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식고등어’의 텐트 이야기 | 텐트 메이커 가루다 (상)
‘양식고등어’의 텐트 이야기 | 텐트 메이커 가루다 (상)
  • 글 사진 조민석 기자
  • 승인 2014.08.27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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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의 신조, 아웃도어의 한 시대를 풍미하다

20세기 중반 모스가 혁신적인 텐트 디자인을 들고 아웃도어 업계에 광풍을 일으키고 난 이후 많은 아웃도어 명가들이 앞을 다퉈 예술적 요소와 실용적 요소를 겸비한 텐트 메이커들을 육성하는 바람이 불기 시작했었습니다. 그와 더불어 텐트 디자인과 제작만을 전문으로 하는 텐트 메이커들도 등장하였습니다. 노스페이스, 시에라디자인, 마운틴 하드웨어, 인테그랄 디자인 등이 메이저급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이 21세기 텐트 메이커 업계의 경쟁적 양상을 촉발한 시초가 되었다는 것은 텐트 메이커 모스의 출현만큼이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닙니다.

▲ 텐트 메이커 가루다의 기본 모티프가 되었던 힌두교의 신조인 가루다의 모습입니다. 불교에서는 금시조 또는 묘시조라는 이름으로 통칭되기도 합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텐트 메이커의 공신력과 규모를 만들어나간 주류들 속에서 소규모 자본을 바탕으로 운영되던 텐트 메이커들이 결코 ‘꿀리는’ 모습을 쉽게 보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비유컨대 골목길 사이에 있는 조그마한 횟집이 대로변의 으리으리한 횟집에 밀리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작은 횟집이 밀리지 않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대형 횟집이 가지고 있지 않은 메리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횟집 주방장의 손놀림이 ‘오지게’ 좋다든가, 내 집처럼 아늑한 느낌이 있다든가, 진정한 회의 맛을 느낄 수 있다든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갑니다. 작은 횟집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건, 소규모 텐트 메이커들도 이와 비슷한 원리로 당대의 텐트 메이커 시장을 어느 정도 주름잡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대규모의 텐트 메이커들 틈 속에서도 나름의 메리트와 경쟁력을 가지고 끈질기게 텐트 메이커의 명맥을 이어나가던 회사가 있었다는 것이지요. 오늘은 그러한 ‘마이너의 탈을 쓴 메이저’들 중 하나에 속했던 텐트 메이커 가루다의 역사에 대해 여러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힌두교 신화의 신조, 가루다

‘가루다’라는 단어. 생소하기는 한데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보신 기억이 나지 않나요? 특히 인도네시아로 신혼여행 다녀오신 분들은 더욱 더 말입니다. 이유는 인도네시아 국적의 저가항공사의 이름이 가루다 인도네시아항공이기 때문이지요. 사실 가루다 인도네시아항공의 비행기를 타 보지 않으셨어도 이 글을 읽으시는 데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현존하는 여러 분야의 회사들 중 가루다라는 이름이 들어간 회사는 이 항공사 뿐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공교롭긴 합니다.

현존하지 않는 회사의 이름까지 포함하여 생각한다면 딱 하나의 회사가 더 추가되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 제가 여러분들께 소개드릴 텐트 메이커 가루다입니다. 텐트 메이커 가루다도 인도네시아 국적의 텐트 메이커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놀랍게도 가루다의 실제 국적은 인도네시아가 아닌 미국입니다. 그게 도대체 왜 놀라운 사실이지? 그 이유가 바로 오늘의 이야기입니다.

▲ 가루다 특유의 배색은 인도를 비롯해 아시아를 여행했던 바이런 슈츠가 승복에서 모티프를 얻은 것이다.
▲ 1995년 텐트 메이커 가루다가 아웃도어 박람회에 차린 부스의 모습입니다. 이를 계기로 텐트 메이커 가루다도 때아닌 유명세를 맞이하였습니다.

가루다의 정체가 무엇인지 우선 알아야겠죠? 가루다는 인도의 힌두교 신화에 등장하는 신조(神鳥)의 이름입니다. 사진에 나와 있듯이 외양부터 굉장히 ‘어마무시한’ 기운을 내뿜고 있습니다. 힌두교 신화에 등장하여 힌두교를 상징하는, 아시아권에 와보지 않고서야 알 수 없는 이 새가 북미에서 시작된 한 텐트 메이커의 디자인적 모티프가 된 셈입니다.

서로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에 있는 문화와 기술이 결합할 수 있었던 계기는 산과 아시아 문화를 사랑했던 한 산꾼의 등장입니다. 80년대 초반 대학교 생활을 시작했던 바이런 슈츠(Byron Shutz)라는 사람이 바로 그 주인공이지요. 사회학 분야를 전공하였던 그는 전공과는 다소 맞지 않는 등산이라는 취미를 가졌고, 미국 전역에 있는 명산을 종횡무진하며 자연과 아시아권 문화에 대한 식견을 차츰 넓혀나가고 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난 뒤에는 콜로라도 주에서 1년 넘게 작은 아웃도어 용품점을 운영하였지요. 아마도 그의 첫 직장이 텐트 메이커 설립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의견이 가장 타당해 보입니다.

▲ 미국 전역의 명산을 돌며 등반을 즐기던 바이런 슈츠와 그의 친구들의 모습입니다. 가장 왼쪽에 있는 사람이 바이런 슈츠입니다.

공식적 기록에는 바이런 슈츠가 1985년경부터 자신의 집 뒷마당에서 직접 텐트를 디자인하고 만들었다는 내용이 없습니다만, 그의 뒷마당에서 찍은 사진 몇 장이 비공식적인 기록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더욱 더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은 당시 그의 본업이었는데, 4년 넘게 부동산 분야의 자산관리 사업체의 부사장 직을 맡으면서 관리한 총 자산 규모가 1,700만 달러에 달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활동하면서 벌어들인 돈을 바탕으로 1990년에 텐트 메이커 가루다를 일으킨 셈이지요. 텐트만 잘 만드는 줄 알았던 바이런 슈츠가 이러한 분야에도 재능이 있었다니, 정말 의외의 사실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 자신의 집 뒷마당에서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텐트와 함께 있는 바이런 슈츠의 모습입니다. 텐트 메이커 가루다가 공식적으로 출범하기 이전에 찍은 사진이라는 점이 그가 1990년 이전부터 텐트 제작과 디자인에 관심이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시작한 것이 텐트 메이커였고, 그 이전에 시작한 것이 바로 아시아 일주였습니다. 그가 당시 방문했던 국가의 수는 꽤 많습니다. 1989년부터 1996년까지 인도, 파키스탄, 중국, 일본 등을 포함하여 총 10개국을 다녔다고 하는군요. 역시 젊음의 패기는 참으로 무섭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 중에서 방문하였던 인도에서 훗날 설립되었던 텐트 메이커 가루다의 중추라고도 할 수 있는 모티프를 얻게 되었지요. 가루다라는 신조와 더불어 인도 승려들의 승복 배색 역시 가루다 텐트의 디자인에 여지없이 반영되었지요. 이를 계기로 다홍색과 갈색 조합, 노란색과 파란색의 조합을 거쳐 가루다의 전통적인 텐트 디자인 배색인 노랑색과 버건디 색의 조합이 탄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배색은 텐트 메이커 가루다의 기본적 사명과 결합하여 회사 설립 이래 단 한 번도 변화를 거친 적이 없었지요.

▲ 1990년 공식적으로 출범한 텐트 메이커 가루다의 로고입니다.

가루다의 두각
디자인 모티프를 굳건히 하게 된 바이런 슈츠의 이상은 1990년도에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자본은 비교적 많았지만 첫 시작은 그리 큰 규모가 아니었습니다. 조그마한 가내 수공업 형태로 텐트를 제작하는 수준에서 머물렀지만, 하나를 만들더라도 제대로 만들겠다는 바이런 슈츠의 철학을 담아내는 데에는 이보다 더 나은 방법도 없었을 것입니다. 한국인이 텐트 제작 과정을 100% 전담하였다는 사실도 이에 한 술 더 뜨는 격이었고, 이를 바탕으로 힌두교 문화를 수준급의 완성도로 알파인 텐트에 담아내어 완성함으로써 텐트 메이커 모스에 버금가는 수준의 텐트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습니다.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마케팅에 큰 돈을 투자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탓인지 초년기의 텐트 메이커 가루다는 그리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못했습니다. 꽃봉오리는 크게 생겼는데 정작 활짝 피지를 못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답답해 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요.

▲ 텐트 메이커 가루다의 텐트가 생산되던 공장의 전경입니다. 이 작은 소매점 규모의 건물 안에서 한국인 노동자들이 한 땀 한 땀 정성껏 가루다 텐트를 제작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런 슈츠는 이러한 걱정의 시선들을 몇 년 후 기우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몇 년 전 캐나다의 재킷 캐나다구스가 때아닌 호황을 맞이하였던 것처럼 텐트 메이커 가루다도 한 아웃도어 박람회에 당당히 독자적인 텐트 메이커로 참여함으로써 그 이름을 전국에 떨치기 시작했습니다. 가루다의 텐트에 항상 사용되었던 사다리꼴 형태의 폴 구조와 특이한 배색, 탁월한 환기 시스템, 바이블러 사의 토드텍스에 맞먹는 싱글 월 원단의 기능성은 미국 전역에 있는 캠퍼들의 눈을 사로잡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1995년 가루다는 아랫부분을 웃돌던 매출 그래프를 사실상 수직으로 꺾어 올리는 기염을 토해내기 시작하지요.

텐트 메이커 가루다의 앞날은 이때까지만 해도 정말로 순탄하게만 보였지만, 여기에 반전이 생길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은 1996년 초반이었습니다. 양의 탈을 쓴 늑대 같은 존재들이 슬금슬금 텐트 메이커 가루다에 입질을 유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과연 텐트 메이커 가루다라는 물고기에 낚싯대를 던진 자들이 누구였는지, 그리고 그 결말은 어떻게 되었는지 다음 호에서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1990년대 중반에 리뉴얼된 텐트 메이커 가루다의 공식 카탈로그입니다. 사진 상에 있는 텐트는 2~3인용 규모의 싱글 월 텐트인 탐부(Tambu)와 트리카야(Trikaya) 모델로, 각 텐트의 이름은 힌두교에 등장하는 여러 용어들로 채택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요소들을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였지요.

▲ 실전에 사용되고 있는 2인용 싱글 월 텐트인 가루다 카자(Kaja) 모델의 모습입니다. 초창기의 가루다 텐트는 극소수의 마니아층 사이에서만 입소문을 타고 알려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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