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식고등어’의 텐트 이야기 | 텐트 메이커 가루다 (하)
‘양식고등어’의 텐트 이야기 | 텐트 메이커 가루다 (하)
  • 글 사진 조민석 기자
  • 승인 2014.09.2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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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발전, 허망한 결말

오늘은 드디어 텐트메이커 가루다의 말년을 좌지우지한 낚싯꾼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릴 차례입니다. 먼저 텐트메이커 가루다가 왜 대어였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당시 중소 규모의 아웃도어 메이커들은 특정 상품 하나를 제작하는 일에 전문성을 더하여 사업을 이어나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다양한 아웃도어 상품들을 한 브랜드에서 판매하는 대규모 아웃도어 메이커들의 힘이 강해졌습니다. 복합형 브랜드를 육성해야 할 필요성이 등장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굳이 여러 가지 용품들을 각각 다른 아웃도어 메이커에서 사야 할 번거로움이 없어지는 셈이었으니, 그 전략이 등장하게 된 계기 역시 소비자의 니즈에 의한 것이었다고 봐도 무방하지요.

▲ 1995년 겨울과 1996년 사이에 출시되었던 가루다 트리카야 텐트입니다. 당시 가루다에서 제작된 싱글월 텐트에 사용된 원단은 현재 블랙다이아몬드 사의 싱글월 텐트에 사용되는 토드텍스 원단과 매우 유사합니다.

시장의 변화라는 도전

노스페이스와 같은 대형 아웃도어 메이커들은 애초부터 자체 개발 등의 방법을 활용하여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사업 분야로 확장을 이미 시작한 상태였습니다. 반면 중소규모에 속했던 아웃도어 메이커들은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대안을 짜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문제는, 어떠한 상품을 만드는 기술을 스스로 개발하여 보유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요. 아웃도어 대기업들은 뛰어난 기술을 가진 소규모 메이커를 인수하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텐트 분야에서는 가루다가 그 대상이 되었겠지요.

텐트메이커 가루다가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소규모 아웃도어 메이커로서의 가치를 높게 인정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또 있습니다. 바로 텐트라는 상품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메이커였기 때문입니다. 텐트 하나를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요소들이 다른 상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요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았고, 그 모든 것들을 하루 아침에 준비하여 생산에 들어간다는 일은 무리수입니다. 설령 텐트를 만든다 하더라도 뛰어난 완성도와 기술력을 가진 텐트들이 이미 시장에 포진해 있었으니 그야말로 첩첩산중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텐트를 포기할 수도 없었습니다. 텐트는 아웃도어 활동에 있어서 전천후로 폭넓게 사용되는 장비였기 때문에 그 시장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통합형 아웃도어 브랜드를 육성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하는 장비가 바로 텐트였습니다.

가루다의 응전
아웃도어 전시회에 참여하여 시장에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내게 된 가루다는 이를 계기로 텐트에 대한 수요가 생각 이상으로 비대해지고 있음을 알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자체 생산 공장을 확장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면서도 텐트를 제작하는 방식은 이전의 것을 고수하였지요. 당시 텐트를 직접적으로 제작하는 일에 1년 넘게 한국인들이 참여하였다는 점 또한 텐트의 높은 품질 유지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자사의 텐트를 도매가로 대형 도매상들에게 판매하기 시작했고, 공정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전자화된 공정 시스템을 도입함과 더불어 이전에 다소 부실했던 마케팅 전략을 보수하기도 했지요.

▲ 텐트메이커 가루다가 K2 산하에 인수되고 난 뒤 새롭게 출시된 눅턱이라는 텐트입니다. 당시 생산된 가루다 텐트는 얇은 원단에 의한 결로 문제와 미흡한 바느질에 의한 우천시 누수 현상으로 곤욕을 치러야 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미국 전역을 포함, 캐나다, 일본, 유럽권까지 대리점 네트워크를 구축하였다는 사실 역시 주목할 만합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무리수로만 여겨지던 바이런 슈츠의 팽창적 전략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제품의 품질 저하에 대한 컴플레인은 단 한 건도 없었다는 것이겠지요.

그렇게 텐트메이커 가루다가 자체 브랜드 육성에 공을 들이는 사이, 가루다의 CEO 바이런 슈츠는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텐트 제작 분야를 인수하고자 했던 수많은 대규모 아웃도어 메이커들이 인수합병 제의를 해 왔기 때문이었는데요, 가루다를 인수하기 위해 협상 테이블의 반대편에 선 사람들은 당대의 아웃도어 시장을 주름잡다시피 하고 있는 메이커들이었습니다.

마모트를 비롯하여 노스페이스, 캐스케이드 디자인, 문스톤, 퀘스트까지. 노스페이스가 자체적으로 훌륭한 텐트 제작 기술력과 라인업을 가졌음에도 가루다의 인수합병을 노렸다는 사실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외 유저들 사이에서 말이 많습니다만, 반대로 가루다의 브랜드 가치가 그만큼 뛰어났다고 생각하는 의견이 주를 이룹니다.

▲ 90년대 중반에 참여한 박람회 이후 새로이 확장한 생산 공정의 모습입니다.

놀랍게도, 텐트메이커 가루다의 수장이었던 바이런 슈츠는 뛰어난 언변으로 언제나 협상 테이블에서 압도적인 주도권을 가지고 협상을 이끌어나갔습니다. 막상 바이런 슈츠가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은 뛰어난 협상가들에게 ‘당신들의 브랜드가 우리 회사를 인수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 때 뾰족한 답 한마디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는 일화도 있지요. 뛰어난 협상 기술로 텐트메이커 모스를 비롯하여 6개의 중소규모 아웃도어 메이커들을 단숨에 집어삼켰던 캐스케이드 디자인의 협상가들도 혀를 내둘렀을 정도이니, 그의 화술이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감이 오시나요?

바이런 슈츠가 텐트메이커 가루다의 인수합병에서 큰 대의나 명분을 찾고자 하는 이유는, 그에게 있어서 텐트메이커 가루다의 의미가 실로 컸기 때문입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바이런 슈츠가 텐트메이커 가루다를 창립할 때를 전후로 토드텍스 원단을 개발해낸 일등공신인 토드 바이블러와 텐트메이커 모스의 총괄 디자이너였던 빌 모스가 그를 진심어린 마음으로 도왔다고 합니다. 그들이 남긴 뜻에 바이런 슈츠는 그 무엇보다도 큰 의미를 부여했다는 것이지요.

▲ 텐트메이커가 가루다가 마모트에 최종적으로 인수되고 난 이후 출시된 마모트 스왈로우 텐트입니다. 3번 사진에 있는 가루다 빅조 텐트와 디자인상, 구조상 유사한 면을 띄고 있습니다.

특히나 그 중에서도 토드 바이블러가 싱글월 텐트 원단에 대해 조언해주지 않았더라면 바이블러 텐트에 사용되었던 토드텍스 원단의 가루다 버전인 바이로텍스 원단도, 가루다 텐트의 기술적 우수함도 없었을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바이런 슈츠가 그들의 숭고한 뜻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루다라는 브랜드에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겠지요.

가루다, K2 손으로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을 것으로만 여겨졌던 가루다의 협상 테이블은 미국에서 출자한 스키용품 전문 브랜드인 K2와 협상을 시작하면서 1995년 겨울 최종적으로 타결됩니다. 다른 협상가들이 제시한 이유에 비하면 K2 측에서 제시한 인수합병의 이유는 생각보다 소박했고, 순수했습니다. 그들이 제시한 협상의 이유는 이러했습니다.

▲ 현재 미국에서 교육 분야 시민운동가로 활동 중인 바이런 슈츠의 모습입니다.
“저희 그룹의 산하에는 다나디자인이라는 중소 규모의 배낭 메이커가 하나 있습니다. 다나 글리슨이라는 이름의 창업주가 1980년대부터 북부 지방의 몬태나 주 내에 있는 한 산악도시에서 만든 메이커인데, 배낭이든 카탈로그든 간에 그들의 작품에는 여타 브랜드에서 만나볼 수 없는 그 특유의 정갈함과 섬세함이 묻어나 있습니다.

우리 회사가 다나디자인이라는 중소 규모의 백팩 메이커를 자회사로 인수한 이유는 비단 수익성이라는 요소에 국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비슷한 시기에 그들과 비슷한 역사를 거쳐 온 브랜드입니다. 그들은 그 때부터 사람들의 등에 딱 들어맞는 편안한 배낭을 만들었었고 우리는 그 때부터 사람들의 몸에 딱 들어맞는 편안한 스키 장비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지난 아웃도어 박람회에서 당신들이 우리들과 같은 철학으로 아웃도어 시장에서 입지를 다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당신들과 함께 아웃도어 시장에서 연합하여 앞으로의 미래를 내다보고 싶습니다.”

K2가 제시한 인수합병의 대의, 여러분들은 어떻게 느끼셨나요? 이를 흡족히 받아들인 바이런 슈츠는 장장 1년에 걸쳐 텐트메이커 가루다의 기술적 부문과 비물질적인 부문을 꼼꼼하게 신경을 써 가며 인계하였고, 이를 계기로 바이런 슈츠는 수 년간 이어진 협상 테이블에서 발견한 그의 달변가적 능력을 살려 워싱턴 주에서 교육 분야 시민운동가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끊임없는 노력 끝에 워싱턴 주 레드먼드 시의회의 부의장 직과 워싱턴 주의 학교에 충분한 재정 지원을 촉구하는 한 시민단체의 대표를 겸임하며 미국의 수도가 있는 워싱턴 주의 무상공교육제도 실시를 위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정치운동가가 된 것이지요. 정책의 옳고 그름을 떠나 바이런 슈츠가 고도의 언변을 요하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그가 그에게 가장 잘 맞는 직업을 마침내 찾게 된 것 같습니다.

공중분해로 사라지다
하지만 씁쓸하게도 그의 개인적 삶과는 반대로 K2의 손에 넘어간 텐트메이커 가루다는 그야말로 공중분해되어 암흑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실제로 텐트메이커 가루다는 K2의 산하에 있는 콜롬비아 사에서 원가절감을 위한 대수선을 거쳐야만 했습니다. 이 때 눅턱이라는 티피 형태의 모델이 출시되기도 하였는데, 이때부터 원단이 얇아졌다는 유저들의 불평과 텐트의 플라이에서 비가 새는 등의 품질 저하에 관한 비난이 빗발치기 시작했습니다.

▲ 2010년도에 들어서면서 마모트에서 생산되고 있는 대형 돔 텐트인 마모트 레어입니다. 스왈로우 텐트와는 판이하게 가루다에서 사용되던 노란색과 버건디 색의 배색 조합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얼마 오래 있지 않아 비난을 견디지 못한 가루다는 마모트의 손에 다시 넘어가게 되는데, 이때부터 가루다의 공중분해가 시작되었지요. 당시 이렇다 할 텐트 제작 기술이 없었던 마모트는 가루다의 디자인적 정체성과 형질을 철저히 배제하고 남은 기술적 부분만 차용하여 마모트의 1세대 텐트들을 만들어나갔고, 그 과정에서 가루다의 텐트들은 모조리 멸종(?)의 길을 걷고 맙니다.

이를 보다 못한 일본의 콜맨 사에서 가루다의 텐트 제작 기술 중 일부와 여전히 K2의 산하에 있던 다나디자인을 인수하여 브랜드의 명맥을 잇기 위해 노력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한 채 경영난을 맞이하여 다시 공중분해의 길을 걷고 맙니다. 여기에서 다나디자인은 독립을 선언하여 현재까지 미스테리랜치라는 배낭 전문 메이커로 위험해졌던 입지를 다시 굳히게 되었구요.

다음 호에서는 국내에서도 상당히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굴지의 대규모 아웃도어 메이커인 노스페이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노스페이스 또한 텐트 제작 분야에 있어서 텐트메이커 모스와는 또 다른 형태의 획을 그은 브랜드이니 그들의 이야기 또한 기대하셔도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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