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찌 여름에만 어여쁘다고 하랴!"
"내 어찌 여름에만 어여쁘다고 하랴!"
  • 글·김경선 기자ㅣ사진·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6.27 11: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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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TRAVEL 포항① 내연산 일주 트레킹

겨울에 만나는 산은 말이 없다. 꽁꽁 얼어붙은 계곡과 앙상한 나무는 모든 활동을 멈춘 듯 고요하고, 산을 찾은 이들의 낙엽 밟는 소리만 산중에 맴돈다. 번잡하고 경쾌한 여름 산과는 또 다른 매력이 겨울 산에 숨어있는 것이다.

내연산(內延山, 710m). 뜻을 그대로 풀이하면 ‘안으로 끌어들이는 산’이다. 얼마나 수려한 진경을 품고 있길래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 연산폭을 흘러내린 계곡물이 관음폭을 지나 감로담으로 떨어진다. 기암절벽과 어우러진 관음폭의 장관이 수려하다.
산의 이름은 원래 종남산(終南山)이었다. 옛날 중국 종남산에는 속세의 영화를 버리고 숨어살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선비들이 많이 살았다는데, 겨울의 내연산 역시 일상을 털어내고 숨어들고 싶을 만큼 고요한 침묵이 존재하고 있었다.

내연산은 12개의 폭포가 보석처럼 빛나는 산이다. 그리고 겨울이면 수정처럼 맑은 계곡물이 얼어붙어 영롱한 아름다움은 더욱 빛을 발한다. 계곡의 참맛이 여름이라지만 내연산에서 만나는 겨울 계곡은 순수하고 투명하다.

세상의 찌든 몸과 마음을 내연산 자락에서 달래고자 산으로 향했다. 오늘 산행을 함께할 일행은 하찬수(41)·김순주(40) 씨 부부와 두 아들 영웅(10)·혜성(8) 군이다. 대학시절부터 산악부 활동을 하며 산을 사랑했던 부부는 이제 두 아이와 함께 산을 찾는다.

“영웅이와 혜성이는 내연산만 10번 이상 왔어요. 직장 때문에 포항으로 거주지를 옮긴 지 2년 정도 됐는데 틈 날 때면 아이들과 내연산에 옵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아이들이 땅을 밟을 기회가 많지 않잖아요.”

또래의 아이들이라면 집에서 컴퓨터 게임에 한창일 텐데, 산으로 향하는 두 아이들의 발걸음이 힘차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한파가 추울 법도 한데 얼굴 가득 웃음꽃을 피운 아이들의 모습이 산행의 시작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영롱한 빛을 뽐내는 12폭포

▲ “가위 바위 보” 힘든 산행길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하찬수 씨와 영웅 군.
보경사를 출발해 12폭포를 둘러보고 향로봉(930m)~내연산~문수산(622m)을 거쳐 원점회귀를 하기로 했다. 2000원의 관람료를 내고 보경사로 들어서자 조용한 사찰에 울려 퍼지는 풍경 소리가 일상의 그늘을 한 꺼풀 벗겨냈다.

내연산에 살포시 안겨있는 보경사는 오랜 역사를 지닌 사찰답게 고즈넉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경내에 있는 보경사원진국사비(보물 제252호)와 보경사부도(보물 제430호)가 사찰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더욱 북돋웠다.

보경사 담장을 따라 수로를 거슬러 올라갔다. 10여 분을 걸어가니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계곡을 따라 왼쪽의 거친 산길로 들어서자 잠시 뒤 상생폭이다. 두 개의 물줄기가 떨어져 한 몸이 되는 폭포.

그 물줄기가 떨어져 만들어진 널따란 못 기화담에는 고관대작과 음주가무를 즐기던 기녀가 떨어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스산한 전설을 모르는 아이들은 얼어붙은 수면을 깨려고 돌멩이를 던지기 바쁘다.

상생폭을 지나 보현폭·삼보폭·잠용폭을 차례로 넘었다. 갈 길이 먼 일행은 폭포마다 담겨진 사연을 챙기기가 녹록치 않다. 출발한 지 1시간쯤 지났을까. 내연산 12폭포 중 백미라는 관음폭과 연산폭에 도착했다.

학소대와 비하대 사이의 바위를 휘감고 쏟아지는 연산폭 물줄기가 관음폭을 거쳐 감로담으로 흘러들어가는 비경은 청하골(내연골)의 핵심이다. 비록 관음폭의 물줄기가 얼어붙고, 감로담은 낙엽으로 뒤덮여 옥빛 소의 아름다움을 감추고 있었지만 기암과 어우러진 폭포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 고즈넉한 보경사 경내에는 풍경 소리만 울려 퍼졌다.
연산폭을 보기 위해 관음폭 위로 난 구름다리를 건넜다.
“와~, 아빠 폭포가 얼었어요.”

시원한 물줄기 대신 얼어붙은 폭포가 일행을 맞이했다. 하얀 물보라가 그대로 멈춘 듯 바위 사이를 메운 얼음 덩어리는 검푸른 소에 몸을 묻었다.

이런 아름다운 폭포의 풍경에 진경산수화의 거장 겸재 정선은 1753년 청하현감으로 재직할 당시 내연산 용추도·내연산 폭포도 등의 걸작을 남겼다고 한다.

길은 연산폭포에서 멈춘다. 등산로를 따르려면 다시 관음폭으로 내려와 비하대 왼쪽으로 난 가파른 길을 올라야한다.

오르막을 5분 정도 걸어가니 등산로 오른쪽으로 계곡을 훤히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타났다. 바위에 올라서자 지나온 계곡 길이 한 눈에 펼쳐졌다.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굽이치는 계곡과 학소대·비하대의 기암절벽이 내연산의 수려한 장관을 완성하고 있었다.

포근한 어미의 품 같은 내연산 주능선

▲ 향로봉 정상. 동해바다와 낙동정맥의 능선을 조망할 수 있다.
다시 계곡을 따르니 지나온 폭포의 화려함이 언제 있었냐는 듯 계곡은 금세 고요하다. 은폭을 지나면 풍경은 더욱 잔잔해진다. 역동적인 한 때가 지나면 여유롭고 평화로운 것을 찾게 되는 인생과 사뭇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길이 제법 험해 크고 작은 돌멩이가 걸음을 자꾸 방해했다. “향로봉에서 내연산~문수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아주 부드러운데, 청하골은 길이 제법 험해요. 돌이 많아서 발도 많이 피곤하고요.”

이제 길은 비탈을 따라 고도를 점점 높이면서 계곡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오솔길을 지나자 너덜지대가 나타났다. 오른쪽 산사면 전체가 거대한 돌무덤처럼 보인다. 산이 흙과 나무에 감춰두었던 속살을 마음껏 내보이고 싶었나보다. 너덜지대를 지나 얼마나 걸었을까, 드디어 시명리다.

시명리에서 고메이등을 치고 올라야 향로봉이다. 산에서 오르막을 걷는 것은 끊임없이 나와 타협하는 과정이다. ‘저 등성이만 넘으면 되겠지’ 싶어 두 다리를 재촉하지만 어느새 정상은 저 멀리 달아나 버린다. 이럴 때면 마음을 타이르는 수밖에 없다.

▲ 문수산에서 하산하다보면 청하골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를 만난다.
끝이 없을 것 같은 능선길을 한 시간 가량 올랐을까. 정상 아래 작은 봉우리를 지나 길은 잠시 오솔길로 이어지더니 드디어 향로봉 정상이다.

정상에 서면 ‘향로봉(930m)’이라 쓰인 비석이 산행객을 반긴다. 바다쪽으로는 파란 동해가 한 눈에 들어오고 내륙쪽으로는 주왕산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 산줄기가 줄달음친다.

향로봉에서 문수산까지는 산길이 순하지만 거리가 제법 만만치 않아 서둘러 내연산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내연산으로 향하는 능선길은 사방이 낙엽으로 뒤덮여 포근했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산길은 썰매를 타도 될 듯 부드러운 능선길이다. 아이들도 덩달아 신이 나는지 서로 낙엽을 던지며 장난치기 바쁘다.

낙엽을 헤치며 걷다보니 어느새 내연산 정상이다. 비석만 덜렁 놓인 밋밋한 정상을 내려와 다시 긴 낙엽 숲을 지나 마지막으로 문수샘에서 목을 축였다. 긴 능선이 이제 숨을 고르는 것이다.

문수산에서 내려오는 산길은 제법 가팔랐다. 눈이라도 내리면 아이젠 없이는 하산이 힘들어 보였다. 미끄러운 산길을 30분쯤 내려오니 수려한 청하골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타났다. 그 까마득한 절벽 아래 상생폭이 아스라하다.

오전 내내 걸었던 길고 긴 청하골은 이제 바람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씽씽’ 불어대는 바람 소리와 사각거리는 낙엽소리만 청하골에 가득하다. 계곡을 향해 내 속내를 슬쩍 뱉어낸다면 산은 어떤 대답을 바람에 실려 보낼까. 잠시 머물다 떠나는 나그네에게 내연산은 말이 없다.

내연산 일주 트래킹

▶코스 : 내연산 일주는 보경사~청하골(내연골)~시명리~고메이등~향로봉~내연산~문수산~보경사 코스나 반대로 도는 원점회귀 코스가 일반적이다. 청하골은 계곡길 답게 크고 작은 돌들이 많아 길이 제법 험하다. 겨울에는 아이젠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보경사에서 시명리까지는 3시간 정도 걸린다. 시명리 삼거리에서 향로봉으로 오르는 길과 삿갓봉으로 오르는 길이 나뉜다. 직진해 고메이등을 따라 향로봉으로 올라야한다.

시명리에서 향로봉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린다. 향로봉~내연산~문수산 코스는 부드러운 능선길이다. 길이 평탄하고 순해 산행이 편안하다. 2시간30분 정도 걸린다. 문수산에서 하산하는 길은 제법 가파르다. 하산하는 데 40분 정도 걸린다. 내연산 일주 코스 약 18km, 7시간 소요.

일주 코스가 부담스럽다면 청하골 백미를 감상할 수 있는 보경사~연산폭포 계곡 코스라도 걸어보자. 코스 길이는 약 2.7km로 왕복 1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보경사 입구에서 문화재관람료를 받는다. 입장료는 어른 2000원, 청소년 1500원. 주차료 2000원. 보경사 종무소 전화 054-262-1117

▶교통 : 포항종합버스터미널(054-272-3194)에서 보경사행 500번 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06:00~18:50) 운행한다. 요금 1000원. 5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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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사랑 2019-06-02 00:36:32
보경사 입구 주자창 주차비는 작년(2018년)부터 징수 폐지된 걸로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