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석꾼 곳간엔 아직도 곡식이 그득할까?
만석꾼 곳간엔 아직도 곡식이 그득할까?
  • 글·김경선 기자 | 사진·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6.27 11: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NATIONAL PARK TRAVEL 04 송소고택 체험

▲ 칠흑 같은 밤이면 송소고택의 건물들은 한지등처럼 은은한 빛을 뿜어낸다.

아흔 아홉 칸 조선 상류가옥…사랑채ㆍ안채ㆍ별채에서 숙박 가능

양반집 사랑채 아랫목에 몸을 눕히고 찬바람 쉭쉭 들어오는 문틈에 시선을 고정한다. 왠지 허언 수염 난 바깥주인이 벌컥 문을 열고 호통을 칠 것만 같다.
“아녀자가 사랑채엔 웬일이오.”


번듯한 모양새를 갖추고 유럽풍의 멋들어진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요즘 펜션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번쯤 로맨틱한 영화 속 주인공이 되고픈 충동이 일어난다. 거기다 각종 취사용품이 하나에서 열까지 제대로 갖춰져 있으니 어느 하나 불편함이란 없다. 그런데 가끔 이런 풍요로움 속에서도 전통 한옥의 뜨끈한 아랫목이 그리울 때가 있다. 영락없이 한국 사람인가보다.

▲ 옛 정취가 그대로 남아있는 고택.
한옥, 그것도 전통 있는 고택에서의 하룻밤은 낭만적이다. 어릴 적 친구들과 이불 속에서 속닥이던 달콤한 추억도 고택에서는 가능하다. TV도 라디오도, 그 어떤 문명의 방해도 없는 오롯한 휴식, 간만에 느끼는 추억의 향기에 몸도 마음도 동화된다.

경주 최부잣집과 더불어 영남의 2대 부자로 알려진 청송 심부잣집. 아흔 아홉 칸의 어마어마한 부잣집은 담벼락만 해도 십리 길이다. 그러나 사랑채, 안채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선 헛담의 겉치레가 정겨울 수 있는 이유는 고개만 빠끔 내밀면 쉬이 그 너머 사정을 꿰뚫을 수 있는 정겨운 전통 가옥의 구조 때문이다.

조선시대 만석의 부를 누렸다는 심처대의 7대손 송소 심호택이 지은 송소고택은 당시 상류층 가옥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랑채와 안채, 별채, 행랑채 등 건물만 7동 아흔 아홉 칸이나 된다는 이 집의 규모는 당시의 심씨 일가가 얼마나 세도가였는지 짐작하게 한다. 아니나 다를까. 조선시대 심씨 가문은 정승만 열 셋, 왕비와 부마를 넷이나 배출했다고 한다.

청송 심씨의 시조는 고려 때 위위시승이란 벼슬을 지낸 심홍부인데, 그 자손은 이성계의 역성혁명을 지지해 좌의정을 지낸 심덕부의 후손과 새 왕조의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서 평생을 산 심원부의 후손으로 나뉜다. 현재 청송 지방에 흩어져 사는 심씨는 대부분 심원부의 후손이다. 그중에서도 송소고택은 조선 영조 때 만석의 부를 누린 송소 심호택이 지은 집으로 조선 상류저택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난다.

130년 가까이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는 송소고택. 현재 고택은 종손 심재오 씨가 소유하고 있지만 사업 관계로 고택을 관리할 수 없자 친구 박경진 씨에게 대신 경영을 맡겼다. 그 후 고즈넉하던 고택은 박경진 씨의 관리로 생기가 넘쳐나고 있다. 그는 전통문화사업의 일환으로 고택을 일반인들에게 개방했음은 물론 음악회 등의 공연도 적극적으로 유치해 전통문화 알리기에 힘쓰고 있다.

심부자가 얼마나 거부였든 양반과 평민의 구분이 없는 요즘 세상에 떵떵거리던 양반댁 아랫목에 몸을 뉘여 보는 것은 분명 색다른 체험이다.

▲ 오래전에는 이 커다란 항아리가 수십 명 식구들의 입을 책임졌을 것이다.

한갓진 여유로 물든 공간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어가는 늦은 오후, 실개천 너머 송소고택이 고운 자태를 뽐낸다. 활짝 열린 솟을대문 속 세상은 시간을 초월한 듯 옛 공간 그대로 객의 방문을 환영한다. 가장 먼저 일행을 반기는 것은 청삽살개다. 커다란 덩치로 순박한 눈을 껌벅이며 착한 천성을 드러내는 삽살이의 환영은 오랜만에 고향집을 방문한 것처럼 편안하다.

“계세요?”

객의 부름에 행랑채에 머물던 관리인이 잽싸게 뛰어 나왔다.

“어서 오세요. 아까 전화 주신 분들이죠? 미리 방에 불 지펴 놨어요. 추우실 텐데 어서 들어오세요.”

관리인을 따라 들어간 곳은 사랑채다. 100년 넘도록 뜨끈한 아랫목을 지키고 있던 자리는 시커멓게 탄 흔적이 역력하다. 아닌 게 아니라 살짝 손을 대기만 해도 불에 덴 듯 화들짝 놀란다.

“방이 지글지글 끓죠? 지금 바로 이불 깔면 탈 수도 있으니까 자기 전에 펴고 주무세요.”

관리인이 나가고 나서야 방 안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한지로 정성스럽게 도배한 벽면과 거뭇거뭇 탄 흔적이 남아있는 노르스름한 방바닥, 그 위에 얌전히 개켜져 있는 이불 두 채. 익숙하지 않은 풍경임에도 왠지 낯설지도 않다.

방은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앉아 있으면 엉덩이는 델 듯이 뜨겁지만 코끝은 살짝 시려오는 이질적인 구조다. 이럴 때 편안하게 바닥에 몸을 누이면 훈훈한 기운이 온 몸을 감싸온다. 손끝 하나 옴짝달싹하기 싫어지는 온돌의 매력이다.

▲ 안채를 가로지른 담벼락에는 바깥세상을 몰래 엿볼 수 있는 구멍이 뚫려있다.

처마 너머 밤하늘을 수놓은 별무리
어둠이 깔린 고택은 바람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음도 없다. 대청마루에 앉아 쏟아질 듯 반짝이는 별무리를 감상하는 것 외에는 할 일도 없다. 그렇게 밤이 깊어갈수록 잊고 지낸 나와의 조우도 더욱 깊어만 간다.

인공의 가로등 하나 없는 고택은 밤이면 달빛과 별빛을 등불 삼는다. 은은한 빛을 벗 삼아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보면 안채, 사랑채, 행랑채마다 고택 체험을 하는 이들의 도란도란 말소리, 웃음소리가 새어나온다. 그들은 그저 이야기꽃을 피우며 하루를 마감할 뿐이다. 변변한 오락거리 없이도 행복할 수 있는 고택의 밤이다.

시골의 아침은 부산하다. 이집 저집에서 아침을 알리는 수탉의 울음소리가 동네에 가득할 때쯤 밤 사이 식어버린 아랫목에 장작을 지피고 아침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할 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른 봄의 아침은 여전히 춥다. 따끈한 아랫목에서 한참을 뭉그적거린 후에야 밖으로 나갈 용기가 생긴다.

바쁜 일정에 쫓겨 이른 아침부터 송소고택과 작별인사를 나눴다. 아침밥이라도 들고 가라는 관리인 아저씨의 달콤한 유혹도 뿌리친 채 삽살이 껌껌이와 아쉬운 작별을 고한다.

푸른 소나무의 고장 청송(靑松). 공기 맑고 물 맑은 이 고장에 봄이면 복사꽃이 만발한다. 그 꽃길 따라 대갓집 담 너머도 구경할 겸, 푸른 소나무 따라 기암괴석 만나러 주왕산도 갈 겸 청송으로 떠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색동옷 곱게 차려입은 수줍은 처녀의 살폿한 미소처럼 그렇게 청송의 봄은 향긋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