해야 한다. 헬기 부를 때 쓸 돈을 남겨 놓든지, 말을 우습게보지 않든지 선택해야 한다.

몽골의 말들은 왼쪽에서 타야 한다. 사진을 찍는다고 뒤나 오른편에서 어정거리다가 채일 수도 있다. 말에 올라타면 고삐를 가볍게 잡아당긴 뒤 탁 놓아주며 ‘츄, 츄’ 하며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그 다음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순전히 말에 올라탄 사람의 책임이다. 말을 세울 때는 만국 공통이다. 고삐를 바짝 잡아당기면 된다.

낙타를 타고 싶다면 남고비의 홍그린 엘스에서 쌍봉낙타를 타면 된다. 바다가 없는 몽골 사람들은 낙타의 눈에서 바다가 보인다고 믿는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말 깊은 바다처럼 고요하고 슬프다. 그러나 오래 쳐다보면 끈적거리는 침을 뱉을 수 있으니 주의하라. 사막을 건너는 대상처럼 오래 타고 싶다면 두툼한 기저귀를 차기 바란다. 안 그랬다가는 엉덩이가 까진다. 까진 다음에 후회하지 말고, 화장실에 들어가 겸손히 기저귀를 차기 바란다. 낙타가 화나면 말만큼 빨리 달린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느리다고 낙타의 옆구리를 발로 차지 말기 바란다. 헬기 부르게 된다.
 

▲ 홍그린엘스에서 바라본 알타이

가지 말아야 할 길은 없다

▲ 줄친고비에서 만난 할머니와 손녀.
고비에서 길을 잃을 염려를 하지 말라. 길이 없으니 잃을 길도 없다. 낮이면 그림자와 길벗을 삼으며, 밤이면 별에게 길을 물으라. 발길이 닿는 곳이 길이다. 가지 말아야 할 곳은 없으며, 가야 할 길도 없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는 물음도 부질없다. 오로지 마음의 자침이 가리키는 데로 걸으라. 편도 100차선의 광활한 고비를 달리는 차들은 대체로 하루에 300km를 달린다. 하루쯤 맥 놓고 걸을 수 있는 여정을 어떻게든 일정 속에 끼어 넣으라. 걸을 때면 앞 사람이 안 보일 간격으로 떨어져 걷기를 권한다. 고비가 아니면 어디서 그 막막한 길을 만나겠는가. 다행히 고비의 거친 길은 차들을 서너 차례쯤 펑크 낸다. 바퀴가 빠져 달아나기도 한다. 차를 고치는 틈에 기쁜 마음으로 걸으라. 나중에는 차가 고장 나기를 기도하게 될 것이다. 내기해도 좋다.

몽골 여행 알아두면 좋을 것들
몽골 여행은 여름이 적기다. 7~8월에는 항공권을 구하기 어려우니 미리 예약을 해둔다. 고비 여행은 울란바토르~바끄가즐링촐로~돈뜨고비~달란가드자드~율링암~홍그린 엘스~옹긴히드~아르부르뜨~울란바토르로 이어지는 1900km에 10일 정도의 일정이 무난하다. 여행 방식은 4륜 자동차 트레킹이 대부분이다. 프루공이라는 러시아 승합차가 무난하나 승차감이 좋지 않아 4륜 승합차를 권한다. 도보 트레킹은 일정 구간을 섞는 방안이 좋다. 몽골에서 150만원 정도 주고 말을 사서 호스 트레킹을 한 뒤에 귀국할 때 말을 되팔아 비용을 벌충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물론 말을 잘 타야 할뿐만 아니라 체력도 담보되어야 할 것이다.

몽골 여행의 방식은 패키지여행이든 배낭여행을 하든 큰 차이가 없다. 여행 경비의 대부분은 항공료와 차량 임대와 운전사, 가이드 비용이다. 차 한 대에 여행자 3명, 가이드 1명, 운전사 1명이 적당하다. 프루공의 경우는 많이 탈 수 있지만 역방향의 좌석과 낮은 지붕, 가혹한 승차감은 각오해야 한다.

나머지 비용은 숙박에서 차이가 난다. 울란바토르에서 호텔에서 자느냐, 게스트하우스에서 자느냐. 겔에서 민박을 하느냐, 여행자 캠프촌에서 머무느냐. 어디든 겔에서 묵는 건 마찬가지이되 샤워를 할 수 있느냐, 생수 한 컵으로 고양이 세수를 하느냐의 차이다.

정말 독한 마음으로 리얼 노마드를 체험하고, 경비도 줄이겠다면 식사는 라면이나 밥으로 직접 해먹고, 숙박은 천막과 침낭을 준비하라. 밤에 늑대가 겁나면 캠프장 울타리 곁에 야영하라. 운이 좋으면 샤워도 몰래 할 수 있다.

여유가 있다면 남고비의 욜인암 매표소부터 걷기를 권한다. 청회색 구릉에 깔린 들꽃들을 보며, 쉴 새 없이 구멍에서 들락거리는 조롬과 눈 맞추며 걸으라. 알타이를 넘은 고비사막의 모래들이 수천 년 쌓아 놓은 홍그린 엘스의 사구(砂丘)도 놓치지 말라. 그 전날 과음하지 말라. 한줌으로 뵈는 사구를 기어오르며 이를 갈며 온갖 욕을 다할 것이다. 신발은 벗고 걷되, MP3는 가지고 오르기 바란다. 치사하게 사구의 등걸을 타지 말고 정면으로 걸어 오르라. 한 발이 딛는 순간 한 발이 흘러내리는 사구의 중턱에서 부디 주저앉지 말기를 바란다. 사구의 꼭대기에 올라 끝없이 펼쳐진 모래 바다 너머의 알타이산맥을 조망하라. 바람이 불어오는 곳. 발을 디디면 베일 듯 날카로운 사구의 쓸쓸한 능선에 주저앉아 MP3를 귀에 꽂고 눈물이 흐르면 인간이다. 아무렇지도 않으면 모래 한 줌이다. 내려올 때는 어수룩한 친구가 끙끙거리며 끌고 올라온 썰매를 훔쳐 타고 재빨리 미끄러지라. 썰매를 끌고 오느라 지친 벗은 비난할 힘마저 없을 것이다. 그냥 맨발로 뛰어 내려와도 좋다. 발밑에서 거대한 모래 산이 우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홍그린 엘스에서 바양자크로 가는 산길도 걸을 만하다. 옹긴히드 폐사지 부근의 고원에서 별을 보며 밤길을 걷는 아름다움은 치명적이다. ‘천(늑대)’이 뒤쫓을 테니. 특히 바위가 많은 바끄가즐링 촐로에서는 밤길을 걷지 말라. 늑대에게 물리면 상당히 아프다. 늑대를 만나면 행운이 있다니 아프더라도 참겠다면 할 수 없다. 늑대보다 더 무서운 것은 몽골 개다. 겔에 들를 때는 시커먼 몽골 개가 없는지 살피라. 남의 집에 마실갈 때 몽골 사람들 인사가 “개 묶어 놓으시오”라는 말이란다.

몽골제국의 기마병들은 하루에 300km를 달렸다고 한다. 가히 바람보다 빠른 전사들이다. 이들보다 빠른 것이 한국 관광객이라고 한다. 왜 달리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앞만 보고 달리는 여행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적어도 하루나 이틀쯤은 한곳에 머물러 어린왕자처럼 지는 해를 바라보고나, 빈 보드카 병에서 나는 뱃고동 같은 바람소리를 무심히 듣거나, 유유히 자전거를 타거나, 하다못해 고비 벌판에서 된장찌개라도 끓여 먹기 바란다. 멀리 가지 못하면 어떤가. 다 둘러보지 못하면 누가 벌금이라도 물리는가. 하루쯤은 가슴 먹먹하게 고비를 느릿느릿 걸어보기 바란다. 
 

글 이시백 | 소설가. 대표작으로 <메두사의 사슬> <종을 훔치다>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 <누가 말을 죽였을까> <갈보콩> 등이 있으며, 제1회 권정생 창작기금을 수상했다. 최근 몽골에 빠져 수시로 드나든다.
사진 조창인 | 소설가. 대표작으로 <그녀가 눈뜰 때> <가시고기> <등대지기> <길> <아내> 등의 장편소설집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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