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풍 디자인이 인기다. 북유럽 감성, 북유럽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아니 그보다 먼저 북유럽의 매력은 무엇일까? 북유럽을 다녀온 이들은 참말로 좋았다고 입을 맞춘 듯 말한다. 그 혹독한 물가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헬싱키를 향하기 전 궁금한 것이 참으로 많았다. 그렇게 수많은 호기심을 트렁크에 가득 담고 디자인 시티 헬싱키로 떠났다.
처음 만나는 헬싱키
북유럽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9시간 만에 핀란드 반타공항에 닿았다. 처음 만난 헬싱키의 거리는 활기가 넘쳤다. 북유럽의 차가운 이미지와는 다르게 말이다. 어디선가 음악이 흘러나왔고, 맨질맨질한 돌바닥은 햇살을 받아 반짝거렸다. 그리고 부지런히 오가는 녹색 트램이 도시에 생기를 더했다. 사람들의 표정엔 여유가 넘쳤고 옷차림엔 화사한 컬러가 스몄다.
하지만 거리의 건물들에선 차갑고 어두운 겨울의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핀란드의 겨울은 두 달 동안 거의 해를 볼 수 없고 여름은 두 달 동안 거의 해가 지지 않는단다. 참으로 혹독한 자연환경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핀란드 인들은 그들의 땅을, 그들의 계절을 사랑한다 말한다. 어쩌면 그런 자연환경이 핀란드 사람들을 더 강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헬싱키의 첫인상은 차분했지만 친절하고, 조용하지만 생기가 느껴졌다.
자전거투어
헬싱키를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이다. 헬싱키는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있고 높은 언덕이 없어 자전거를 타기에는 최고의 환경이다. 덕분인지 헬싱키의 호텔에선 자전거를 빌려주는 곳이 많다. 선착순이란 말을 듣고 일찌감치 아침을 먹고 나섰다.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출발했는데 뭔가 조금 어색하다. 뒷 브레이크가 없어 핸들이 허전하다. 아뿔싸, 요즘 트랜드라는 싱글 기어 자전거, 픽시인 것. 앞으로 페달을 돌리면 앞으로 가고 뒤로 돌리면 뒤로 간다. 처음 타보는 픽시에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편안한 자전거 도로를 달리니 조금씩 적응이 되었다.
화창한 날씨 덕분인지 주변은 다들 환한 얼굴이다. 옆자리의 가족과 자연스레 인사를 나눴다. 딸기 모양의 모자를 쓴 귀여운 아기 그리고 엄마와 할아버지가 함께다. 아기 모자가 이쁘다고 말했더니 근처의 시장에서 산 거라며 친절히 위치를 알려준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다시 힘차게 페달을 밟아본다. 카우파토리 시장을 향해.
카우파토리 시장
헬싱키 구도심 항구 옆에 있는 광장인 카우파토리, 카우파토리는 ‘시장 광장(Market Square)’라는 뜻의 핀란드어다. 시장은 역시나 활기가 넘친다. 하얀색 돔이 높이 솟은 핀란드 대성당이 굽어보고 있고 크고 작은 유람선들은 부지런히 오가며 사람들을 내려놓는다. 상인들은 항구 앞 천막시장을 열고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과일과 야채를 파는 잘생긴 젊은이들의 환한 미소는 피하기 힘든 유혹이다. 연어와 청어를 굽는 냄새는 더더욱 피하기 힘든 유혹이다. 결국 걸음을 멈추고 연어 스프를 맛보고 말았다. 신선한 연어의 맛에 항구의 바다 내음과 적당한 북적임이 맛을 더한다. 결국 연어 스프를 다 비우고 나서야 시장을 찾은 이유가 떠올랐다.
디자인 디스트릭트
발걸음은 자연스레 헬싱키 디자인 디스트릭트로 향한다. 헬싱키는 디자인의 도시답게 에스플러네이드 거리를 중심으로 중심가의 대부분이 디자인 디스트릭트로 지정되어있다. 이곳에 핀란드를 대표하는 아르텍(Artek), 마리메꼬(Marimekko), 이딸라(Iittala), 펜틱(Pentik) 등의 쇼룸을 비롯해 200여 개의 숍이 자리하고 있다. 에스플러네이드 거리 초입에 있는 아르텍 가구 매장부터 들렀다.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북유럽답게 제품의 가격은 상당히 비싼데, 어쩌면 오히려 다행이다 싶다. 소유욕일랑 곱게 접어두고 작품으로서 감상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북유럽풍 디자인은 보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무언가 더해지거나 화려한 것은 아니다. 디자인은 언제나 실용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주 작은 변화와 센스 있는 컬러로 보는 이를 미소 짓게 한다. 그래, 북유럽 디자인이란 바로 위트이자 유머이다. 북유럽의 땅을 밟고 나서야 이곳에서 디자인이 발달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칫 음울해지고 침잠하기 쉬운 환경 속에서 디자인이란 그들의 삶에 미소를 더하고 생명을 불어넣는 존재였을 것이다. 북유럽의 감성이란 추운 겨울을 견디며 따스한 여름햇살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